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의 검지. 바쁘고 정처 없었으며, 까딱까딱 흔들리는 모습이 꼭 바람 앞의 촛불인 그를 닮았던 그의 손가락.
무엇이 기다릴까에서부터ㅡ하하하하, 웃으며 그가 나폴나폴대는 검지로 배질 쪽의 허공을 콕콕 찍었다. 밤낮 모두. 무슨 소리냐는 듯이, 무슨 일이기에 그 난리이냐는 듯이. 배질의 시선을 처참히 무시하며 대수로울 것 없다는 투로. 하지만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검지에서 엿보였다. 그의 애써 내리누르는 동요가. 이 모습이 오늘 유난히 되풀이되었다.
life of joy. 그 초상화에 왜 그렇게 집착하시는 거죠? 난 알아, 그 초상화를 보면 알 수 있어. 배질의 염려 어린 눈길에 홱 등을 보인 그가, 검지 핀 손을 마구 흔들었다. 마구잡이로 내뱉는 웃음과 함께 궤변을 늘어놓으며 휘청휘청 걸었다. 인간을 매혹하는 건 불확실성이에요.
샬롯 베인의 죽음 이후에도. 베/푼/거/에/요, 씹어뱉으며 웃음을 토해내는 한 손이 검지로 허공을 또 콕콕 찔렀다. 소파에 폭 파묻힌 몸에서 유일하게 곧게 솟은 검지가 바람 앞의 불빛처럼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유달리 두드러진 이 정처없는 검지의 활약이 그의 불안정한 심리상태의 반영인 것 같아, 자꾸만 눈에 박혔다.
*
1. 배질의 화실
'그냥, 도리안이라 불러주세요.' 최근의 명량한 톤은 잠시 넣어둔 차분한 목소리. 오랜만의 억양이 낯설 정도로 나긋나긋했다. 어쩐지 신선하기도. 밤공의 대사톤은 더더욱 안정적으로, 정석적으로 나긋나긋했다. 이건 꼭 잘라서 들을 것.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지 마세요, 헨리.' 또르르 구르며 다급한 눈동자를 보았다. 대번에 그의 흥미를 불러일으킨 존재에 대한 관심이 눈 바로 밑까지 차오른 얼굴이었다. 올망올망, 반짝반짝.
‘자봐, 저게 바로 나쁜 영향이라는 거야.’ 헨리 워튼의 이야기에 한참 귀 기울이는 와중에 끼어드는 배질의 목소리. 잠시 위로 솟는 시선에서 보였다. 잔소리가 시작되었구나, 하는 빛이.
2. 찬란한 아름다움
'따라서' 부르는 밤공의 찬란한 아름다움. 천진한 얼굴이었다. 새 놀잇감을 발견한 흥분과 기쁨이 감도는 눈이었다. 이 만남이라는 사건이 자신에게 끼칠 '나쁜 영향'에 대하여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순진함이 있었다.
3. 당신은 누구일까
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요.
밤공이 되어서는 조금 더 강조하여, 연기에 '아주'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요.
그리고 어제오늘 '태양이' 여기, 소리도 손동작도 왜 이렇게 앙큼상큼하지. 간질간질해. 밤공에서는 나아가 '싹 틔우듯'에서 두 손을 솜사탕처럼 부풀리기도.
애드립은 낮공은 이게 바로 배질이 말한 나쁜 영향..? 노코멘트! 퇴장하면서는 한 번 더 검지로 콕 찍어 가리키기도.
밤공은 '헨리! 전 플라토닉 러브라니까요! (잠시 보다 절레절레하며) playboy!'
플라토닉이 돌아와 기뻤다. 제일 좋앙. 그나저나 오브 콜스도 그렇고, 플라토닉도 그렇고, 시아준수 영어발음 정말 멋지고 귀엽당?
4. 최악의 줄리엣
낮공. 예쁘죠? 묻는 육성이 들렸다. 늘 입 모양만 보곤 했는데 오늘은 놀랍게도 소리까지 선명했어.
밤공에서는 앨런을 깨우면서 진짜 오만상을 썼는데. ㅋㅋ 그간 앨런이 내내 졸았던 것에 대한 앙심을 응집한 듯한 표정이었다. 매우 귀여웠어.
