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첫 공연, 그리고 첫 깐토드. 보랏빛 섀도우. 


세상에. 얼굴만 보이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마가 말끔하게 드러나 표정이 고스란히 보이니 늘 보았던 얼굴과 표정도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베일은 떨어지고〉, 그리고 〈전염병〉.
전염병, 브릿지 위에서 어찌나 도자기 인형처럼 예쁘던지. 공연 직전 셀카로 보여주었던 그 얼굴 그대로가 무대 위에 있었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꼭 무슨 그림 같았어. 죽음이 아름다워요.
베일에서는 훤히 드러난 이마에 보석처럼 펼쳐 바른 듯한 땀방울에 시선을 빼앗겼다. 펄을 바른 듯이 반짝반짝한 빛이 이마를 수놓고 있었다. 죽음이.. 아름다워요..

 

또 아름다웠던 건 결혼식에서 종을 칠 때. 보통은 자유로운 다리를 넓게 쓰곤 하는데, 오늘은 지탱한 다리로도 줄을 튕겼다. 위험해 보이는 만큼 매혹적이었고,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죽음 그 자체로 보이게 했다. 놀라운 건 자칫하면 보는 사람이 불안할 정도의 높이에서 거세게 몸을 쓰고 있는데도, 워낙에 동작이 탄탄하고 균형 잡혀 있어서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꼭 적어야 하는 것. 〈전염병〉에서 엘리자벳을 향하여 마지막으로 성큼성큼 무대를 가로질러 다가서는 대목. 동선 끝에서 그녀의 거부를 맞닥뜨리며 탁 멈추어 설 때, 급정거하는 느낌으로 한쪽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렸다가 제동 걸린 듯이 툭 떨구었는데 그 가로막힌 동작이 대단히 설렜다. 보폭이 큰 게 대번에 느껴져서일까. 죽음이 꼭 먹잇감을 눈앞에 두고 순순히 물러나는 거대한 맹수처럼도 보였다. 매섭지만 신사적인, 어떤..
브릿지 위로 올라가기 직전에는 고개를 빈정거리듯이 좌우로 털었다. 심쿵이었다..ㅠ 이 동작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어요.


오늘의 소리는 〈프롤로그〉의 완전한 ‘파괴만이’의 그르렁. 그리고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rise〉을 꼽고 싶다. 내일의 공연을 생각하지 않고 터트려내는 쇳소리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특히 ‘그 약-속’에서 26일과 같이 강하게 섞어 넣은 파열음이, ‘그 끝에 서 있다’의 애써 숨기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선보이는 갈래갈래의 쇳소리가.


요즈음의 그림자는 슬픔의 행방 레코딩 당시의 인터뷰가 생각나게 한다. 소절 사이사이의 숨소리, 조금 흔들리는 목소리를 그대로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했었지. 그렇게 하면 음정적으로는 다소 불안할지 몰라도 듣는 이에게 노래의 감정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쇳소리를 구태여 매끄럽게 다듬거나, 숨기려 하지 않는 점이 바로 이때의 인터뷰와 닮았다. 루돌프를 생사의 기로에 서게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자, 죽음이 인간사에 가장 깊숙이 개입하는 장면이다. 재단한 듯이 매끄럽기보다는 터트려지는 파열음이 효과적일 수 있다. 시아준수는 이런 점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겠지.


마무리로, 요즈음 〈프롤로그〉에서 계속 혀를 빼꼼한다. 엘리자벳의 발음상 혀가 빼꼼할 필요가 없는 부분인데, 늘 보여서 매번 볼 때마다 신기해.


(+)


오늘의 베일에서도 첫 소절, ‘엘리자벳’이 살짝 잠겨 있었다. 음향 사고일 수 없는, 정말로 잠긴 목소리였다. 마침내의 베일이니까, 이런 목소리도 좋구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