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아더, 형을 절대로 용서하지 마. 

 

7월 28일의 엔딩 삼연곡: 평원에 날 묻어, 오래전 먼 곳에서 리프라이즈, 기억해 이 밤 리프라이즈에 찬사를. 제각각 세 곡의 중추가 되어준 엄기준 랜슬럿, 김소향 기네비어, 아더의 엑스칼리버에게 감사를, 운명의 수혜자이자 피해자인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표상, 많은 왕을 대신하여 온 단 한 명의 왕 김준수 아더에게 더없는 사랑을 전하며. 

 

*

 

치열한 싸움이었다. 검은 하늘 아래 죽음의 핏빛이 짙게 드리워진. 벼락 치는 것처럼 빨갛고 까맣게 점멸하는 빛이 절체절명의 긴박함을 고조시켰다. 그 안에서 적이 죽고 아군이 죽어 나갔다. 

전황이 소강되어갈 무렵이었다. 핏빛이었던 배경에 푸른빛이 잔잔히 감돌기 시작했다. 푸른색은 싹을 틔우는 평화의 물꼬를 따라 짙어져 갔다. 마침내 청보랏빛 공기가 안개처럼 자욱해진 평원, 그 많던 인파가 모두 사라진 곳에 오직 두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산 사람, 그리고 삶을 잃어가는 사람. 

 

“아더.”

푸른 장갑이 아더의 머리칼을 쓸었다. 아니, 쓸어내리고자 했다. 힘을 잃은 몸으로는 손을 그의 머리칼에 가져다 대는 것이 고작이었다.

“형을..”

죽음이 번져가고 있었다. 첫마디를 떼는 것도 힘겨웠다. 죽어가는 이가 조금이나마 제 몸을 가눌 수 있도록 상체를 무릎으로 받쳐 준 그는 엉엉 울면서도 꺼져가는 생명의 마지막 이야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숨을 죽었다. 장갑의 무게에 눌린 젖은 머리칼에서 빗물인지 땀인지 모를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절대로..”

간신히 이어가는 문장의 바로 뒤편으로 죽음이 넘실대고 있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화마처럼 일렁이던 죽음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용서하지 마.”

가까스로 맺은 온점을 그대로 덮쳤다. 헐떡이던 숨이 끊겼다. 맥없던 손길로나마 우는 동생을 매만지던 팔이 툭 떨구어졌다. 끝인 동시에 신호탄이었다. 숨죽였던 그의 울음이 결국 벽을 무너트렸다. 

“형.. 미안해..”

그는 아이처럼 울었다. 제 목소리를 내던져가며, 입술은 네모꼴로 한껏 처져서, 눈썹은 더는 망가트릴 수도 없을 만큼 찡그려서. 무너지는 그를 어느 때보다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몫으로 던져진 충격이 곧장 나의 것이었기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언제나 형이, 형이, 형ㅇ.. 까지만 말하다가 처음으로 문장을 온전하게 매듭지은 여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형을 절대로 용서하지 말라’니.. 생명은 빛을 잃고 꺼졌으나, 죽은 이가 남긴 말이 눈물 젖은 평원에 가득했다. 나의 귓가에도, 그의 심장에도.

“너무.. 미안해..”

말은 제대로 나오지조차 못했다. 울먹거림에 끊기고 헐떡이는 숨에 막혔다. 숨을 재차 버겁게 몰아쉬고서야 ‘미안해’를 이어갈 수 있었다.

허겁지겁 죽은 이의 매무새를 수습해주는 와중에도 눈물이 우수수 떨어졌다. 검을 거두어 싸느란 손에 포개어주고, 갑옷 자락을 정돈해주고, 또 무엇이 없을까 싶어 죽은 자를 훑어보던 그의 얼굴이 스르르 무너졌다. 차가운 얼굴을 향하여 이마를 주억이며 마저 속삭였다.

“미안해, 미안해..”

“아더..”

갑옷 위로 와 닿는 손길에 그가 소스라치며 돌아보았다. 신부님이었다. 슬픔을 눌러 담은 담담한 손길의 주인을 확인한 그가 놀란 어깨를 늘어트렸다. 

망자를 위한 기도를 올려야 했다. 신부님에게로 공간을 내어주며 그가 몸을 살짝 뺐다. 아니 빼내려 했다. 기진맥진한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아 그만 균형을 잃고 뒤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팔꿈치로 간신히 상체가 다 무너지는 것만은 막은 게 최선이었다. 넘어간 상태로 그가 마저 울었다. 망자의 얼굴에 그어지는 마지막 성호를 지켜보며, 미어지는 울음을 끅끅 뱉었다. 

