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향 기네비어와의 〈오래전 먼 곳에서 리프라이즈〉는 특별하다. 몇 번을 거듭하더라도 그 전부가 특별하리라 확언할 수 있을 만큼. 

 

“기네비어,”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돌아보는 순간부터다. 이 대목에 이르러 그녀와 눈을 마주하는 즉시, 노래와 장면이 필요로 하는 감정을 ‘연기’하는 차원을 벗어나 자신의 감각을 본능적으로 따라가기 시작하는 그를 보게 된다.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히 계산하여 각을 맞추어내기보다 상대 배우와의 호흡에 몸을 맡기는 그를. 

 

무대 위의 배우가 정제된 범위를 벗어나 본능을 따라가게 되면, 혹여라도 감정이 과하게 표출되어 자칫 그 장면이 통째로 부담스러워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와 그녀의 리프라이즈만큼은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다. 무대를 함께 짊어지는 두 사람의 역량이 이를 가능케 한다. 두 사람 모두 상대역와 공명하는 강도가 남다른 연기자로서, 상대의 감정을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삼는데 탁월하며 나아가 증폭의 시너지를 이루어낼 수 있을 만큼 특출난 데, 마침 그 둘이 만난 것이다. 또한 두 사람은 공연을 거듭하며 서로의 연기적 공명을 몇 번이나 확인했고, 눈물을 나누며 신뢰를 쌓았다. 공고한 신뢰에 기반한 감각적 연기는 실패 없는 조화를 만든다. 설령 감정이 범람하여 정제된 그릇의 바깥으로 흘러넘치게 된다 한들 문제 될 것은 없다. 그와 그녀에게 그것은 그대로 또 하나의 역사가 될 뿐이다.

 

실제로 7월 9일의 〈오래전 먼 곳에서 리프라이즈〉가 그랬다. 이전과는 다르게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우는 그는 그녀를 충격에 빠트렸고, 그녀는 떨리는 어깨로 평소보다 서럽게 울어야만 했다. 하지만 무릎 꿇은 그의 간절함이 그녀에게 닿았다. 그녀는 그의 절박함이 내미는 손을 잡고, 함께 무릎 꿇어 눈높이를 맞추는 것으로 그에게 화답했다. 두 사람이 나란히 무릎 꿇은 이 날의 연기는 리프라이즈의 신기원을 열었다.

 

7월 12일의 〈오래전 먼 곳에서 리프라이즈〉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나란히 무릎 꿇은 채로 두 사람은 듀엣의 소절을 완창했다. 마치 시간을 멈추어 두기라도 하고 싶은 사람들처럼 망부석이 된 듀엣이었다. 그러나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떠밀려 결국 그녀가 그의 손을 먼저 놓고 일어섰다. 그때, 멀어지는 그녀에 조바심하며 허겁지겁 따라가보던 그의 서툰 걸음은 리프라이즈의 다음 장이 되었다.

 

신기원, 다음 장, 매번 새 역사를 여는 두 사람의 〈오래전 먼 곳에서 리프라이즈〉가 7월 20일에 만난 것은 또 하나의 완성이었다.

 

*

 

“카멜롯으로 돌아와 줘, 제발.”

어린내 묻은 목소리의 애원이 애처롭게 건네질 때만 해도 두 사람, 분명 서로 눈을 맞추고 있었건만. 기네비어의 고개가 미안함에 점차 꺼진다 싶더니, 결국 시선이 비켜났다. 

 

그녀는 미안해서 고개를 떨구고, 그는 그녀의 눈을 찾아 고개를 숙였다. 결국 한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낮추어서야 그녀와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의 애틋함은 오늘도 그녀를 무너트렸다. 울음 범벅된 그의 뺨으로 나아갔던 그녀의 떨리는 손은 차마 닿지 못하고 어깨로 내려앉았다. 뺨 대신 어깨를 쓸어내리는 서글픈 손이 팔을 따라서 그의 가슴에 이르렀다. 그녀는 그의 가슴을, 그는 그녀의 손을 부여잡으며 함께 울었다.

아, 그런데.

 

그의 가슴에 얹었던 손을 그만 회수하는가 싶었던 그녀가 도로 그의 가슴께의 갑옷을 그러쥐었다. 아니, 이번에는 아예 덥석 움켜쥐었다. 거세지는 울음의 강도를 따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종내에는 그의 가슴을 쥐어뜯을 듯이 붙잡고 그녀가 울었다. 울면서 노래했다. 갑옷 위의 손길이었으나 그도 느껴질 수밖에 없는 절절함이었다. 그녀의 절절함은 그의 노래를 곡소리로 변이시켰고, 그의 꿇은 무릎에 눈물을 뿌렸다.

“여기, 우리의 사랑, 기억해.”  

쥐어뜯는 그녀의 손길과 악을 쓰는 그의 노랫소리의 목격자가 된다는 건 흡사 통각을 주입 당하는 수준의 고통이었다.

 

한때나마 반짝였던 사랑이 그들의 울음 안에서 보였다. 짧게나마 투명했고, 잠시나마 순수했던 사랑이 전부 다 끝나가는 와중에 생생했다. 흐르는 눈물 사이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그들의 사랑이, 통곡으로도 씻어낼 순 없는 비극이 눈앞에 선명했다.

 

그녀를 부둥켜 잡은 그의 손등에 그녀가 이마를 맞추었다. 차마 전할 수 없는 입맞춤을 대신한 인사였다. 이어 깊이 허리숙인 인사로 마지막 안녕을 전했다.

잡았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그녀가 멀어져 갔다.

 

사랑하여 시작하였으나 끝은 비극이 되었다. 남겨진 이의 외딴 등에서 언젠가의 노을 지던 카멜롯이 불쑥 떠올랐다. 그때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운명을 믿어요?”

운명이라 믿었던 인연. 운명에 기대어 싹을 틔웠던 사랑은 운명을 따라 갈 곳을 잃은 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오래전 먼 곳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