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음향이 좋았다. 쏟아지는 사운드에 휘감기는 감각, 다시 만나기를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스피커와 가까운 오늘의 자리 버프를 감안하더라도 좋았다. 귀가 아릴 정도의 음향, 탄탄한 소리벽에 둘러싸인 충족감. 그 사운드 위에서 그가 노닐었다. 

이렇게 노니는 그가 보고 싶었다. 좋은 음향, 좋은 무대,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의 아낌없는 서포트를 받아 원 없이 날아오르는 그를 보고 싶었다. 음향이 채우지 못하는 소리를 대신 메꾸고, 산만한 무대를 자력으로 환기해내고, 동료가 해야 할 부분까지 짊어지는 그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할 몫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유로운 그를 다시 볼 수 있기를 정말 오래 기다렸다.

바로 그런 Fresh Blood 였고, 그런 Life After Life 였다. 마이크 사고 이후로 나도 모르게 항상 조마조마하게 지켜보았던 회춘이었지. 머리가 아니라 심장이 기억하고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불가항력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심장이 미처 그날의 감각을 기억해내기 전에 그의 무대와 소리가 나를 노래의 한복판으로 데려갔다. 신선한 피 그 자체였던 노래 속에서 여타의 잡념은 끼어들 수 없었다.

오늘의 무대들, 기억으로 길이길이 기념하여도 좋아.

 

*

 

막공주에 돌입한 드라큘라, 오늘은 삼연 마지막일 C였다. 그래서 C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얼굴을 간직하기 위해 노력했어. 오늘 브이라이브의 그가 말했지. “미스터 조나단 하커,” 이렇게 대사를 하며 하나씩 지워 보낸다고. 오늘의 내가 그랬다. C의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나보내는 마음이 이상했다. 4개월의 마지막이 어느새 만져질 거리에 훌쩍 다가와 있는 것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대사의 장면, Lucy & Dracula 1. 내 혈관의 모든 피를 발음하는 얼굴을 정면으로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 

“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미나.” 그녀에게 다가서며 그가 웃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웃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벅차서 끓어오르는 마음이 머리를 따르지 않고 멋대로 입꼬리를 끌어올린 얼굴이었다 할까. 그 정면의 얼굴이 머리카락 차양 속 그림자에서도 형형하게 아름다웠다.

 

기차역. 돌아온 “저스트 조크.” 

재연 막공 때 임혜영 미나에게는 이미 했던 바 있고, 삼연에서 비슷한 시기에 다른 미나들에게 한 차례씩 저스트 조크를 건넬 당시에 임혜영 미나와의 공연에서는 하지 않기에 그렇게 지나가는 줄로만 알았는데. 작심한 얼굴에 덴티큐 동작을 더하여 건넨 “저스트 조크”가 돌아왔다.

진짜는 그다음부터였다.

재연 당시 그의 애드립을 받아치지 못한 것을 4년 동안 못내 아쉬워했다던 임혜영 미나가 마치 오늘만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대답했다.

“오, 마이, 갓.”

브이라이브에서 그가 말한 ‘방’이 아니라 ‘빵!’은 바로 이 대목에서 터졌다.

폭소하는 객석 속에서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기색을 살폈다. 저스트 조크보다 미나의 애드립에서 더 큰 반응이 터진 상황에 그가 섭섭해할까 싶어서. 면밀하게 그의 얼굴을 살피는데, 그가 두 눈을 내리깔았다. 아직 할 말이 남은 기색이었다. 

“sorry.”

입술을 모아서 툭 던진 한 마디에 ‘빵!’보다 더한 ‘빠앙!’ 이 왔다. 객석에게도, 미나에게도.

“항상 이렇지는 않았는데.”

그가 천연스레 다음 대사를 이어가는 순간까지도 그녀는 손에 얼굴을 묻은 채로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태연자약한 그와 웃느라 혼이 난 그녀. 그 대비에 객석에도 재차 웃음이 일었다.

그리고 보았다. 연기를 이어가야 하므로 내색할 수는 없지만 반짝이는 눈 가득 채운 뿌듯함을. 

오늘은 ‘되는 날’이라고 확신한 그의 눈동자를.

