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플레이빌 2016년 9월호 인터뷰 : 아름다움에 관한 견해
일자 | 2016-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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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인터뷰 |
일정 | 씬플레이빌 2016년 9월호 인터뷰 : 아름다움에 관한 견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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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젊음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던 도리안 그레이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카메라의 플래쉬와 함께 빛나는 김준수와 박은태, 두 남자의 반짝이는 시간이 잠시나마 멈추기를 바랐다.
photographer 배재형
대체불가 #김준수
김준수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적어도 다음의 한 가지 명제에 대해서만은 의견이 갈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뮤지컬계에서 그는 독보적인 지점에 서 있다는 것. 이 말에 누군가는 그가 맡아온 배역들-대부분 물리적으로 다른 차원의 시공간에 머무는-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디터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낯선 작품에도 과감히 발을 내딛는 씩씩한 행보다. 그는 라이선스 작품을 선택할 때마저 안전한 길로 걷지 않는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아 쉽게 성패를 점치기 어려웠던 공연들의 초연을 선택하는 것처럼. 하물며 뚜껑을 열기 전까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창작 뮤지컬의 불확실성이야 말해 무엇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용감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그의 이름 세 글자를 믿고 조금 덜 불안한 선택을 할 수 있었고, 창작진들은 넓은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워크숍 공연으로 그칠 뻔한 <도리안 그레이>가 다시 빛을 보게 되었듯이. 책임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 뮤지컬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가장 좋은 길은 우리나라 크리에이티브 팀의 작품이 성공하고 흥행하는 것이라고 들었어요. 제가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뮤지컬이 저를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 차원에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김준수의 말을 증명하듯 그의 출연작 목록에는 라이선스 뮤지컬과 창작뮤지컬이 나란하다. 이런 공평함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아마 <천국의 눈물> 제작발표회 자리였던 것 같은데, 앞으로 창작뮤지컬에 꾸준히 출연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신인이 참 패기도 좋지(웃음). 그런데 그 약속은 꼭 지키고 싶더라고요.”
자신과의 약속일지언정 그것은 꽤나 굳건하고, <도리안 그레이>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애초의 공연이 중소극장을 위해 기획되었다는 이유로 제작을 망설이던 회사의 마음을 돌린 것도 김준수의 확고한 의지 덕분이었으니까. 그의 고집 아닌 고집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창작뮤지컬이 분명히 어려운 작업인 건 맞아요. 그렇지만 모든 것을 제 상상으로부터 자유롭게 뻗어나가면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다른 배우들과 으쌰으쌰해서 결국 해낼 때의 짜릿함도 정말 매력적이죠.”
크리에이티브 팀의 일원으로서 이번 작업에서 김준수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은 춤이다. <도리안 그레이>를 선택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춤에 대한 오랜 갈증의 해소.
“이전의 작품들에서도 춤을 추긴 했지만 딱 ‘뮤지컬스러운’ 춤에 한정되어 있었다고 할까요? 성에 차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을 접했을 때 한 번 춤으로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타락하고 점점 일그러져가는 도리안의 모습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죠. 혹시 저와 같은 아쉬움을 느꼈던 분이 있다면 이번 작품에서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준수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안무 장면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도리안 그레이를 남자 배우라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고 싶다는 야심으로.
“춤만큼은 무대 위에서 직접 확인하셔야 한다”는 그의 유일한 힌트는 안무팀과 그의 전속 댄스팀이 함께 호흡을 맞추는 중이라는 것.
“어제는 많이 울었어요. 처음으로 엔딩 장면을 연습했거든요. 그 찬란하고 빛나던 젊음은 지고, 곁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떠나가 버렸다는 걸 자각하는 도리안의 마음이 확 와닿아서인지 가볍게 하려고 했는데도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 배우들 모두가 울컥했던 것 같아요.”
이런 이유로 그는 요즘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던 세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젊음과 아름다움, 영원히 머물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세상에 대해.
“계속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돼요. 저를 돌아보기도 하고, 고민도 하고. 아직도 애매하기만 해요. 배질과 헨리,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도리안에게 끊임없이 속삭이는 헨리의 말이 궤변인 걸 알면서도, 그 달콤한 비유와 형용사로 포장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홀릴 수밖에 없거든요.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 헨리의 말을 따르는 게 행복할 것 같고요. 아마 관객분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갑론을박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그는 연습의 여운이 다시금 떠오르는 듯 등을 의자에 느슨히 기댔다. 스태프들과의 작업 이야기가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듯 눈을 반짝이며 자랑을 한껏 늘어놓았지만.
“음악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김문정 감독님이 거의 자신을 끝까지 내몰고 채찍질해서 만드셨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니까요(웃음). 어느 라이선스 뮤지컬의 넘버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정말 세련됐어요. 이지나 연출님과의 작업도 재미있어요. 굉장히 감각적인 스타일이어서 연습 중 순간 순간 떠오르는 느낌에 따라 장면이 변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분명히 작품이 업그레이드되는 걸 느끼니까 배우로서 믿고 가게 되죠. 못할 때는 누구보다 무섭게 혼내시지만 반대로 잘할 때는 정말 진심을 담아 칭찬해 주세요. 그 솔직함이 많은 힘이 돼요.”
그의 말에는 작품에 대한 애정을 넘어 명확한 자신감이 깃들어있었다.
김준수는 이 작품을 “∞”로 정의한다.
“<도리안 그레이>가 줄 수 있는 메시지는 무한하다고 봐요. 순간처럼 스쳐 지나가는 젊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고, 내면보다 아름다움을 좇는 요즘의 세태를 돌아볼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주옥 같은 대사들의 향연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극본의 깊이가 대단하거든요. 아마 뮤지컬이기에 가능한 매력을 십분 발휘한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도리안을 연기하다 보니 말투가 나긋나긋하게 변한 것 같다는 김준수는 조근조근, 그러나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가다가도 “음… 네, 여기까지”라며 급하게 말을 끊었다. 어떤 스포일러 없이 무대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인 듯 했다.
“좋은데,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던 광고 카피를 몸소 보여주듯 발만 동동 구르며 개막 전에 만난 것이 아쉬울 따름이라고 했다. 그가 그렇게나 말을 아끼는 까닭은, 이번 작품이 모두가 알고 있는 오스카 와일드의 고전이 아닌 전혀 다른 지점의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이 짧은 대화의 기록 또한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프롤로그에 불과하다. 그 완결은 무대에 오른 김준수의 도리안 그레이와 만나는 순간 비로소 올 것이다.
editor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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