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울었다. 숨이 찰 정도로 밀려와 울음으로 호흡했다. 이런 적이 있나. 내 울음이 그의 눈물을 압도한 적이 있었나. 처음일 것이다. 이런 적이 없었다.
 
처음은 사랑의 세레나데ㅡ당신은 누구일까.
 
어제 잘 눌러 담았다 여겼는데 결국 항복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서 울먹울먹하는 정도로는 삼킬 수 없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그가 예뻐서. 그의 아름다움이 찬탄스러웠다. 외형의 아름다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감각에 도취된 황홀한 얼굴. 순수한 환희로 영롱하게 반짝이는 세상 가장 아름다운 얼굴빛. 그 눈부심에 눈멀지 않을 사람 있을까.
음악에 몸을 맡기듯 어깨를 살랑일 땐 어떻고. 예쁘다. 예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사랑을 지저귀듯 황홀한 그가 좋았다.
 
C구역에서는 시빌과 함께 계단에서 노래할 때의 얼굴이 잘 보였는데 그 정면의 얼굴도 대단한 몫을 했다. 어찌나 형형하던지. 동그란 눈을 달콤하게도 반달로 만들어가며,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헨리! 짐승! 할 땐 또 얼마나 새초롬하니 귀여웠는지 모른다. 근데 잤느냐고 물어보는 헨리가 어제도 도리안의 볼을 톡, 하고 튕겼던가?
 
둘은 배질의 죽음.
 
어제도 '내가 아름답다고 말해. 저 도리안 그레이가 아름답다고 말해!'라 외치며 울먹였었나. 개인적으로 충격이었다. 떨림 가득한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그만큼 고통받고 있구나.
“네 양심이 변해가는 걸 느끼는 한, 넌 구원 받을 수 있어.” 마지막 대사와 그 말에 무너지는 도리안의 얼굴 역시 기폭제였다. 도리안도 알았겠지. 자신을 믿어줄 단 한 명이 떠났다는 걸. 막 자신의 손에 죽었다는 걸.
좌절과 함께 스스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선을 건너버린 것을 깨달은 듯한 황망한 얼굴이 아팠다. 식어버린 육신을 끌어안은 채 떨군 고개가 가여웠다. 너무도.
 
셋은 엔딩. 사라진 아름다움에서 도리안 그레이까지.
 
아, 이 흐름을 뭐라 이르면 좋을까. 엔딩을 처음 연습하며 많이 울었다던 그의 생각이 났다. 슬픔을 그린 그림처럼 심장이 없는 얼굴. 인스타에 그 글자를 적어 내려가며 당신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런’ 감정? 형체는 눈에 선연한데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이것’을 뭐라 하면 좋을까. 소진하여 기진맥진하기까지 한 이것을..
 
일단은 아팠다. 참 서럽게 아팠다.
 
헨리에게 실패작으로 부정 당하는 순간의 얼굴부터 아팠지. 그 말 한마디의 파동을 고스란히 번져내는 눈동자를 보았다. 살짝 벌려진 채 말을 잇지 못하는 입술과 갈 데를 모르고 멎은 손도. 그렇게도 숨기고 싶어 했던 영혼의 비밀이 들추어지고, 끝끝내 ‘너는 아름답지 않아’라며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을 때는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 싶었다. 배질도 아니고 헨리라면 그를 이렇게 몰아붙인 이가 아닌가. 정신적으로는 창조주나 마찬가지인 이에게 이런 식의 외면이라니.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구나, 도리안. 진심으로 아껴주던 다른 이는 떠나고, 당신을 흥미로운 연구대상 삼았던 이는 연구의 실패와 함께 매몰차게 돌아섰으니.
 
더욱 아팠던 건 그 스스로가 자신에게 이러한 벌이 마땅하다 여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영혼은 추악하게 바래어 고통받고, 외형에만 남은 신기루 같은 아름다움은 환멸 받아 마땅하다고. 그것이 자신이 지은 죄악의 대가가 맞다고. 그러면서도 서럽게 울음을 삼키는 얼굴이 가득가득 슬펐다. 기억나지 않는 찬란하였던 시절처럼 하이얗게 바래버린 초상화를 가리키는 손이 공허했다.
 
