막공을 보내기 망설여졌던 것은, 7월 15일로부터 시작한 모든 여름의 일들이 꿈으로 남을까 봐서였다. 솔로 앨범과 뮤지컬은 전혀 다른 별개의 활동이었지만 시기상 너무도 맞물려 있어서 연장선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몰아쳤던 여름을 완전히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막공 이후 충족되어 그것으로 그만 잠들어버리고 싶었던 마음과 만나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더 늦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막공의 여운을 두 팔로 느끼고 있을 때 마무리한다. 다시 만난 죽음을 보내는 일.
깐토드
첫공과 균형을 이루는 올린 머리, 초연과 같은 어두운 계열의 회보랏빛 네일. 그리고 양손에 하나씩, 하얗게 빛나는 커다란 반지. 마지막의 그를 이루는 많은 것들은 처음과 많이 닿아있었다. 초연의 첫공과 막공이 그랬듯이.
담담한 듯하면서도 부분부분 격정적일 정도로 섬세한 프롤로그. '냉혹한 나를', '잃은 채'의 신음하는 듯한 강약 조절이 마지막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샤죽음'은 어떤 형태로든 또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믿음이 있는 반면 이렇게 극 안에서의 그를 보는 건 이것으로 마지막일 터. 끝이 주는 감회는 항상 남다르다. '마지막'에 투영해 본 무대는 새롭고도 애틋했다. 장면 장면의 그가 여러 갈래의 잔상으로 번지며 느릿느릿 흘러갔다. 초상화를 향해 뻗어지는 손이나 돌아보던 얼굴. 이를 드러내며 앙 물던 입술. 그의 목소리 자체에도 평소보다 진한 지상의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어쩌면 그리움, 어쩌면 애착 깊은 회한. 기억을 더듬는 뒤통수 위로 한 가지로 특정할 수 없는 죽음의 감정이 마구 피어올랐다. 감히 그의 엘리자벳을 노래하는 루케니를 향해 더해보라는 듯, 살쾡이처럼 으르렁거리며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릴 때도. 너의 패기가 제법 가상하다, 이런 느낌의 표정이었는데 팔자 눈썹을 하면 순해 보이는 인상은 어쩔 수 없다. 순한 눈매를 앙칼지켜 올려가며 으르렁대는 그가 익숙한 만큼 마음이 내려앉았다. 한 소절, 한 장면 모두가 정말로 마지막. 끝이 주는 여운 속,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연기 위에 청청히 선 그를 이제 보내야 한다니, 프롤로그에서부터 먹먹해졌다. 그 역시도 그랬을까. 시작부터 묘하게 탱글거리는 느낌의 죽음이었다.
론도는 느리고, 부드러웠다. 눈빛 때문인가, 촉촉하기도 했다. 돌연한 따사로움에 방패 같던 그의 차가움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엘리자벳이 나의 '친구'라며 그를 칭하고, 죽음에게 감화될 때 그가 보였던 미소. 이토록 부드럽고 나긋한 론도는 처음이었다. 세미막에서도 충분히 놀라웠는데 막공에서 특히나 보드랍고 끈끈한 감정으로 가득했다. 그로부터 발화한 모종의 감정이 그와 그녀를 휘감고 놓지 않겠다는 듯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흡사 그들의 둘레로만 투명한 막을 쳐놓은 것 같았다. 진녹빛 어둠에 잠긴 앙상블 사이에서 펼쳐지는 오롯한 둘만의 대화가 낯설 정도로.
론도는 극 전체를 꼭 맞물리게 하는 교정 장치와 같다. 특히 낮공에선 론도와 그림자는 길어지고-전염병-추도곡의 맞물림이 무척 유기적이었다. 각 넘버의 모든 가사가 하나의 산문처럼 꼭 들어맞았다. 언제, 어디에서나 자신이 곁에 있다는 것을 론도에서부터 확고히 한 그는 그림자에서나, 전염병에서나 그 사실을 거듭 확인하며 그녀를 옭아맨다. 나를 더 원할 수밖에 없다고, 드러내어 경고하기도 한다. 때로는 차분히, 때로는 매섭게 그녀의 숨통을 조여가는 그는 차가운 생명 대신 따뜻한 사랑을 더 느끼고 싶다던 말과는 반대로 잔악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그가 악랄해질수록 안타까운 것은 그녀가 아닌 그 자신이었다. 그런 식으로밖에 사랑을 다루지 못하는 그의 태생적 한계가 마음을 찔렀다.
