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의 성. 노백작님의 대사 톤 왜 이렇게 좋았을까요? 수분기 하나 없이 메말라 퍼석한 음성이 400년의 고독을 청각화하고 있어 마음이 짜르르. 

와중에 새로운 강세를 실은 문장도 있었으니: 이 방에서 절대 ‘나가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Fresh Blood..를 이렇게 다채로운 마음으로 보게 될 줄이야. 조마조마하였다가 웃었다가, 안도하였다가를 이렇게나 오갈 수 있다니.

오늘도 시작은 역시 좋았다. 입맛 다시기를 대체한 모자 벗기를 한 번에 성공해낸 후 침대 위에서 빛을 가르는 두 손에서 허기진 욕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복병은 오늘도 침대 위에 있었다. 오늘의 예상치 못한 사항은 조나단의 팔을 결박한 끈이었다. 뱀파이어 슬레이브가 조나단을 묶을 차례에도 늘 오른손 쪽이 아슬아슬한 게 보였지. 여차여차 시간 내에 간신히 채워 넣는 모습이 계속 눈길을 끌었는데, 결국 오늘은 노백작님까지 애를 먹였다. 밧줄끈에서 조나단의 왼손을 빼내고, 오른손을 빼야 하는데 글쎄 오른손이 빠지질 않지 뭔가. 여러 차례 헛손질하는 동안 침대에서 내려가야 할 마지노선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노래는 흘러가고, 그의 손은 점점 바빠지고, 조나단의 팔은 빠지질 않고. 노래가 고조되는 건지 내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지 알 수 없어지려는 찰나에서야 조나단이 자유를 얻었다.

가로횡단으로 접어들면서 시름은 덜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부패한 허물을 벗어!” 허물을 벗겨내듯 노백작님이 두 팔을 가로로 넓게 휘둘렀다. 그리고 그 동작에 소맷자락이 크게 펄럭이며 그의 얼굴을 폭삭 덮어버렸다. 아주 제대로. 소맷자락에 파묻혀 먹힌 음절이 바람 앞에 부는 잎새처럼 가냘팠다. 

침대 위에서 초조함에 주먹을 쥐었다면 이번에는 입술을 깨물었다. 웃지 않기 위해서. 자기 소매에 자기가 맞아 입막음 당한 드라큘라라니. 정말이지 심장을 조이는 귀여움. 프레시 블러드에서 이럴 일인가요.

수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오랜만에 오른손의 장갑도 제때 빠지지 않아 헛손질했지.

노래적으로는 마이크를 단 14일의 소리가 이랬을까 싶게 강강강이었다. ‘새 운명의 길로 영원히 함! 께! 해!’를 14일의 피치와 같이 쏘아 올리는 강성함에는 제어가 없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늘의 귀여움을 씻어낼 순 없었다. 두 번은 없을 귀여움.. 세상에 이런 프레시 블러드를 보는 날도 오는군요.

 

기차역. 여자를 웃게 하는 방법을 좀 더 배우셔야 할 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그가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했다. 

“가르쳐줄 사람이 없어요..”

애드립도 애드립이지만, 이어지는 다음 대사가 나를 웃게 했다.

“항상 이렇지는 않았는데..”

그러면 옛날에는 많았다는 건가요? 문장을 그대로 뒤집어 해석하면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At Last, 오늘의 넘버원. She와 러빙유를 잇는 가교이자 삼연곡의 운명을 결정짓는 넘버. 그리고 오늘 보았다. 두 사람의 감정이 정확하게 같은 궤도에 올라 함께 가는 모습을.

눈물을 닦아주는 그의 손에 얼굴을 가만히 맡기던 그녀가 두 손을 들어 그를 부여잡았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것처럼 다급하게.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그의 손을 꽉 움켜쥐는 그녀의 힘에 그의 울음이 터졌다. 더듬더듬, 다른 한 손을 들어 올려 그녀의 두 손 위에 포개더니 그대로 두 사람 서로를 부둥켜 쥐었다.

꼭 언약식을 하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움켜쥔 채로 나란히 울었다.

시간이 하염없이 느리게만 흐르는 것 같았다.

끝없는 눈물, 마침내의 해후.

그러나 끝내 그녀가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꿈은 산산조각났다. 신기루에서 억지로 깨어난 것 같은 허망함이 사위로 내려앉았다.

 

Life After Life 오늘의 소절. ‘달빛’의 축복 속에서. 평소에는 ‘달빛’부터 강하게 박아 넣었다면 오늘은 달빛만큼은 힘을 빼서 부드럽게 불렀다. 동시에 두 팔을 넓게 벌렸다가 달빛을 끌어안아 머금는 것처럼 품으로 끌어오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달빛의 축복 속에서 뱀파이어들의 밤을 기꺼이 음미하는 그가 참 아름다웠다.

 

그리고 오늘의 넘버. It’s Over. 노래적으로, 퍼포먼스적으로, 음향적으로 완벽했다. 보고 듣노라니 벅차올랐다. 일단 음향이 노래의 파워를 깎지 않았고, 그와 반헬싱의 파트너십 역시 물이 오를 대로 올라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의 서슬 퍼런 강을 반헬싱이 정돈된 강으로 받아칠 때나, 반헬싱이 격양되어갈 때 그가 비웃으며 되받아칠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자연의 대재앙처럼 오늘의 It’s Over가 있었다.

오늘, 이 무대, 이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대중을 향하여 ‘이것이 김준수의 뮤지컬 드라큘라’이노라 선보이고 싶었다. 그래야만 하는 It’s Over였다.

 

Finale. 그의 등장부터 슬펐다. 소리 없이 나타나 그녀를 바라만 보던 그가, 그녀가 자신을 돌아보자 고개를 내젓는 순간부터. 400년 넘게 그녀의 등만 바라보려 기다린 건 아닐 텐데 왜 그녀가 돌아보니까 고개를 저어.. 그녀에게로 다가가는 걸음은 오늘따라 왜 그렇게 무겁디무겁던지.

“사랑만을 위해 살아온 날 위해”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목소리는 또 왜 그렇게 절망 가득했는지.

차가운 ‘암흑’ 속에를 긁지 않고 14일처럼 원음에 가까이, 심연 같은 목소리로 불렀을 때가 개인적인 정점이었다.

드물게도 원미솔 감독과 함께 끝까지 갔던 자유를 줘 ‘요’의 어미까지 인상 깊었다.

 

 

덧. 윗비, 오랜만에 돌아온 “꼭 다시 만날 거라 믿습니다.”

그림자 대화, 촉촉했던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떠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