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에서 빠져나가는 기네비어의 손을 보았다. 주워 담아도 흘러내리고 마는 모래성 같았다. 이어 덜덜 떠는 손이 기네비어의 뺨에 닿았다. 애틋하여 아린 손길이 알고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걸.

노을빛 평원에서 사랑의 일치를 이루었던 때ㅡ이렇게 우리 만난 건ㅡ처럼 그의 가슴에 닿은 그녀의 손을 그가 마주 쥐었다. 그 아래로 다른 쪽 손이 힘껏 주먹을 쥐고 있었다. 장갑을 끼고 있었음에도 안간힘을 다해 주먹 쥐고 있음이 훤히 보였다. 필사적으로, 참아내려는 듯한 주먹이 바들바들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이 가시가 되어 눈에 박혔다.

 

엔딩의 삼연곡: 평원에 날 묻어-오래전 먼 곳에서 리프라이즈-기억해 이 밤 리프라이즈는 이처럼 매 순간이 가슴을 치며 눈물을 갱신하지만, ‘오늘의 눈물’은 가장 마지막 순간에 있었다. 

그가 바위산을 오르던 때에.

덩그러니 놓인 검을 들어 올린 얼굴이 의연했었다. 감내하고 받아들이기를 각오한 얼굴은 얼핏 웃음을 보인 것도 같았다. 입꼬리만을 아주 미세하게 올린 침묵의 미소였지만, 아주 찰나였지만 그랬다. 그런데 정작 산을 오르는 그가 너무 힘겨워했다. 이상과는 다른 현실이 이런 걸까. 각오는 했어도 실제로 산을 오르는 현실은 여전히 버겁다는 삶의 진리를 목격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힘겨워하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코앞의 장애물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정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릅뜬 두 눈이 정상의 눈 부신 빛에 못 박혀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한치의 비켜남도 없이 꿋꿋하게 박힌 시선. 이 악문 얼굴과 깜빡임도 없는 눈동자 안의 형형한 빛.

그 눈에서 보였다.

그가 선택한 길로 나아가는 의지가.

 

마침내의 정상. 오래전, 수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명의 선택에 이끌려 검을 뽑아 들었던 그가 이제는 오로지 스스로의 의지로 그 자리에 섰다.

신의 운명 대신 그의 의지를 입은 검이 천천히 가슴께에 닿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힘껏 들어 올렸다.

지그시 감는 듯하던 눈, 결의 어린 입술 위로 눈 부신 빛이 쏟아졌다.

환하디환한 빛이었다. 

 

*

 

〈변하지 않을 영원한 연대〉. 엄기준 랜슬럿의 대사가 길어진 탓인지 아더의 시작하는 박자가 살짝 밀렸다. 덕분에 새로운 느낌의 시작을 만났네.

오늘의 귀여움은 테이블을 밟고 위풍당당하게 섰을 때, 선뜻 건배를 해주지 않으며 케이를 약 올리던 얼굴에(실컷 놀려놓고도 건배는 옆친구에게만 해주는 잔망을 어쩌나). 그리고 한 번에 원샷! 들이키고 크으 찡긋하던 미간에.

 

케이한테 왜 그랬는지 모르겠 ‘어요’는 어제와 같았으나 멀린에게는 다시 반말이 되었다. 

“원하는 게 뭐야.”

반말이 되면 열여덟의 활활한 패기가 느껴진다. 

 

〈난 나의 것〉. 오늘따라 멀린을 향하여 연신 펴 보이는 검지가 곧고 예쁜 모양이 손에 들어와서 자꾸 시선을 빼앗겼다. 고집스럽게 편 손가락에서 꼭 아더의 성격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끝맺음의 음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몰라. 어제보다 음량이 컸던 것일지, 감정이 격해진 바를 여과 없이 분출한 탓일지. 아마 둘 다였겠지.

 

〈이야기 되는 이야기 리프라이즈〉. 낯선 마법사라며 거리 두고, 내내 멀린을 경계하던 그가 멀린이 보여주는 용의 불길 앞에 놀라는 모습이 솔직히 말하면 귀엽다. 아, 거짓말은 아니었구나. 멀린의 이야기가 완전히 사기였던 것만은 아니구나.. 납득하며 한 발자국 물러서는 듯한 얼굴이 귀여워..

