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내린 토드.
밤공의 〈베일은 떨어지고〉. 29일의 연장선이었다. 그녀를 위해 자유로 향하는 디딤돌이 되어주기로 결심한 얼굴은, 그 비장함에도 불구하고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처진 눈매와 떨리는 눈썹, 꽉 다문 입술. 담담을 애써 가장하는 얼굴에서 차마 떨쳐내지 못한 감정은 분명히 슬픔이었다. 결말을 각오한 이의 비장한 처연함이 온 얼굴에서 묻어났다.
그녀가 생을 놓아버린 직후, 찬찬히 눈을 뜨는 얼굴에 스쳐 간 일말의 희망은 곧바로 산산조각이 났다. 각오는 했지만, 막상 마주 대하니 더욱 깊은 좌절감 앞에 커다란 두 눈동자가 잔뜩 흔들렸다. 결국 영원히 홀로 남았음을 확인당한 얼굴에 도리어 나의 울컥함이 치밀었다. 죽음의 오랜 고독 속에서 유일했을 '존재의 이유'를 잃은 마음을 말로 다 이를 수 있을까. 망연히 뻗은 왼팔이 너무도 쓸쓸해보였다. 엘리자벳을 따라 루케니마저 죽음 너머의 세상으로 흘러가버리고, 외딴 무대에 홀로 남아 어둠 속으로 잠겨가는 마지막까지 죽음은 혼자였다. 눈물처럼 흐른 땀방울이 싸느랗게 지나간 얼굴 위로 자비없이 닫히는 검은 막이 야속했다.
죽음의 시간은 홀로 갇힌 채로 영원히 남겨진 것이 아닌가.
*
노래에서 그의 컨디션이 보이는 날이었다. 긁힌 소리가 평시보다 훨씬 많았고, 소리가 긁혀나간 직후에는 집중력을 끌어모아 한음 한음을 신중하게 찍어내는 그를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걱정과 경탄의 양단을 오가느라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꼭 쥐고 있는 줄도 몰랐다.
종일반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밤공의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rise〉는 놀람의 연속이었다. 평시와는 다른 곳에서 피어나는 산발적인 쇳소리에 놀랐고, 그 쇳소리를 눌러 담아 노래로 가꾸어가는 그에게 또 놀랐다. 원래도 파열음 섞어 내지르는 부분(미래의 황제 폐/하/가)에선 아예 과감하게 소리를 더욱 긁어내는 정면돌파를 감행하기도 했다. 세상에. 컨디션을 일부러 숨기기보다 아예 연기에 녹여내는 담대함이라니. 15년 차 가수로서의 관록이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무대를 대하는 그의 마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당장 내일의 공연도, 모레의 공연도 있는데 오늘 이 순간이 마지막처럼 노래하는 그를 보며 그의 청중이 될 수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목소리에 온 정신을 기울여 집중하고 있으면서도 손끝부터 발끝까지, 눈썹부터 입꼬리까지 온전히 죽음인 그에게 박수를 보내줄 수 있어서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