그리고 시빌 베인의 발연기 후 검지를 펴 보인 상체가 헨리 워튼을 돌아보면서 무어라 묻자 헨리 워튼도 따라서 검지를 펴 보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자 그의 어깨가 추욱 쳐지고 말았는데 무슨 대화였는지 궁금해.
처음 본 것은 그의 손. 시빌 베인을 버려두고 나가는 손이 연신 달걀을 쥐며 떨었다. 불안정한 심리와 격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5. 찬란한 아름다움 reprise
낮공. 평소와 살짝 달랐던 노래하고 있'어요'의 울음 먹힌 끝.
그리고 오필리어에 경도된 얼굴에서 빛이 났던 세모꼴로 벌어진 입술에 담은 경탄.
찬란한 아름다움을 ‘이어서’ 부르는 그는 오랜만에 마리오네트적 아름다움을 발했다. 헨리 워튼의 손가락이 그의 귓가에서 어그러진 안개를 그리며 조종하는 동안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 감응하는 얼굴이 매혹적이었다. 누구라도 가지고 싶어지고, 또 파괴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하는 존재.
6. Against Nature 시퀀스
밤공의 또 다른 나에서 '언제나'의 유독 안개 같았던 가성! 그리고 더 소년 같았던 긁음성들.
패션쇼. 미간을 살짝 찡긋한 얼굴이 턱을 추어올리며 마음에 든 이에게 손을 내미는 동작. 마주 잡은 손을 스윽 머리 높이까지 들어 올리는 맵시. 너무도 왕자님. 밤공에서는 오랜만에 검지로 째깍째깍 평가하는 손을 보았다. 엄격하고 도도한 왕자님의 얼굴.
7. Against Nature
낮공. 죄-악-의 황홀한 절!정! 이 통째로 사라졌다. 좋아하는 가사에서 레어를 획득하다니♡ 의외의 면은 이어지는 가사에서도 그가 좀처럼 돌아오지 못했던 것. '아름다운'도 얼무어버리고 말았는데, 문득 꼭 어제 콘서트의 uncommitted 생각이 났다. 그때의 살짝 화가 난 것 같은 미간을 다시 보는 듯한 기분이 묘했다.
밤공에서는 죄악이의 파괴력이 돌아왔다. 어서와♡
밤공. 외면마소서ㅡ에서 크게 반원을 그렸던 손바닥의 염원. 아름다운 맵시였다.
그리고 웃음의 순간들 중에서도 가장 심쿵했던ㅡ꿈틀대는 푸른 핏줄, 붉은 내 심장의 웃는 얼굴! 소리도 부드럽게 안개결처럼 퍼트려지는 소리였어서 심쿵 두 배였어.
8. 넌 누구
어제 잠시 쉬고 다시 돌아온 런웨이 끝의 두 발 도약♡ 붕 뜬 몸이 그대로 초상화를 향하여 돌진하는데, 정말 나는 것 같았어. 공중에서 몸이 어쩜 그리 자유롭지.
9. 무엇이 기다릴까
제게 주신 거니'까아'. 어미를 살짝 긁어냈다. 처음인 소리.
밤공. 고통받는 네 영혼! 내 영혼! 소리 지르는 배질을 향하여 등 돌린 채 그가 두 손바닥을 털어냈다. 항복하듯 활짝 펼쳐진 손바닥이 허공에 통, 통, 닿았다. 연기를 내뿜으며 지그시 내민 혀는 얄궂음을 더했다. 아, 이렇게 장난스러우면 배질의 마음이 더 찢어질 텐데. 눈부신 악동미가 심장을 조였다. 아름다워서, 안타까워서.
그 그림 어딘가 달라 보이지 않아? 정곡을 찔린 물음에 연기를 내뿜느라 벌려졌던 입술이 그대로 굳었다. 살짝 추어올린 상태였던 턱도 그 상태로 멎었다. 이 살짝 들어 올린 턱과, 턱의 각도 탓에 배질을 살짝 내려다보는 시선의 기울기가 그림이었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의 동작에 배어있는 자연스러운 관능미가 무척이나 위험하게 아름다웠다.
더불어 그의 어깨. 네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배질의 말에 움츠러든 채로 배질을 탐색하다가, 안도한 후에야 스르르 흘러내리던 어깨. 조금만 풀어헤치면 드러날 법한 가운으로 뼈끝을 감싼 그 아름답던 어깨. 정말이지 일분일초 매 순간 시시각각이, 온몸이, 온 동작이 아름다운 그.
