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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뮤지컬 모차르트! 김준수 라운드 인터뷰 01 : 일문일답

일자 2020-07-31
분류 인터뷰
일정 2020 뮤지컬 모차르트! 김준수 라운드 인터뷰 01 : 일문일답
출력 분류 2020 뮤지컬 모차르트!
출력 제목 김준수 라운드 인터뷰 01 :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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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31
  • 보도
  • 2020 뮤지컬 모차르트!
  • 김준수 라운드 인터뷰 일문일답들을 모아서 봅니다. 전문은 각각의 링크에서 확인해주세요.

     

    *

     

    소나무 같은 김준수 "돈이 아깝지 않은 무대, 제 숙명이죠"

    star.mt.co.kr

     

    김준수를 보고 있노라면, 소나무 같다.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꿋꿋하게 열정을, 10년이 지난 지금도 무대 위에서 고스란히 관객석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뉴스는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지 10주년을 맞은 김준수, 한결같이 자신의 열정을 무대 위에서 고스란히 선보여 감동을 안기고 있는 김준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10년 전 뮤지컬 '모차르트!'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모차르트!'를 하게 된 건 10년 전 동병상련의 심정이었죠. 그때 당시에 느꼈던 건 모차르트처럼 제가 천재는 아니지만 '모차르트!' 시나리오를 보고 그가 겪고 있는 감정에 동병상련의 느낌이 들어 동화됐어요. 당시 테크닉적으로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으로 무대에 임했어요. 자랑은 아니지만 그 때 당시에는 제가 뮤지컬의 뮤자도 몰랐을 때에요. 모차르트의 인생을 테크닉적으로 그려내고, 다가가려고 했으면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모차르트!'는 제 이야기 같았고,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어요. 또 그 당시의 제 감정 상태를 '모차르트!' 대본에서 나타내고 있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서 뮤지컬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10년 전 '모차르트!'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떠셨나요?

    '모차르트!'로 작품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것 같아요. 그때는 상황도 상황이었고, 지금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죠. 지금은 아이돌 가수 분들이 자연스럽게 영화를 하고, 드라마를 찍듯이, 아이돌 보컬 분들이 공백기에 좋은 뮤지컬 섭외가 들어오면 선택하는 게 자연스럽고, 지금은 존중받고 환영 받잖아요. 제가 뮤지컬을 처음 할 때만 해도 뮤지컬이 40~50대 중장년층의 매체였어요. 지금은 10대들도 보고 남녀노소 누구나 다 보는 장르가 됐어요. 제가 처음 했을 당시에는 아이돌 가수가 뮤지컬을 한다는 게 환영을 받지 못했던 시기였어요. 저 역시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죠. 뮤지컬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은 있었지만, 상황도 상황이었고 제 자신도 너무 무섭고 관객도 두려운데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해보지도 않은 장르로 첫 행보를 내딛는 건 더더욱 부담이었거든요. 환영 받지도 못하는 걸 알고 있었고, 욕을 먹을 텐 데라는 걱정이 더 많았어요. 처음에는 힘들겠다고 생각해서 정중하게 거절을 했었어요. 그래도 '모차르트!'였기 때문에 뮤지컬 배우로 시작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모든 작품의 제안이 감사하지만, 그 당시에 '모차르트!'가 아니었다면 '죄송합니다'라고 했을 것 같아요. 제가 무대 위에서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행복하겠다라는 마음에 용기를 내서 하게 됐죠.


    '모차르트!' 초연 후 딱 10년 만에 다시 모차르트를 연기하게 됐어요. 그것도 같은 장소에서 말이에요. 소감도 남다를 것 같아요.

    10년 전 같이 했던 배우들과 같은 장소에서 얼굴을 보면서 노래하고 있는 게 저에게는 짜릿함이 있어요. 10년 동안 뮤지컬을 해오면서 테크닉적으로 발전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모차르트!'만큼은 그걸로 뒤덮고 싶지 않았어요. 10년 전 관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때 당시의 정제돼 있지 않지만, 날 것의 제가 좋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게 어떤 걸 지칭하는지 몰랐지만, 얼추 느낌은 알고 있었어요. 10년 전의 마음으로 '모차르트!'를 대했던 것 같아요. 그런 마음으로 연습을 했고요. 저 역시 '10년 전 감정을 떠올려서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했었는데 음악이 주는 힘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넘버 '황금별'은 지금 공연하면서도 들으면 울컥하거든요. 10년 전의 나인 것 같고, 10년 전의 나로 돌아가 이어서 연기하고 있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요.

     

    김준수에게 있어서 '모차르트!'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들과 배역들이 저에게는 하나 하나 다 소중해요. '모차르트!'는 뮤지컬 배우로서 저를 이끌어주고, 뮤지컬이라는 무대에 저를 입문하게 해준 첫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것 같아요. '모차르트!' 시나리오에서 노래가 저의 마음을 이끌지 않았다면 '그 후에도 뮤지컬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지금도 한 편의 뮤지컬을 안 했을 수도 있구요. 다른 작품으로 뮤지컬 무대에 오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웃음) 결과적으로 '모차르트!'가 없었다면 뮤지컬 배우라는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기 때문에 이것만큼 중요하고 소중한 작품은 없다고 봐요.

     

    '모차르트!' 데뷔 첫 공연과 비교해 '모차르트!' 10주년의 첫 공연에 올랐을 때 감정은 어땠나요?

    '모차르트!' 초연 이후 '드라큘라', '디셈버', '데스노트', '도리안 그레이' 등 생각보다 많은 작품을 열심히 해왔어요. 제가 잘 떠는 성격이 아닌데 오랜만에 떨렸던 것 같아요. 뮤지컬은 긴장을 안할 수가 없지만, 오랜만에 그 이상의 떨림을 느꼈던 것 같아요. 관객분들 중에서 10년 전의 감정을 기억하시는 분들, 결혼을 하든 다른 가수가 좋아져서 잠시 저를 놨던 분들이 다시 '모차르트!'를 떠올리며 보러 오신다는 분들이 꽤 있다고 들었어요.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고, 다른 방향을 보고 있지만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그분들에게 그때 그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또 다른 긴장감이 있더라구요.

    저 역시 오랜만에 밝고 명랑하게 해야 하기도 하구요. '25살때 처럼 할 수 있을까'?, '프레스토 비바체를 귀엽게 할 수 있을까?' 등 그런 걱정이 있었죠. 아실지 모르겠지만 '모차르트!'를 한 번이라도 했던 배우들은 똑같은 말을 해요. 자신이 출연한 필모그래피 중 제일 힘든 작품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영락없이 '모차르트!'를 이야기 해요. 저 역시 10년 전 '모차르트!'를 했을 때 너무 힘들었어요. 이후에 다른 작품을 하면서도 '힘들다'고는 하지만, '모차르트!'가 가장 힘들었어요. 이러한 심리에는 '아무래도 뮤지컬의 뮤자도 모르고, 처음이라서 이렇게 힘든건가?', '기술적으로 완성되지 않았고, 놀란 마음에 힘든건가?'라는 게 있었어요. 어렸을 때 초등학교가 커보였는데 지금은 작은 것처럼 '모차르트!'가 힘들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아니더라고요. (웃음) 제일 힘든 게 맞더라고요. 좋게 생각하면 처음에 힘든 작품을 했기 때문에 그 어떤 작품도 두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체력적인 것만으로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노래 난이도도 힘들고, 어레인지도 커요. 노래 양도 많고 외워야할 양은 가히 독보적이에요. 땀을 닦을 시간이 없는 작품은 '모차르트!' 뿐인 것 같아요. 땀이 입으로 흘러서 노래가 안 불러질 정도로 입술이 미끄러워요. 체력적으로 숨이 찰 걸 알면서도 연기를 시작해야하기 때문에 '모차르트!' 마지막 장면까지 하는 건 뿌듯함이 있어요. 그 어떤 작품의 타이틀 롤과 비교할 수 없이 체력, 스킬 등 생각할 게 많거든요. 또 10년 전에 했었던 작품이기 때문에 그때 봐주셨던 분들에게 배우로서 더 성장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럼에도 힘든 '모차르트!'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음악의 힘이죠. 또 저를 뮤지컬 배우로서 데뷔하게 해준 감사하고 뜻 깊은 뮤지컬이기도 하고요. 저에게도 뮤지컬 데뷔 10주년이지만, 작품 역시 10주년을 맞았어요. 저랑 같은 날 탄생했는데 '모차르트!' 10주년 공연을 제안 받았을 때 안할 이유는 없었어요. 운명 같은 느낌이었죠. '모차르트!'를 통해 많은 위안을 받았고, 제 인생의 길에 대한 용기를 가지게 해준 작품이었어요. 매회 연기하면서 발트슈테텐 남작부인이 불러주는 '황금별'은 모차르트에게 해주는 이야기지만 저한테 해주는 이야기 같았어요.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듣고 있어요.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나요'도 모차르트를 빌어서 그때 당시에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세상에 대고 외치고 싶었던 이야기였죠. 모차르트도 자신을 천재로 봐주지 말고 잇는 그대로 봐달라고 하잖아요. 저는 천재는 아니지만, 날 있는 그대로 봐주고, 연예인이 아닌 그냥 사람 김준수로 평가하고,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면 안될까라는 마음으로 노래를 했어요. 노래를 하면서 울분도 많이 씻겨져 내려갔고, 위로와 위안을 받은 작품이에요. 다시 한다고 했을 때 운명 같은 느낌이었죠.