붉게 물든 초상. 검게 그어진 목. 죽음을 목전에 두고 하얗게 하얗게 탈색되어 버린 듯한 가루결의 음성은 지금도 눈물이 난다. 마지막 순간 선택한 죽음의 형태가 초상화의 훼손이 아닌 자신의 소멸이라는 것도 그의 참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이미 서러운데, 형형하여 아름다웠던 눈동자로 죽음을 담고 얼핏 드리워진 천국을 그리는 눈이라니. 자신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소년에게로 돌아가노라, 하며 그렇게 기꺼운 얼굴을 하다니. 그래, 고생했어요. 끊어내고 싶었지만 차마 끊어낼 수 없었던 죄악의 굴레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진 얼굴을 쓸어주고 싶었다.
 
비참한 말로와는 달리 죽음이 가져다준 결말은 모두를 향한 위로 같았다. 도리안을 향한, 도리안에게 상처받은 사람을 향한, 도리안을 지켜보며 아팠던 사람을 향한.
그래서, 어제가 그의 눈물에 화응한 눈물이었다면 오늘은 그의 몫과 나의 몫을 섞은 눈물이었다.
 
*
 
그리고 넘버 별 짤막하게.
 
1. 죽음의 장면에서 도리안이 천국을 그릴 때 잠시지만 도리안, 천국에는 갈 수 있나? 생각했던 건 비밀.
 
2. 첫 등장
그리스 신화가 맞아요, 네. 고요하고도 신성하여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존재. 순백의 아도니스.
 
3. 헨리와의 첫 대면 - 찬란한 아름다움
오늘의 말투는 더욱 나긋나긋해졌고, 눈동자는 훨씬 순진해졌다. 전반적으로 산뜻한 봄바람 같은 청년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 말씨가. 어미를 상냥하게 말아 힘을 뺀 마무리가 살랑살랑 사랑스러워 죽겠다.
배질~? 헨리가 떠나지 않게 해주세요. 이 대목에서 배질을 높여 부르는 말꼬리가 너무나도 폭신폭신해.
나쁜.. 영향? 되새기며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은 걸음마를 갓 뗀 아이가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며 흡수하고자 하는 얼굴같이 무구했다. 헨리의 궤변이 이어질수록 이렇게 신선한 건 처음이야! 감탄으로 가늘어지던 눈매는 매력적이었고. 홀려 드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 정말로 고혹적.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감각. 인간의 머릿속 죄악일 뿐. 죄의식이 없는 타락.
처음 겪는 불순한 자극이 얼마나 감각적이었을까. 그래, 끌리는 걸 이해한다.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게 끌림을 그려내는 얼굴이 너무도 매혹적이어서. 그 끌림의 끝을 보고 싶게 만든다.
 
헨리의 타락의 주문(타락한~ 순결한~)이 변칙적인 가성으로 절정에 달할 때에, 도리안을 감싸는 감각을 불가사의한 연기로 표현하는 것도 좋다.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흰색 자욱한 연기가 스며 나오고 그로부터 걸음을 디뎌 헨리의 주문으로 끝끝내 이끌려 들어가는 어린 영혼. 아아. 여기 이, 발을 떼는 위태로운 걸음마가 얼마나 자극적인지. 짜릿한지. 그 위험한 걸음이 얼마나 쾌락적인지.
 
나아가 찬란한 아름다움 reprise에 이르면 게임은 끝난 느낌이야. 헨리의 주문이 도리안의 목소리를 입는 순간마다 어쩔 줄을 모르겠다. 안개결 같이 흐르는 목소리. 황홀해. 너무 위험한 주문이야.
 
5. 시빌의 죽음 이후, 피아노에 엎어진 채 등장할 때 어둠 속의 둥근 등도 예쁘지. 이때의 의상은 금테를 두른 재킷.
 