밤공의 ‘후회 없으라’는 평소처럼 짓깨우는 소리가 아니라 거대한 울림폭으로 펼쳐졌다. 평소가 송곳 같았다면 오늘은 깊은 구덩이었다. 발 들이는 순간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암흑의 미로. ‘라’의 찔러내는 파편과 같던 거센음은 ㅡ환'희’ㅡ로 옮겨갔다.
유혹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그 유혹에 굴복하는 거예요, 배질. 밀착한 채 속살거리는 고개에서 금발의 앞머리카락이 배질의 뺨을 한 차례 쓸었다가, 배질에게로 조금 더 기울이는 고갯짓을 따라 한 번 더 배질의 뺨을 훑었다. 손길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손으로 쓸어내리는 것보다도 훨씬 은밀하고 농밀하였던 접촉. 좋아하는 이 우연한 맞닿음을 오늘 선연하게 볼 수 있어 기뻤다.
게다가, 밤공에서는 (오랜만에) 대사하는 내내 계속 배질의 뒷덜미를 그러쥐고 있었다. 다른 한 손이 침입하듯 배질의 뒷머리를 쓸어내는 순간에는 그 순간적인 손길에 의해 배질의 목이 힘없이 살짝 꺾였다. 10월 20일처럼. 헉.
침실 안쪽에서 배질의 턱 끝을 쓸어내린 손은 밤공에서만.
낮밤의 가운은 본 중에 가장 열일했다. '얼굴'만 보는 내가 살짝 놀라 잠시 다리에 시선을 빼앗길 정도로 개방적이었어. 특히 밤공. 계단 끝 난간에 기대어 연기를 뿜어낼 때 고스란히 드러났던 다리라인. 어스름한 상태에서 실루엣처럼 드러난 허벅지와 종아리가, 그 어둑어둑한 조명에서도 하얗게 반사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충격적인 시각적 아름다움이었다.. (그런데 소파에 다리를 꼬아 앉을 때는 그 개방적이던 가운이 두 다리를 전부 휘감아버려서 왠히 웃기고 귀여웠다.)
10. 넌 어디로
배질을 자신이 있는 곳까지 끌어내린 후의 그.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담배를 물고 언뜻 웃는 입매에서는 무슨 생각이 흐른 걸까. 낮공에서 잠시 본 웃음 섞인 얼굴에 그의 사고가 궁금해졌다.
밤공. 퇴장. 그가 빨랐고 막이 느렸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돌아선 몸이 시선을 두는 곳을 좇을 수 있을 정도로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확실해. 배질을 보며 피식 웃었다. 비스듬히 돌린 몸이 상체에 약간의 반동을 주어 휘청이며 웃었어. 배질을 향해, 보란 듯이. ‘이런 나를’ 네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라는 듯이.
11. Life of Joy
낮공. 오늘도 두 손으로 그를 붙드는 배질 탓에 성큼성큼 걸어 나오던 그의 몸이 덜컹거리며 멈추어섰다. 반쯤만 틀어 배질을 보는 고개에는 오늘은 짜증이 가득했다. 밤공에선 더했다. 손을 뿌리치는 정도가 아니라 배질을 저 멀리로 밀쳐낼 정도로 힘을 주었다. 밀쳐난 배질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붙어 그의 앞을 막아서자 이번에는 그 끈질김에 그가 웃었다. 배질의 그런 노력이 제법 가상하다는 듯이, 웃음이 어그러진 얼굴이 잠시 상대를 보다 선언했다. 모든 것은 내가 결정하는 거예요. 그 말이 배질의 눈동자에 남긴 파장을 확인한 후 또 푸스스 웃음 그려낸 얼굴이 돌아섰다.
즐겨라ㅡ는 계속 음을 입어간다. 밤공에선 조금 더 화를 냈지만!
12. 천사의 추락
밤공. 퇴장하기 전, 헨리 워튼을 보던 눈이 일그러진 웃음을 그리고 그리다가, 헨리 워튼을 가리키듯 손을 뻗었다. 웃음을 털어내듯 툭, 툭, 허공을 친 손은 금세 떨구어졌지만 분명히 헨리 워튼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건 처음.
