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연의 첫 왼블. 드디어, 마침내, 이제에서야. 오늘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른다. 내가 사랑한 드라큘라의 칠할이 왼블의 시야에 있기에. 마치 프리뷰를 앞둔 듯한 설렘으로 기다린 오늘이었다. 그리고 역시.

사랑은 여기 이 자리에, 그대로.

 

프레시 블러드의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왼블의 사랑을 있게 한 이유, 프레시 블러드의 가로횡단. ‘이제 찾아가리라, 누구도 날 모르는 곳’ 으로 시작되는 충실한 욕망의 런웨이.

무대 저 끝ㅡ거리감으로 치면 마치 세상 너머의 끝자락으로부터 이승까지 횡단하여 오는 듯한 노백작님을 만날 수 있는 오늘의 시야. 오랜 허기와 욕망을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담금질하여 다가오는 백작님이 멈추어 서는 이곳. 다가오는 그의 걸음 걸음마다 빗발치는 고양감을 가눌 수 없었다. 바라던 각도로 마침내 만나게 된 프레시 블러드의 가로횡단이 좋아서, 변함없이 황홀하여서, 그것이 기뻐서.

횡단의 끝, 내 눈앞에서 멈추어 선 그를 올려다보며 인사했다.

이제야 뵙네요 백작님. 정말 오래 기다려왔어요.

 

마침내의 왼블에서 볼 수 있었던 그의 눈동자들도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영혼을 바쳐서라도! 얻고 싶어 하는 거야.”

누구는 영혼까지 바치겠다는 영원한 삶을 준다는데 그녀는 질색한다. 재고의 여지도 없는 거부에 부딪히자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동공을 마침내의 왼블에서 똑바로 보았다. 그의 눈동자를 물들인 당혹감이 앞머리로 그늘진 얼굴에서도 반짝거렸다. 당혹감에 말을 잇지 못하던 얼굴을 순식간에 잠식해버린 분노도, 욱하고 치민 울분으로 찡그려지는 입술도 오늘에서야 선명한 정면이었다.

 

She, 엘리자벳사와의 행복하였던 한때. “언제라도 어디라도 함~께.” 티 없이 행복하던 나날의 순수한 눈동자도 보았지. 

끝끝내 조나단과 식을 올리는 미나에게서 뒷걸음치며 “안돼.. 안돼..” 좌절하는 입모양도 또렷이 보았다. 네모꼴로 처진 입 모양을 똑 닮아 처연하던 눈썹 또한.

 

왼블의 Life After Life. 묘지 정문이 눈앞의 정면으로 곧장 펼쳐진 시야. 풀밭에서 기어 나오는 뱀파이어 슬레이브가 흡사 나를 향해 달려드는 듯한 착각을 주는 각도. 덕분에 살아서 숨을 쉬는 듯한 생동감의 Life After Life 를 만날 수 있는 곳. 이 넘버 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어찌나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는지, 이 각도 그대로 셔터를 눌러 간직하고 싶었다.

 

그리고는 Finale. 드디어 보았다. “나와 함께 이 길을 갈 수 있겠어요?” 망설임과 두려움 범벅된 그의 눈동자를. 

 

마지막에는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그림과 재회했다. 관 밖으로 힘겹게 뻗은 손만이 두 눈에 어른어른하다 작은 불씨처럼 꺼지고 말 때. 얼굴도, 눈물의 뺨도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더 그녀에게 닿을 수 없는 그와 나란한 것만 같은 왼블 최후의 시야. 

이제야 삼연의 드라큘라와 온전히 재회한 것만 같았다. 오직 손 하나만 남은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서야.

 

행복했다. 모레도 왼블이라 행복하다. 

 

*

 

그리워하던 시야의 충족감이 덧대어져서일까. 바라고 바라던 왼블에서 만난 오늘의 Fresh Blood 는 말 그대로 대단했다. 너무나 대단했어. 서슴없이 위협적이었다.

특히 흡혈 후 젊음을 되찾고 나서의 파워는.. 이제 막 세상에 발을 내디딘 ‘본능’ 그 자체였다. 제어를 모르는 욕망이 파열음의 형태로 쏟아졌다. 고갯짓 하나에, 손짓 한 번에 실린 박력은 전능해 보이기까지 하는 갈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개인적인 정점은 뱀파이어 슬레이브를 끌어당겨 젊음을 음미하고자, 뒷목을 잡아채다시피 하였을 때. 손을 얹어 쓸어내리는 정도였던 평소와는 판이한 박력에 깜짝.

 

아, 밀고 당기는 오늘의 음 중에서도 가장 새로운 소절이 있었으니: 평소의 끝! 없는 이 새벽과 하늘과 땅의 거리감만큼 달랐던: ‘끄~읕’ 없는 이 새벽. ‘끝’이 기나긴 포물선을 그리며 하강하는 모양새는 처음이었다. 잘라서 들을 것.

 

윗비 베이.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다는 미나의 말에 동요를 숨기지 못하는 입꼬리를 보았다. 스리슬쩍 웃음 밴 입가가 기분 좋게 설레고 있어, 내 마음에도 바람이 살랑. 