아아, 론도에서나 그림자에서나 마무리 즈음 어둠에 기대어 젖힌 고개는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만큼이나 시선을 떼지 못하게 했던 론도에서의 김소현 엘리자벳도. 죽음에 홀린 얼굴이 너무나 예쁘시세요..
마지막 춤은, 하하. 최고라고 말하기도 이젠 민망하다. 항상 최고니까! ㅎㅎ
낮밤 모두 첫 등장의 숨소리가 다른 때보다 길었다. 거의 두 숨처럼. 막공에선 세 숨까지도 되었던 것 같다. 길고 녹진한 숨결. 그도 끝임을 알고, 완전한 끝이 다가오기 전을 음미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 숨소리였다. 세미막공에서 도입부의 모든 구절 끝에 경미한 숨소리가 진득하게 따라붙은 것도 새로웠다. 특히 '미소 짓는 너' 직후 고개를 돌리면서는, 어떻게 그렇게 나른할 수가? 고갯짓 자체도 무대를 거듭하며 점점 깊어져 왔는데, 곡의 박자까지 느려지니 나른한 섹시함이 곱절이 된다. 완전히 다른 노래, 다른 사람 같았다.
입맞춤을 처음 시도할 때는 오늘따라 너무 가까워서 정말 닿는 줄 알았다. 그대로 뮤지컬 종료되는 줄ㅎㅎ 김문정 음감의 복귀로 오케스트라 전체의 박자에 변동이 생겼는데, 넘버 전체가 루즈 템포로 변하니 그에 맞추어 시아준수의 디테일에도 변화가 생겼다. 훨씬 더 은근하게 다가서서, 더 느릿하게 물러서는 식으로. 전체적으로 훨씬 나른나른해졌다.
'깨어날 거야'의 손동작은 꼭 공작새처럼 손을 유난히 쫙 뻗어 펼친 후 웨이브로 이어갔다. '공긴 습하고 탁해' 하면서는 신사처럼 두 다리를 딱 모아서 근사하게 선 채로 손끝을 모았다. 음을 짚는 박자는 오케스트라에 맞추어 느려졌지만 날랜 동작은 여전했다. 노래와 안무의 분리가 정확히 되면서도, 동시에 그 두 가지가 하나의 연기로 수렴하는 그가 너무도 신기했다.
뒷걸음질하면서는 재연 들어 처음으로! 지상에서 프란츠 요제프에게 시선을 두었다. 두 사람을 향해 번갈아 검지를 빙글빙글 돌리는 것이 마치 너, 너희들. 이런 식이었다. 아아, 브릿지 위에서 엘리자벳이 자신의 손을 거절한 직후에도 프란츠 요제프 쪽으로 시선을 잠시 두었다. 짧지만 분명하게, 그를 노려보며 화를 채근했다.
막공에서는 요제프에게 단지 시선을 두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죽음으로서의 그의 유일한 애드립이라고 할 수 있는 동작! 초연 5월의 마지막 춤에서 있었던 프란츠 요제프를 의식하는 바로 그 안무를 다시 보았다. 엘리자벳의 앞으로 유연하게 미끄러지듯 턴하여 굳어 있는 황제 곁으로 다가가서는, 얼굴을 가까이로 들이밀곤 그를 쳐다보았다. 약 올리듯, 과시하듯. 황제를 훑어내리는 농밀한 시선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자신감 이야기를 하면 그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알고 있어, '마지막 순간'에서의 강약을 조절하는 그는 정말로 인간이 아닌 느낌을 준다. 그가 말하는 '마지막'이 무엇이든 간에, 인간이 볼 수 없는 운명을 투시하며 엘리자벳을 비웃는 그가 참.. 멋있다.
세미막공에서는 브릿지로 돌아갈 때의 동선이 죽음의 천사들과 엉키면서 살짝 꼬였는데, 그 바람에 그를 잠시 놓쳤다ㅠ 브릿지 위, 최상에서는 1일 밤공과 같이 오른 무릎을 쓰러트렸다. 강한 힘의 반동으로 뒤로 넘어간 것처럼 그가 몸을 쓰러트린 위로 어둠이 내렸다.
