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내린 토드. 

 

그리고 새로운 연보랏빛 아이섀도우. 푸른색이 신비로움으로 죽음을 빛내주었다면, 보랏빛은 그를 초월적인 존재로 돋보이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쁘다. 샛노란 금발과 보랏빛의 조화는 말로 다 못할 품격으로 반짝반짝. 

 

특히 〈론도〉에서. 병아리색의 샛노란 금발 위로 은하수 같은 녹청색 조명이 뿌려질 때, 그의 눈꺼풀 위에서 반짝이는 연보랏빛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죽음을 상징하는 색은 녹색도, 보라도 하나같이 그를 닮아 아름답다고. 

 

그래서였을까. 새삼 그의 얼굴을 요목조목 열심히 보게 되었다. 


〈내가 춤추고 싶을 때〉의 몽환적인 조명 아래의 그는 늘 아름답지만, 오늘의 그는ㅡ조명을 받아 녹빛으로 물든 금발과 창백한 얼굴, 보랏빛 눈매의 그의 아름다움은 특별할 정도였다. 
〈마지막 춤〉에서도. 죽천의 날개에 쏟아지는 청록빛 조명을 배경으로 그가 나른하게 고개를 돌리며 숨을 내쉴 때의 그림은 한 편의 명작이었다. 새로 발매된 굿즈 엽서가 이 순간의 색을 생생하게 담아내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로. (아니 대체 사진으로 담으면 왜 그렇게 어둑어둑한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베일은 떨어지고〉. 순백색 위로 덧대어진 보랏빛이 너무나 우아했다. 빛이 반사되어 하얗게도 보이는 눈부신 금발과 연한 눈썹, 보랏빛으로 반짝이는 눈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보아도 보아도 죽음이 너무나 아름다운걸요. 

 

*

 

목소리는 어제의 염려가 무색하게 단단했다. 오늘의 쇳소리는 긁히는 음이 아니라 긁는 음이었다. 컨디션을 염두에 두어 아예 쇳소리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노래하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내가 춤추고 싶을 때에서도, 전염병에서도 긁는 음을 기저에 두고, 숨소리와 파동이 짙은 넓은 음을 섞어 쓰며 노닐었다. 그림자에서는 더욱 탄력적이었다. 손끝으로 소리를 바싹 긁어모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화약처럼 터트려내는 그를 바라보노라니 벅찬 나머지 웃음이 났다. 목 상태는 시아준수의 무대를 좌우하는 요소가 될 수 없었다. 무대 위의 삶을 살아오는 동안 그는 자기 자신 이외의 그 무엇에도 타격받지 않는 배우로 거듭나 있었다.

 

커튼콜. 쏟아지는 환호 속에 별처럼 강림하는 그를 차곡차곡 눈에 담았다. 마땅한 갈채를 향하여 의연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그가 못 견디게 사랑스러웠다. 그 열망으로 기도했다. 무대를 사랑하는 이 사람을, 무대가 언제까지나 지켜주기를.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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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1.05

참 그림자 끝나고 웃을 때 마이크 제때 켜지지 않았던 거 속상했다. 그 목소리가 어떤 목소리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