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공연에 염색이라니. 어제 뒷머리가 많이 뽀얗기는 했지만 오늘만 지나면 수요일까지 바로 2틀을 쉬는데, 라디오를 염두에 둔 걸까. 아니면 다른 스케줄이 또 있었던 걸까. 일요일에 염색이 올 줄은 몰라서 비하인드가 못내 궁금한 것.
오늘의 공연은 1,2막이 다른 극이었다. 요인은 음향이었다.
1막의 음향은 샤롯데씨어터 초반부의 공연을 생각나게 했다. 웅장함을 포기하고 명료하기를 선택한 소리. 23일보다 애매하게 커진 음량은 닿을 듯 말 듯한 카타르시스로 애를 태웠다. 재채기가 목에 걸린 상태로 나올 듯 나오지 않는 답답함이었달까. 프레시 블러드가 그렇게 지나갔다. 오늘의 음향에서 프레시 블러드를 ‘절정답게’ 만들어내는 그가 감탄스러웠다. 음향으로 줄 수 있는 웅장함과 청각적 박력이 소거된 프레시 블러드를 이렇게 살려낼 수 있는 사람 또 누가 있을까.
She에서 조금 더 피치를 올린 음향은 Life After Life를 거쳐 2막에서는 어느 정도 나아졌다. 23일과 같은 음향 컨디션 하의 It’s Over가 아니라 안도했다. 시아준수의 목소리가 아까울 정도의 음향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요. 어쨌거나 2막의 소리는 무대와 객석의 양단을 아우를 정도는 되었고, 그 말인 즉 날개는 되어주지 못하더라도 장애물이 되었던 것 또한 아니라는 뜻이므로. 모쪼록 이제 단 8회 남은 공연, 시아준수가 의도한 그대로 그의 소리를 전해 듣고 싶은 마음뿐이다.
*
“좋아, 그렇게 해주지.”
그녀에 대한 객기 하나로 흡혈을 마친 그의 얼굴이 정면이었다. 루시의 어깨에서 고개를 든 낯빛은 전혀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깊게 파인 미간,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 잔뜩 힘이 들어간 턱. 불쾌하게 배부른 얼굴이 인상에 깊게 남았다.
At Last, 오랜만에 피눈물을 보았다. “당신과 함께.” 막 상체를 틀어 그녀를 마주 보는 순간이었다. 그의 오른 눈가에서 볼 가장자리로 한 줄기 피눈물이 선명하게 흘러내렸다. 미어질 만큼 그림 같았고, 애틋했고,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Loving You Keeps Me Alive, 무릎 꿇은 채로 시작된 오늘의 세레나데. 일어나는 타이밍을 잊은 듯한 그는 언제나 마음을 아리게 한다. 당신의 자리를 찾아 돌아오라는 소절에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며, 자신이 선 곳을 가리킬 때의 간절함 또한 곱절이 되는 듯해.
“그댄 나만의 숨결”은 오늘 역시 눈물범벅이었다. 소리로 눈물을 빚는 소절로 아예 간택된 모양이다. 좋아하는 소절이라 더더욱 환영이야.
2막에서 개선된 음향을 선보이기까지 1막은, 특히 삼연곡은 실험적 음향의 연속이었다. 노래 중간에 음량을 조절하거나 갑자기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확대하는 등 ‘음향팀’의 존재감이 뚜렷했다.
그러나 열연에는 대항마가 없었다. 삼연곡 내내 그러니까 She와 러빙유 직후 박수를 잊은 침묵으로 객석이 고요했다. 불친절한 음향을 극복하고 눈물의 서사를 청중의 마음에 새겨 넣은 것이었다. 진정으로 시아준수는 삼연곡 장인이고,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 법이었음을. 오늘의 그에게 마음으로부터의 박수를.
덧. 오랜만에 듣는 윗비에서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요.’
기차역에서는 “저스트 조크.”
여자를 웃게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핀잔에 굴하지 않고 다시 “방금 웃었던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