그리고 박수가 점차 길어진다. 프롤로그도 그랬지만, 마지막 춤은 완전한 그의 솔로이니만큼 관객들의 응집력이 대단하다. 낮과 밤 모두 전반적으로 박수가 있어야 할 곳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행복한 종말과 1막의 그림자는 길어지고에서 박수가 나오지 않는 것이 좋았다. 특히 행복한 종말의 경우, 재연에서 추가된 디테일로 인해 넘버가 끝나는 순간 그의 연기가 시작되어 퇴장할 때까지 이어진다. 자연히 넘버 자체도 연기 중인 그의 퇴장 시까지 연장되는 느낌을 주기에, 그와 무대를 향한 집중이 유지되는 데에는 박수가 없는 편이 좋다. 아아, 낮밤 모두 고요한 침묵을 이어갔던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rise-음모 사이도 참 좋았다. 이 순간의 꽉 조여진 긴장은 무대 위에서의 그를 보는 것만큼이나 큰 자릿함을 선사한다.
그림자는 길어지고. 그림처럼 두 눈에 박혔던 것은 '세상의 종말'을 부르며 탁탁탁 세 번 계단식으로 펼쳐지는 손. 무대 위로 번져가는 어둠의 늪이 세력을 확장하는 모양새를 보는 것만 같았다.
침대 위에서 오늘은 눈을 뜬 채였다. 잘생긴 눈썹이 그녀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여기서 그의 눈썹이 노래하는 방식이 놀랍다. 생명이 있나 싶을 정도로 섬세하고, 세밀하게도 연기한다. 엘리자벳이 서서히 그에게로 끌려올 때 팽팽해지던 눈썹. 그녀가 거부하며 멀어지자, 끈이 팅~ 풀리듯 이완하며 어라, 하던 눈썹. 그 곧고 길게 뻗은 잘생긴 눈썹..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일어날 때, 그의 오른 다리가 움직이는 방식 역시 자꾸만 떠오른다. 종아리가 컴퍼스로 원을 그리듯 크고 정확하게 빙그르르 돌아가며 땅에 안착했다. 와, 손수건처럼 가볍고 날래서 진짜 무슨.. 연체동물의 움직임을 보는 것처럼, 그런데 동시에 신속하고 강약이 살아있는 몸놀림이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에는 평소보다도 가분히 웃었다. 정색이라기보단 어디 그래 봐, 이런 느낌으로. 암전이 평소보다 늦어서 어둠 속에 선 그의 탄탄한 몸을 좀 더 오래 볼 수 있었다. 굳! 막공에서는 그녀를 유독 기특해하는 눈빛이 강했다. 꼭 이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 즐거워 보였다. 그녀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얼굴로, 섭섭함이나 정색은 거의 없었다.
막공의 밀크는 그간 중 가장 좋았다. 특히 민중의 해방! 하며 일갈하는 루케니의 가사가 정확하게 들려 짜릿했다.
내가 춤추고 싶을 때의 도입부에서 청록빛 조명을 받아 빛나는 독수리 상 밑의 그는 참 그림 같다. 그가 독수리인지, 독수리가 그인지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눈매와 매끄럽게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가 닮았다. 언제라도 날개를 펼쳐 그녀에게로 덮쳐들 수 있을 것 같은 날램이 엿보인다. 게다가 양쪽 사선으로 빗금을 내어 뒷머리까지 빽빽이 세운 머리가 왜 그리도 멋있던지. 깐토드는 정말 잘생잘생하세요..ㅠ
세미막공에서는 조금 재미난 이야깃거리들이 있었다. 죽음과 엘리자벳이 원을 그리며 대치하다가 죽음의 입맞춤 시도가 있은 후 엘리자벳이 그를 뿌리쳐낼 때, 엘리자벳의 드레스가 죽음에게 밟혔다. 드레스 자락이 원체 길고 넓게 퍼져 있어서 두 다리로 번갈아 밟은 듯, 김소현 엘리자벳이 드레스 자락을 빼내려고 한 바퀴를 빙 돌아가며 살짝 버둥버둥해야 했다. 아차 싶으면서도 상황상 절묘한데다, 놀랍게도 두 사람 모두 표정 변화 전혀 없이 유연하게 대처한 덕에 무척 그럴싸했다. 손목을 움켜쥐며 '내가 없이 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할 때도 타이밍이 어긋났다. 한 번에 확! 낚아야 하는 데 손을 이케이케 움직여 고쳐 잡느라 손가락은 꼬물꼬물 바쁘게 움직이는데 얼굴과 시선에는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이런 사소한 프로다움이 얼마나 짜릿하고 멋있는지.
