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아름다움. 흥건한 뺨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에 그가 고개를 바르작였다. 아주 작고 가냘픈 고갯짓이었다. 닿아오는 손길에, 느껴지는 온기에 본능적으로 기대어보려는 것 같은 애원이었다.
그러나. '숙-명'의 호소로 어깨를 한껏 그러쥐어 보았음에도 그의 손 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하나 남은 구원. 헨리 워튼.
끝내 남겨진 어깨가 잘게 떨며 읊조렸다. 서러운 울분이 스스로를 조각내는 깨우침을 토해냈다. 아름답게 남겨진 나약한 존재. 그게 인간인 것을. 이용당했고, 실험은 실패했고, 그 끝에 버려졌음을 절절하게 깨우친 얼굴에 원망과 회한, 좌절과 체념이 혼재했다.
 
도리안 그레이. 무너지는 무릎 걸음 끝에 오늘도 웃지 못하는 얼굴은, 절망적이었다.
아름다운 소년이 나를 부르노라, 허공에 못 박힌 두 눈과 애처롭게 뻗은 한 팔로 붙잡고자 애써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공허한 눈 속에 담긴 것이 없었다.
따라서 오늘의 노래는 역시 소망이었다. 부디 그러하였으면 좋겠노라는. 목숨과 맞바꾼, 그러나 이루어지지 못한 갈구였다.
 
그러하므로 레퀴엠은, 오늘도 그의 현실이 아닌 꿈이었다. 구원은 어느 길목을 돌아오기에 이리도 더딘 걸까.
 
*
 
1. 등장
가지 마세요, 헨리. 붙잡는 마음이 오늘 꽤 급했다. 이름을 헛디뎠어. 배, 배질? 헨리가 가지 않게 해주세요.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다급한 나머지 이름을 먹어버린 얼굴이 매우 귀여웠당.
 
2. 아름답게 멈춰버린 나
염원하듯 두 팔을 훑어내리던 시선은 어제만의 격정이었던 걸까. 자신의 품ㅡ두 팔 안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은 시간을 바라보며 부르르 떨던 눈동자를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3. 당신은 누구일까
솔로 파트에서 새로운 강세가 나타났다. 듀엣에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는 강세에 이어, 솔로에서도! 진동이 넓고 폭이 큰 소리로 무대를 휘감는 소리가 좋았다. 막 깨달은 사랑의 격정을 토해내는 것만 같았던 그.
 
애드립은, 발음을 조금 더 강하고도 귀엽게 '슈레기!'
오브 콜스의 발음도 나날이 귀여워진다.
 
4. Against Nature
세상에. 가장 좋아하는 가사에서 눈맞춤이 있었다. 후회 속에 핀 죄-악-의 황홀한 절정. 와, 이럴 수가. 이렇게 심쿵한 건 또 처음이야. 매서운 눈빛,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매. 으르렁이는 입꼬리. 꼭 맹수 같았던 얼굴. 타락에 탐닉하여 '거꾸로'를 몸소 실천해 보이는 것만 같던 표정. 환영에 사로잡힌 신경에서 청각이 멀어지는 느낌에 소리를 놓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5. 넌 누구
오늘의 아름다움 역시 '사라진 향기'. 이 대목의 아름답게 내리깐 시선은 나날이 농익어간다. 영혼과 양심에 초연하노라, 단단한 최면에 걸린 듯한 얼굴이 아름다운 위선의 미소를 짓고 있어.
둘로는 '죄악과 회개'의 날카로웠던 눈. 부릅뜬 채 허공에 그려진 심장을 노려보는 것 같았던.
 
그리고 오늘 유난히, 액자를 건네받고 혼자된 순간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 액자를 빨리 치워버려야 한다는, 빨리 내게서 걷어내야 한다는 강박이 느껴졌다. <넌 누구>에서 초상화를 격리하는 데 성공하는 건 그이지만, 넘버 내내 쫓기고 있는 존재는 실은 그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 같은 떨림이었다.
 
6. 무엇이 기다릴까
오늘도 계단 끝 난간에 걸터앉아 연기를 흘려보냈다. '하아' 하는 한숨결과 함께.
그 그림, 어딘가 달라 보이지 않아? 멈칫. 늘 퍼뜩 정색한 윗입술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다물어 걸며 배질을 돌아보곤 하였는데, 오늘은 연기를 뿜어내던 입 모양 그대로 멎었다. 동그랗게 말려 벌려진 입술이 그 상태로 굳은 채 눈동자만이 또르르 굴러 배질에게로 가 박혔다. 또르르 구르는 동공을 따라 마치 그의 심장이 쿵, 떨어져 내리는 모양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늘의 소리는 도입부에서, 특히 성스러운 한숨결이었던 '내 영혼의 거울'에. 이렇게 속삭이는 소리는 처음.
찬란한 아름다움은 어제의 기세를 이어갔다. 시작은 13일의 주문으로, 맺음은 '후회 없으라'의 거침없는 할큄음으로. 끝음의 갈퀴 같은 낚아챔도 점점 거세어진다.
아지랑이도 돌아왔다. 오늘은 웨이브 아닌, 아지랑이.
 
