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깐토드, 보랏빛 섀도우. 


엄청난 공연이었다. 드물게도 음향부터가 좋았다. 배우들의 합은 더욱 훌륭했다. 신영숙 엘리자벳, 이정화 소피를 비롯하여 배우들의 성심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무엇보다 죽음과 엘리자벳의 감정이 좋았다. 두 사람의 서사가 대단했다. 당신처럼 reprise에서 시작하여 마이얼링, 추도곡, 베일의 최종장에 이르기까지의 한 계단 한 계단이 매끄러웠다. 마치 운명의 수순을 따라가는 듯한 흡입력이었다.
거듭 말할 수밖에 없다.
실로 엄청난 공연이었다.

 

*

 

신영숙 엘리자벳과의 공연에서는 〈추도곡〉에서 긴장을 하게 된다. 생과 사의 외줄에서 당장에라도 고꾸라질 듯한 엘리자벳. 그런 그녀가 낯설어 당황하고야 마는 죽음. 죽음에게 구원을 청하는 세상 아래의 그녀와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마는 세상 위의 그를 목격할 때에는 숨조차 멈추고 집중할 수밖에 없다. 고요함 속의 팽팽함이 긴장을 자아낸다. 죽음의 망가져버린 계획과, 그 망가진 계획의 결과물인 그녀. 추도곡은 넘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절망이었다. 엘리자벳과, 죽음의.


〈추도곡〉의 절망과 〈행복은 멀리에〉의 깊은 상실이 곧이곧대로 〈베일은 떨어지고〉로 이어졌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생에 찾아온 죽음은 해방이자 구원이었다. 환희에 찬 엘리자벳의 마음이 절로 이해되었다.
놀라웠던 건, 죽음에게서도 그녀 못지 않은 열망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지난 주와는 달랐다. 침통한 마음을 애써 견딘 채 그녀를 위해 구원을 선사하던 그가 아니었다. 죽음의 찰나가 지나고 나면 영원한 이별이 남을 뿐이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죽음을 원하는 그 ‘찰나’만이라도 간직하고 싶어 하는 듯한 눈을 오늘의 죽음에게서 보았다. 그간에는 사랑 뒤의 이별에 베일의 무게중심이 있었다면 오늘은 전자에 추가 놓였다. 사랑. 결실을 눈앞에 둔 사랑. 그래서 오늘의 그는 슬프면서도 기뻤다. 무겁게 가라앉은 얼굴은 뒤따를 이별로 처연하면서도, 당장의 찰나를 고대하고 있었다. 


사랑의 성사. 찰나에 그쳤을 뿐이라도 이루어진 사랑. 오늘의 베일에서는 그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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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은 마지막 춤의 압도적인 독무대였다. 12월 29일에 감탄하고 1월 10일에 전율했었지.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신영숙 엘리자벳과의 〈마지막 춤〉은 어김없이 경지를 갱신한다. 

도입부부터 씹어서 뱉듯이 찍어가는 음정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마지막 춤’의 폭발력부터 이미 대단했다. 서서히 차올라 종장에서 터트려내는 부류가 아니었다. 이미 치솟아 쏟아지는 용암이었다. 매서울 만큼 뜨겁고 소름 돋을 만큼 차가웠다. 최후의 ‘마지막 춤’에선 고개를 좌우로 헤드벵잉하듯이 털기까지! 이렇게까지 온몸을 격정적으로 쓰는 건 신영숙 엘리자벳과의 마지막 춤이 유일하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신영숙 미나, 신영숙 헨리 또한 보고 싶다고. 두 사람이 어떤 조화를 보여줄지 상상만으로 기대되어서 견딜 수가 없다. 

 

폭발력은 2막에서 더욱 증폭되었다. 〈내가 춤추고 싶을 때〉도, 〈전염병〉도 강강강의 연속이었다. (특히 내가 춤추고 싶을 때에서 엄청난 강세의 단어가 있었는데 다시 들어봐야겠다: 자유를! 이었다.)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rise〉는 그중에서도 으뜸이었다. 청각적으로는 물론 시각적으로도. 동작부터가 전반에 걸쳐 무척 커졌다. 특히 박자에 맞추어 쳐내는 손짓이 드라마틱했다. ‘미래의 황제 폐! 하! 가!’를 내지른 후(정확히는 망설일 시간 없-어의 소절) 루돌프의 멱살을 잡다시피 하여 끌어당겼을 때는 깜짝 놀랐다. 그의 손이 닿아 움켜쥔 부분이 딱 루돌프의 목덜미 언저리였어서 흡사 멱살을 잡아챈 것처럼 보였던 것인데 삽시간에 덮쳐드는 죽음을 시각적으로 목격한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세상을 구원해!’에서는 도중에 정면으로 갑자기 상체를 틀었다. 루돌프가 아닌 객석을 똑바로 노려보며 ‘구원해!’라며 일갈하는 죽음은 처음이었다.
(그것이 운명은 다시 정박이 되었다.)

 

삼중창에서는 이번 주의 공연 중 가장 분명하게, 매섭게 웃었다. 반면 볼프살롱에서는 정색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