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넘버는 단연코 침몰하는 배 위의 〈질문들은 던져졌다 reprise〉. 
‘황후는 어디 있나’ 그녀의 행방을 묻는 프란츠 요제프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브릿지 아래로 내디딜 것처럼 숙인 상체가 저 높이에서 아슬아슬했다. 가슴 앞으로 바짝 끌어당겨 당장에라도 움켜쥘 것처럼 잔뜩 힘이 실린 손이 부르르 떨린다 싶은 순간 그가 일갈했다.
‘엘리자벳, 나의 엘리자벳!’ 
시각화할 수 있다면 분명 송곳처럼 날카로운 소리였을 것이다. 동시에 뇌성과 같은 짙은 울림의 소리였다. 쏟아지는 분노와 감출 길 없는 갈망의 음성이었다. 시간이 의미 없는 죽음의 생애에 처음으로 세월의 깊이를 알려준 존재, 그녀를 향한.

 

*

 

1월 31일 이후 처음으로 반깐 토드, 보랏빛 섀도우. 
앞머리가 많이 길었다. 반내린 머리를 둥근 곡선으로 길게 말아내리니 소위 ‘슬리데린미’가 엿보였다. 영특한 인상에 날렵하게 드리워진 앞머리. 역시 예뻤다. 삼연의 죽음은 역시 반깐인 것이다.

 

널찍한 오케스트라 피트를 너머 액자 안의 세계에도 익숙해졌고, MR의 박자도 나름 귀에 익었다. 무엇보다 기뻤던 건 음향이 무척 내 취향의 음량을 들려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샤죽음의 넘버에서.
론도에서부터 소리가 좋았다. 언제부턴가 론도는 마지막 춤에서의 음향 상태를 자가진단할 수 있는 길라잡이가 되곤 하는데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마지막 춤〉. 자신만만하게 활짝 웃는 얼굴이 시작이었다. 볼이 패일 정도로 깊이 드리운 미소는 그녀의 거절에 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정색이 흐르는 얼굴로 브릿지를 툭툭 걸어 내려오는 걸음걸음마다 냉기가 돌았다. 도입부의 이 싸느란 여유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오늘의 마지막 춤이었다. 폭발력은 생생했지만 분노는 크지 않았다. ‘결국엔 나와 함께’ 하게 되리란 자신감이 내내 엿보였으므로.

 

〈엘리자벳 문을 열어주오〉의 도입부도 신선했다. ‘엘리-’ 를 연이어 내쉬듯 부른 다음 짧게 끊고, ‘자-벳’. 여유가 된다면 잘라서 들을 수 있도록 하자.

 

시각적으로는 푸른 조명이 보기에 유달리 예뻤다. 프롤로그의 액자에 일렁대던 푸른 빛(그런데, 오늘은 액자에 아예 거미줄이 없었다!), 누군가의 어머니에서 공기를 내리누르던 검푸른 어둠, 결혼식의 종소리와 함께 내리는 파란 어스름까지.
마이얼링의 상당히 밝은 조명도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이렇게 죽음의 얼굴을 샅샅이, 환하게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김소현 엘리자벳과의 마지막 무대. 커튼콜, 포옹에 앞서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하며 교환했던 눈빛에서 죽음과 엘리자벳의 길고 길었던 여정을 보았다. 함께한 서로에게 안식이 되는 행복한 엔딩이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