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독. 생명이 끊어지는 소리를 다시 들었다. 소리로도 죽음을 확인받은 건 이번이 다섯 번째.
 
10월 8일의 고조도 10월 15일의 회한도 아니었다. 사그라질 것처럼 여리고 연약하였던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아'와 한순간 울음이 깃들었다가 잦아든 '도대체 누군가', 서럽지만 평소에 비하면 잔잔했던 '한때는 예뻤겠지'까지. 침잠한 노래가 고개를 떨군 얼굴처럼 고독하고 조용했다. 마치 아름답게 멈춰버린 나에서 '사라져가는 모든 것' 앞에 고요하게 전율하던 그처럼. 상실을 자각한 목소리가 적연했다. 이것을 10월 21일의 상실이라 하자.
 
사무치는 상실 끝에 생을 그어낸 육신이 무너졌다.
엉금엉금 기어 황금 빛깔 천국을 노래하는 눈이 기이하게 부풀었다. 눈앞으로 다가온 따사로운 조명을 헤치며 저 먼 곳을 응시하는 동공이 살짝씩 떨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보는 듯하던 부푼 동공이 조금씩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소년이
웃음 번진 눈이 글썽이는 순간에는, 그는 알고 있었다. 눈앞의 것이 허황임을.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 그저 소망임을.
부른다
그래서 끝내 울음으로 되돌아간 마지막 마디는 짙은 고독이었다.
 
 
*
 
1. 등장
오늘의 아름다움은 건반을 두드리는 손목 스냅에. 사뿐사뿐 살랑살랑.
 
2. 배질의 화실
쓸데없는 말만 하거든ㅡ배질의 말에 오히려 호기심이 솟아나는 얼굴을 보았다. 눈썹이 살짝 출렁이더니, 두 눈이 반짝.
 
'아름다워.' 가로횡단하는 헨리 워튼의 뒷모습을 그가 눈으로 총총히 쫓았다. 걸음 하나에 마디 하나,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는 뒷모습에 못 박힌 시선이 초롱초롱했다. 마침내 헨리 워튼이 무대 가장자리에 이르렀을 때, 내내 그 등을 쫓던 그의 시선 아래에서 한쪽 귀걸이가 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마치 헨리 워튼이라는 새 인물에 대한 그의 이끌림이 절정에 달하였음을 알리는 암시 같았으므로. 그의 도리안은 귀걸이마저 연기를 하네요.
 
배질을 흘긋이는 시선은 더 이상 '흘긋인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고 충분하게 배질에게로 머물다 거두어진다.
 
3. 찬란한 아름다움 reprise
'따라서 부르는' 동안의 표정이 오늘의 아름다움.
 
4. 아름답게 멈춰버린 나
오늘의 소리는 '알 수 없는 슬픔의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주 들어 음향이 다시 침체기인데 아름답게 멈춰버린 나에서만큼은 예외. 동굴 같은 음향에서 오히려 빛을 발하는 신비한 넘버. 동심원을 그리며 결의 파장을 흘려내는 소리에 어울리기 때문일까. '도리안 네가 나라면'의 소절에서는 무대 한가득한 결의 파동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리고.. 요즘 자꾸 배경의 찬란한 아름다움에 소리를 빼앗긴다. 너무 간사하고 너무 사악해. 불온한 소리야.
 
5. 당신은 누구일까
초반 헨리 워튼과의 대화에서 엄청났던 눈알요정의 활약. 하얗게 부푼 흰자와 까맣게 반짝이는 검은자가 자기주장을 이케이케 막. 헨리 워튼의 반응을 샅샅이 탐색하며 초조해했다가 싱긋 웃었다가 시무룩했다가 하는 바쁜 눈알이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오늘의 소리는 '태양이'에서. 그 깜찍하여 향긋하였던 소리!
 
6. 최악의 줄리엣
와, 오늘 그가 웃었다. '누구세요?' 최악의 줄리엣의 회심의 대사가 그를 웃겼어. 세상에. 순간적으로 웃음 샌 얼굴이 그대로 고개를 숙이며 흘러나온 육성의 웃음을 삼켰다. 아, 그 떨구어지는 떨리는 고개를 목격한 순간 간지러워서 원.
퇴장하는 일행들을 바라보는 고요한 눈동자는 특히나 새롭게 잘생겼었는데,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엄청났는데! 진짜 잘생겼었는데!
 
