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안 그레이로서는 처음으로 둘로 나누는 후기. 여기서는 앞서 적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간략히:
 
오늘은 2층과 1층 조합의 종일반.
하지만 2층의 낮공에서는 무엇을 본 건가 싶다. 눈맞춤의 향연에 공연이 가물가물해. 내 시선 안에서 반짝이던 그 아름다운 눈만 기억난다 >_<
 
 
1. 등장
위층 나들이의 이유였던 장면. 별무리를 헤아리며 올려다보는 무구한 눈, 내가 널 찾았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먼 위를 바라보는 눈이어서 눈맞춤은 없었으나 1층에서보다 훨씬 또렷하게 정면에 가까운 얼굴을 볼 수 있어 기뻤다. 저렇게 예쁘게 올려다보는 얼굴이었구나.
그가 얼마나 깊은 저 멀리에서 등장하는지 또한 체감할 수 있었다. 진짜.. 멀더라..
 
2. 찬란한 아름다움
액자 안의 그와 눈맞춤의 홍수♡
 
3. 아름답게 멈춰버린 나
나의 얼-굴-로 잦아드는 소리와 함께 뺨을 감싸 쥐는 그와 눈맞춤♡
그리고 어제도 쓰려다 깜빡한 것. 초상화가 불러온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 어린 자각도 잠시. 온통 뒤통수를 맞은 얼굴이 되어 흔들릴 적의 눈. 촘촘하게 내려진 눈썹과 다물지 못하는 입술이 빚은 착악의 빛.
 
4. 당신은 누구일까
꿈틀대는 푸른 핏줄의 그가 왜 신이 났는지 알 것 같아졌다. 사랑은 감각을 일깨우는 가장 원초적인 쾌락이야ㅡ 무심조로 일관하던 헨리 워튼이 비로소 잘하고 있노라 칭찬해줘서 그런 거였어. 헨리 워튼의 손에 얹었던 자신의 손을 살그머니 오므리며 응시하는 시선에 뿌듯함이 언뜻 스쳤다.
밤공의 A에서는 오랜만에 그 순간의 눈동자를 보았다. 동그랗게 확장된 동공으로 뚫어져라 헨리 워튼을 바라보는 그가 꼭 아기새 같다고 생각했다. 그를 휘어감은 헨리 워튼의 지대한 영향력을 느끼게 하는 표정이었어.
 
애드립은 낮공은 플라토닉 러브거든요!
밤공에선 아.. 이게 그 나쁜 영향이구나?
정말이지 절묘한 애드립이었는데, 헨리 워튼에게도 그랬던 걸까. 처음으로 아무 대꾸하지 않는 헨리 워튼을 만났다.
 
참, 청혼할 생각이에요ㅡ의 선언에는 밤공에서 '헐..' 하는 영혼 없는 리액션이 있었다.
 
5. 최악의 줄리엣
조는 앨런을 발견하고는 오늘 살짝 토라졌다. 비죽이는 입술과 모인 눈썹이 뾰로통. 이 중요한 순간에 졸다니! 한심해 하는 것도 같았고. 밤공에서는 훨씬 심통난 얼굴이 되어 코트자락를 홱 내려쳤다.
아, 그런데 시선이 그녀에게로 돌아오자마자 스르르 풀린다. 금세 미소 머금은 얼굴이 헤롱헤롱. 고운 손으로 턱을 괴고 그녀에게 온통 집중하는 얼굴에 설렘과 기대가 가득했다.
그랬던 그가 무색하게 연기를 못하는 시빌 베인에 그때까지 여유롭게 꼬고 있던 다리가 스르륵 풀렸다. 등받이에서 떨어진 등이 꼿꼿하게 선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시빌 베인을 보았다가 일행들을 보았다가, 무어라무어라 속삭여도 보았다가, '시빌 베인이 아픈 것 같아요.' 하고 옹호도 해보지만 소용없었다. 엎질러진 물. 상심한 왕자님은 끝내 의자에 팽, 온몸을 묻어버렸다. 엎어진 등에서 비련미가 가득했다.
 
6. 낮공의 무도회. 브랜든 부인에게 눈인사하며 엄지 척, 하는 그를 보았다.
 
