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수 임혜영의 조합으로 5월 14일을 넘어서는 피날레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날 프레시 블러드의 마이크 사고는 피날레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버프’였다. 공연의 가장 결정적인 넘버에서 사고를 겪었으니, 신기를 부려서라도 이 공연을 매듭지어야 하겠다는 시아준수의 의지가 만든 엔딩이었다. 이렇게 특수한 상황을 넘어서는 조화가 올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5월 14일과 같은 피날레는 두 번은 없었다. 

오늘이 오기까지는.

 

‘세미막공’이라는, 공연이 좋을 수밖에 없는(시아준수 세미막공의 전통을 몰라하면 안 된다) 요인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5월 14일과 같은 전시체제는 아닌 오늘이었다.

공연 역시 파도처럼 바람처럼 순리를 따라 흘렀다. 그런데 그 순리가 유별난 조화와 만나고, 조화가 재차 몸집을 불리더니 어느 순간에는 파도를 해일로, 바람을 폭풍우로 변모시켰다.

 

러빙유 리프라이즈에서 흘러내린 눈물을 고스란히 품고 나온 그는 피날레 내내 울었다. 눈물 줄기가 뺨에 선연했다. 임혜영 미나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감정이 넘쳐흐르는 모습으로만 보면 오늘은 강강, 강약, 약강, 약약 중에서 ‘강강’인 날이었다. 이렇게 감정이 ‘강강’인 날이면 노래와 연기 또한 일제히 강하게 치달아 끝모르는 강강의 피날레를 만들던 공연도 있었으나, 오늘은 달랐다.

강과 강 사이에 여리고 망가질 것 같은 섬세함이 귀신같은 조화로 존재했다.

 

그 결정적 순간이 원음의 차가운 “암흑 속에”였다.

 

뾰족하게 튀는 대신 어두운 바다로 가라앉아버리는 음성. 그래서 한없이 연약하고 견딜 수 없게 고독한 소리. 앞 문장의 강을 약으로 매듭짓는 균형의 추가 되는 소절.

5월 14일과 같이 원음에 가까운 소리도 아니고, 원음 그 자체였다. 3월 이후로는 “차가운 암흑↗︎ 속에↗︎”의 변주가 완전히 정착되었으니, 거진 3개월 만에 듣는 원음이었다. 

그 터트려내지 않는 비통함을 듣는 순간, 나 자신이 심연으로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앞 문장인 “피와 고통의 내 세계를 떠나줘요”에서 그는 산산이 조각난 심장으로 비명 하듯 노래한다. “차가운”의 파열음은 그 바통을 이어받지. 3월 이후 들려준 변주의 “암흑↗︎ 속에↗︎”가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고 고통을 극대화하는 음성이라면, 오늘 원음의 “암흑 속에”는 치솟던 파열음을 심연으로 묻어버렸다. 불꽃 튀는 파열음으로 강을, 그와 철저한 대척점에 있는 깊고 깊은 저음으로 약을 거머쥔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갑디차가운 암흑을 펼쳐 보였다. 문자를 그대로 빚은 듯한 차가운 암흑 속에서, 작은 빛 하나 허락되지 않는 절망의 노래가 탄생했다. 

 

이처럼 가장 비극적이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파열음과 심연의 음성이 나란한 피날레.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단 두 문장으로 자석의 양단을 오가는 오늘의 피날레에 영원을 놓고 싶었다.

삼연, 나의 여정을 여기에서 맺고 이제는 뽀너스 트랙을 듣는 것처럼 오직 기쁜 마음 하나로만 막공을 맞이하고 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막공은 이별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삼연의 드라큘라가 영생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기도 한 날이니까.

오늘까지만 눈물로 배웅하고 막공을 맞이해야지.

 

오늘은 피날레에서 잠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