7. 찬란한 아름다움 reprise
마찬가지로 '이어서 부르는' 동안의 표정이 오늘의 아름다움. 경이로 일렁일렁하던 눈이 점차 선명하게 웃음을 그려갔다. 이렇게 분명할 정도로 노래 부르는 동안 웃음이 스며든 건 드문데. 그랬네.
배질에게로 머무는 마지막의 시선은 문득 초반 화실에서 배질에게 머물렀던 시선과 겹쳐지며 쓸쓸함을 주었다.
 
그나저나 배질의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에서는 처음 듣는 시비조의 억양을 만났다. 신선했어.
 
8. 1막 또 다른 나의 긁는 소리에 가득했던 악동미. 잘라서 들을 것.
 
9. Against Nature
오늘도 찬란하여 아름다웠던 죄-악-의 황홀한 절!정!
그리고 엎드린 웃음은 오늘 정말 짙고 세게 찡긋거림과 함께 아름다웠다. 아아. 고개 돌리면서도 웃고, 뒤이어는 앙니공격도 거세게!
 
꿈틀대는 푸른 핏’줄’, 떨려오는 붉은 내 심’장’은 연기처럼 흘려보냈다. 군무의 격정에 따라 연기가 될 때도 있고, 쐐기가 될 때도 있는데 요즘은 전자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말미에는 입꼬리만 올려 웃는 찰나의 미소로, 소리를 대신한 쐐기를 박았다.
 
(+) 스모그 오늘도 잘했어! 그런데 양옆의 여성들, 이제 서로를 쓸기도 하는구나. 그간은 뭐가 보였어야 말이지.
 
10. 넌 누구
오늘의 얼굴은 퇴색한 금발의 찡긋하던 눈, 사라진 향기의 내리깐 눈. 넌 누구에서는 그의 소리와 얼굴의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다. 그리고 나는 매번 얼굴에 함락당하고 말지. 얼굴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소리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매번 모든 것이 백지장이 되고 말아. 얼빠는.. 얼빠얼빠 울뿌냐..
 
그래도 오늘 놓치지 않은 한 가지. 구둣발 소리로도 연기하던 그. 초상화와의 안무 끝에 탁, 탁, 뒷걸음치며 바닥을 구르던 발에서 전해지던 격정. 격리에 성공해낸 후 또각또각 정제되면서도 나른한 걸음걸이로 계단을 내려 딛던 여유로움. 발끝, 구둣발 소리로도 연기하는 그가 새삼 눈 시릴 정도로 벅찼다.
 
11. 무엇이 기다릴까
배질에게 연기를 뿜어낸 후 정면을 향하여 재차 연기를 흘려보내는 순간이었다. 어제도 빼꼼히 모습을 비추며 아랫입술을 훑는 붉은 혀를 보았지. 오늘은 더했다. 아예 메롱 하듯 내민 혀가 그 모습을 활짝 드러내며 웃는 듯이 끝을 말아 올렸다. 세상에나.
 
날 사랑했던 당신의 마음을 들킬까 봐? 는 처음으로 문장의 끝까지 배질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비스듬한 정면을 허락한 얼굴이 배질에게서 비켜난 허공으로 묘한 빛을 던진 채 물었다. 어미에서 살짝 갸웃했던 고개도 끝끝내 배질을 외면하였다가, 문장을 다 말하고 나서야 빙그르로 돌아가 배질을 마주했다.
 
당신이 만든 '나'는 그간에도 계속 강했지만, 오랜만에 '정말' 강했다. 어미의 파동이 배질을 몰아가며 탓했다. 원죄가 너에게 있노라고. 시작점이 너라고.
 
끝음의 활약 역시 계속 이어진다. 내 영혼의 비'밀'을 시작으로, 무엇이 기다릴'까', 후회 없으'라', 환’희’, 가질 수 있다'면'. 갈퀴 돋은 그물망의 습격 앞에 그 누군들 온전히 자기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런 음성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배질의 어깨를 쓰는 손이 갑작스러운 악력을 더하여 움켜쥐기까지. 꼬집듯 오므린 손이 꼭 놓아주지 않겠노라는 의지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침실 안쪽에서의 턱 쓸어내리기. 위험할 정도로 매혹적인 미소와 함께.
 