 

〈그가 지금 여기 있다면〉. 어제와 같은 두 팔 X자로 랜슬럿을 말려보았지만 어김없이 실패했다. 어이없이 끝난 대련에는 리허설 이래 처음으로 이름도 불러주었다. “랜슬럿, 어떻게 된 거야~”

엑스칼리버를 뽐내려는 랜슬럿. 그런 랜슬럿이 검을 뽑기 쉽도록 상체를 뒤로 살짝 젖혀주는 그의 너머로 마침 기네비어가 보였는데, 그녀의 표정에 웃음이 나버렸다. 저 둘은 대체 뭐하는 거지? 덤앤더머를 보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어.

 

처음 만난 민경아 기네비어와의 듀엣에서 인상 깊게 귀여웠던 대목은 가슴 콩, 주먹 콩의 장면. 기네비어가 씩씩하게 그의 가슴을 한번 콩! 쳤는데 그 순간의 아더, 글쎄 심쿵당한 얼굴로 자신의 가슴을 스르르 감싸쥐지 뭔가. 너무나 귀여웠어.

바위에 나란히 올라서서는 아예 그녀와 마음 맞추듯 주먹을 콩! 부딪히는 것도 두말할 필요 없이 귀여웠고.

 

색슨족의 습격을 받자마자 아더가 하는 기네비어에게 대사ㅡ“가서 사람들을 대피시켜요!”ㅡ는 이 대사로 고정된 것이면 좋겠다. 너무 멋있으니까.

 

〈왜 여깄어?〉. 부축받으며 나오는 아더의 입술이, 글쎄 빨갛게 반짝반짝했다. 촉촉하고 불그스름한 빛이 너무 예뻐서 홀린 듯이 입술만 보았어. 이후로도 계속 2막에서도 계속 빨간 입술이 자꾸만 시선을 앗아갔다..

천둥과 함께 모르가나가 등장하고, 멀린이 모르가나를 살피는 사이에 엑터에게 “잘 지내셨어요?” 안부를 묻는데, 이어 기네비어에게는 대체 뭐라고 말하는 걸까. 이제는 괜찮아졌으니 걱정 말라는 이야기? 입 모양을 읽고 싶어요. 

 

대치 중인 멀린과 모르가나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는 걸음은 언제나 마음을 두드린다. 멀린에게서 누이를 떼어내어, 지친 등을 두 팔로 조심히 감싸 안고 두 사람만의 장소로 걸어가며 속삭이는 가사들도. 영웅적인 동시에 상식적인 정의로움, 너무나 시아준수 그 자체라니까. 위로를 받아달라며 손 꼭 잡고, 가족을 찾고 행복을 찾으리란 전개까지도 그대로 시아준수라니까..

 

〈오래전 먼 곳에서〉. 어제보다 짙은 아이라인에 아더, 꽃단장했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곱게 차려입은 얼굴이 의기양양하게 기품있는 잘생김을 뽐내는데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머리에 살포시 내려앉은 금가루와 함께 그림처럼 예뻤다.

오늘의 특별했던 장면은 기네비어와 나란히 앉아 즐겁게 짠! 을 하고 마시려는데, 눈앞으로 훅 다가온 조원희 엑터의 짠에 웃음 터졌던 얼굴. 살짝 놀란 입술이 금세 즐거운 세모꼴이 되며 아버지와 기네비어와 셋이서 짠을 하는데 그들의 평화로운 한때가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너무 마시니까 그만 좀 마시라는 기네비어의 타박에 아직 괜찮다는 너스레 하는 얼굴까지도 다.