7. 넌 누구
난간에 나른히 기대어 선 등, 걸음을 옮기며 태연히 고쳐매었던 타이(낮밤 모두). 평온한 걸음걸이. 하지만 언뜻 보기에도 격투의 흔적이 남아있는 차림새. 그 기묘한 모순. 설명이 어려운 위화감.
요즘 눈여겨 보는 장면은 격투 중의 그가 얼마나 아름답게 넘어지는지ㅡ넘어지며 그리는 허리선과 꺾이고 마는 다리가 너무 예뻐서.
 
8. 무엇이 기다릴까
배질에게 연기를 내뿜고 휘청이는 몸으로 담배를 고쳐 무는 두 손에 대해 적은 적이 아직 없지. 여기, 약 기운이 농밀하여 똑바로 서지 못하고 휘청이며, 담배도 두 손으로 간신히 감싸듯 고쳐잡는 자세가 참 섬세하다. 어떻게 이런 것까지 계산하였을까 싶게 세심해.
 
그리고 굉장히 아름다운 진폭의 소리가 있었는데(낮공), 정확한 가사는 다시 들어야 알 것 같다.
밤공의 찬란한 아름다움 도입은 12일의 진폭을 극대화한 소리였다.
 
유혹의 대사에서의 오늘 표정은, 대체 뭐였죠? 세상에. 그렇게 산드러지는 눈썹을 본 적이 없다. 아지랑이처럼 말랑한 눈썹이 배질의 뒤편에서 유려한 산등성이를 그려냈다.
눈썹이 아지랑이 같았다면 손가락은 연기였다. 입맞춤 직전 뒤돌아 서 있는 배질의 뒷목을 쓸어내리는 은밀한 손가락이 그랬고, 침실 안쪽으로 배질을 이끌어 재차 입맞추기 전 닿는 손끝이 그랬다.
 
9. 넌 어디로
매번 시각에만 집중하다가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배질의 가사를 듣게 되었는데, '진실이 아냐, 믿을 수 없어.' 매음굴의 그를 목격하고도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는 마음이 꽤 놀라웠다.
 
10. 또 다른 나
쫓기는 감각에 멈칫, 뒤돌아보는 얼굴의 예민한 눈썹이 좋다. 부딪힌 직후의 '이씨' 역시.
오늘의 웃음은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에 있었다. 결백을 가장하는 얼굴은 오늘은, 무척이나 뻔뻔했다. 시빌 베인의 이름 앞에서 그렇게 웃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싶게.

2층에서 만난 또 다른 나는 화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는데, 밤공의 1층에서 다시 만난 또 다른 나는 또 생각이 많아지게 했다. 눈앞의 절정을 두고 매번 돌아가는 느낌이 개운치 않아.
 
11. Life of Joy
밤공. 와이셔츠 차림의 그가 비틀비틀 자켓을 입으며 계단을 내려왔다. 시간이 촉박했던 걸까. 아예 바뀐 디테일이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왜 그렇게 그 초상화에 집착하시는 거예요 물으면서는 한 손으로 배질의 어깨를 매만졌다. 타이르듯이. 그만 좀 털어내라는 듯이.
그리고 광란의 절창. 누구의 생각으로도 결론 맺지 못한 파국의 노래가 파멸을 위한 서곡에 꼭 어울렸다.
 
12. 악의 꽃
밤공. 샬롯 베인을 에스코트하여 계단을 오르다 피에로의 어깨를 톡, 건드린 것.. 제대로 본 게 맞나?
 
13. 너를 보낸다 reprise
샬롯 베인, 아주 위험한 여자였어요. 먼 허공을 올려다보는 눈이 희번덕이며 또르르 굴렀다. 그 순간의 안광 잊지 못해. 
소파에서의 모든 대사는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배질-의 나직하게 타이르는 톤. 제발-의 깊은 한숨. 말아줘요-의 악문 발음. 날 다신 보지 않.겠.다.고? 의 미묘한 스타카토까지.
 
네가 날 떠날 수는 없다는 오늘 역시 애원이었다.
두 눈에 박힌 것은 '여전히 아름답다'고 말하는 배질에게서 뒷걸음치며 암흑을 가르고 사라지던 황망한 등. 두리번거리며 사로잡힌 눈동자가 아팠다.

14. 사라진 아름다움
배질이 살해당했을 거라는 생각, 해본 적 있어요? 에서 눈맞춤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다 이루었다. 찬란한 아름다움, 아름답게 멈춰버린 나,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대사에서 그의 눈을 똑바로 만났으니 이제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