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에 앞서 세트리스트를 먼저 보았다. 제목을 확인하자마자 마음 한구석 어딘가가 깨진 것 같았다. 많고 많은 곡 중에 왜 ‘도리안 그레이’여야 했을까, 그렇게 생각을 했다.
아마도 그건 무대 위의 시아준수를 잘 알기 때문이었겠지. 다시 만날 ‘도리안 그레이’는 분명 완벽할 것이다. 도리안의 허물을 벗은 김준수의 얼굴로도 도리안의 환영을 이끌어올 만큼 완전하겠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마음을 산산조각내고 말 것이다. 극 안에서라면 극을 통해서 본다는 보호장치가 마음을 감싸주겠으나 극이라는 틀이 없는 이번에는 어떤 완충재도 존재하지 않는다. 김준수의 얼굴로 도리안의 감성으로 노래하는 ‘도리안 그레이’를 맨몸으로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름에 쌓여 입장했다. 그러나 1막이 끝날 무렵에는 알 수 있었다. 배우들 모두 저마다의 고유한 스토리가 있는 곡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보며 이해하게 되었다.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한 귀중한 첫 콘서트인 만큼 엄선하여 선별했음이 느껴지는 무대를 보며 ‘도리안 그레이’가 필연이었음을 받아들였다. 또 다른 나보다도, Life of Joy나 여타의 귀중한 곡들보다도 반드시 ‘도리안 그레이’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스스로에게 뜻깊은 바로 이 자리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원형에 가까운 김준수를 소개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극의 조력을 받지 않고도 순식간에 극 중 인물이 되어 단 4분 남짓으로 극 전체의 서사를 완벽하게 재연해낼 수 있는 김준수를. ‘Before 김준수, After 김준수’를 있게 한 원동력이기도 한 살아있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김준수를. 그래서 듣는 이의 심장마저 뜯어내는 김준수를. 그래서 무엇보다도 반짝반짝한 김준수를.
감격적인 경험이었다. 그를 사랑하는 이들이 그에게서 보는 가장 알맹이에 가까운 모습을 그의 동료 또한 보고 있으며,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다는 것. 그가 스스로 조력자 되기를 자처한 상대의 전폭적인 신뢰와 사랑, 감사를 한몸에 받으며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본다는 것.
이어지는 선곡마저도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노래가 아름답고 쏟아지는 황금빛 조명에 따사롭게 반짝이는 얼굴이 아름다우며, 함께하는 얼굴들에 떠오른 행복의 빛이 아름다운 것. 그것을 통해 이 노래가 선사하는 풍경이 아름다운 것 이상의 감격을 맞닥뜨렸다.
러버스 콘체르토가 어떤 곡인가. 지나간다가 14년의 눈물이라면 러버스 콘체르토는 그해의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지금까지도 마음을 보듬어주는 소중한 기억이다. 그런 노래가 온 것이다. 그것도 그 무대를 함께 만들었던 원년 멤버들과 함께, 애틋한 기억을 조심조심 되돌리듯이. 그건 마치 이 노래가, 그와 그의 관객들뿐 아니라 그 무대를 함께 만들었던 이의 기억 속에서도 아름답게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만 같은 선곡이었다. 14년의 아름다운 러버스 콘체르토를 있게 해주신 분도 나와 같이 그 무대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으며, 나처럼 마음 깊이 담아두었다가 자신의 첫 콘서트에서 다시 불러올 만큼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음을 확인받은 것만 같았다.
단순히 동료로서의 상부상조나 품앗이와 같은 차원으로는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느낀 것은 건강하면서도 아름다운 감정적인 교류였다. 사람 대 사람이 만드는 음악의 대화였으며, 두 예술가의 만남이었다. 또한 시아준수,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이 자신의 토양을 얼마나 착실하게 사랑과 신뢰로 다져왔는지 수확하는 것만 같은 일련의 시간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영상 안의 소개말에서나 짧게 피어난 대화에서도 마음을 쉬이 내려놓을 수 없었다. 뭉클함이 도처에 산재해 있었다. ‘김준수라고 합니다’라던 그의 귀여운 겸양이 애틋했고, 몇 번인지 모를 정도로 고맙다고 전하던 그녀의 두 눈이 뭉클했다. 그렇기에 ‘우리 우정 변치 말자’던 말씀에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시아준수만의 콘서트에서 겪는 것과는 다른 갈래의 감격이었다.
그가 속한 세계에서 사랑 주며 사랑 받는 그를 본다는 것.
또한 일맥상통하는 감동이기도 했다.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 사랑을 마땅한 현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를 본다는 것.
단 세 곡, 십오분 남짓하였으나 온 하루를 아름답게 만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