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곡〉에서 가장 슬픈 눈을 보았다. 온통 어두운 가운데 그의 눈동자만이 밝은 빛을 발하는 무대인 탓에 눈 안의 혼란이 더욱 부각되어 다가왔다. 좌우로 배회하며 흔들리는 눈동자가 촉촉했다. 그녀에게서 전이되어 온 감정ㅡ슬픔ㅡ이 그를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있는 양. 

 

낮공. 마음에 남는 베일이었다. 브릿지 위의 그가 손을 내밀었다. 브릿지 아래의 그녀가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곧이어 두 사람의 시선이 겹쳐졌다. 브릿지를 사이에 둔 그 몇 초 남짓의 시선 교환이 아주 느리게 눈에 박혔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듯이 눈도장을 찍는 시선이었다.

 

그 시선의 의미를 모를 수 없었다.
‘마침내.’
서로의 시선 안에서 서로만이 온전하게 존재하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의 목격자가 된 오늘을 잊지 못할 것이다. 

 

*

 

밤공. 설풋 입매가 웃었다. 눈매는 그대로 아래로 처진 채, 망울망울하여 아주 잠깐 웃어 보였다. 그 얼굴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나만의 여인’의 기다림이 얼마나 길었는지, 얼마나 기다렸는지를 절감했다. 

 

낮공도 밤공도 하나의 귀결이었다. 
‘마침내.’

 

사랑 후의 이별이 주는 절망보다 거대한, 마침내의 사랑을 보았다. 

 

*

 

반깐 토드. 보랏빛 섀도우. 
내린 앞머리를 가운데로 말아서, 헤어라인이 꼭 세일러 머큐리의 하트모양을 닮았다. 예뻤다. ♡

 

세상 부드러운 〈론도〉였다. 목소리가 그랬어. 무척 사근사근했다고 해야 할까. 더불어 태도도 미묘하게 조심스러웠다. 죽음 앞에 선 한낱 인간, 혹시라도 깨어질까 조심조심 대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죽음 자신도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 스스로에게 한껏 생소해 하는 미묘한 혼란 또한 함께 보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가슴뼈에 눈이 갔는지. 그림자 드리울 정도로 옴폭 드러나는 가슴뼈가 눈에 콕 박혔다. 탄탄하고도 부드러워 보여서 계속 시선이 갔어.

 

〈마지막 춤〉은 5일을 이어갔다. 죽음으로서의 본연의 모습을 조금 더 보여주기로 결정한 얼굴이 자신만만했다. 강하고, 매혹적으로 본격적이며, 여유와 확신으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전주에 비하여 훨씬 건강해진 목소리였다. 지난주의 마지막 춤이 상대적으로 쇳소리를 가득 활용하여 음습하고도 은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면, 오늘은 정공법대로였다.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rise〉 역시. 겹겹의 소리가 생생하게 얽히며 풍성한 소릿결을 빚어냈다. 긁어낼 때도 산뜻하고 명확했다. 한 음 한 음마다 회복된 컨디션이 느껴져서 기뻤다. 
참, 브릿지 중앙에서는 오늘도 한 번 더 루돌프를 콕 찍어 가리키며 웃었다. 낮밤 모두, 5일 밤공보다 훨씬 더 길고 분명하게!

 

〈전염병〉의 진단을 내리는 그에게서는 기대감을 읽었다. 말라디에 대하여 설명해주며 뒤따라올 반응을 몹시 고대하고 있었다. 두 팔 한껏 펼치며 ‘그야~물론.’ 추임새를 넣는 입술이 얄미울 정도로 새초롬하게 웃었다. 
‘그렇게 해, 엘리자벳!’ 에선 포획을 눈앞에 둔 맹수의 고조되어가는 맥박이 형형한 두 눈을 통해 느껴지는 듯했다.

 

1막 〈그림자는 길어지고〉에서 ‘길어지는 그림↗︎자’하며 음 끌어올릴 때는 발성을 바꾸는 건가? 극적인 소리의 변화가 신비롭고도 매혹적이다. 죽음에게 덜컥 덜미를 사로잡힌 느낌이랄까. 

 

그런데 오늘 삼중창에서 웃지 않았다! 낮밤 모두. 아무래도 이건 그날그날의 공연을 따라 결정되는 듯싶다. 
반면 침몰씬에선 정말 짓궂다 싶을 정도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웃었다. 캬하하, 소리가 들릴 듯이.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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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1.10

참, 낮공. 18번 좌석에서 커튼콜 막이 닫히는 최후의 순간까지 죽음을, 죽음만을 온전히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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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1.10

마지막 춤에서 그가 날개를 펼치는 죽천들 앞에 서서 나른히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내쉴 때, 18번에서 정확히 정면이라 심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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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1.10

‘나는 알고 있어, 마지막 순간’에서 눈맞춤을 할 수 있는 열은 어디일까. 꼭 한 번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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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1.10

그림자 어디에서도 엄청난 눈맞춤이 있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