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내린 토드. 보랏빛 섀도우. 

 

격정적인 한 주였다. 신영숙 엘리자벳과의 연이은 평일 공연은 다채로움의 연속이었다. 그도, 엘리자벳도 서로가 서로에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점을 역으로 활용하여 여러 가지 색다른 조화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한 주를 마무리하는 토요일의 마지막 공연. 다시 돌아온 익숙한 엘리자벳과의 조합은 대단히 안정적이고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강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레 맞물리는 조화로움이었다.

 

단단하고도 익숙한 조화로움의 최종장은 역시 〈베일은 떨어지고〉였다. 그의 손이 그녀와 만난 순간에 문득 막공의 분위기를 느꼈다. 신영숙 엘리자벳과의 베일에서 느꼈던 격정에 가까운 감격과 회오리치는 슬픔 대신, 김소현 엘리자벳과의 베일에는 시간으로 쌓은 안정감이 있었다. 두 사람이 맞물리며 포옹하는 순간은 마치 모든 생이 죽음으로 귀결되는 섭리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신영숙 엘리자벳과의 베일에서 느꼈던, 운명을 거슬러 쟁취해내야만 했던 자유가 얼마나 굴곡지고 격정적이었는지 새삼 와닿았다. 
흡사 맵순맵순의 조화였다. 
오늘의 부드럽고도 단단한 자연스러움과 깊은 안정감이 평일 공연에서의 풍파와 격정을 어루만져주었다. 놀라운 일주일을 마무리하기에 더없이 알맞는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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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넘버는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rise〉. 개인적으로 최악의 음향이었음에도 불구하고(할 말이 많지만 하략..), 최선을 넘어선 최고를 보여준 무대였다. 6연공의 여파로 쇠가 된 목소리로도 낭창낭창했다. 
특히 절정부 ‘그것이 운-명’의 드라마틱함은 12년 3월 25일을 떠올리게 했다. ‘명’의 음절이 평소와는 다르게 거칠었다. 원래대로와 같이 음정이 곧게 뻗어 나가지 못하고 있음이 얼핏 느껴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미 젖혀져 있던 그의 허리가 더욱 힘주어 휘어지고, 가로 벌린 두 팔이 세차게 떨렸다. 전신에서 힘이 바짝 빗발치는 느낌이 전해지는 것과 동시에 ‘명’의 소리가 덧칠되었다. 몸통에서 깊이 끌어낸 소리였다. 차곡차곡 덧대어진 음정은 멋들어진 절정을 이루었다.

 

오늘의 그림은 〈마지막 춤〉. 브릿지 위에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며 사르르 웃는 얼굴이 한순간에 정색으로 변모하는 장면. 그의 정색을 따라 덩달아 싸늘해진 마음으로도 심장이 뛰었다. 어쩐지 이렇게까지 뒤바뀌는 표정은 처음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처음은 아닐 텐데도, 오늘따라 새로울 만큼 극적이었기에.

 

삼중창에서는 낮밤 모두 웃었다. 그녀를 향해 뻗은 손과 함께 살짝 깃든 미소는 막이 닫히기 직전 무표정으로 갈무리되었다. 잠깐만 내비친 선명한 웃음이 막이 닫힌 후에도 짙은 잔상으로 남았다. 앞으로의 이야기ㅡ엘리자벳을 위하여 죽음이 그려놓은 판, 즉 2막을 기다리게끔 하는 모종의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