13. 너를 보낸다 reprise
밤공. 너다운 말이네, 냉혹한 그 말. 배질의 무감한 응대에 그가 시린 웃음을 토해냈다. 하! 난 냉혹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녀를 용서해주었어요. 배질의 가슴께에 닿을 듯 말듯 하는 손이 조심스러웠다. 조금 아래에서 배질을 올려다보는 밀착한 얼굴이 무언가를 찾는 듯 두 눈을 바삐 굴렸다. 하지만 어떤 동요도 없이 고요하여 텅 빈 눈만을 보여주는 배질에게서, 결국 허한 웃음을 터트린 그가 물러났다. 터덜터덜. 제대로 균형 잡을 생각조차 없어 보이는 걸음걸이로 풀썩 소파에 내려앉았다.
배질, 제발 내 선행을 폄하하지 말아줘요ㅡ마치 무언가를 잘못 들은 사람처럼, 니가 나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는 듯이 그가 말했다. 경고조도 으르렁거림도 아니었다. 타이름이었다. 네가 나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잖아, 하는. 약간 지친 듯도, 그래서 조금은 예민해진 신경으로 나직하게 발음한 문장이었다.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떠난다'는 배질의 말에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라고? 다신 날 보지 않겠다고? 얼척없다는 듯 늘어진 어깨에서 고개만 치켜올려 배질을 보는 등이 그의 어이없는 충격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말도 안 돼, 가관이군. 밤공에선 심지어 그 상태로 웃었다. 소리내어, 육성으로. 이런 웃음은 오랜만.
난 완벽한 인간이 되고 싶었어ㅡ는 오랜만에 변화. 낮밤 모두. 초상화가 화두로 오르자마자 괴로워하는 얼굴이 꺼낸, 어쩌면 그의 마음속 진실. 잘라 들을 것.
그리고 낮공에서 다시 들린 배질의 비명. 똑바로 봐! 똑바로 보라고! 배질을 마구잡이로 뒤흔드는 순간 터져 나온 찰나의 절규.
배질의 '여전히 젊어! 여전히 아름다워!' 역시 어제의 절규를 이어갔다. 낮밤 모두. 심지어 life of joy 에서 그를 몰아갔던 기세 이상의 강함이었다. 개인적으로는 life of joy의 강렬함을 잊게 할 정도로 거센 배질이었다.
‘그런데 네 심장은! 너의 영혼은!' 일갈하며 그에게로 성큼 다가서는 기세에 그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했다. 궁지로 몰린 그의 혼란이 더욱 갈피를 잃었다. 너무도 강해진 배질 앞에 뒷걸음질하는 그가 작디작았다. 의지처를 찾는 듯한 황망한 뒷모습이 가여웠다. 좌, 우, 차례로 고개를 내젓듯 두리번거리더니 끝내 어둠 속으로 몸을 피했다. 사라진 그 등에 대고도 배질이 외쳤다. '그 아름다웠던, 도리안 그레이!'
14. 앨런의 죽음
밤공, '비밀은 꼭 지켜주세요.' 오랜만에 심장을 쿵 타격했다. 지치고 지친 목소리인 건 여느 때와 같았는데 무엇이 그리 다르게 들렸던 걸까.
15. 사라진 아름다움
배질이 살해당했을 거라는 생각, 해본 적 있어요?
두 눈동자가 크게 부풀며 물었다. 추궁에 가까운 속살거림이었다. 밤공에서는 약간의 웃음기까지 깃들어있었다. 집요한 시선이 깜빡임도 없이 상대에게 머물었다. '캘리포니아'라는 엉뚱한 대답에 언뜻 스친 '역시' 하는 얼굴에는 헨리 워튼을 향한 동질감이 스며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초상화를 찾는 물음에 그가 가장한 모든 평화가 일시에 무너져내렸다. 다시금 영혼의 비밀을 추격받자, 잔뜩 너덜너덜해진 의식이 이번에는 어떻게 방어해 볼 도리도 없이 와르르.
햄릿의 대사를 읊는 그의 손이 부르르 떨며 제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 자리에 있기를 바라는, 그러나 그 존재를 확신할 수 없어진 그것을. 심장이 없는 자신을.
헨리, 만약에 내가 배질을 죽였다면요?
물음 끝에 잔뜩 부푼 동공은 첫 질문과 같았으나 그에 스며든 빛이 달랐다. 사형선고를 앞에 둔 듯 비장한 눈이 차마 상대를 마주하지 못하고 비켜서 있었다.