    지금도 공연하면서 '이게 마지막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웃음)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지만, '모차르트!' 엔딩에서 죽을 때마다 정말 반으로 죽는 느낌으로 연기하고 있어요. 연기를 할 때 힘이 쭉쭉 빠져요. 요즘 제가 살이 쪘어요. 뮤지컬 끝나면 체중 관리한다고 잘 안 먹는데 '모차르트!'를 하고 나면 정말 허기가 져요. 노래하다가 2막 중간 쯤에 '배가 고프다'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은 '모차르트!' 밖에 없어요. 땀이 많이 나고, 많이 뛰어다니고 고음도 많다 보니까 공연을 하다 보면 '배가 고프네' 이런 생각이 들 정도에요. 끝나고 나면 그만큼 뿌듯해요.

     

    '모차르트!' 속 넘버 '황금별'은 김준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발트슈테텐 남작부인의 또 다른 욕망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극중 모차르트와 같은 의미를 지닌 건가요?

    그래서 '모차르트!'가 좋은 것 같아요. 극을 볼 때마다 새로운 의문이 들고 생각도 달라지고 이야기 자체가 열린 결말이거든요. 물론 모차르트의 인생은 비극이지만요. 저도 이런 생각을 안했던 건 아닌데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시더라구요. 저에게 '황금별'은 매번 할 때마다 달라요. 어떨 때는 울컥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행복하게 듣기도 해요. 다른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이게 바로 뮤지컬의 묘미라고 생각해요. 관객분들 역시 볼 때마다 관점이 달라지고 시각이 달라지고 어떤 배우에 이입해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모차르트!'에서는 센스를 엿볼 수 있는 애드리브 구간이 많은 것 같아요. 애드리브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지, 또 준비되어 있는 게 많은지 궁금하네요. 또 손준호, 해나 배우와 합을 맞출 때 새로운 애드리브가 많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드라큘라' 70회차 중에 50개 버전의 애드리브가 있었는데 그걸 다 한 것 같아요. '모차르트!'는 애드리브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워낙 많아서 다양하게 하고 있어요. 애드리브가 극을 훼손하거나 방해하고, 캐릭터를 이상하게 만들면 절대 안된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시나리오가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있다. 애드리브는 이런 시기에 객석을 찾아와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소소한 재미를 위해 배우로서 고민하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웃음) '드라큘라' 때는 애드리브가 백전백승이었어요. '모차르트!'에서는 빵과 방의 차이인 거지 아직까지는 실패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애드리브를 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그 중에 하나씩이라도 바꾸고 있긴 해요. 상대 배우가 대사를 바꿔줘야 애드리브를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요즘은 상대 배우와 맞추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혼자 할 수 있는 애드리브가 떨어졌거든요. (웃음) 그래서 요즘은 상대 배우에 맞추고 있어요.(손준호, 해나와) 애드리브요? 의도한 건 아니에요 (웃음) 사실 무대 애드리브를 하려고 마음 먹고 나가도 느낌이 이상할 것 같으면 안할 때도 많아요. 이건 매번 다른 것 같아요.

     

    10년 동안 '모차르트!'도 다양한 변화가 있었잖아요. 초연과 달라진 부분에 대해서 아쉬움은 없나요?

    무대가 달라지고 곡의 순서가 바뀌었어요. 제가 '모차르트!'를 초연, 재연에 이어 세 번째 하는건데 중간에 곡이 없어지기도 하고 늘어나기도 했어요. 또 신도 추가가 됐죠. 익숙함이라는 건 무서운 것 같아요. 뮤지컬은 항상 선택과 집중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창작 뮤지컬을 많이 해봐서 의견도 많이 내다보니 많이 배웠어요. 아쉬운 부분은 항상 많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과 집중 속에서 잘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초연의 감성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초연의 감성이 없어진 것에 대해 아쉬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초연에서 아마데가 수동적이었다면 지금은 주동적으로 바뀌었어요. 아마데가 모차르트를 삼키는 표현을 잘한 것 같아요.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눈치 채신 분들은 아실 것 같아요.

     

    2막 악몽 신에서 악몽은 아마데가 만들어낸건가요? 아니면 모차르트의 심리가 만들어낸 악몽인건가요? 사실 저는 '얼마나 잔인한 인생인가'부터 모차르트가 아마데에게 잠식 당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게 맞아요. 펜을 뺏는데 뿌리치고 머리에서 끄집어내서 악상을 담잖아요. 그게 처음이긴 한데 모차르트가 아마데에게 공포를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냥 '뭐지?' 싶었던 것 같고, 공포를 느끼고 말고 떠나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아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조차도 '왜 악상이 떠오르는거지?'라는 게 표현이 됐어요. 그거에 맞는 '영감, 악상이 떠오른 것'에 대한 것을 처음 느끼는 건 맞아요. 그런데 공포를 느끼고 '이 운명을 벗어날 수 없겠다'라는 것과 아마데라는 그림자가 '평생 날 따라오겠구나'라고 느끼는 건 '내 운명 피하고 싶어'부터 2막으로 이어져요.

    이건 받아들이기 나름인 것 같아요. '모차르트!'는 일부러 그렇게 되기를 바란 뮤지컬이에요. 획일화 된 정답은 없어요. 연기하는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제가 정답이라는 건 아닌데, 제가 생각했을 때는 나의 천재성이 나를 삼켜버렸다라는 표현인 것 같아요. 천재성을 아마데로 의인화했고, 아마데에게 안아달라고 손을 뻗는 건 위로를 받고 싶었던 거거든요. 천재성이 나를 잠식했다는 걸 명확하게 보여주는 신 같아요.


    '모차르트!'를 같이 한 많은 배우들이 '내일이 없을 정도'로 공연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매 회 내일이 없이 공연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처음엔 제가 신인이니까 기특해서 그렇게 말하는 줄 알고 감사하게 받아들였어요. 많은 배우분들이 저를 신기하게 보시더라고요. '다 똑같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었고요. 처음에 어떤 부분을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몰랐어요. 물론 지금도 모르겠고요. (웃음) 팬분들 조차도 그렇게 연기하는 걸 좋아해주신다고 하더라고요. 아직도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저만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개인적으로도 모든 무대에 최선을 다해요. 대사 하나, 한 걸음 걸이, 제스처와 표정 하나 하나 등 단 하나의 실수도 없이 하려고 하고 있어요. 실수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요 (웃음) 모든 작품들이 다 힘들지만, '모차르트!'는 끝나면 '모든 걸 쏟아냈다'라는 생각이 안 든 적이 없어요.

    제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찾아와주시는 관객들 덕분이에요. 지금도 제대로 된 홍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매번 찾아와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달하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더군다나 요즘 같은 시기에 찾아와주셔서 응원해주시는데 제가 더더욱 할 수 있는 건 좋은 무대로 보답하는 거죠. 적어도 '돈이 아깝다'라는 생각이 안 들게 해야하는 게 저의 숙명 같아요. 적어도 제가 배우로서 아낌없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웃음)

     

    '모차르트!' 마지막 공연까지 3주 정도 남았는데 어떤 모습으로 관객과 만날 예정인가요? 또 관객분들이 중점을 두고 봤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배우들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최소 한 달에서 한 달 반 공연을 해요. 좋은 공연을 위해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안전하게 아무 문제 없이 무사히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관객분들이 어려운 시국 속에서 찾아와주시고 있기도 하고요.

    관객분들이 저도 몰랐던 디테일을 찾기도 하시더라고요. 저 역시 같은 대사를 하더라도 다른 톤으로 하고 싶어질 때는 자유롭게 하기도 해요. 보시는 분들도 자유롭게 봐주셨으면 해요. 각자의 초점에 맞춰서 보시겠지만 저는 모차르트가 아닌 아마데를 많이 지켜봐주시면 더 재밌을 것 같아요. (웃음) 아마데가 굉장히 많은 걸 하고 있거든요. 아마데가 주는 메시지가 강해요. 아역 친구들이 어리지만 그 많은 동선과 타이밍을 외워서 연기하는 게 참 기특해요. 그 기특함을 봐주세요. 제가 저 나이에 저럴 수 있을까할 정도로 기특하거든요. 모차르트의 기분, 정신 상태를 아마데로 의인화 했기에 모차르트의 혼란이 피부로 와닿을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관람해주시면 더 재밌을 것 같아요.

     

     

     

    김준수, "제 자신이 기특하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해요."

    withinnews.co.kr

     

    오랜만에 인터뷰

    저도 몰랐는데 본의 아니게 전역하고 첫 인터뷰입니다. 떨리는 것도 있고요. 잘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뮤지컬 <모차르트> 첫 공연에서 팬들이 울었다고 하던데..