 

기차역. mist reprise 의 여운에 잠긴 미나와 그가 일직선인 시야였다. 즉 미나가 비켜서기 전까지는 그가 가려서 보이지 않았는데, 그래서였다. 안개 속에 잠겨 몽롱한 미나의 얼굴이 돌아서자마자 눈앞으로 등장한 그의 얼굴ㅡ마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이 일련의 장면전환이 더없이 인상적이었다.

 

She, 오늘도였다. 십자가를 옆으로 밀쳐내지 않고 손바닥으로 쾅 박아 뒤로 넘어뜨렸다. 개인적으로는 이 굴절 없는 분노가 훨씬 더 긴박해 보여서 좋은 것 같아. (소리도 더 요란하고!)

 

Life After Life 가 3월 4일의 멋짐을 담당했다면 오늘은 Mina’s Seduction.

평소대로의 소리를 시도하다 생각만큼 매끄럽지 않자 바로 소리의 통로를 달리 쓰는 그를 보았다. 그리하여 완성된 오늘의 드라마틱한 소절: 별빛보다 영원한 ‘나의 삶.’ 영원에서부터 서서히 음을 올려 탁 트여낸 흉성 덕에 노래 자체가 평소보다 훨씬 고조되는 효과까지.

 

이어서 사뿐히 귀를 적셔준 소절도 있었으니: 그댈 위해 어떤 벌도 ‘달게’ 받겠어. 숨결처럼 흐려진 소리가 유난히 달콤했다.

 

트레인 시퀀스, 어렴풋이 들리기 시작하는 미나의 목소리를 향하여 손을 뻗는 관 속의 그. 역시 왼블의 시야에서 가장 아름답다. 왼팔을 뻗기 때문에 왼쪽에서 올려다보는 각도가 안정적이기도 하고. 이대로 마냥 올려다보고만 싶었어.

그런데, 오늘 퇴장하는 관 속의 그가 꽤 오래 눈을 뜨고 있었다. 좀처럼 잠들 수 없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관 속에서 멍한 눈이 안쓰러웠다.

 

그리고 4일에 쓰려다 깜빡했던 부분. 조정은 미나의 트레인 시퀀스 아웃트로. 누구보다 강경하고 일관되게 뱀파이어 감화 노선인 임혜영 미나와 달리 조정은 미나는 두 얼굴을 보여준다. 드라큘라에게 잠식된 상태인 초반부와 최면이 서서히 풀리면서 이성과 혼란이 뒤섞인 후반부. 초반의 공연에서는 두 상태의 경계가 애매하여, 보면서도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아리송했는데 3월 4일 공연부터 ‘고개를 저으며 최면에서 깨어나는’ 모션을 추가하여 명확해졌다.

 

줄리아의 죽음. ‘미나의 영혼을 파괴하면서!’ 반헬싱의 일갈에 흔들리며 확신을 잃어가는 동공을 보았다. 그래서였다. ‘난 미나를 사랑해.’ 이 문장이 특히나 어떤 다짐처럼 들렸던 이유.

 

Finale. 눈물범벅의 뺨으로 시작된 피날레의 하이라이트. 

‘나의 절망 속에 널 가둘 수 없어.'

오늘, 음절마다 절규가 있었다. 피와 고통의 ‘내’ 세계를 떠나줘요, 극적인 지칭에 방점을 찍어가며 노래 반 절규 반의 피날레가 이어졌다. 이런 적 없었을 정도로. 세상 끝에 홀로 선 피날레였다.

 

조정은 미나와의 피날레에서 3월 4일부터 시작된 눈물의 포인트 둘. 

하나, 붙잡으려고 따라가는 그녀와 그런 그녀를 내치다시피하며 비켜서는 그. 그녀에게 조금도 닿지 않도록 몸을 빼는 동작을 보며, 그녀를 피하는 저 속이 대체 어떨까 상상이 되어서 속이 쓰렸다.

두 번째이자 눈물의 최정점은 역시 거부하려는 미나에게 칼을 쥐여주는 찰나. 오늘은 조정은 미나가 남은 한 손을 그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뒤로 빼기까지 하여, 잡히지 않으려는 이와 잡으려는 이의 대치가 극명해지며 더욱더 극적인 장면이 되었다. 

물러나려는 그녀의 팔을 기어이 낚아채어 칼 위로 얹는 손길이 너무 단호했다. 단호하여 차갑게 느껴지기까지 했으니. 죽음을 각오한 결연함이 그 손에서 묻어나와서, 볼 때마다 내가 상처받는 기분이다.

 

 

덧. 기차역의 애드립은 “시대가 많이 변했네요.” 정돈되어 안정적인 톤이 이제는 어엿한 대사로서 삽입된 느낌마저 주었다. 

윗비베이, 회춘 후 미나와의 첫 만남. 문장의 어미가 바뀌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거든요.’ 원래의 ‘있어서요’보다 어린 느낌을 주어 신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