살인은 결코 쾌락이 될 수 없어.
바람과는 정반대의 대답에 그가 휘청거리며 뒷걸음했다(밤공). 물러난 단 두 걸음이 참 아팠다. 이미 없는 그의 심장이 대지로 곤들어박히는 모양을 본 것만 같았다.
피할 수 없는, 숙-명.
그가 울분했다. 울분이 이 소절로 앞당겨진 것은 처음. 이 깊은 고통, 전부 내게로 떠맡긴 이 모든 감각을 너는 아느냐는 듯한 몸부림이었다. 자신이 시달려온 모든 것에 대하여 너는 얼마만큼이나 아냐는 듯한 매달림이었다. 그래서, 모른다면 보듬어주고 안다면 날 그리 대해서는 안 된다는 호소였다.
회한의 듀엣은, 오늘은 차라리 울음의 노래에 가까웠다. 가장 서글펐던 지점의 소리는 우리가 바란 '환희'는 무엇인가. 무엇이 기다릴까에서의 그 처절하였던 '환희'와 겹쳐지는 소리라 더욱 서글퍼졌다.
헨리, 헨리.
울음을 훔친 손등이 다급했다. 떠나는 이를 잡아야 했으므로. 제 눈물을 채 살필 겨를도 없이 황급히 일어나 쫓았다. 그러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다시 혼자 남겨졌다.
16. 도리안 그레이
보석 범벅의 얼굴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울음으로 반짝이는 얼굴이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장밋빛 삶 저무나, 나 홀로 남겨지나ㅡ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문장의 형태에도 불구하고 물음형이 아니었다. 그건 읊조림이었다. 나, 이제 이렇게 남겨졌노라는.
울음으로 웃음하는 밤공의 소절ㅡ나 싱그러웠던, 나 밝게 빛나던ㅡ에서는 걸음이 온전치 못했다. 여기에서 이렇게, 휘청이는 몸은 처음.
이어 다시 돌아온 10월 8일의 고조. 낮밤 모두.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아ㅡ에서 끌어올린 감정은 역시 '도대체 누군가'를 딛고 '예뻤겠지'에서 처절하게 번져갔다. 오른 볼에 떨구어진 눈물은 내내 볼에 머물며 한을 더했다.
그 한끝에 무너진, 무너지기 직전에 보여준 그 얼굴은... 대체 뭐라 하면 좋을까. 칼날이 바닥으로 처박히며 빚은 날카로운 소리보다도 내 마음을 타격한 그 얼굴은 대체 뭐라고 해야 해.
푸른 핏줄 심장을 뚫고 날 깨운다
제 생을 끝낸 얼굴이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았다.
나를 일으킨다
기이하게 고정된 시선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깜빡였다.
엉금엉금 조금이라도 더 다가서 보려 하는 최후의 몸부림이 간절했다.
황금 빛깔 천국이
제 눈앞의 것에 놀란 듯, 의아한 듯, 하지만 숨길 수 없는 벅찬 기색이 동시에 눈동자에서 회오리쳤다. 한쪽 눈이 가늘게 접히며 눈앞의 것을 투시하듯 뚫어져라 보았다.
내게 펼쳐진다
그러다 문득 꺾인 눈꺼풀이, 경련하더니 눈꼬리가 처졌다.
아름다운 소년이
펼쳐진 그 모든 것의 허상을 깨우친 눈이 글썽거렸다.
나를 부른다
다만 소망하노라며, 울음된 노래가 멎었다.
17. 레퀴엠
밤공. 앨런이 떠난 자리에 홀로 남아 그대로 손을 뻗고 있는 모습이 왜 그리 쓰리던지.
글로스터와 마주한 얼굴에서 볼 아래로 떨구어지던 방울 하나와, 배질의 어깨에 묻었던 얼굴을 들어 올렸을 때 온통 흥건하게 번져 있던 볼을 보았을 때의 마음 한 조각. 오늘의 눈물.
(+)
배질. 잘 어울리네, 안 어울리게. (낮공) 잘 어울리네, 부럽게. (밤공)
세상이 바뀐 시간. 브랜든 부인은 이제 모두에게 약을 전파 중. 오늘은 (그간 거절해온) 여성분에게 먹여주는 것에도 성공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