아아, 세미막에서도 막공에서도 도입부의 '이겼어'가 드물게 한숨 섞이지 않은 보통의 '이겼어'였다(세미막에서 더 완전히). 한 번쯤은 초연의 비아냥 가득 담긴 이겼어가 듣고 싶었는데 재연에선 없었다.
마지막 춤에서도 그랬듯, 내가 춤추고 싶어에서의 입맞춤 시도도 엄청 가깝고 진득했다. 심지어 어린 루돌프와는 코를 박은 것 같았다. 더욱 사람 눈 떼지 못하게 하는 건, 가까이 다가간 것도 다가간 거지만 다가가서, 그 가까운 거리에서 그대로 멈춘 채 상대방을 응시하는 것이다. 으앙. 시아준수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요?..ㅠ
세미막공의 전염병에서는.. 죽음의 대사 끝 부분이 오케스트라에 먹혔다. '아마도 남편에게서~'를 할 차례였는데 갑자기 반주가 시작되는 바람에 대사를 하지 못하고 엘리자벳의 노래로 이어졌다. 생략된 대사가 생각보다 중요하다고 느꼈던 게, 성병을 옮긴 상대에 대한 화를 분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상대가 밝혀지지 않은지라 (이미 극 자체를 알고 있음에도) 이야기가 끊어진다는 인상을 주었다. 다행히 막공 때는 마지막 대사까지 온전하게 할 수 있었다. 이것 말고도 세미막에서 오케스트라와 배우들의 합이 맞지 않는 부분이 꽤 있었는데, 대표적으로는 질문들은 던져졌다.
무튼 다시 전염병으로 돌아오면.. 브릿지 위에 올라서서는 절규하는 엘리자벳을 보는 그는 항상 즐겁다. 오늘은 즐거움 이외의 강렬한 번쩍거림도 있었다. 부릅뜬 두 눈이 부추김을 가득 담고 빛났다. 번쩍번쩍. 재연에서 항상 그랬듯, 가까운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담고서 더없이 기쁘게.
앞선 모든 무대와 마찬가지로 마지막이 될 재연의 주전공.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rise-음모는 역시 미소로 마중했다. 이때 그의 손이 난간 위에 얹어진 모양이 무척 독특하고 예뻤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양쪽으로 쫙 펼쳐 난간 위에 수평으로 올려놓고, 나머지 손가락이 난간을 감싼 모양새였는데. 곧게 뻗은 엄지와 새끼손가락의 얇은 선이 너무 곱고 예뻤다. 사람의 마음을 막 자극하는.. 그런...
'그 약속~' 하면서 오늘따라 계단 난간에 들러붙는 몸동작이 격렬해서, 난간이 휘청거렸다. 아아, 오늘 세미막공에서도 쎄! 상을 구원해를 들었다. 1일 밤공보다 더 높고 철이 부딪혀 나는 것 같은 금속성의 소리였다. 심지어 막공에서는 쎄! 쌍!을 구원해가 되었는데... '탁'해는 그렇다 쳐도, '쎄쌍'을 구원해라니. 어떻게 이런 소리를 의도해서 내는 거죠? 자칫 잘못 다루면 음이탈로 나가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 파열음이었는데, 그것을 노래로 활용하다니. 대단해 시아준수!
전쟁과 학살에서부터 번지는 웃음은, 막공에서 특히 또렷했다. 소리만 없다 뿐이지 거의 웃음을 턴다 싶을 정도로 얼굴을 무너뜨려 가며 아이처럼 웃었다. 음모에서 이런 식의 웃음은 막공 뿐이었다.
아아, 그리고 세미막공에서 무대장치가 회전할 때 사고 아닌 사고가 있었다. '인간은 절대 볼 수 없지'하는 부분을 노래할 때 무대를 자욱이 뒤덮은 연기 탓에 죽음이 보이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연기가.. 너무 많아서.. 죽음의 모습을 완전히 삼켜버려서 아 정말 깜짝 놀랐다.