    저도 만감이 교차했던 것 같습니다. 10년 전에 제가 이 작품으로 데뷔를 했는데 같은 작품으로 10년 만에 똑같은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모차르트>도 10주년이고 저도 뮤지컬데뷔 10주년

    이라 감회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모차르트>를 오랜만에 하면서 데뷔 때와 같은 장소에서 무사히 잘 끝냈다는 안도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자체도 객석에 계신, 이번에 저를 처음 본 분들도 계실테고 변함없이 와서 응원해주는 것을 보니까 그런 점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더욱 더 느껴져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데뷔 후 10년, 그때의 <모차르트>와 현재의 <모차르트>

    제 마음에서 10년 전 <모차르트>를 했던 심정으로 공연에 임하고 싶어서 '그때 어떻게 했었지?' 그때로 돌아가서 연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10년 전 <모차르트>를 처음 접했을 때 기술적인 것들은 부족했겠지만 당시 제가 처한 상황이나 그때 만이 줄 수 있는 날 것의 느낌들이 더 좋았던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지금이 기술적으로 진보되고 좋아진 모습을 있었겠지만 예전의 감성을 끄집어 내려고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10년 전 되돌아보는 마음은

    지금까지 10년 동안 한해 한해를 지나올때는 몰랐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단지 제 앞에 닥친 것을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그 당시에는 적어도 미래가 순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의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사치였어요. 당장 앞에 닥친 그런 스케쥴, 뮤지컬 작품들을 하나하나 잘 해나가자라는 것이 목표였고요. 시간이 지나서 10년을 되돌아보니까 나름대로 다양한 창작도 했었고요. 그 작품들 속에서 해왔더라고요.

    지금 돌아보면 약간은 뿌듯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단 한번도 방송에 나와서 뮤지컬에 대한 홍보를 지금도 제대로 한 적이 한번도 없었고 그런데도 이렇게 와주신 팬들이 있었기에 제가 더욱 그 분들에게 감사함을 무대에서 더 보답하고 싶어서 목메여서 했던 것 같고요. 그것이 좋은 순환이 되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어서 제 자신이 기특하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해요.

    이렇게 해왔으니까 '정말 잘해왔다' 나름 이런 생각도 합니다만 다시 10년 전으로 가서 알고 시작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생각보다 가는 길이 힘들었다고 생각해서요. 오히려 몰랐기 때문에 해왔던 것이 아닌가합니다. 모든 것에 감사해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10년 전 캐릭터은 어떻게 만들었나

    <모차르트>는 캐릭터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캐릭터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니까요. 저에게는 첫 뮤지컬이라 연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 상황과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고 당시에는 생각했어요.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하고 싶었던 장르이긴 하지만 새로운 발걸음을 감히 뮤지컬로 하기 쉽지 않았거든요. 원래는 거절 했었습니다.

    잘 해낼 자신도 없었고 두려웠어요. 제가 가수로서 오랜만에 팬분들에게 나서는 것조차도 떨릴텐데 아직까지 해보지 않았던 장르로 한다는 것도 숙제였고 도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제 상황이 너무 비슷해서 그것에 빠져서 했던 것 같습니다.

    역시나 <모차르트>를 하는데 정말 빠져서 하게 되더라고요. 모차르트가 어떤 말투이고 어떻게 자랐는지 모르지만 그 시나리오 안에서 저를 대입해서 했던 것 같습니다. '황금별', '왜 나를 사랑하지않나요' 라는 가사를 보고 내가 이 노래를 무대 위에서 관객분들 앞에서 부를 수 있으면 제 기분으로 설명하지 못했던 어떤 부분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시작하고 나니 그렇게 정말 쉽게 동화됐던 것 같습니다.


    연예인 패턴에서 벗어난 김준수

    뮤지컬배우가 더 맞는 것이 아닐까는 아니고요. 뮤지컬을 좋아할 수도 있지만 자의든 타이든 두가지가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뮤지컬을 좋아하게 된 첫번째 이유는 제가 무대를 설 수 있을까? 다시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을까? 관객분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이 컸을 때 뮤지컬로 다시 관객분들을 만날 수 있었고 시상식을 나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할 때 뮤지컬을 통해서 시상식에도 가봤고 뮤지컬로 좋은 상도 받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반대로 제가 뮤지컬을 사랑하고 감사하고 그래서 더 뮤지컬을 사랑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뮤지컬에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도움이 되고 싶었고 저도 뮤지컬을 통해 제 2의 꿈을 펼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반대로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하는 것에 대해서 선배분들이 "왜 창작뮤지컬을 많이 하니?"라는 말씀을 주셨거든요. 창

    작뮤지컬은 사실 두렵거든요. <모차르트>도 창작은 아니었고요.

    그런데도 매년 창작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뮤지컬로 그런 창작작품으로 관객분들이 오시면 대한민국 창작뮤지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제가 뮤지컬에게 사랑 받는다고 생각하니까 제가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자의는 그랬고요.

    타의로는 더 목멜 수 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른 배우들처럼 가수하다 연기도 하고 가수하다 공백기간에 뮤지컬을 하는 것이 저는 아니었어요. 저에게는 뮤지컬이 마지막 남은 칼 한자루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 한자루를 놓치면 무기를 모두 잃을 것 같고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러니까 더 뮤지컬에 올인하고 나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다른 마음가짐으로 남 다르게 뮤지컬을 대하지 않았나? 지금와서 보면 좋게 그 마음을 관객분들이 알아주시지 않았을까 그래서 여기에 오지 않았을까요.

    물론 뮤지컬 그 자체가 도전이었는데 안주하고 싶지 않았고요. 솔직히 이야기하면 저는 과거 이야기하면서 추억팔이를 하는 가수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되면 연예활동이나 모든 것을 그만두고도 싶었습니다. 저는 소신 껏 나온 것이지 뭔가를 원해서 나온 것은 아니었거든요.


    데뷔는 <모차르트>, 나를 배우로 만들어준 <엘리자벳>

    <모차르트>는 저에게 뮤지컬로 발걸음을 걷게 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요. <엘리자벳>으로 뮤지컬배우로 불리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실제로 <모차르트> 보다도 <엘리자벳>에 캐스팅 되었을 때 더 욕을 먹었어요.  세계적으로 <엘리자벳>의 '죽음'역이 중후한 40~50대 남자들이 그 역을 했었는데 불과 26~7살이었던 그 당시에는 아직까지 아이돌이라는 타이틀도 있었거든요.

    기술적으로도 부족했었을텐데 그런 상황에서 <엘리자벳>이라는 작품을 한다고 하니까 제 기억으로는 엄청난 반응을 받았어요. 연예계 모든 인생에서 단 한번도 순탄하게 흘러간 적은 없었지만요. 10년 동안 매 작품을 하면서 두려웠던 것 같고 단 한번도 쉽게 시작한 적 없던 것 같습니다. 뮤지컬도 그랬고 가수 활동도 그랬고요.

    저에게 <엘리자벳>이 감사한 것이 뮤지컬배우로서 인정을 받았던 것도 있었지만 뿌듯한 것이 제 이후부터 반대로 '죽음'이라는 역이 젊은사람들의 역으로 추세가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엘리자벳>으로 제가 감사하게도 남우주연상을 처음 받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엘리자벳>은 제게 정말 뮤지컬을 잘해보고 싶다라는 다짐을 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차르트>는 감사했지만 내가 뮤지컬을 더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그 당시에 했다면 <엘리자벳>부터는 정말 제2의 꿈을 뮤지컬배우로 펼쳐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엘리자벳>이후에는 뮤지컬 사랑에 빠져서 전세계 뮤지컬 음악을 찾아 듣는 정도입니다.

     

    연기의 두려움을 없애준 뮤지컬 <디셈버>

    처음에는 무대에서 대사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몸 연기, 표정연기나 노래로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동방신기 시절부터 잘 한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연기를 그런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으니까 그런 두려움이 있던 것 같아요.

    그 두려움을 없앴던 작품이 <디셈버>라는 작품이었는데 뮤지컬보다 연극에 가까웠죠. 당시 장진 감독님과 함께하면서 제가 연기나 대사를 하는 것에 도약을 했던 것 같습니다. <디셈버>가 대사가 많았거든요. 그러고 나니까 그런 두려움이 없어지고 작품을 하면서 제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기더라고요.


    김준수가 트로트 하면 잘 할 것 같은데

    목소리가 트로트나 창하기 좋은 목소리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어머니가 창이나 트롯을 잘하세요. 창을 하면 좋은 목소리이긴 해요. 사실 그런 장르를 불러본적은 없어서 자신있다 그런 것은 아니예요.

    볼 기회가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엄청난 도전인데 모르겠습니다.

     

    노래 연습, 발성 연습

    뮤지컬 발성은 당연히 개인적으로 연습을 하고 배우고 있고요. 저에게 최고의 배움은 작품을 해나가면서 깨닮음인 것 같습니다. 동방신기 그룹 활동할 도때 노래 연습을 하면서 실력이 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당시에도 앨범을 내면서 늘었어요. 뮤지컬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뮤지컬배우로 성장하면서 도움을 준 사람

    <모차르트> 처음 할 때 당시는 지금보다 더 가요창법을 하는 목소리로 가까웠습니다. 저도 제가 가수 분들 뮤지컬을 하는 것을 보면 어떨 때는 가요처럼 들릴 때가 있어요. 저도 초연때 그랬을 수있지만요. 지금은 많은 분들이 알고 들어주시지만 지금도 해외에서 제 목소리를 모르고 들으시는 분들은 깜짝 놀라요. 제 목소리가 특이한가봐요. 더군나다 이런 목소리로 뮤지컬을 하고 이런 목소리로 노래와 연기하는 것에 있어서 관객분들이 이질감이 있을 이라는 고민을 했거든요.

    물론 제가 성악발성은 아니지만 저의 개성을 살리면서 계속 해오다보니 그 적절함을 찾았거든요. 저는 뮤지컬배우가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 개성을 살리면서 그 작품 안에 동화하고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잘 됐을때 독보적인 자신만의 색과 무기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작업을 하려고 했었고요.

