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슬럿을 보내고, 기네비어마저 떠난 후. 검과 단둘이 남은 마지막의 그는 근래 계속 무너지곤 했지. 양 무릎으로 무너져 고꾸라지는 상체를 두 손으로 겨우겨우 지탱해냈었다. 그러나 오늘은 무너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늘의 그는, 한 번에 털썩 무너져내리지도 못했다. 

대신 그는 맥없이 주저앉았다. 그것도 ‘엉금엉금’, 문자 그대로. 땅으로 웅크린 몸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쓰러지기 직전인 듯한 육신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참는데, 이어지는 행동이 방아쇠를 당겼다. 옹송그린 그대로 그가 검을 향하여 몸을 끌었다. 그 바람에 아주 잠시지만 바닥에 몸이 질질 끌렸다. 단 몇 초, 그 짧은 얼마간이 내 눈물의 버튼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내가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운명 앞에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깨지고 약해진 그는 처음이었다. 만신창이 된 그 꼴을 하고도 굳이 굳이 다시 검을 쥐는 모습도 뼈 아팠다. 

 

굳이 굳이 다시 검을 쥐었지.. 그는 잠시 말없이 검을 보았다. 이어 그것으로 땅을 짚었다. 몸을 일으킬 요량인 듯했으나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땅을 짚은 검이 삐끗하며 미끄러졌고, 그 바람에 상체가 휘청이며 다시 무너질 뻔했다. 버틴 것이 용했다. 재차 일어선 것이 신통할 지경이었다.

 

일어선 그가 몇 걸음을 걸었다. 등 뒤에서는 물꼬를 트는 여명에 깜깜한 어둠이 서서히 흩어지고 있었다. 새벽빛 아래 바위산도 어슴푸레나마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그의 어깨에도 희끄무레한 빛이 살며시 드리워진다 싶은 즈음, 그가 멈추어 섰다. 

동작을 멈춘 얼굴이 잠시 정면으로 시선을 두었다가, 이내 자석에 이끌리듯 검을 찾았다. 검을 향하여 시선을 맞춘 순간이었다. 검을 올려다보는 잔잔하던 눈에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빛이 스미는가 싶더니, 눈코입 어디 하나 빼놓지 않고 울음이 뭉쳐 들었다. 장갑 낀 손이 황급히 얼굴을 가리며 울음을 훔쳤다. 서둘러 울음을 헤쳐낸 얼굴이 장갑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땐 괜찮노라고, 버틸만 하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애써서 꾹꾹 누른 울음은 결국 뒤돌아설 때에 터지고 말았다. 바위산을 향하여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였다. 경계선에 걸린 채 위태롭게 출렁이던 울음이 몸을 트는 동작에 균형을 잃은 배처럼 범람하고 말았다. 내가 본 것은 옆얼굴까지였다. 끝끝내 찡그려지며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울컥한 옆얼굴이 마지막이었다.

 

뒤돌아선 그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고개를 돌려 어둠에 맡기고서야 허락한 울음은 얼마나 흘러내렸을까. 바위산을 올려다보는 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보이지 않았으나 알 것도 같았다. 산을 오르는 동안의 힘겨운 몸짓이 말해주었다. 또한 정상에 올라서도 한참을 그림자 속에 떨구어둔 고개가 전해주었다.

 

바위산의 정상에서 그는 평소보다 오래 마음을 추슬렀다. 추스르는 동안 그림자에 가두어둔 얼굴은 표정을 보여주지 않았다. 울음을 어느 정도로 갈무리하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빛 속으로 돌아와 마지막 눈빛을 보여주었다.

 

밝은 곳에서 드러난 그의 얼굴은 표면적으로는 더는 울고 있지 않았다. 구태여 웃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운명을 삼킨 채로 서있을 뿐이었다. 애써서 버텨내는 마지막의 눈빛은 운명을 재차 부르는 그의 목소리와도 같았다. 오래전의 설익은 패기 대신 이제는 겸허하게 가라앉은 두 눈으로 그가 말했다.

그럼에도 살아갈 터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갈 것이니. 

‘오라, 나의 운명아.’

검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 올린 그를 하얀 빛이 감싸 안았다. 그림자 한 조각 남기지 않은 눈부신 빛이 그를 통째로 삼켜 시야가 하얗게 지워질 무렵 막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