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이 정말 좋았다. 공연의 만족감을 곱절로 끌어올리는 음향이었다. 프레시 블러드 가로횡단의 묵직한 파워를 조금도 깎아내지 않고 고스란히 전달해주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귀가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노래도 대화하는 음성도 크고도 명료하여 연신 황홀했다.
Fresh Blood에서 모자 끌어내리는 타이밍은 침대에 올라서기 전으로 고정된 걸까? 어제부터 조금의 오차도 없이 같은 시점에 정제된 안무처럼 이루어졌다. 개인적으로는 침대에서 내려오면서 끌어내리는 순서가 좋은데, 고정된 건지 몹시 궁금.
윗비의 백작님. ‘그럼’ 전 이만. 한숨을 섞은 ‘그럼’이 참 듣기 좋았다. 단정한 나직함에 설레기까지.
기차역의 애드립, 연구 좀 하셔야겠다는 미나의 핀잔에 “더 발전해보도록 할게요.” 빠르게 의지를 피력하는 말투가 얼마나 순했는지 모른다.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양순함에 마음이 절로 웃었다.
She 의 고전미는 영원불멸이지 않을까. 아름다운 서사에 아름다운 시아준수. 보기에도 듣기에도 마냥 아름답기만 한 단 하나의 넘버.
제단으로 성큼 오를 때였다. 제단 밖으로 떨구어지려는 촛대가 그만 그의 구둣발에 치여 다시 제단 위로 던져졌다. 올라가는 동작과 충돌한 것이었지만, 얼핏 보기에 따라서는 발로 차올리는 것도 같아 순간적인 긴박감이 최고치를 찍어버렸다. 오늘의 She에서도 러빙유에서도 객석의 중간 박수 없이 빈틈없는 집중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이런 긴장감 덕분이 아니었을까.
At Last, 당신은 ‘나와’ 결혼했어. 어제는 손바닥으로 흡사 가슴에 주먹을 박듯 퍽! 쳤었지. 400년의 무게만큼 무겁디무거운 소리였다면 오늘은 팡! 쳤다. 언뜻 탄력마저 느껴지는 소리에서 다시 찾은 젊음의 혈기를 보았다.
Loving You Keeps Me Alive. 애드립부터의 절정부가 좋았다. 몹시 좋았다. 노래에서 들끓는 드라마가 만져질 듯 생생했다.
Life After Life .달콤한 ‘피이~~’에서 넓게 퍼지는 소리를 따라 눈썹과 눈꺼풀이 크게 출렁거렸다. 얼굴로도 음을 그리는 듯하여 그 눈동자에 홀려들 것만 같았다.
영원히 런웨이. 그 첫 번째 ‘영-원히’, 첫음절을 살짝 밀며 걸음도 동시에 끌 때. 그대로 시간을 멈추어두는 듯한 슬로우모션은 정말 가슴 벅차게 좋다. 하이라이트에서 시간을 미니 꼭 끝나지 않을 절정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아서 심장이 덜컹해.
It’s Over. “날 버리고 이 자를 택하겠다는 거야?!”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그가 전에 없이 그녀를 재차 불렀다.
한숨결 같이 나직한 음성이었다. 늘 혼란과 좌절이 범벅된 얼굴로 두 눈을 굴리기만 할 뿐 그녀의 이름을 다시 불렀던 적은 없어서 귀가 쫑긋. 얼굴은 여전히 혼란 한가득, 절망 한 움큼인 채였다. 꼭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그녀의 이름을 소리 내 부른 사람 같았다.
곧이어 혼란 가득한 얼굴로 제 손의 말뚝을, 공간의 좌우를 두리번대던 그가 끝내 뒷걸음쳤다. 체념하듯 돌아서는 등이 한없이 외로워 보였다.
Train Sequence, 미나의 목소리에 다시 기회를 잡은 사람처럼 반색하는 얼굴을 보았다. 이를 살짝 깨물고는 야심 차게 제 목소리에 힘을 싣기 시작하는 모습도.
The Longer I Live, 진성으로 곧게 뻗어 올린 ‘내 사랑의 선택 그댈 위했나’ 후에 긴 소매 아래로 꽉 주먹 쥐던 손을 보았다.
이어서는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다 갑자기 걸음을 재촉했다. “진실이 뭔지 흔들려..” 길게 뻗은 손끝으로 ‘진실’을 좇는 사람처럼.
러빙유 리프라이즈, 오른쪽 뺨으로 떨구어지던 선연한 눈물.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양을 바라보는데 오늘따라 피부결을 따라 얼룩진 모양이 보석 같다는 생각을 했다.
Finale의 소절은 “심장이 뚫린 것처럼!” 나직하지만 강하게, 방아쇠를 당기듯.
덧.
루시의 초대를 받은 흡혈 타임. 아예 속도 조절을 하기로 한 걸까. 어제처럼 느릿느릿 천천히 몸을 숙였다.
미나의 유혹, 오늘도 미나의 치맛자락을 밟았다. 오늘따라 소매도 단단히 걸렸지. 아예 그가 손목에 힘을 주어 탁! 빼냈다. 절도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