    하지만, 정말 처음에는 뮤지컬을 해 본적도 없고 어떻게 소리를 내야 할 지 몰라서 고민을 하고 있었죠. 지금은 여러 개성이 존중하고 그게 모여서 하는 것이 종합예술인 뮤지컬이다 라고 정착이 된 것 같은데 그때 당시에는 뮤지컬하면 성악발성이 고착화 되었던 때라 저도 그때 그런 것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어어어" 하면서 성악 발성을 흉내면서 연습을 했던 것 같아요.

    그때 당시 <모차르트> 초연의 유희성 연출님께서 제가 고민도 많이 하고 어설프게 따라하니까 "준수야 네가 그것을 따라할려고 하지 말아라. 그런 목소리를 듣고 싶은 관객들은 그런 목소리로 노래하는 배우를 볼 것이고 너를 보는 사람은 너의 노래 스타일을 듣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단 그것이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게하는 것을 네가 찾아내면 된다. 너의 목소리와 너의 스타일로 해라. 그러면 호불호는 어느 배우에게나 있다. 다만, 너의 모습을 호로 만들 수 있는 너만의 무기를 만들 수 있는 배우가 되어라. 너의 개성을 살리면 다른 배우가 너처럼 못한다. 그런 쪽으로 너의 뮤지컬배우로서 노선

    을 정했으면 좋겠다." 라고 해주셨는데 그 말씀이 유레카 같은 거였어요. 제가 정말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 이후 매번 연습을 하고 연습을 할때마다 다르게 불렀던 것 같아요. 그 말씀에 용기를 얻었고요. 그 말씀에 돌파구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만의 뮤지컬 연기와 노래를 좋아해주시는 팬분들이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이후 제가 어떻게 <모차르트>를 해야겠다는 것과 '뮤지컬을 이렇게 다가가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지금의 <엘리자벳>, <데스노트>나 여러 작품에서 제 개성을 살리지 않았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돌아보면 저에게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방송에 대한 미련 많습니다.

    오히려 방송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가 지금은 있어요. 많아요. PD님 조차도 "네가 원해서 안나간 것 아니야?" 그러시더라고요. 제가 방송을 못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본인이 원해서 안나온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머리에 무엇을 맞은 듯 하더라고요. 지금까지 방송에 나가고 싶어서 고군분투를 했는데 물론 시간이 지나서 보니까 제가 포기한 것도 있죠. 해도 안되고 미팅 후 녹화날도 잡혔는데 엎어지고 계속 그러니까요.

    한편으로는 마음을 놨어요. 놓고 싶어서 놨다기 보다 그걸 기대하고 잡고 있으면 더 힘드니까요. 어느 순간 제가 최면을 걸었던 것 같아요. '내가 안나가는거야' 라고요. 하지만 섭외요청이 오면 단 한번도 거절하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좋은 프로그램에 나오고 싶었다면 작은 프로그램에라도 나갈 마음이 있고요.

    그런 생각을 했어요. 방송이 안나오니까 저는 10년 전 그대로 인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방송에서 소통을 하지 않고 있으니 좋게 말하면 신비주의 인데 나쁘게 이야기하면 인간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요. 저는 제 이미지가 그런 이미지 인지 몰랐어요. 제가 입대를 했는데 다들 저를 무섭고 깐깐하고 자아도취되어 있는 그런 사람으로 봤었다는거예요.

    내 주위에서 저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요. 재판이야기 나오지, 가끔 재산 이야기 나오지 그런 이야기만 나오니까 그냥 인간미 없겠지 생각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정말 방송을 통해 소통하고 싶다. 그런 것들이 모든 대중들의 생각이라면 바꿀 자신이 있는데 그런데 방송이 쉽진 않더라고요.

    감사하게도 '공유의 집'도 정말 행복했어요. '미스터 트롯'도 행복했는데 쉽게 풀리지는 않더라고요.

     

    지난 10년, 앞으로 10년

    지금까지 항상 같은 것 같아요. 지금도 같은데 10년 전에 단 한번도 미래를 그려서 온 적이 없고요. 당장 바로 계약했던 것을 무사히 해나가자.방송이든 행사든 제대로 잘 해나갈 수 없었으니까요. 관객들이 오시면 그것으로 감사하자 그렇게 해왔는데 앞으로 10년을 물으신다면 똑같을 것 같아요. 당장 눈 앞에 있는 것 잘 끝내고 하반기도 잘 끝내보면 '나 잘해왔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차르트!’ 김준수 "뮤지컬과 사랑에 빠졌죠…뮤지컬 계에 도움이 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playdb.co.kr

     

    김준수는 무대에서 빛나는 별이다. 그의 공연 후 커튼콜은 꽤 인상적이다. 공연 중 숨죽이며 그의 모습을 지켜본 팬들은 공연 후 전석 기립으로 화답한다. 팬들의 거대한 함성과 박수소리가 공연장에 큰 파도를 만든다. 지난 29일 만난 김준수는 “뮤지컬에 대한 사랑과 팬들에 대한 감사함”을 인터뷰 내내 전했다.

     

    데뷔작이었던 ‘모차르트!’로 돌아와 공연 중입니다.
    그 당시 초연이었던 ‘모차르트!’도 십 주년을 맞았고 저도 ‘모차르트!’와 함께 뮤지컬을 시작해 올해 십 년이 됐어요. 십 년이 흐른 후 다시 같은 작품으로 돌아오게 돼서 너무 뜻깊어요. 게다가 그때와 같은 공연장이고요. 의미가 있는 작품인 만큼 첫 공연 후에 무사히 잘 끝냈다는 안도감과 그 자리에 함께한 관객들, 변함없이 저를 응원해 주시는 팬들이 있어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 컸어요. 그러다 보니 팬들과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요. 요즘 무대에서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초연 당시 처음에는 ‘모차르트!’ 출연 제의를 거절했다고요.
    뮤지컬을 하고 싶었지만 당시 제가 좋은 상황에 놓인 게 아니었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발걸음을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뮤지컬은 해보지 않은 장르였기 때문에 큰 도전이고 숙제였어요. 그래서 처음에 제안을 주셨을 때 거절을 했어요. 잘 해낼 자신도 없었고 두려웠거든요. 오랜만에 팬분들에게 나서는 게 떨렸고, 더구나 다른 멤버 없이 저 혼자 해야 하는 활동이었고요. 당시 언론에서는 제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었고 진실이든 거짓이든 소문이든 외부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요. 그러다 보니 은둔 아닌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대본을 읽고 ‘황금별’이란 넘버를 듣는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차르트를 빌려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았어요. 실제로 공연할 때마다 답답함이 해소가 되고 에너지를 받는 것 같았어요. 뭔가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속으로만 끙끙 앓았던 것을 모차르트를 통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에 나갈 힘을 받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절 관객들이 좋아해 주셔서 ‘가볼 때까지 가보자’라는 용기를 얻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이십대에서 삼십대의 준수 씨가 됐는데요. 모차르트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 것이 있나요?
    달라지려고 한 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십 년 전의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때 어떻게 했었지’ 기억을 되살리면서 연습했어요. 데뷔 때는 아무래도 연기도 그렇고 기술적인 부족했지만 무대에 있다 보면 ‘내 몸을 온전히 던져서 연기하고 있다’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날 것의 표현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전의 감성을 계속 끄집어 내려고 노력했어요. 당시 뮤지컬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야겠다’ 라는 생각은 감히 해보지 못했어요. 극중 모차르트와 제 실제 상황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모차르트에 절 대입해서 생각했고 그래서 작품에 더욱 더 빠져서 순수한 마음으로 한 것 같아요.

     

    ‘모차르트!’ 이후 ‘엘라자벳’은 ‘완전한 뮤지컬 배우로 새로 태어났구나’하는 점에서 인상 깊은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요.
    ‘엘리자벳’부터는 주위에서 뮤지컬 배우로 인정해 주신 것 같아요. 사실 ‘엘리자벳’ 토드(죽음) 역으로 캐스팅된다고 했을 때 욕을 많이 먹었어요. 세계적으로 토드 역은 4~50대 중후한 남자 배우들의 역할이었는데 뮤지컬 경험도 적은 스물 대 여섯의 아이돌 출신 배우가 그 역을 한다고 하니 제 기억에 엄청난 비난을 받았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중후한 배우들이 했던 스타일로 했다가는 게임이 안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의 장점을 부각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죽음이란 건 무형의 것을 의인화한 거잖아요. 내가 남자이긴 하지만 죽음이 남성일지 여성일지 아무도 모르고요. 그래서 중성적인 느낌을 살려 몸짓이나 걸음걸이도 좀 다르게 하고요. 이렇게 캐릭터를 만들 때 오히려 너무 생각하지 않고 제 감각을 믿고 하는 편이에요.

    제 이후로 토드 역할이 비교적 젊은 배우가 캐스팅되는 추세로 변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게 한 편으로 뿌듯하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엘리자벳’은 ‘앞으로 뮤지컬을 정말 잘 해보고 싶다’라고 다짐을 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점점 뮤지컬을 하게 되면서 매력을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진 게 아닌가 싶어요. 전 세계 뮤지컬 음악을 찾아 듣고 또 들었어요.

