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이 훌륭한 날이 드물기는 해도 크게 나빴던 적 또한 잘 없었으나, 오늘은 나빴다. 그것도 상당히. 

말소리가 노래보다 컸고, 오케스트라에 노래가 묻혔으며, 노래와 오케스트라를 합한 전체의 소리가 무대 안에 갇혀 있었다. 오늘의 음향으로 듣는 Life After Life와 It’s Over가 너무 아까웠다. 

 

그러나 어떤 상황 아래에서도 기필코 객석의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넘버가 있으니, 바로 삼연곡. 

At Last 에서 같은 호흡으로 우는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더듬더듬 부여잡는 장면에서부터였던 것 같다. She에 압도당한 객석이 눈물조차 쉽게 삼키지 못한 게. 

운명을 피해 방황한 끝에 간신히 그의 앞에 선 그녀가 그의 속삭임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눈물의 입맞춤이 코앞에서 불발되었을 때, 그녀의 손을 생명줄처럼 쥐고 있던 그의 몸이 휘청이며 허물어졌다. 그녀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서 비스듬하게 스러진 몸을 한 팔로만 간신히 지탱하는 그 모습이 몹시도 가여웠다. 

“당신은! 나와 결혼했어!” 조차도 울먹임으로 촉촉하여 더. 

 

이어지는 Loving You Keeps Me Alive는 언제나 언제나 대망의, 대미의, 마음에의 종지부를 찍는 절정. 

“그댄 나만의 숨결”은 오늘도 울컥 치미는 울음을 여과 없이 들려주었다. 좋아하는 소절에서 범람하는 감정을 듣는 감격을 어떤 말로 다 이를까. 

어느덧 마흔 번이 넘게 들었으나 여전히 마음을 부여잡게 하는 애드립 구간과, 공연 재개 이후 도입되어 신흥 눈물포인트로 부상한 트레인 시퀀스 디테일까지. 오늘도 이 순간의 관객이 될 수 있어 사무치게 감사했던 러빙유. 

 

와중에 귀여웠던 것. 정수리 부근의 머리카락 한 가닥이 동그랗게 일어난 바람에 깨비가 소환되었다.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기 전까지 1절은 깨비의 세레나데였기도. 

 

Mina’s Seduction, 미나의 등 뒤로 다가선 그가 그녀의 어깨를 꽈악 감싸 안았다. 그 바람에 한껏 들린 어깨가 적나라하게 보이는데, 꼭 그가 미나를 양옆에서 스쿠이즈하는 것 같았다. 21일에 보고 조금 웃었는데, 오늘도. ㅎㅎ

좋았던 소절은 “끝을 향해 함께”의 묵직한 음성. 심연 같은 소리였다. 저 끝의 나락을 미리 들으면 이럴까 싶게. 

 

왼블의 오늘에서는 흡혈 타이밍의 안광을 또렷하게 보았다. 두 눈이 우수수 쏟아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강한 빛이었다. 

그러다 아주 찰나였다. 눈으로 계속 말하던 그가 가슴을 그으며 웃어 보인 것이. 한쪽 입꼬리만을 비틀어 올린 얼굴이 위협적일 만큼 아름다웠다. 

 

Finale. 미나를 보며 울컥하는 그를 보았다. 꽤 여러 차례, 그녀를 보는 그의 얼굴에서 감정이 왈칵 차올랐다. 

가장 선명한 기억은 부탁해요 제발, 내게 밤을 허락해요. 이제 그만 칼을 쥐여주려는데, 붙잡히지 않은 한 손으로 한사코 그를 밀어내는 그녀의 앞에서 그가 울컥했다. 단숨에 차오른 감정은 그대로 노래의 떨림이 되었다. 

또 한 번은 사랑해서 그댈 위해 내가 떠날(게)요. 안돼, 안돼, 연거푸 도리질하며 관으로 끌려오는 그녀를 향해 그가 마지막으로 노래할 때. 가냘프기는 해도 흐르는 강물처럼 순리를 따라 잔잔하게 노래를 이어가던 그였으나, ‘게’에 이르러서는 이 생을 내던진 사람처럼 숨을 탁 놓아버렸다. 

깊은 한숨처럼 소리 반 숨결 반인 음성이었다. 

숨결 같고 꿈곁 같은 목소리로 듣는 이의 마음은 전부 헤집어 놓고, 정작 그는 웃었다. 언뜻 보면 개운해 보일 정도로 맑게. 

그러나 입술을 짓씹어가며 가장한 웃음임을 모를 수 없었다. 아무리 구원의 죽음이라 한들 고통스럽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오늘도 그는 고통 속에 갔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그의 손을 붙잡아보고자 팔을 뻗었다. 그러나 붉은 조명으로 적셔진 관 안에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지도, 두 팔을 고이 포개지도 못했다. 

 

 

덧. 기차역의 애드립, 21일과 같이 “나는 어떡하지?”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은 어미를 올려 물음표로 만들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