 

〈더 깊은 침묵〉. 오늘도 아더 너머 모르가나를 목격해버렸다. 의외로 장은아 모르가나보다 신영숙 모르가나의 표정이 더 부드러웠다. 아무래도 열린 공간임을 의식하는 건지 짐짓 온화하게 표정 관리를 하는 모양인가보다 했는데, 그럼에도 랜슬럿을 지켜보는 흥미진진한 기색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눈에는 눈〉. 그의 뺨을 쓸어내리는 모르가나의 손길을 따라 불붙는 용의 불길을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도리안 그레이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느꼈어. 인도자를 따라 부추겨지는 욕망, 홀린 듯이 따라부르는 노래, 이윽고는 광기에 사로잡힌 눈이 그랬다.

 

〈이게 바로 끝〉에서도 같은 구도가 이어진다. 땅바닥으로 덩그러니 주저앉은 그의 뺨에 모르가나의 손길이 닿았다. 아더를 따라 무릎 꿇는가 싶더니 은근한 손길이 처진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는 서서히 일으켜 나란히 걷기 시작하는데.. 얼핏 동생을 위로하는 누이처럼도 보였지만, 어디 그럴 리가. 아더의 곁에 꼭 붙어서 그의 귀에 주문을 속살거리는 그녀의 잔악함과 무방비하게 받아들이는 아더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혼자서 가〉. 앞서 빨간 입술에 자꾸만 시선이 간다고 하였지. 여기, 흑아더가 나타나자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하얗고 빨갛고 까맣게 너무 예쁜 거야. 아더는 흑화를 미모로 하나 싶었다. 💦💦 

좋아하는 대목ㅡ‘기술의 대결 다 버린 싸움’에서 그의 목소리가 사라졌기에 갸웃했는데, 곧바로 마이크를 고쳐잡는 손동작을 보았다. 콘서트에서는 종종 보아도 뮤지컬에서는 정말로 보기 힘든 장면이라 포착하고는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요하다면 널 막아서라도.”

단호한 랜슬럿의 대답에 허탈하게 되묻는 음성.

“날, 날?”

오늘은 두번이나 반복했다. 덕분에 그의 절망이 유달리 느껴지는 느낌이라 마음이 아팠다. 단 두 음절로 꼭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네가 영원을 맹세한 나를? 변하지 않을 영원한 형제인 나를? 아버지를 잃고 불길은 자신을 삼키고 누구의 이해도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달랑 하나 남은 의형제가 저렇게 말을 하면.. 얼마나 마음 쓰렸을까.

 

바수니적으로 살짝 아쉬웠던 건 ‘괜찮다잖아, 신경 꺼, 니가 왜.’가 다듬어졌다는 것. 이제는 덜 현실말투야. ㅠ 연기적으로야 훨씬 아더의 옷을 입은 모양이 되었지만.. 흑흑..

 

〈왕이 된다는 것〉. 실루엣이 채 드러나기도 전에 울컥하게 된다 말했었지. 심지어 오늘은 혈혈단신의 그가 지그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 하늘의 별을 헤아리듯이, 어느 별엔가 깃들었을 자신의 운명을 구하듯이.

가냘프고 여린 음성은 어김없이 날개를 달고 도약했다. 노래 자체도, 노래의 전개도 ‘도리안 그레이’를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나는 지점은 이 노래의 귀결이 ‘시아준수’라는 것이다. 회한이고 절망이고 나락인 ‘도리안 그레이’와는 달리 극복이자 의지이자 재출발이 되는 점에서 ‘시아준수’ 본인과 너무나도 닮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슬프도록 아름답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코를 훔치는 모습은 오늘도 보았다. 기뻤다. 아무래도 계속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전쟁터〉. 슬로우액션 중에서도 가장 눈앞으로 훅 다가와 박힌 장면은 ‘안-돼ㅡ’의 절규. 곧이어 철철 우는 얼굴로 이를 악물며 적을 베어내던 얼굴.

한편으로는 처음으로 전후에 온전한 갑옷을 보았다. 프리뷰는 체인장식을 떼어내어 맨갑옷이 되어버렸고, 첫공과 어제는 갑옷 안의 체인이 말려 올라가 얼굴 옆에 대롱대롱했었지. 하지만 오늘은 말끔했다! 처음으로.

 

음.. 마무리는 역시 샤아더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