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콜의 막바지였다. 입관하기 직전, 마지막 인사만을 남겨두고서 객석을 빙 둘러보는 그의 눈이 반짝였다. 이어서 내쉬듯이 그가 웃었다. ‘잘 마쳤다’는 듯 입술을 꾹 눌러 닫으며. 내일 없이 오늘만을 위해 전력을 다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 그대로의 공연이었다. 가라앉은 목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이끌어낸 혼신의 무대였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사람이라면 컨디션의 기복은 있기 마련. 프로라면 컨디션 여하를 막론하고 주어진 무대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난조와 평시의 기복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프로였다. 무대 위의 시아준수에게 목 상태는 ‘어떤 조건’일 뿐이었다. 그날그날의 사정에 맞추어 대처하면 그만일.

오늘의 그는 소리 내는 방법을 바꾸기를 택했다. 예의 카랑카랑한 파열음으로 노래를 수놓는 대신 흉성을 깊이 끌어다 썼다. 가슴에서부터 묵직하게 끌어올린 음성으로 소리가 흩어지지 않게 연신 덧발랐다. 한음 한음을 공들여, 아주 진지하게 노래에 집중하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She 의 어미마다 돋보였던 흉성이 아예 노래 전체로 번진 건 Loving You Keeps Me Alive 에서였다.

오늘의 러빙유는 그야말로 전심의 노래였다. 몸을 똑바로 일으킨 후에 노래를 시작하던 보통 날과도 달랐다. 오늘의 그는 그마저도 잊은 사람 같았다. 무릎 꿇은 그대로 더듬더듬 노래가 시작되었다. ‘그댄 내 삶의 이유’, 온 마음과 정신을 기울여서. 미나를 바라보는 눈 너머로 한음한음을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찍어누르는 시아준수가 있었다. 

결국 노래 말미, 기어이 “나의 사랑”을 애드립 없이 굵직하게 끌어내렸을 때는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대 위에서 17년, 프로다운 대처에 대한 감탄과 함께 백 퍼센트의 전심이 전해졌기에.

 

심장을 쥐어뜯었던 손을 그대로 주먹 쥐는 그를 따라, 두 손을 그러 쥐게 했던 러빙유였고 또한 오늘의 공연이었다.

 

*

 

She, 원래는 분노에 차서 십자가를 옆쪽으로 밀쳐냈었는데. 오늘은 그럴 겨를도 없이 손바닥부터 쾅 박아대고 보았다. 십자가는 자연히 옆쪽이 아닌 뒤로 쓰러지며 쿵.

 

오랜만의 오블, 그래서 오랜만에 얼굴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던 At Last. 정면의 얼굴이 참 예뻤다.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하나하나 헤아려보다, 별빛보다 영원한 반짝임에 말을 잃었다. 서글프도록 시린 조명 아래에서 어찌나 반짝이던지, 별빛을 가루내어 고이 펴 바른 것만 같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건 단연 눈동자.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었다.     

 

Train Sequence. 반헬싱의 목소리가 들리자 번득이던 눈의 기세가 꺾이는데, 덩달아 수그러드는 고개. 그 시무룩한 기색이 몹시도 귀여웠다.

 

The Longer I Live, 진성의 ‘사랑의 선택’만큼이나 귀에 박혔던 소리가 있었으니 마지막의 어미. 그대 없다면 내 세상 멈추 ‘네’. 너무도 여리고, 또 여린 음성이었다. 삶의 이유를 송두리째 잃어버려 어떤 의지도 가질 수 없는 자가 단 하나 남은 실낱같은 희망으로 끌어올리는 소리 같았어.

 

피날레, 칼을 쥐여주려는 그와 한사코 거부하려는 그녀. 그에게 잡힌 손은 어찌할 수 없으니, 남은 한 손을 뒤로 빼려는 그녀가 거의 몸부림을 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그의 나무라는 듯이 단호한, 그렇지만 비통하게 젖은 눈을 목격한 것이. 괜찮다고, 해야만 한다고 고개를 깊이 끄덕이며 남은 손을 잡아채듯 칼 위로 얹는 그가 너무나도 강경했다. 내가 다 섭섭할 만큼. 이 세상의 누군들 그를 보낼 수 있겠는가, 그는 왜 보낼 수 없는 이의 마음을 몰라주는가.. 싶어서.

 

관 속의 그가 곧장 정면인 오블. 오늘의 시야에서는 그가 채 두 손을 가슴 위로 고이 포개기도 전에 관이 닫혔다. 이런 날이면 그가 안식을 얻기도 전에 소멸해버린 듯하여 마음이 쓰리다. 

‘그에게 구원은 있었나요?’ 

이 문장을 영영 물음표로 둔 채로 극이 끝난 것만 같아서.

스스로를 남김없이 불태운 오늘의 시아준수에게는 이 밤의 평화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덧. 기차역의 애드립은 “시대가 많이 변했네요.”

‘멍청한 놈’은 역대급 속삭임이었다. 달콤했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