     

    뮤지컬의 어떤 매력에 사로잡혔나요?
    모든 노래는 하나의 완결성을 자기고 깨끗하게 마무리 해야 하는데요. 가요는 감정이 더 가면 오버스러워 보일 수 있는데 뮤지컬은 감정적으로 좀 더 가도 되는 게 있어요. 그런 게 뮤지컬을 하면서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오히려 제 목소리가 뭉개지거나 갈라지더라도 지금 그 감정을 가장 최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렇게 소리가 나더라도 그대로 내려고 해요. 음악을 통해 감정 표현을 극대화 하는 것이 가요와는 또 다른 맛이 있는 것 같아요.

     

    뮤지컬을 하면서 들었던 잊지 못할 조언이 있다면요?
    '모차르트!' 초연 때는 지금 아이돌이 뮤지컬 시장에 들어오는 것과는 분위기가 달랐어요.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라는 시선이 강해서 스트레스와 중압감이 장난 아니었어요. 그때는 제가 지금보다 가요 부르는 스타일에 가깝게 뮤지컬 넘버를 불렀는데 지금은 많은 분들이 제 목소리를 알고 들어주시지만 그때 깜짝 놀라는 분들이 많았어요. 제 목소리가 좀 특이하잖아요. 가요계에 있을 때도 제 목소리가 특이하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뮤지컬에서 이런 목소리로 연기하고 노래한다는 거에 이질감이 있었고 저도 그 부분에서 많은 고민이 많았어요.
     
    십 년 전만 해도 뮤지컬에서 성악 발성이 중요했어요. 지금은 알앤비 스타일도 있고 랩이나 힙합 하는 뮤지컬도 있어서 가요 스타일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제가 할 때만 해도 뭔가 성악 발성이 뮤지컬의 표본 이란 생각이 강해서 저도 모르게 그걸 따라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제 모습을 본 유희성 연출이 “준수야 네가 따라 하려고 하지 말아라. 그런 목소리로 노래하는 걸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그런 목소리로 노래하는 배우로 볼 것이고, 너를 보는 사람은 너의 개성, 너의 노래 스타일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야. 너의 목소리가 뮤지컬 음악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조율하고 연습하는 걸 내가 도와줄게”라고 조언해주셨어요. 또 유 연출님이 “너의 스타일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호불호는 어떤 배우나 있다. 너만의 무기를 가진 배우가 돼라. 너의 개성을 살려서 너의 목소리로 너의 스타일대로 하면 다른 배우가 너처럼 할 수 없을 거다. 그런 걸 생각하고 뮤지컬 배우로서의 길을 정하면 좋겠다”고 격려해주셨어요.
     
    그 말을 듣고 “유레카”를 외쳤어요. 내가 '앞으로 뮤지컬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고, 더 큰 차원에서 제 인생의 모토가 됐어요. 그 말이 터닝포인트가 돼서 ‘엘리자벳’, ‘드라큘라’, ‘데스노트’ 등 여러 작품에서 제 개성을 살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실베스터 르베이, 프랭크 와일드 혼 작곡가와도 오랜 인연을 맺고 계시죠.
    두 작곡가님 모두 제 개성을 많이 사랑해 주셨어요. 와일드 혼은 브로드웨이나 다른 나라에서 배우들에게 노래를 시키면 성악처럼 부르는 것에 질려 있다가 제가 그들과 다르게 부르니까 그게 너무 신선하고 좋았나 봐요. “난 너의 보컬이 너무 좋아”라고 이야기해주고요. ‘모차르트!’ 초연부터 오랜 인연을 맺어온 르베이 작곡가님도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

     

    지난해 말과 올헤 초 ‘공유의 집’과 ‘미스터트롯’을 통해 정말 오랜만에 방송을 통해 준수 씨를 만날 수 있었는데요.
    방송에 대한 미련이 없었었다가 그 방송 이후 지금은 방송이 너무 하고 싶어졌어요. 피디님 조차도 제가 ‘방송을 나갈 필요 없어서 안 나온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때 머리에 총 맞은 것 같았어요. 지금까지 내가 방송에 나가고 싶어서 고군분투를 했는데, 물론 시간이 지나서 어느 순간 포기한 것도 있지만 분명히 해도 안 되는 지점들이 있었거든요. 방송을 위해 사전 미팅을 하고 녹화 날짜까지 다 잡았는데 취소되기도 하고요.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방송에 나가려고 뭔가 붙잡고 있는 게 더 힘드니까. 오히려 어느 순간은 스스로 최면을 걸어서 ‘내가 안 나가는 거야’ 라고 포기했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 방송에서 소통을 안 하니까 좋게 이야기하면 신비주의고 나쁘게 말하면 내가 냉혈하고 인간미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저에게 그런 이미지가 있다는 걸 군대 가서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그 전까지는 절 그렇게 생각하시는 줄 전혀 몰랐어요. 나중에 동기들이 친해져서 이야기하는데 제가 엄청 무섭고 깐깐하고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들은 제가 방송을 안 나오니까 잘 몰랐던 거죠. 제 이야기가 가끔 나와도 뉴스에서 재판이나 재산 이야기 나오고요. 그러니 '준수는 인간미가 없겠지'라고 단정한 것 같아요. 그래서 더더욱 소통하고 싶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자’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방송을 통해서 제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앞으로 십 년 후에 준수 씨는 어떤 모습일까요?
    십 년 전의 저는 일단 '앞에 닥친 것을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당장의 하루도 순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미래를 보는 게 사치였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팬들이 뮤지컬을 찾아주시고 그래서 제가 더더욱 팬들에 대한 감사함을 어떻게든 무대로나마 보답해 드리고 싶어서 계속해서 뮤지컬에 올인한 것 같아요. 그런 순환이 계속 이뤄져 지금 제가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제 자신이 기특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울컥하기도 해요. 앞으로의 십 년도 예전과 똑같은 마음일 것 같아요.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앞에 놓인 걸 최선을 다한다면 십 년 후에도 그저 ‘잘 해왔구나’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준수 "동병상련 느낀 '모차르트!', 노래하며 울분 씻겨나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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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 어느 날, 뮤지컬계에서 완벽한 모차르트가 탄생했다. 들으면 '딱 김준수'인 특유의 허스키하고 청아한 음색과 가창력은 물론이고 기교와 표현력, 연기력까지 뭐 하나 빠짐이 없었다. 그 누구도 김준수를 뮤지컬 무대에 처음 오르는 신인 배우라고 여기지 않았다. 관객의 눈에 김준수는 모차르트 그 자체였다. 모차르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일까, 김준수는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쏟아내 모차르트의 드라마틱한 삶을 진정성 있게 완성했다. 톱 아이돌이었고 최고의 보컬리스트 중 한 명이었지만 뮤지컬은 그에게도 맨땅에 헤딩. 김준수는 모든 부정적인 시선을 이겨내고 뮤지컬 배우로 당당하게 세상에 나왔다. 그런 김준수에게 어떤 수식어가 필요할까. 김준수는 김준수일뿐이다.

     

    지난 30일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김준수를 만나 10년을 함께 돌아봤다.


    2010년 국내 초연이었던 '모차르트!'로 데뷔한 후 10년 만에 '모차르트!'를 또 만났어요. 뮤지컬 데뷔 10주년이기도 하지만, '모차르트!' 10주년 기념 공연이죠. 큰 두려움과 무서움을 딛고 했던 작품이라 다시 만난 소감이 남다를 것 같아요.
    10년 전과 같은 장소에서 배우들과 얼굴을 보면서 노래를 하다 보면 짜릿함이 있어요. 시간은 흘렀는데 내 눈 앞에 호흡을 하고 있는 배우들이 똑같아서요. (웃음) 10년 전의 김준수는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배우였어요. 관객들도 그런 제 모습을 좋아해 주셨고요. 시간은 흘렀지만, 노래와 연기 모두 10년 전의 마음으로 하고 싶었어요. '그때 그 감정을 떠올리면서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음악이 주는 힘은 대단해요. 하하. 지금도 '황금별'이나 작품 속 노래들을 들으면 울컥해요. 10년 전의 나인 것 같고, 10년 전과 이어서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죠.

     

    10년 전 '모차르트!' 시나리오를 읽었던 그때의 순간이 기억나나요?
    10년 전 '모차르트!'를 하게 된 건 약간의 '동병상련'이었어요. 물론 제가 모차르트처럼 천재는 아니지만, 그 당시 저의 감정들이 '모차르트!' 시나리오에 있었죠. 뮤지컬의 뮤도 몰랐을 때라 기술적으로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모차르트 자체에 있던 것 같아요. 뮤지컬 배우로 다가갔으면 못 했을 것 같아요. '모차르트!'가 내 이야기 같았고, 내가 느끼고 있던 감정이 대본에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죠.


    동병상련을 느꼈던 배역이었기 때문에 '모차르트!' 10주년 공연 제안을 받았을 땐 처음과 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모차르트!'와 함께 뮤지컬 배우 김준수가 탄생했기 때문에 무조건 해야겠다는 결심도 섰을 것 같은데요.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운명 같은 느낌. 내 인생에 대한 길을 생각하게 하고 용기를 준 작품이었어요. 작품 안에서 모차르트가 하는 말들이 저한테 해주는 말 같았고, 제 이야기를 보여주는 듯했죠. 세상에 대고 외치고 싶은 이야기요. 모차르트가 '나를 천재로 봐주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줘'라고 하는 것처럼, 저도 연예인 김준수가 아니라 사람 김준수로 보고 인정하고 사랑해달라고 외쳤어요. 그런 마음으로 노래하면서 많은 울분들이 씻겨 내려갔고, 위로와 위안을 받았거든요. 그랬던 작품이라 할 수밖에 없었죠.