6. 찬란한 아름다움 reprise
‘전 냉혹한 인간일까요? 갑자기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져요.’의 순간. 가끔 알쏭달쏭하다 싶을 정도로까지 말투가 나긋해질 때가 있는데 여기가 특히 그렇다. 도리안 스스로 겪는 혼돈이 반영되어 있어 그럴까.
그나저나 헨리, 찬란한 아름다움을 선창하고 난 이후의 눈이 이렇게 잔인했구나. 도리안이 어떻게 나오는지 뒤편에 서서 지켜보는 눈매가 철저하게 이번 연구의 반응을 살피는 눈이라 섬뜩했다. 와, 나쁜 자.
 
7. 무도회. 홀로 앉아 다리를 꼰 채 사람들을 품평하듯 흥미롭게 응시하던 도리안. 유희를 찾아 노닥이던 사르르한 입매.
 
8. ‘도리안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어?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고.’ 이때 영상 속 도리안이 상황상 너무 귀엽다. 참회하러 갈 때는 얌전하게 내린 머리인 게 너무 귀여워..
 
9. 넌 누구
도리안이 등장할 때마다, 저 멀리에서부터 걸어 나오며 긴장을 고조하는 연출 정말 좋다. 넌 누구냐 속삭이는 소리도 마치 그 걸음처럼 긴장을 일으켜 세운다. 알아서는 안 될 비밀을 들추는 것처럼 은밀하고 비밀스러워 더욱 아름다운 음성. 도입부의 목소리가 주는 황홀함이 미나의 유혹 도입부를 떠올리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야.
여기에 손짓과 고개 쓸 때의 맵시가 더해지면, 섹시함으로는 미나의 유혹을 웃도는 것 같고.
 
쇼팽의 마법은 진짜 마법이라 부르고 싶다. 엄청나니까.
 
10. 감각의 완성
이건 좀 어이가 없어서. 쾌락을 추구하라더니 마약 했다고 놀라는 건 뭐람. 마약은 인간 머릿속의 죄악이 아닌가? 쾌락주의자에게 ‘안된다’는 경계가 있는 줄은 몰랐다.
 
11. 무엇이 기다릴까
여긴 노래 자체가 마약 같다. 위험해. 위험해서 아직 소화를 못 하겠는 느낌. 이미지적으로만 적자면 일단 배질의 뺨을 쓸어내리다가 도리어 양 손목을 잡힐 때 위험하고, ‘유혹을 없애는 방법은 유혹에 굴복하는 거예요’라 속삭일 때의 야살스러움이 위험하다(하필 눈을 정면으로 맞아서 더 위험했다ㅜ). 등은 또 어떤데.. 곧고, 아름답고, 아름답고...
 
12. 일렁이는 악취
1막에서는 그토록 찬양하더니, 이제는 그와 어울리는 일을 두고 '무슨 악행에 휩쓸리려고!'라고 하는 사람들..
 
13. 넌 어디로
붉은 조명 아래의 도리안. 의자에 한껏 기대어 젖힌 몸으로 내가 좋아하는 각도의 얼굴을 보여준다. 고개를 젖혀 하염없이 위를 올려다보는 눈망울이, 풀려있음에도 형형하게 아름다웠다. 몽롱하게 젖어 꿈과 현실이 없는 공간에서 그저 본능적인 자극에만 반응하는 그를 어쩌면 좋을까.
 
14. Life of Joy
문틀에 기대어 서서 고개를 살짝 젖힐 때, 주머니에 손을 꽂은 자태가 그림이었당.
더불어 헨리와 찰나의 찬란한 아름다움 절정부를 합창할 때는 하모니에 전율이 일었다. 헨리의 목소리를 휘어감는 결의 파동. 아, 내가 보고 듣고 싶어 하는 것 그 이상을 선사하는 시아준수.
 
15. 악의 꽃
무도희의 의상이 너무나 좋다. 녹색에 자수 놓인 롱코트가 그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펄럭일 때마다 심장이 쿵쿵. 너무나 신화 같아. 아폴론의 어디쯤. 불쑥불쑥 외치고 싶었다. 헨리에게 당신이 보고 싶어하던 육체와 영혼의 완벽한 조화가 여기 시아준수로서 현재하고 있다고.
 
16 마지막으로: 또 다른 나 피드백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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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09.03

새 대사:
모델 일은 지루하거든요.
네가 어떻게 날 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