또 하나의 최종장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마이어링은 끝까지 담백했다. 넘침 없이 간결하게. 막공에서는 삭돌프가 다소 앞으로 엎어져 있어서, 그가 일어나 삭돌프의 바지 뒷자락을 잡고 끌어당겼다(이때 조금 귀여웠다 ㅎㅎ). 이어지는 두 눈 부릅뜨기와 짧은 입맞춤. 나무토막처럼 쓰러져 내린 루돌프를 내려다보며 그가 숨을 한 번 내쉬었다. 막 마무리한 일에 대한 개운함과 곧 일어날 일에 관한 기대감을 담고.
그러나 이어지는 추도식은 그가 바란 대단원이 아니다. 깊은 슬픔 속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엘리자벳과 대면한 죽음은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하다. 닿지 않는 손이 그녀와 그녀의 감정을 차마 어루어 만지지 못하고 거두어진다. 막공에서의 표정변화는 너무도 섬세하고 제각각이라서 표정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엘리자벳의 짙은 절망을 보고 공명하는 슬픔-스스로에게 놀람-당혹-고통이 되어 다가오는 감정-아픔으로 번져가는 마음-이내 외면. 흡사 이런 식이었다. 찡그리고, 입 끝을 파르르 올렸다 내리고, 눈썹을 내렸다가도 끌어올리며 콧등의 주름까지 활용해서 이 모든 감정을 얼굴로 드러낸다. 결국 마주하게 된 엘리자벳의 '차가운 생명'이 그를 부르르 휘감는다. 외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는 안 된다. '이렇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가늠되어지기도 전에 그도, 나도 본능적으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질문들은 던져졌다에서는 자신의 발치 아래를 내려다보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추어올린 턱으로 눈만을 내리깔아 죽어간 인간들과 절망한 황제를 보는데, 아아 군림하는 그였다. 모든 것이 그의 발치에 있었다. 멀리서 관망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정점에서 모든 것을 움켜쥐고 세상만사를 파괴하는 그다. 그러니 프란츠 요제프가 입에 올리는 '엘리자벳~'이 탐탁잖을 수밖에 없다. 영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는, 합스부르크 문장을 향해 손을 뻗는다. 엘리자벳과 연관된 인간의 모든 것이 스러진다. 세미막공에서 다소 튀었던 오케스트라도 막공에서는 완전했다. 오랜만에 편하게 들을 수 있었던 침몰씬이었다.
터덜터덜 떨어지는 발걸음. 재연의 베일에선 항상 작게나마 발소리가 들렸는데, 막공에서 가장 또렷하게 들렸다. 브릿지 위로 내딛는 걸음이 느리고 잔잔했다. 그가 이미 알고 있는, '마지막 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은 듯이.
엘리자벳을 소중하게, 조심스럽게 안던 손.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던 물기. 그러나 흘려보내지는 않았다. 초연 막공에 비한다면 많이 갈무리된 표정이었다. 감정의 동요가 그때만큼 크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재연 죽음의 노선에 맞추어 그 자신이 또 한 차례 성장한 것도 같았다. 흑토드답게. 먹먹하면서도 강단 있게.
브릿지 위로 함께 올라선 엘리자벳을 그가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녀를 안은 팔과 옆얼굴이 약간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숨을 들이켰다. 울음을 정돈하는 숨결이었다. 울먹은 그것으로 완전히 삼켜졌다. 잠겨드는 물기 속에 그는 단단하게 마지막을 마주했다. 슬픔이 고여 드는 듯하던 비장한 얼굴이 담담한 각오로 빛났다.
그리고 그들이 만났다. 입술과 입술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작과 끝이 동시에 찾아왔다.
최후의 순간. 혹시나, 언젠가 읽었던 인터뷰에서처럼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리진 않으려나 싶어 집요하게 그를 좇았지만 눈물은 없었다. 눈물뿐만 아니라, 그 무엇도 존재치 않았다. 바싹 마른 얼굴에서는 덜어낼 감정도 없어 보였다. 영원한 안식과 자유로 그녀를 떠나보낸 순간 그의 시간도 멎은 듯, 돌부리처럼 굳은 그가 정면을 보았다가 점차 위로 시선을 옮겼다. 마침내 그의 눈이 감겨드는 순간, 모든 색이 사라지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