     

    응어리진 마음을 풀 수 있던 작품이라 설레기도 했겠지만, 10년 동안 많은 작품에 섰기 때문에 처음보다는 더 여유로웠을 것 같기도 해요. 어떤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나요?
    와, 오랜만에 떨렸어요. 제가 잘 떠는 성격이 아닌데 긴장 이상의 오랜만의 떨림을 느꼈어요. 10년 전 김준수표 모차르트를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거고, 잠시 저에 대한 팬심을 내려놓으셨던 분들도 10년 전을 떠올리며 오셨다고 들었거든요. 그때를 회상하고 느끼게 해주고 싶은 욕심에 떨렸어요. 10년 동안 뮤지컬을 하면서 기술적으로 많이 발전했지만, '모차르트!'는 기술과 기교로 덮고 싶지 않았거든요. 25살 그때처럼 밝고 명랑한 모차르트를 할 수 있을까, "프레스토 비바체!"를 귀엽게 외칠 수 있을까 걱정 속에 무대에 올랐죠.

     

    '모차르트!'가 노래도 많고 외워야 할 양이 독보적이라 박효신, 박강현 등 많은 배우들이 체력적으로 힘든 작품 중 하나로 꼽죠. 다시 해보니 어땠나요?
    진짜 힘들어요. 땀 닦을 시간이 없는 뮤지컬은 아마 '모차르트!'가 유일할 거예요. 하하. 뮤지컬을 하면 힘드니까 살이 빠지는데 '모차르트!'는 오히려 살이 쪄요. 체력적으로 힘들고 땀을 쏟아내니까 2막 중간에 허기가 지더라고요. 모차르트가 마지막에 죽으니까, 농담으로 죽어가는 느낌으로 하고 있다고 해요. (웃음) 그렇게 쏟아내고 끝나면 뿌듯하죠.

     

    '모차르트!'가 탄생을 함께 했기 때문에 '모차르트!'가 주는 의미는 다른 작품들과 조금 다를 것 같아요.
    제가 한 모든 뮤지컬들이 다 소중한 작품이고 배역인데 '모차르트!'는 저를 뮤지컬 배우로 이끌어준 데뷔작이라 남다르죠. '모차르트!'의 시나리오와 노래가 내 마음을 이끌지 않았더라면 '과연 내가 뮤지컬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사람의 일은 모르는 거라 다른 작품으로 뮤지컬에 섰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모차르트!'는 뮤지컬 배우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해 준 작품이라 '모차르트!'만큼 저에게 중요하고 소중한 작품은 없을 것 같아요.


    '모차르트!'는 모든 넘버가 명곡인데, 특히 '황금별'을 최고의 넘버로 꼽는 관객들이 많아요. 김준수의 '황금별'은 그때그때 감정들이 다 다르게 느껴진다는 평이에요.
    저도 '황금별'을 들을 땐 감정이 조금 달라요. 울컥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너무 행복하기도 하고 반항아처럼 화가 날 때도 있고 애원하고 싶어 질 때도 있어요. 매번 달라요. 그래서 관객들도 시각이 달라지고 받아들이는 감정이 각각 다른 것 같아요. 그게 뮤지컬의 묘미죠.

     

    '황금별'은 남작부인이 아버지의 욕심으로 집에 갇혀 곡만 쓰는 모차르트에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며 불러주는 노래죠. 10년 전은 여러 상황들로 힘들었던 시기인데, 자유와 성장으로 이끄는 이 곡이 그때의 김준수에게 위로가 됐을 것 같아요.
    그렇죠. (그룹 활동 후) 첫 행보로 뮤지컬을 한다는 건 정말 부담이 됐어요. 당시에는 아이돌이 뮤지컬계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비난을 받을 것도 알고 있었고 그런 걱정들이 많아서 처음엔 뮤지컬을 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했어요. '모차르트!'가 아니라 다른 작품이었다면 제안을 감사하지만 죄송하다고 거절했을 것 같아요. 근데 '황금별' 노래 가사에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내가 이걸 무대 위에서 잘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노래를 듣고 연기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위안이 되고 행복하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얻었죠.

     

    10년 전 뮤지컬 데뷔를 했을 땐 논란도 있었고 우려의 시선도 있었지만 실력과 완성형 무대로 인정을 받았죠. 지금은 아이돌이 뮤지컬로 진출을 하는 게 굉장히 자연스러워졌는데. '1세대 뮤지컬돌'로서 뿌듯하기도 하고 기특할 것 같기도 해요.
    제가 뮤지컬이라는 매체로 진출을 할 땐 아이돌이 뮤지컬계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시기였어요. 관객 연령층도 40대 혹은 50대 중장년층이 많았죠. 지금은 달라요. 1, 20대의 비중도 많고, 아이돌도 잘생긴 친구가 드라마나 영화를 찍듯 보컬들이 좋은 작품에 섭외를 받고 뮤지컬로 오는 게 자연스러워졌어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 뿌듯해요. 이런 질문 자체도 감사하고요. 뮤지컬 시장이 더 커지면 아이돌이 뮤지컬로 진출을 하는 것에 거리낌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심적인 부담감, 체력의 한계 등을 극복하고 무대에 설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팬들에 대한 감사함인 것 같아요. 저는 매번 최선을 다해요. 단 하나의 실수 없이 하려고 했고, 그렇게 해왔어요. 대사의 토시 하나, 걸음걸이부터 제스처, 표정 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공연이 끝난 후 '모든 걸 쏟아냈다'라고 생각해요. 단 하나의 작품도 편하게 한 적 없고, 단 한 번도 대충 하지 않았어요. 뮤지컬을 보기 위해 찾아와 주신 분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특히나 요즘 같은 시기에 공연장을 찾는다는 건 진짜 응원하는 마음이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좋은 무대로 돈이 아깝지 않은 공연으로 보답하는 거죠. 숙명이라고 할까요. 적어도 내가 배우로서 해야 할 건 아낌없이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마음이죠.


    모든 걸 쏟아내서 연기한다는 건 어떤 걸까요?
    (신) 영숙 누나가 '너는 내일이 없이 한다. 발화될 것처럼 한다'는 말을 해주셨어요. 처음엔 신인 배우가 열심히 하니까 기분 좋으라고 해주는 말인 줄 알았는데, 영숙 누나 외에도 다른 배우들도 비슷한 말들을 하더라고요. 어떤 배우는 저한테 다른 배우들에게 느끼지 못했던 걸 느꼈대요. 모든 배우들이 자신을 쏟아내서 한다는 데 저한테는 '김준수만의 것'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매번 그런 소리를 듣다 보니까 저만의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웃음)

     

    11년 차 배우가 됐어요. '내가 뮤지컬 오래 했구나'라는 걸 느낄 때가 있나요?
    되돌아보니 좋은 작품을 했고 좋은 필모그래피를 쌓았다는 뿌듯함에서 오는 것도 있는데 피부로 와 닿는 건 후배가 많아졌다는 거죠. 예전에는 제가 형, 누나를 불렀는데 이젠 제가 오빠와 형이 되어 있더라고요. 하하. 중간에서 조금 위나 중간 연차가 됐어요.

     

    8월 23일 마지막 공연까지 3주 정도의 시간이 남았어요. 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뮤지컬이 한 번의 공연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최소 한 달 반에서 4~5개월 하기 때문에 컨디션이 중요한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안전하게 끝내고 싶어요. 이러한 시국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안전에 주의하면서 공연장을 찾아주시기 때문에 폐를 끼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해내고 싶습니다. 공연을 하면서 같은 대사여도 다른 느낌으로 한다거나, 자유롭게 노래하게 되는데 보시는 분들도 각자의 시선에 맞게 인물들의 이야기와 스토리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김준수 “뮤지컬 데뷔 10주년 기적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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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서머셋 팰리스에서 만난 김준수는 “10년 전에 ‘모차르트!’로 뮤지컬배우로서 첫발을 뗐는데 10주년 무대에 서게 돼서 영광이고 감회가 새롭다”며 “다시 한번 위안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모차르트!’를 하면서 10년 전과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신인일 때와 달리 내 생각과 의견을 말하기도 하고 작업스타일 자체도 바뀌었다. 예전엔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모습을 보였다면 지금은 기술적인 부분 등 노하우가 많이 생겼다. 한편으론 모차르트를 내가 기술적으로 대하고 연기할까봐 좀 걱정했다. 초연 때는 당시 내 상황이랑 너무나 흡사해서 그 자체에 공감하다보니까 빠져서 연기를 할 수 있었다. 이번엔 그때의 그 마음으로 기술적인 걸 더 내려놓고 내 연기 스타일을 어느 정도 살려내면서 하려고 노력했다.

     

    잘 되고 있는 것 같은지, 만족감은 어떤가.

    걱정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노래하고 연기를 해도 그때 느꼈던 감정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 당시 노래의 힘에 감명을 많이 받고 가사에 위안을 얻었다. ‘황금별’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아직도 가끔 감정 컨트롤이 안 된다. 되게 행복해하고 즐거워야 되는데 무대에서 울컥해서 눈물을 글썽거리곤 한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뮤지컬 무대에 서는 의미가 다를 것 같다.

