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샤임 삼연공의 첫날. 이날들을 위해 시야 또한 심혈을 기울였다. 왼중오 삼방향을 하루씩 일대일대일로 맞추어두고 참 오래도 노심초사했지. 다행스럽게도 만날 수 있게 된 삼연공, 시작일은 C에서 맞이했다.

 

총평하자면 레전드 초읽기로 시작하여 극히 레어 회차로 마무리된 공연이었다.

시작은 더할 나위 없었다. 드림캐스트 더하기 부음감님, 밀집하였음에도 꽤 조용한 군중. 딱 좋은 날이었다. 

 

하지만 복병이 있었다. 바로 시아준수의 얼굴. 퐁실하게 세운 볼륨과 길게 늘어트려 찰랑이는 앞머리. 반짝이는 눈동자와 그윽한 미간. 잘생겨도 너무 잘생겼다. 홀린 듯이 얼굴을 좇으면서도 극 안에 머무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건만 결국 러빙유에서 지고 말았다. 

도입부의 그가 몸을 일으키며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넘긴 순간이었다. 사선으로 빗긴 머리칼이 유난히 맵시 있게 자리를 잡았다. 스타일링한 듯이 엣지있는 적발과 훤히 드러나 반짝반짝한 얼굴. 노래가 다 뭔가.. 얼굴이 반짝여 귀까지 머는 것을. 시아준수의 노래와 얼굴이 겨루어 얼굴이 대승을 거둔 날이었다.

간신히 극 안으로 돌아온 건 마지막 소절에서였다. 샤임일 때 볼 수 있는 ‘함께 춤춰요 새벽을 향하여’의 트레인 시퀀스 디테일. 닿을 듯 말 듯 한 찰나의 대치에 그가 미간을 좁혔다. 펄 바른 듯 땀으로 반작이는 눈가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심장으로 노래하는 동시에 얼굴의 모든 근육을 사용해서도 애원했다. 나에게 오라고. 하지만 닿기 직전에 결국 비켜가는 그녀를 인지하는 순간 그의 모든 것이 땅으로 꺼졌다. 물 머금은 머리칼이 털썩 주저앉은 육신에 반동을 얻어 잠시 허공에 머물렀지만, 결국 긴 궤적을 그리며 낙하했다.

 

*

 

Fresh Blood, 초반부터 안개가 매우 짙었다. 그래서 보았다. 완벽에 가까운 ‘내 사랑 미나’의 자욱한 미장센. 온통 어찌나 하얗던지 객석마저도 삼켜져 버린 듯한 곳에서 섭리를 거스르고 새빨간 단 하나의 존재, 그를 보았다.

절정은 마지막 음절이었다. 영원히 살리 ‘라’. 쉼표를 평소보다 이르게 걷어낸 그가 빠르게 ‘라’를 끌어올리며 두 팔 또한 높이 들었다. 평소 심장 높이에서 시작하여 머리끝까지 왔다면 오늘은 이미 최종 높이에서 시작했다. 끝을 모르고 고조되는 음성, 저 높이 걸린 팔. 하늘을 움켜쥘 기세로 바르르 떠는 두 팔에 빨려들 것 같았다. 그의 두 팔 안에 시간이 갇힌 감각은 천둥성이 내리친 후에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Lucy & Dracula 1. 오른 시야, “내 혈관의 모든 피”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곳. 런웨이를 걸어오는 그의 얼굴에 드리운 푸른 음영이 신비로웠다. 특히 적발의 윤곽을 더듬어 그리는 푸른빛은 신묘할 정도의 색채대비를 이루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영원한 삶’이야! 처음으로 강하게 짓씹어 뱉지 않고 부드럽게 한숨결처럼 흩트려냈다. 잘라서 들을 것. 

 

기차역의 애드립은 대폭 진화했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될까요..”