 

At Last의 정면도 오늘이 마지막. 마지막으로 보는 정면의 얼굴은 연신 웃었다. 울음으로 처지는 얼굴을 애써서 끌어올려 가며. 그 얼굴이 예뻤다. 빛 받아 투명한 갈색 동공에 눈물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을 샅샅이 보았다. 아래위를 전부 빨갛게 칠한 눈매로도 무해하게 예쁘기만 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블에서 만나는 삼연곡은 얼굴만.. 기억하게 되는 마법. 아니 시아준수 얼굴이 좀 적당히 잘생겨야 노래도 듣고 연기도 보는 게 아니겠나요. 오블의 삼연곡, 얼빠의 행복존. 유난히 더운 오늘의 공기 속에서 꼭 아더처럼 비 오듯 땀 흘리는 얼굴이 반짝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하나 기억나는 거라면.. “날 사랑한 내가 사랑한 그이를 찾았는데.” 미나의 음성에 그가 퍼뜩 깨달은 것처럼 두 눈을 크게 부풀렸을 때 동그란 동공의 갈색빛이 참 투명하여 아름다웠던 것. 곧이어 조나단을 향하여 고개를 돌릴 때 턱선을 따라 그린 듯한 땀방울이 아로새겨져 있었던 것.

 

그리고 대망의 트레인 시퀀스 디테일에 이르렀을 때. 아마도 내 시야가 번져 있었던 것이겠지? 

그의 둘레를 따라 온통 가우시안 블러 처리를 해놓은 것처럼 천사의 후광이 반짝반짝하는데 놀라서 두 눈을 깜빡였어요. 그런데 그래도 후광이 그대로더라. 그 후광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기로 하고, 미나를 향하여 똑바로 뜬 눈동자를 일직선으로 보는데 눈물 번진 눈망울이 그렁그렁 반짝반짝. 미간의 굴곡은 처연하고, 입술은 다부지게 노래하는 얼굴을 보며 정말 이렇게 오블을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제는 왼블보다 오블이 더 좋은 것도 같아요. 삼연곡의 얼굴에서 영원을 살고 싶은 마음 뿐이다.

 

루시의 초대. 루시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을 때의 표정. 얼굴의 모든 근육을 송곳니처럼 날카롭게 갈아서 일으켜 세운 표정이 사납고 매섭고 치명적이었다. 루시가 초대를 부르며 내내 묘사한 ‘그’라는 존재를 그대로 표현하는 이 표정도 오늘로 안녕.

 

놀랍게도 The Longer I Live 도입 구간에서는 내내 눈맞춤을 했다. 마지막인 걸 알고 부러 배웅하는 것 같았던 기묘한 우연. 그래서 노래가 기억이 잘 안 나요. 시아준수 얼굴하고 시아준수 노래하고 붙으면 얼굴이 자주 이긴다니까.

아! 하나, 무너진 성벽을 오르며 어느 소절에 맞추어 두 팔을 활짝 펼쳐 올렸었는데. 정확한 가사가 가물가물해. 내일도 한다면 한 번 기억해보아야지.

 

Finale의 소절은 “부탁해요 제발 내게 밤을 허락해요.”

요즘 내내 물먹어 여린 ‘제바알’의 눈동자. 

그녀가 한사코 거부하려고만 하자,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던 얼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심지를 굳힌 뒤라 한없이 단단하기만 하였던 눈동자. 미나의 등 너머로 그의 단단한 눈빛을 바라보는데, 벽에 가로막힌 것 같았다. 결심한 그는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죽음으로의 일방통행을 이미 시작한 후였다. 

그 예쁜 얼굴로 고집스레 자신이 정한 길을 가려는데, 결심이 서린 미간에 걸쳐진 주름마저 그린 듯이 아름다웠다. 

 

최후. 근래 들어 내가 목격한 마지막은 늘 겨우겨우 고통을 가누며, 무너지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관 어딘가를 붙잡으려던 다급한 손길이었지. 오늘은 달랐다. 오늘의 그는 잠시 휘청하였다가도 자세를 정돈하고 무사히 두 손을 가슴 위로 포개어 올렸다. 

준비된 채, 죽음을 향하여 오라 말하는 사람처럼.

 

사랑을 남겨둔 채 떠나야 하는 그가 못내 마음 아팠으나, 그래도 마지막으로 정면에서 보는 모습이 여느 날과는 달리 스스로를 수습하여 갔음에 감사했다.

 

음.. 오랜만에 긴 글이 되었는데 팔 할이 얼굴 이야기인 것 같네. 하지만 어쩌겠어요. 회개도 필요 없는 얼굴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