    어떤 무대도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섰는데 이번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방역절차가 되게 까다롭지 않나. 나도 해봤는데 귀찮더라. 마스크를 3시간 동안 쓰고 앉아있으면 답답할 텐데 커튼콜 때 보면 단 한명도 마스크를 내린 사람이 없고 끝까지 집중해서 관람해주셔서 그 모습에 감명도 받는다. 그런 수고를 하면서까지 와주신 관객들에게 어떻게든 보답하고자 더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다. 무대에서 노래하고 공연하는 배우로서의 일상을 이어나가는 것 자체가 정말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 됐다.

     

    이런 시국에도 식지 않는 티켓 파워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10년 전부터 당연히 인기가 점점 줄 거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사실 지금도 여기까지 온 게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뮤지컬 무대에만 섰을 뿐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방송에 나간 적도 없지 않나. 나 빼고 주연배우들이 홍보하고 있는 걸 보면 마음이 안 좋은 적도 많았다. 사연을 모르는 분들은 내가 홍보의 필요성을 못 느껴서 안 나간 게 아니냐고 하는데 절대 아니다. 배우들과 함께 그런 자리에서 작품 얘길 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고 싶은데 나만 부름을 못 받으니 항상 불안하고 걱정도 많았다. ‘최소 5~6년 전에 그 불안이 현실로 다가왔어야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연인들도 떨어져있으면 마음이 멀어지는데 나는 일개 연예인일 뿐인데, 정말 공연장에 가야지만 볼 수 있지 않나. 그 발걸음을 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고 그중에서 다 팬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지금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정말 감사하다. 인생 자체에 감사하고 있다. 매진이 안 되고 티켓이 안 팔린다고 해도 벌써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상관없다. 단지 ‘이 기적이 언제까지 갈까’ 이런 생각으로 와주신 분들에게 아깝지 않은 시간을 드리려고 노력할 뿐이다.


    방송 출연이 어렵다가 최근 TV조선 ‘미스터트롯’과 MBC ‘공유의 집’을 통해 오랜만에 대중과 만났다.

    군대에서 TV를 많이 봤다. 친한 동료들부터 여러 또래 친구들이 방송에 나오는 것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만약에 나에게 섭외가 들어왔다 해도 내가 나갔을까 싶지만 나갈 수 있는데 안 나가는 것과 못 나가는 건 천지 차이지 않나. 동료들이 자신의 얘기를 하는 걸 보니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대로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방송을 하고 싶더라. 나는 단 한번도 내 이미지가 차갑고 인간미 없고 딱딱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10년 전과 비교해 조금 더 단단해진 건 있지만 아직도 장난기 많고 친한 친구들 사이에선 내가 거의 개그맨이다. 늘 똑같이 해온 것 같은데 군대에서 동료나 후임들이 나를 되게 어려워했다. 나중에 그들이 나를 겪어보곤 ‘형이 이렇게 재밌고 웃긴 사람인지 몰랐다’고 하더라. 10년간 소통을 안 하니까 대중도 나를 모르고 나도 그들이 생각하는 내 이미지를 몰랐던 거다. 그게 억울하든 아니든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더 하고 싶었는데 ‘미스터트롯’과 ‘공유의 집’에 나가서 꿈을 꾼 것 같다. 그 꿈이 좀 더 이어지길 바라는데 쉽지 않다.

     

    솔직하고 꾸밈없는 모습을 대중과 나눌 마음의 준비는 돼있나.

    물론이다. 나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드리고 싶다. 그러면 적어도 나에 대한 선입견은 없어질 것 같다. 내 성격과 모습을 편안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송이라면 뭐든 나가고 싶다. 팬들만 클릭을 해서 보긴 하는데 유튜브 ‘올 데이 시아’에서 일상을 공개하는 건 계속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요즘 많이 못 올리고 있다. 뮤지컬 잘 끝내고 좀 더 적극적으로 할 계획이다.

     

    ‘모차르트!’ 넘버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에 빗대자면. 지금 본인의 모습 그대로 팬들이 사랑해주는 것 같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팬들도 100% 알긴 힘들겠지만 그들이 아는 것도 내 모습이다. 분명 못 보여드린 모습도 있고. 10년 전엔 내 말에 귀기울여주는 자체를 갈구했다. 내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내 상황이나 속마음을 얘기한 적도 없는데, 한쪽의 편에서만 듣고 왜곡해서 얘기하니 답답했다. 연예인이나 공인은 항상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되는 직업을 가진 만큼 책임감이 커야 되고 질타를 받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그때는 너무 억울했다. 어려서 ‘내가 정의라고 생각해서 한 건데 뭘 잘못했지’라고 생각했다. 그런 속상함과 억울함 등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있었다.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가 내 마음 같았다. ‘나도 연예인 김준수이기 전에 한명의 사람인데 왜 그렇게 봐주시지 않을까’ 정말 이런 생각을 하다가 ‘왜 사랑해주지 않나요, 사랑해줘요, 내 모습 그대로’ 이 가사를 대본에서 처음 보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가슴 속 응어리를 연기하면서 풀었다. 하고 싶던 말들을 무대에서 모차르트의 입을 빌려서 했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데뷔작을 떠나서 나에게 용기를 주고 위안을 준 작품이다.


    아이돌로서 팬층을 확보했다가 뮤지컬을 하면서 10년간 공연팬들도 많이 생겼다. 공연으로 소통하지 않았나. 그 사이 깨닫거나 느낀 점도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지금 내 팬들 중 동방신기 때부터 팬은 3분의 1도 안될 것이다. 오히려 내가 예전에 동방신기였고 가수였다는 것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 예전에 우리가 소방차나 서태지와 아이들을 생각했던 것처럼 뮤지컬을 보고 내 팬이 된 분들 중에 ‘동방신기 멤버였다고?’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더라. 내 커뮤니티를 봐도 그런 분위기다. 무대를 통해 나를 좋아해주신 분들이 내 앨범 활동에도 관심을 가져주신다. ‘무대에서 잘 하고 있구나’ ‘열심히 잘 해왔구나’ 싶어 뿌듯한 마음이 있다. 아직도 이렇게 사랑해주시니까 감사하다.

     

    매 무대 몸이 부서져라 연기하고 노래해서 공연팬들의 마음을 자극한 것도 있다. 그 노력이 통한 것 아닐까.

    다른 배우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팬들은 나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니까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같이 무대를 하는 동료 배우들이 어떻게 그렇게 매번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하냐고 하니까 내가 하는 스타일이 좀 다른가 싶기도 했다. 처음 할 땐 신영숙 누나한테 그런 얘길 들었다. 나는 기분 좋으라고 ‘열심히 한다’ 이런 뜻으로 말해준 건지 알았다. ‘드라큘라’ 할 때 조정은 누나도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했고, 최근엔 박강현이 ‘데스노트’ 때 보고도 느꼈는데 ‘모차르트!’ 하면서 진짜 그렇다고 하더라. 작품 할 때마다 선후배들이 나를 표현하는 말이 그런 거였다.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어서 나는 잘 모르겠다. 그냥 느껴지는 대로 하는 거다. 좋은 뜻으로 얘기해주시니까 ‘뭔가 나만의 장점이 있나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공연 끝나고 나서 감정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힘들 것 같다.

    체력인 게 힘들다. 특히 ‘모차르트!’가 그렇다. 마지막에 ‘나 이제 더 이상 못할 것 같아’ 이런 대사가 있는데 반진심이다.(웃음) 연기에 빠져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때 되면 온몸이 땀과 콧물, 눈물로 다 젖어있다. ‘나 못할 것 같아, 그만 끝낼래, 이제 대기실에 들어갈래’ 이런 느낌으로 하는 것도 있다. 피아노가 돌아갈 땐 거의 반 기절해있다. ‘모차르트!’는 긴장되는 이유가 ‘틀릴까봐’ ‘못할까봐’가 아니다. 숨이 턱끝까지 찰 거란 걸 알고 시작을 해야 되는 긴장감이 있다. 이런 뮤지컬은 없었다.

     

    ‘모차르트!’가 너무 힘들어서 타이틀롤을 했던 배우들이 다시 하고 싶지 않은 뮤지컬로 손꼽는다고 하더라. 어떤가.

    좋은 작품이고 비중이 큰 건 감사한데 너무하니까.(웃음) 초연 때도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땐 뮤지컬을 처음 하니까 피부로 와 닿는 게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제일 힘든 작품을 내가 처음에 했던 거였다. 나름 체력적으로 힘든 타이틀롤을 많이 해왔는데 이번에 ‘모차르트!’를 하자마자 무조건 이게 제일 힘들다 싶더라. 적어도 대한민국 뮤지컬 남자 타이틀롤 중엔 일등으로 힘들다고 본다. 곡수도 많은데 일단 무대에서 안 내려간다. 2막 할 때는 5장인가부터 커튼콜까지 계속 무대에 있다. 약간 바뀌어서 그런 것도 있다. 연습할 때 대본을 보면서 ‘에이 설마 또 나와?’ 이러다가 대본을 넘기는데 ‘또 나온다고?’ 했다. 무대가 끝났으면 퇴장이라도 해야 되는데 퇴장을 안 하고 암전이 풀리면서 거기서 바로 일어난다거나 다른 사람 넘버 할 때도 무대에 있다. 내가 노래하는 것도 그렇게 많은데 다른 배우들 할 때 피아노를 쳐준다거나 지휘를 하거나 옆에 앉아서 듣고 있거나. 와! 힘들다.


    이번 공연에서 의견을 낸 게 있나.