당신의 유머, 종잡을 수 없다며 미나가 갸웃하자 한 걸음 성큼 다가서며 그가 말했다. 두 손으로는 친절하게 허공을 짚어 보였다. 바로 여기라는 듯이.

“기차를 탈선시켰다는 부분에서.. 웃으시면 됩니다.”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눈에 약간의 웃음기도 없었다. 

“아, 아.. 안 웃기구나..”

끝까지 마른 얼굴로 내내 진지했다. 머쓱해 할 때까지도. 그래서 더 웃겼다. 

 

이어서는 극히 레어 할 She. 무려 두 번이나 개사하였다. 시작부였다. 드넓은 숲 펼쳐진 곳 “아늑한 공기 가득한 곳에” 새로운 가사를 어찌나 박자에 딱 맞게 끼워 넣던지, 조금의 마도 뜨지 않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감탄했다. 개사한 문장 자체도 그럴듯하여 아마 처음인 관객은 몰랐으리라. 

하지만 두 번째는 달랐다. 아무래도 첫 개사ㅡ아늑한 공기ㅡ를 곱씹었던 모양이야. 무심결에 다시 “아득한 곳”을 소환한 것을 보면. 실수를 곱씹는 그는 처음 보았다. 정말로 극히 드물 4월 30일의 She였다.

 

It’s Over, 요 며칠 어미에 강세를 두어 ‘미-나!’라며 책망했다면 오늘은 앞 음절이었다. ‘미이!-나’ 강세가 앞으로 오니 조금 부드러워졌고, 애가 타는 느낌도 주었다. 두 눈을 파르르 떨며 자꾸만 미나와 미나 너머의 반헬싱을 번갈아 보는데, 그림자진 눈이 품은 절망이 너무도 형형하여 마음이 아팠다.

 

Train Sequence, 관이 퇴장하는 길. 오늘 꽤 일찍 눈을 감았다. 약간, 음.. 또 반헬싱이야? 진저리를 치며 질끈 눈을 감아버린 것처럼 느껴졌어..

 

Finale, “피와 고통의 내 세계를 떠나줘요”의 격한 출렁임이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피날레에서 가장 마음 아프게 좋은 대목으로 부상했다. 이 노래의 비탈길 타는 불안정하고 비극적인 심리가 전부 표현되는 구절이다. 들을 때마다 첫사랑을 만난 듯 심장이 뛰어. 

이어서 하이라이트, 차가운 암흑 “속에-!!” 어미를 거의 비명처럼 길게 내지른 건 처음. 

부음감님과의 자유를 “줘요”는 항상 최후까지 간다. 지켜보는 내 숨이 가빠질 정도의 길고도 긴 호흡. 노래를 머금어 닫는 순간 죽음에 임박한 그가 있다. 

 

죽음을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일까. 남은 시간 동안 오늘의 그는 의연했다. 그녀에게 칼을 쥐여주고, 사랑한다 속삭이고, 관으로 이끄는 내내 어른스러웠다.

“사랑해서 그댈 위해 내가 떠날게요.” 까지도 자신의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침착했다. 그저 남겨질 그녀만을 염려하고 안타까워할 뿐. 기정사실화된 자신의 죽음에는 동요하지 않았다. 

‘사랑해서’ 떠난다가 아니라, 사랑해서 ‘떠난다’에 방점을 둔 것만 같았던 오늘.

속세의 모든 것을 벗어두고 미련 없이 그가 갔다. 

 

 

덧. 드라큘라 성의 노백작님. “내려가서 약혼녀를 맞이하시는 게 어떨지.” 조나단을 등 떠밀며 허리를 일으킬 때마다 너무나 훤칠하시다. 조나단의 젊음이 부럽지 않아요. 그냥 머시스시세요.

루시의 초대, 루시에게로 내려꽂힌 눈에 광기가 번득였다. 번쩍번쩍하게.

 

그리고 임혜영 미나, 이예은 루시. 오늘의 How Do You Choose에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