 

망자의 행렬, 그 뒤편을 지키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행렬을 비추는 하얀 빛을 따라 망자가, 그리고 그가 나아갔다. 눈부시게 하얀 빛이었다. 전쟁의 치열함도 생과 사의 고락도 모두 지워버릴 수 있을 만큼. 이승에서의 망자의 흔적을 모두 지워 삼켜버리는 것만 같은 하얀 빛을 향하여 나아가는 행렬을 지켜보던 그가 질끈 눈을 감았다.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듯이. 감긴 눈에서도 눈물은 쉴 새 없이 흘렀다. 무거운 몸을 질질 끌고 행렬의 뒤를 지키는 그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결국 행렬을 놓치고 덩그러니 혼자 되었다. 죽음을 삼키는 눈부신 망각의 빛까지도 전부 소거된 캄캄한 별빛 아래 그가 힘겹게 돌아섰다. 

“기네비어..”

거짓말처럼 그녀가 등 뒤에 있었다. 믿을 수 없는 복장을 하고. 

“아더.”

자신의 이름을 마주 불러오는 그녀.. 그가 마음 다잡듯 장갑 낀 손등으로 눈물을 슥 훔쳤다. 그녀에게 다가서기 위해 울음 범벅된 얼굴을 삼키고 다잡는 그 모습이 지푸라기라도 잡을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죄스러움에 시선을 떨구는 그녀에 화들짝 놀라며 그가 그녀를 따라 시선을 낮추었다. 그래도 여의치 않자 허둥지둥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의 무릎이 땅을 짚는 순간 그녀가 동요했다. 제발 그러지 말라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황망한 고갯짓에 눈물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미어지는 두 눈의 그녀가 그의 뺨을 향하여 손을 뻗었지만, 자격 없는 손은 제풀에 오므라들었다.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는 그녀의 손길이 그를 더 울렸다. 스스럼없이 잡아 왔던 사랑 어린 손을 그도 나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그 사랑은 어디로 갔을까. 전부 깨지고 무너졌을까. 

여기, 우리의 사랑 시작하였던 때가 있었는데. 

“여기 우리의 사랑 기억해.”

끝맺음만을 남겨둔 사랑 앞에 그의 노래가 악이 되어갔다. 심장의 통곡 같은 그 소리에 무너지는 억장을 견디지 못한 그녀가 그의 가슴께 갑옷을 부여잡았다. 쥐어뜯는 손길로 그와 함께 울었다. 

“하지만 끝은 비극..”

두 사람의 눈물로도 바꿀 수 없는 것, 그것이 비극이었다. 

 

비극은 그를 혼자 남겨 두었다. 발치의 검과 함께. 

제 곁에 남은 유일한 것, 그가 천천히 검을 주워 들었다.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던 검이 그의 손길에 고개를 들었다. 그때였다. 검날을 따라 또르르, 검이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7월 26일에 이어 두 번째였다. 

검의 눈물은 그의 고요를 가져왔다. 그는 더 우는 대신 삼켰다. 웃음으로 애써 덮으려 노력했다. 치미는 감정들을 후우,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삼켰다. 잠깐씩 솟구치는 울컥함마저는 어쩔 수 없었으나, 잘 참았다. 

 

그러나 의연한 각오에도 바위산 정상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오늘 역시 쉽지 않았다. 꼭대기에 막 이르러 한 손으로 몸의 균형을 맞추며 한동안 그는 그림자 속에 멎어있었다. 어둑하게 얼룩진 채 말이 없는 그 모습이 눈에 오래 남았다. 

높은 산, 꼭대기, 하얀 빛, 검을 든 그. 처음으로 그가 그 검을 처음으로 들어 올렸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지금처럼 땀범벅이었다. 그때는 이런 미래를 몰랐겠지. 선하고 순수하였던 눈동자는 고통을 아는 이의 눈이 되었다. 말없이 많은 말을 전하는 눈이 되었다. 그 눈이 검을 보았다. 

검이 한 사람을 왕으로 만든다고 하였나. 

아니, 이제부터는 오로지 그의 선택이 그를 이끌 것이었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그가 검을 치켜올렸다. 

많은 왕을 대신하여 온 하나의 왕이 지난 역사 위에 서는 순간이었다.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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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7.31

제목을 뭘로 할지를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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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8.01

빗소리 속 나의 밤을 들으며 이날을 떠올리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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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8.11

8월의 내가 살아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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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8.14

나의 카멜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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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8.14

영원히 여기 이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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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0.07.29

20년 7월 28일의 샤차르트를 만나고, 오랜만에 기억을 찾아 왔다. 안녕 아더. 안녕 7월 28일의 엑스칼리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