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성, 노백작님. 편안한 밤 보내라는 미나의 인사를 다 듣고도 미적미적하셨다. 계속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미련이 뚝뚝. 더는 구실이 없어 마지못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늘 그랬듯 돌아서서 미련이 한 움큼 묻은 인사를 건네셨지.

“편안한 밤 되시길.”

 

Fresh Blood, 입맛 다시기와 침대 뒤에서 모자 벗는 콤보가 돌아왔다. 지난 공연에서 모자 벗기가 입맛 다시기를 홀랑 삼켜버려서 아쉬웠었어. 잘 돌아왔어♡ 

가로횡단의 파워는 나날이 갱신 중이다. 특히 오늘 ‘나를 두려워하는’을 마무리한 직후의 숨소리, 대체 무슨 소리였지? 그르렁인 것도 같고 쓰읍! 한 것도 같은.. 처음 듣는 추임새였다. 오늘만의 즉흥일까? 다음에도 들을 수 있을까?

‘갈증을 채워!’ 와 함께는 두 손을 핏물 받듯 모아 얼굴 높이로 끌어올렸다. 피를 받아 마시는 동작처럼 절묘했다.

그리고 참 아름답게 자욱했던 ‘내 사랑 미나’의 미장센.

 

윗비. 바람처럼 나타난 루시가 그의 눈앞에서 미나를 가로챘다. 호다닥 빠른 몸놀림을 따라 그의 앞머리 한 가닥이 팔랑대며 일어났다. 바람결에 붕 떴던 머리카락이 나풀나풀 내려앉는 모양이 참 그림 같았다. 하지만 그는 불쾌했던 모양이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서 정색이 뚝뚝 묻어나는데 어찌나 서늘하던지. 이해야 간다. 미나를 만나기 위해 곱게 차려입고 왔는데 때아닌 바람이 직격한 셈이니.

 

기차역, 미나의 핀잔에 그가 살짝 억울한 얼굴로 입에 바람을 넣었다. 두 눈을 깜빡이며 갸웃하기를, “방금 조금 웃었던 거 같은데..”

하지만 미나의 얼굴을 보고는 금세 꼬리 내렸다.

“아, 네, 뭐.”

빠르게 수긍하는 말투에서 ‘아니시라면, 아닌 거겠지요.’ 생략한 말이 들리는 듯했어.

 

She. 도입부의 오케는 오늘 왜 그랬지. 감을 잃은 멜로디가 우왕좌왕 맴돌기에 듣다 못 한 그가 바로 노래를 시작했다. 드넓은 숲 펼쳐진 곳~으로 시작되는 노래를 타고서야 반주가 겨우 제자리를 찾았어.

 

이 고통의 삶 끝내주소서, 고개를 들쳐올리는 동작에 그만 오른쪽 앞머리가 콧등 위로 단단히 말려버렸다. 그래서 한쪽 눈이 전부 가려졌어.

“그에게 구원은 없었나요?”

“누가 알까요.”

대답하는 얼굴에서 내내 한쪽 눈만 보였다. 흐트러진 머리칼, 가려진 눈, 그림자진 얼굴. 너무나 처량한 몰골이었다.

 

머리가 이렇게나 잔뜩 흐트러졌으니 오늘은 필히 러빙유에서 몸을 일으키며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겠구나, 어쩌면 단단히 넘길지도 모르겠는 걸.. 생각하던 차에 그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쳐올렸다. 고갯짓으로 앞머리를 넘겨보려 한 것 같은데, 피땀눈물과 엉킨 머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고갯짓이 무위로 돌아간 것에 대한 안쓰러움 반, 갑갑하겠다 싶은 마음 반. 계속되는 두 사람의 At Last를 지켜보는데 놀라운 일이 바로 다음에 일어났다. 

그를 한참 바라보던 조정은 미나가 손을 들어 올려 그의 머리칼을 넘겨준 것. (미나중)(최초)(처음있는일). At Last의 조정은 미나는 움직임이 크지 않은 편이고, 특히나 얼굴 쪽으로는 손을 잘 뻗지 않으시는 분이라 놀라움이 컸다.

 

Loving You Keeps Me Alive. “그댄 나만의 숨결, 아물지 않은 내 상처.” 오랜만에 울음이 짙게 스며든 목소리. 울지마요, 내 사랑.

그런데 흑흑. 트레인시퀀스 디테일, 오늘은 시아준수마저 하지 않았다. 손을 뻗지 않고 다만 두 팔을 살짝 펼쳐 보일 뿐이었어. 

 

Mina’s Seduction. 두 사람이 침대에 입성하는 타이밍이 정말 오랜만에 꼭 일치했다. 그와 그녀가 합을 맞추어 다리를 함께 올리는 건 조정은 미나만 하는 디테일인데, 오랜만에 일치를 목격하여 짜릿했다.

 

줄리아의 죽음. 러빙유 리프라이즈. 두 눈 가득 고여있던 눈물이 그가 눈꺼풀을 질끈 감는 순간 압력에 밀려 한 줄기로 툭 흘러내렸다. 오른쪽 뺨을 선명하게 가로지르는 눈물, 이 넘버에서는 오랜만.

 

Finale, 오늘도 온 쓰리콤보. 웃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안심시켜주는 눈. 

충격은 마지막에 왔다. 관이 닫힐 때까지 고통을 삭이는 얼굴을 보았을 때에. 죽음과 함께온 격통을 가누느라 두 손을 포개지도 못하는 와중에 관이 닫혔다. 그렇게 매정할 수가 없었어..

재가 되어, 눈이 되어 구원으로 떠났겠지만 내 눈으로 담은 마지막의 그는 고통으로 점철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오늘 참 잔인하다 생각했다.

 

 

덧. Lucy & Dracula 1. 오랜만에 쉼표 없이, 단숨에 강하게 이어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구요.”

At Last. 당신은! 당신은.. 나와 결혼했어. 오늘도 당신을 두 번 되풀이했다. 고정이 되려나.

Life After Life. “새로운 시대를~ 열어~” 굉장히 음미하듯 음을 끌며 두 손으로 파도를 그렸다. 듣기 좋았어. 

Train Sequence의 소절은 “운명을 따라 내게 와~”의 속삭이듯 달콤했던 음성. 잘라서 들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