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도, 소품도 실수 연발의 공연. 하지만 그 덕에 매우 희귀할 프레시 블러드를 만났다. 

 

걸을 때부터 코트 자락이 자꾸만 발치에 걸리던 터였다. 더하여 프리뷰 첫날부터 뻑뻑하던 장갑(특히 오른손) 벗기도 오늘 재차 애를 먹였다. 자연히 코트 지퍼를 뜯어내는 타이밍도 지체되었는데, 시간 내 완전하게 걷어내지 못한 코트 자락이 그만 그의 오른발에 칭칭. 오른발을 훅 차내는 것으로 감긴 천을 풀어내려 했지만 무위에 그치자, 즉시 그 상태 그대로 발이 휘감긴 반대 방향으로 빙그르르 몸을 돌렸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한 바퀴 턴에 코트자락이 그제야 스르륵 풀려나며 그의 동선을 따라 흐드러졌다. 커튼콜의 장미꽃잎을 그리는 모양처럼 붉고 아름답게. 

한순간의 턴! 이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이 되었는지. 그의 순발력에 찬사를 보내 마땅했다.

 

The Longer I Live 에서는 아찔한 찰나를 연기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마지막 소절을 남겨두고 계단을 내려올 타이밍이었다. 평소처럼 터벅터벅 비틀거리며 걷던 그가 마지막 계단에서 그만 발을 헛디뎌 정말로 휘청해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곧장 중심을 잡아 큰 사고로는 이어지지 않았는데, 그는 ‘넘어질 뻔한’ 순간을 무마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휘청거림을 인지한 즉시 오히려 동작을 보태어 두어 번 더 비틀비틀대다 멈추어 섰다. 마치 의도된 휘청거림처럼 마무리된 일련의 동작들에 안도와 함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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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줄 수 있는 건 영원한 삶이야.”

드라큘라의 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삶 이야기. 임혜영 미나는 삼연의 세 미나 중 가장 치를 떤다. 문자 그대로 ‘질색팔색’. 그만하라며 역정을 내다시피 하니 그와 대화가 될 리 없다. 덕분에 그의 치솟는 그라데이션 분노가 아주 타당해진다. 

기차역에서 그의 정중한 사과로 분위기가 풀어지며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게 되는 평화로운 한때는 그래서 더더욱 애틋해지고.

 

삼연곡. 노래적으로, 연기적으로, 극적으로 좋았던 오늘의 넘버.

오늘의 시야마저도 극적이었다. 미나와 엘리자벳사, 그가 무대에서 삼각형을 이루어 선 구도가 한눈에 가득 담기는 자리였다. 스쳐 간 운명의 엘리자벳사와 운명을 놓지 못한 드라큘라, 그리고 다가온 운명의 미나가 한 시야에 보이니 절로 울컥하게 되었다. 삼자대면의 삼각형이라니. 

 

쓰러지는 엘리자벳사를 부여잡고 “죽으면 안돼애..” 울먹이며 늘어뜨리는 목소리는 또 얼마나 아이 같았는지.

미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진실된 러브스토리를 들려드릴게요ㅡ이렇게나 의젓하고 신사답던 그였는데. 말쑥함은 온데간데 없이 눈물만 남았다. / 여담으로 이 문장의 ‘미나’의 억양이 몹시 좋다. 부드럽게만 올린 어미에서 애정이 듬뿍, 간절함이 한가득 느껴지기에.

십자가를 찌른 후의 절규는 또 한 차례 톤을 높였다.

 

Loving You Keeps Me Alive 에서 가장 슬펐던 순간은 심장을 뜯어내던 손자국이 그대로 블라우스에 남아, 고통스럽게 패인 블라우스를 보았을 때. 

 

머리 쓸어넘기기는 오늘도 계속되었다. 러빙유에 앞서 한 번, 웨딩에서 두 번. 특히 웨딩에서의 두 번째 넘기기는 강하고 억센 손길에서 화가 느껴질 정도였다. 아주 단단하게 힘이 들어찬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그리고 13일에는 각도상 보지 못했던 부케 회수를 보았다. 김수연 루시와는 아예 부케를 잡지 않는 방향으로 합의가 된 모양이지? 대신, 떨어진 부케를 차갑게 낚아채며 싸늘하게 웃는데 드디어 그 모습을 보았다. 아주 무섭고, 근사하던걸. 

 

Mina’s Seduction. 마침내 미나의 침실로 초대받은 드라큘라. 임혜영 미나가 홀린 듯이 그의 옷깃 사이로 손을 올리자, 슬쩍 내립뜬 시선으로 이를 확인한 그가 살그머니 그녀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앳 라스트에서처럼 그녀의 팔목에서부터 손등으로 매만지며 올라가는 손길이었다. 고혹적이었어.

 

피날레. 그댈 위해 내가 떠날게(요). 평소처럼 ‘요’로 끝맺음을 하지 못했다. 울음을 삼키느라 음이 먹힌 것으로 추정되는데, 어미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대신 눈으로 인사했다. 따라 우는 그녀를 향하여 차분하고도 서글프게. 안녕, 이라고.

 

 

덧. Life After Life, 김수연 루시를 쳐내는 손길 오늘 역대급으로 매몰찼다. 탁 소리가 들리는 듯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