그리고 오늘. 눈가에 맺혀 오른볼을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이 그 위치상 대단히 기묘한 어울림을 자아냈다. 마치 한 줄기 악어의 눈물처럼 보였어. 시아준수는 땀방울마저 연기해..
 
7. 넌 어디로
마리화나를 꺼내어 물고는 가득 혼탁해지는 눈. 두 눈을 가늘게 접어 뜨며 미간을 한껏 일그러트리던 얼굴.
 
8. Life of Joy
오늘의 소리는 한숨과 회개마저 '즐-겨라'.
 
배질을 뿌리치고 돌아서는 뒷모습이 잔뜩 신경질적인 손길로 입가를 쓸어냈다. 밀고 당기기는 흡사 육탄전이 되어간다. 재차 격돌하는 즈음에는 오늘은 배질에게 한쪽 손목을 잡혔는데, 그걸 또 팽개치듯 홱 쳐내는 손길에 짜증이 가득했다.
 
life of joy의 매듭과 함께 씨익 웃는 얼굴은 대단히 소악마적이었다. 나이를 먹지 않아 어리고 아름다운 얼굴이 순수한 악의로 웃었어.
 
9. 악의 꽃
요즘 자주 뒷짐을 지신다. 왕자님이셔♡
 
샬롯 베인을 마침내 포착해내고 다가서려 할 때 브랜든 부인에게 가로막힌 그가 발끝으로 박자를 걷는 맵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음 위를 마치 지붕 걷듯 톡톡, 건드리며 건너편의 샬롯 베인에게 못 박힌 시선이 그림이다. 이 대목에 이를 때마다 발끝으로 음 위를 거니는 우아하고 세련된 맵시에 마음이 막 간질간질.
 
그리고 오늘 본 것. 발코니로 나가 문을 닫자마자 코트를 벗는구나. 오늘따라 흐린 창문 너머로 바로 하얀 내의가 보이기에 알았다.
 
10. 너를 보낸다 reprise
이로써 진-정-한 선행을 베푼 거예요. 오늘처럼 그 웃음이 고통스러워 보인 적이 없다. 일그러진 미간으로 소리로만 핫, 핫, 웃음을 뱉어내는 얼굴이 조금도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난 네 고통을 알아. 나지막한 목소리. 나란히 소파에 앉아 잠시간의 정적 속에 두 사람이 마주 보았다. 오늘따라 이 마주 보는 얼굴이 왜 이렇게 새로웠을까? 찰나의 정적 때문이었나? 말로는 다 못할 많은 것들이 오가는 눈이었고 침묵이었다. 내 마음을 쿵하고 스치고 지나간.
 
난 완벽한 인간이 되고 싶었어ㅡ는 계속하여 아름답다. 무언가 왈칵 치밀어오른 듯한 얼굴로 또박또박 뱉어내는 과거형의 문장.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사무쳐, 이제는 고목처럼 삭아버린 것만 같이 느껴지는 소망. 그런 목소리였다.
 
스스로 비밀을 들추어낸 직후, 계단 위의 얼굴에는 오늘은 웃음이 전무했다. 쥐어짜내는 웃음조차도 없었다. 일그러진 고통의 그 얼굴이야말로 어떤 포장도 없는 본연의 표정으로 다가왔다. 영혼의 비밀을 드러내어 보인 것도, 그렇게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남 앞에 보이는 것도 처음이겠지. 가면의 얼굴로 살아왔을 그에게는. 새삼 그렇게나 절박하게ㅡ모든 것을 꺼내어 보여서라도 배질을 주저앉히고자 했던 그의 원망 어린 분노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11. 앨런의 죽음
비밀은 꼭 지켜주세요ㅡ의 지친 어깨. 서둘러 자리를 뜨는 터덜터덜 중심을 잃은 걸음걸이. 그제보다 어제, 어제보다 오늘. 점점 더 서글퍼진다. 이 순간의 그가 서글퍼 쓰릴수록 기회를 얻는 인간성의 회복에 반가움이 드는 양가적인 이 마음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
세상이 바뀐 시간. 브랜든 부인이 멱살을 잡고 사정없이 뒤흔드는 바람에 의자와 함께 넘어질 뻔했던 남자 앙상블(이름을 몰랑..). 뿐 아니라 자잘한 디테일들이 정말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계를 엿보는 것처럼 계속 모습을 달리한다. 이렇게 매일매일이 다른 앙상블 넘버가 있었던가. 보는 즐거움이 있다.
샬롯이 다시 바뀌었다.
배질의 '장례식에 가야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잖아!' 는 4일과 5일을 혼합한 버전이었다. 전문은 4일처럼 강하게, 후문은 5일처럼 슬프게. 개인적인 선호는 온전한 4일이지만, 오늘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