12. Life of Joy
기도하고 사랑하라 짜릿하게의 파동이 좋았다. 공간을 휘어잡는 아우라가 가득. '즐-겨-라'는 오랜만에 버럭 대신 음을 실어서 부드럽게 끌어냈다. 아름다웠다.
 
13. 악의 꽃
나하나 샬롯. ㅋㅋ 오늘 마음이 급했던 걸까. 그보다 계속 한두 계단씩 먼저 성큼성큼 올라가서 에스코트하는 그녀 등 뒤의 그의 손이 멀찍이 떠 있었다. 귀여웠어..
또 오랜만에 창문 너머 공작 코트를 벗는 그림자를 또렷하게 보았당.
 
14. 천사의 추락
어쩐지 오늘, '천사의 추락'에서 이미 시작된 것만 같았던 그의 혼돈. 헨리 워튼을 내려다보며 웃음을 짜내는 얼굴에서 배질에게 하는 그의 대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난 그녀를 용서해주었어요. 진정한 선행을 베풀었지요. 자기만족(?)에 경도된 얼굴이 눈썹을 휘어내리며 표정이 전부 일그러지도록 웃었다.
 
15. 너를 보낸다 reprise
너 왜 이렇게 괴로워 보이는 걸까.
깔깔깔 웃던 얼굴이, 웃음을 자아내던 모습 그대로 멎었다. 벌려진 채 다물지 못한 입술이 잠시 말을 잃었다가 경고했다.
배질, 제발 내 선행을 폄하하지 말아줘요.
어쩌면 부탁이었고 어떻게는 회유였다. 어느 구색에서는 상처받은 것도 같은 목소리는 어제의 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배질의 '여전히 젊어! 여전히 아름다워!' 는 그제와 어제를 거쳐 오늘 정돈된 변화를 보여주었다. 특히 '아름다워'의 톤이. 늘 애걸하듯이 먹먹한 음성이었는데 오늘은 외침이었다. 절규였고.
마가복음의 끝음은 죽음을 각오한 목소리였다.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듯이 결연한 끝맺음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완고했다.
 
이렇게 강한 배질을 마주하는 그가, 두 눈에 아렸다. 그런 반응을 바라고 모든 것을 내보인 것이 아닐 텐데. 그가 원한 건 그런 게 아니었을 텐데. '떠난다'는 배질의 말에 곧장 응수하는 대신 가만히 바라만 보던 얼굴처럼, 그에게 있어 배질이라는 존재만이 줄 수 있는 역할이 있었을 것인데..
상처받은 얼굴이 돌진했다. 정당한 자기방어를 위해, 부정당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16. 사라진 아름다움
햄릿. 그제의 변화 이후로 마법처럼 아름다운 정제를 이어간다. 쫓기는 감정으로, 쉼표의 박자로 착란을 훌륭하게 표현해낸다. 너무 좋다.
 
나의 마음을 타격하는 고통의 소리는 '깊은 고통'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억눌린 신음으로 옮겨갔다. 오늘 유독, 그을려 새까맣게 타버린 가슴이 내는 소리였다.
 
그리고 너무 사무쳤던 두 사람의 상반되는 목소리. 울음와 울분으로 가득한 그와, 다소간의 흐느낌이 전부인 헨리 워튼. 이것이 실패한 실험을 대하는 실험자와 피실험자의 모습의 차이인가. 너무도 적나라한 대비에 울분이 치밀 정도였다.
 
 
 
(+)
헨리! 정말 그렇게 안 봤는데 (울먹울먹) 노코멘트!
넌 어디로. 오늘도 골반을 살짝 움직여 무게중심을 모서리에서 의자 중앙으로 옮기는 그를 포착했다.. 귀여워..
 
배질. 둘이 좋아 보이네.
세상이 바뀐 시간. 노래 자체는 잔인하지만, 등장하는 인물 한 명 한 명이 이렇게까지 생동감 넘치게 살아있는 넘버는 처음. 애정 어린 연구와 연기들이 눈에 보인다. 그래서 연기적으로는 즐겁게 보지 않을 수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