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시아준수의 행복을 좇는 일에 집중했다면 오늘은 비로소 극을 보았다. 그리고 여러 장면을 만났다. 아름다워 간직하고 싶은 드라큘라의 그림들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삼연의 첫 오블이었고, 마지막 관 속의 그가 곧바로 보이는 자리였다. 제 손으로 관을 열고, 안으로 입성한 그의 얼굴이 정면이었다. 관을 직접 열고 들어간 것부터가 충격인데, 스스로를 찌른 직후 두 손을 포갠 얼굴이 곧장 눈앞이었다. 각도 덕에 마치 내 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죽음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눈물 반 고통 반의 얼굴이 파르르 경련했다. 고통이 번져가는 얼굴을 새빨간 조명이 삽시에 집어삼켰다. 400년 전 십자가를 저주로 물들였던 핏빛이 이번에는 그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었다. 온통 빨갛게 물든 관 속에서 그가 침몰하고 있었다. 

빨갛게, 빨갛게 지워져 가는 얼굴의 숨을 끊어내듯 관이 닫혔다. 11일의 프리뷰보다 훨씬 빠르고, 단호하게. 그래서 잔인하게. 새빨갛던 고통 속 얼굴을 잔상으로 남겨둔 채로.

 

또 하나는 피날레. ‘차가운 암흑 속에’를 터트려내며 무릎을 꿇은 그가 다음 소절ㅡ‘저주받은 내 인생’과 함께 칼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날카로운 금속이 돌바닥에 부딪히며 내는 파열음에 신경이 곤두선 것도 잠시. 곧이어 남은 한 손으로 쾅, 바닥을 내리쳤다.

차가운 암흑과 저주받은 그의 인생을 한데 묶어 일도양단하듯.

 

마지막 그림은 1막의 앳 라스트. B의 어제보다 C의 오늘 훨씬 분명하고, 그래서 더 마음 아팠던.

이제 알았냐며 조심스럽게 그녀의 팔에 가닿던 그의 손이 머뭇머뭇, 하지만 용기를 내어 그녀의 손등을 그러쥐었다. 두 손으로 소중하게 붙든 손등을 떨리는 엄지가 매만졌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제 마음 알아달라는 듯이. 애틋할 만큼 연약하고 절실하게.

 

귀여웠던 순간은 she 인트로. 이쪽으로 오는 기차를 모두 탈선시켰다며, 살그머니 올라가던 입꼬리가 매우 순했다. 이렇게 말하면 그녀가 웃어주겠지? 기대를 채 감추지 못한 옅은 미소에서 보였다. 흡혈로 젊음을 되찾았지만, 어딘가 어설픈 행동에서 느껴지는 400년의 간극이. 귀여운 동시에 안타까워 애틋했다.

 

근사했던 장면은 몽중의 루시를 흡혈하려다,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은 직후의 얼굴. 스스로를 갈무리하듯 검지로 입술을 스윽 훔치는 찰나의 이성을 일깨우는 눈매가 참 아름다웠다.

 

멋졌던 순간은 결혼식. 부케 담당의 루시가 오늘은 장외홈런을 쳤다. 부케를 잡아채기 어려우리라 판단한 그는 기나긴 포물선에 실려 날아가는 부케를 노려만 보았다. 미동도 없이, 그저 차가운 눈으로. 그 시선에 명중 당한 부케가 힘없이 곤두박질쳤다. 빗발치는 시선은 곧장 부케에서 루시에게로 향했고, 새 신부도 의식을 잃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오직 두 눈으로 서릿발의 저주를 내다 꽂은 것이었다. 

 

 

오늘의 달라진 점

트레인 시퀀스. 퇴장하는 관 안으로 푸른 불빛이 비추어진다. 끝까지 이목구비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please don’t make me love you 전 미나와 드라큘라의 대화. 내 눈을 봤잖아, 대목에서 비추어지던 시아준수의 얼굴이 까맣게 바래버렸다. 11일의 프리뷰에서는 이목구비가 그대로 드러났었는데 오늘은 거의 보이지 않고, 까맣게 그을린 그림자로만 남았다. 마치 앳라스트-피날레의 드라큘라 초상의 얼굴처럼. 보이지 않는 눈을 어떻게 보라는 거양, 이런 것을 의도한 건가 싶었던 대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