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염색. 시아준수, 이 사람.. 주마다 염색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이 무색하게 매주 새로운 새빨간 머리카락으로 나타나고 있다. 뿌리까지 촘촘하게 채운 붉은 색을 보고 아연하지 않았다면 거짓말. 막상 막이 오르니 ‘서투루’ 할 수 없었던 걸까. 하지만 핑크색 머리의 드라큘라가 된다 한들 아무도 그의 전심을 의심하지 않을 텐데.. 아무래도 그 자신에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모양이다. 핑크색 드라큘라를 보게 되는 날을 기대하며, 그의 초심과 두피를 응원해.

 

공연적으로는 여러모로 불안한 하루였다.

주의 첫 공연, 음량이 놀라울 정도로 커졌는데 문제는 고음에서 깨지는 소리를 전혀 잡지 못했다는 것. 음량이 커서 웅장함이 전해졌다기보다는.. 듣기에 편안하지 못할 정도의 파열음으로 가득했다.

오케스트라의 박자 또한 지나치게 빨랐다. 손준호 배우는 연신 랩을 했고(특히 트레인 시퀀스 인트로), It’s Over 의 도입부에서는 씹힌 박자 때문에 시아준수도 가사를 다다다 랩처럼 내뱉었을 정도. 

여러모로 기술팀과 오케스트라, 배우의 불협화음이 눈에 띄는 공연이었다. 주의 첫 공연임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산발하는 부조화 덕에 ‘시아준수의 드라큘라’는 완전히 장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열 차례의 공연 동안 세 명의 미나를 고루 만나고 새로운 극장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는 오케스트라의 컨디션이나 캐스트에 영향받지 않는 그만의 드라큘라 게이지가 구축된 것이다. 상대역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필요치를 이끌어내는 삼연곡에, 특히 피날레에 감탄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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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 아 안돼, 안돼. 소리 없는 비명이 선명했다. 마이크 없이도 선연한 육성이 오히려 심장을 묵직하게 눌렀다. 환청인지 실제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게 아득하기도 하여 더더욱.

 

It’s Over. 한 손으로는 잭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는 염력을 써서 허공을 움켜쥘 때. 허공을 쥔 주먹이 너무나 작고 용맹하여 (귀여웠다)

 

The Longer I Live, 오늘의 음향 컨디션 하에서 오히려 좋았던 넘버. 오늘은 드물게도 ‘내 사랑의 선택’을 진성으로 굵게 터트려냈는데, 그마저도 혼란한 음향과 어울렸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왜 그렇게 오래도록 관을 들여다본 걸까?

평소대로라면 관을 지그시 쓸어내린 뒤, 곧장 코트 자락을 접으며 들어섰을 텐데 오늘은 관을 정면으로 바라본 채로 한참을 멈춰있었다. 관 속의 짙은 어둠에서 죽음을 본 사람처럼, 그렇게.

 

Finale, 어느새 피날레 장인이 된 시아준수. ‘나의 절망 속에 널 가둘 수 없어’부터는 마치 피날레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 같아진다. 감정이 범람하는 넘버인 만큼 상대역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제는 상대역을 막론하고 필요치를 무조건적으로 이끌어내는 것에 통달한 느낌이다. 삼연의 ‘차가운 암흑 속에’가 계속 어떤 고지를 찾으며 나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도 이런 이유였겠지. 내일의 공연에서는 피날레 장인이 어떤 변화구로 새로운 시도를 모색할지 기대가 된다.

 

아, 드물게도 구원의 칼을 두 손으로 부여잡아서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 좋아하는 디테일이라 오늘 볼 수 있어서 반가웠어.

 

 

덧. 기차역의 애드립은: 이게 연구한 겁니다. 

그리고 기차역 기둥이 바닥을 쿵! 박았다가 재차 솟았는데, 이후로 내내 벌서듯 땅 위에서 둥둥 떠 있는 모습에 웃어버렸다(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