    어차피 회의를 거쳐서 결정하는 거니까 나 때문에 들어갔다고 생각은 안 하는데 넘버 ‘빨간 코트’를 어필했다. 내가 초연과 재연에 참여했고 이번이 육연이다. 그 사이 엄청 많이 바뀌었더라. 전 시즌엔 ‘빨간 코트’가 없었다고 하더라. 나는 ‘빨간 코트’가 정서상 모차르트의 성격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집약체라고 생각했다. 모차르트의 밝고 명랑하고 쾌활하고 장난기 많은 성격과 음악을 쓰는 걸 행복해하는 모습을 그 곡에서 보여준다. 그 곡이 빠지면 대비가 되지 않으니까 슬픔도 반감될 것 같았다. 그래서 엄홍현 대표님한테 ‘빨간 코트’를 꼭 넣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회의에서 연출님도 좋다고 하셔서 넣었을 것이다. 또 첫 연습 때 내가 초연의 기억 그대로 남작부인이 ‘황금별’을 부르면 되게 행복하게 쳐다봤다. 근데 연출님께서 왜 그렇게 하는지 물어보시더라. 황금별을 봐야 되는데 아빠가 막는 것에 있어서 분해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자신을 설득시켜 달라고 하셔서 나는 황금별이 모차르트의 주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황금별을 찾기를 원하는 만큼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는 건데 말로 설명되지 않았던 걸 남작부인이 그 노래를 통해서 힌트를 준다. ‘그래 맞아, 내가 아빠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이거였어’라는 생각이 들게끔. 황금별이 꾸민 것이고 진짜 별은 아니지만 후렴을 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찾으려고 했지만 찾지 못한 황금별 환상을 본다. 그땐 누구보다 황홀할 것 같다. 다른 배우들은 어떻게 연기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가장 해맑고 정말 금은보화를 본 듯한 표정과 마음을 지니려고 한다. 그 얘길 했더니 설득이 됐다고 그렇게 하라고 인정을 받았다.

     

    애드리브도 많지 않나.

    애드리브는 거의 마음대로 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강현이나 은태 형도 다르게 할 거다. 약간의 자율성이 있어서 하기 나름이다. 하다보면 재밌는 건 많은데 과하지 않게 하려고 중간에서 항상 줄다리기를 한다. 많이 보러 와주시는 분들은 최소 2~3번씩은 보시곤 하니까 그런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소소한 재미를 주고 싶어서 생각을 많이 하고 임한다. 극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애드리브라면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게 라이브로 진행되는 뮤지컬의 묘미 아닐까. 관객들의 반응도 좋다. 가끔 반응이 안 좋으면 그날 우울하다. 빵 터지면 뒤에 술술 풀리고.(웃음) 솔직히 나는 생각보다 웃기는 데 소질이 있다. 소질보다 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대에서 웃길 것 같다 싶어서 하면 안 웃긴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물론 ‘빵’과 ‘방’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들 재밌게 생각하더라.


    배우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은 무엇인가.

    일단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모차르트!’다. ‘가수를 포기해야 되나’ 그런 마음으로 큰 변화를 꿈꿔서 동방신기에서 나왔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 ‘모차르트!’가 뮤지컬배우로서 첫 발걸음을 인도했고 뮤지컬을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한 작품이다. 내 입으로 이런 얘기를 하기 너무 어렵긴 한데 ‘아이돌 가수가 뮤지컬을 한다’에서 뮤지컬배우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해주신 작품이 ‘엘리자벳’이었다. 앞으로 상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그 작품으로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뮤지컬의 하나의 축이 돼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뮤지컬로 재기 아닌 재기를 하게 되면서 그 감사함을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그래서 두렵긴 했지만 창작뮤지컬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지금도 1년에 최소 한 번씩은 무조건 창작을 어떻게든 하려고 한다.

     

    연습과정에서 들은 조언이나 도움이 된 말이 있다면.

    좋은 말을 많이 들었는데 ‘모차르트!’ 초연 때 연출가셨고 이번에 예술감독으로 참여하신 유희성 서울예술단 이사장님이 처음에 해주신 말씀이 제일 크게 남았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는데 예전에는 뮤지컬을 성악가·오페라 가수들이 하는 발성으로 하는 게 틀 같은 분위기였다. 나름대로 성악 발성을 흉내내려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갈팡질팡 하고 있었는데 유희성 연출님이 ‘네가 가고 있는 길이 절대 틀리지 않았을 거야’라고 해주신 말에 용기를 얻었다. 내가 하는 연기와 노래의 개성을 살리라고 하셨다. 또 어떤 배우든 호불호가 있으니 불호를 너무 의식하지 말고 나에게 호가 될 수 있게 장점을 부각시키라고 말씀해 주셨다. ‘너만의 무기로 너의 연기를 갈고닦으면 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너의 공연을 볼 거야’라는 말씀에 확신이 생겼다. 덕분에 어떻게 해가야겠다는 길이 보였던 것 같다. 아직도 그 말이 내게 전환점으로 남아서 감사해하고 있다.

     

    욕심나는 작품이 있나.

    하고는 싶은데 여자 역할이라든가 나이가 더 들어야 된다거나 그런 작품들. 주연 욕심은 없다. 나중에 모차르트 아버지 역할 하면서 다른 감정을 받을 수도 있는 거고,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대로 그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면서 뮤지컬배우로서 계속 가고 싶다. 그때까지 하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눈앞의 행보를 하나하나 잘 마치면서 걸어오다 보니 10년이 흘렀다. ‘지금 주어진 것에 최선 다하자’ ‘부끄럽지 않게 하자’ 그렇게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먼 산을 보는 건 나에겐 사치다.
     

     

     

    김준수, “티켓 파워? 지금까지 온 게 기적... 사랑 과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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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배우 김준수가 지난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송동 서머셋팰리스 서울에서 뮤지컬 ‘모차르트!’ 라운드 인터뷰를 진행했다.

     

    뮤지컬 배우 김준수와 데뷔를 함께한 뮤지컬 ‘모차르트!’는 특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10주년 공연을 함께한 소감이 궁금하다.

    10년 전 지금 공연 중인 ‘모차르트!’라는 작품으로 뮤지컬 배우로서 첫발을 뗐다. 10주년 기념 공연에 서게 돼 영광이고 감회가 새롭다. ‘모차르트!’를 다시 하는데 10년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라. ‘모차르트!’를 통해 위안받으며 행복하게 공연하고 있다.

     

    10년 전에 공연한 ‘모차르트!’와 비교해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 생각과 의견을 말하는 등 작업 스타일 자체가 바뀌었다. 그리고 이전에는 첫 뮤지컬이다 보니 정제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기술적인 면모와 10년간 갈고 닦은 노하우가 쌓인 것 같다. 이 때문에 되려 이번에 모차르트를 너무 기교적으로 대할까 봐 걱정하기도 했다. 물론 장단점이 있겠지만, 이번에 ‘모차르트!’를 보러와 주시는 관객 중 아마 3분의 1 정도는 초연을 보신 분들일 거로 생각해 기술적인 걸 내려놓고 예전의 스타일을 살려내면서 공연하려고 노력했다. 그때의 감동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대 자체의 규모 등이 달라졌기에 당연히 10년 전보다 더 좋은 작품으로 느끼실 거다.

              
    ‘모차르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고 했다. 반영된 아이디어가 있다면 알려달라.

    ‘모차르트!’가 이번이 여섯 번째 시즌인데 제가 세 번째 시즌부터 다섯 번째 시즌까지 불참했다. 그사이에 공연이 무척 바뀌어서 넘버 ‘빨간 코트’가 생략됐다고 하더라. 저는 초반에 ‘빨간 코트’를 통해 모차르트의 명랑하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관객들이 ‘모차르트는 원래 비극적인 아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래서 대표님에게 ‘빨간 코트’를 통해 모차르트의 대비된 모습을 강조했으면 좋겠다며 꼭 넣었으면 한다고 말씀드렸다. 물론 저 때문에 삽입된 것은 아니고 이후 회의를 통해 모두가 좋다고 생각했기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저는 남작부인이 ‘황금별’을 부를 때 금은보화를 본듯한 표정과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연출께서는 오히려 분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 전 ‘황금별’은 모차르트에게 주문이라고 생각한다. 모차르트가 그토록 찾고 싶었지만, 말로 표현되지 않던 부분을 남작 부인의 입을 통해 ‘이거였어!’라며 꿈과 환상을 보는 것이지 않나. 그래서 누구보다 황홀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설득이 됐다며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해 공연계가 많은 타격을 받았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모차르트!’를 찾는 관객들에 대한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매번 어떤 무대를 서더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섰지만, 이번엔 상황이 상황인지라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토록 어려운 상황에 우리 공연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하다. 특히 방역 절차가 까다롭지 않나. 사실 귀찮기도 하고. 또, 마스크를 세 시간 동안 끼고 있어야 하는 게 답답하실 텐데도 커튼콜 때 보면 단 한 명도 마스크를 내린 분이 없더라. 감동이었다. 그런 수고를 하면서도 와주신 관객분들께 보답하려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배우들에게는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게 당연한 일상인데, 이번 사태를 통해 ‘그런 일상이 귀한 거구나’라고 깨닫기도 했다.

              
    뮤지컬 배우 김준수는 어마어마한 티켓 파워로 유명하다. 많은 관객을 공연장으로 부르는 힘과 관련해 당사자의 생각이 궁금하다.

    저는 뮤지컬 무대에만 섰을 뿐 홍보를 위해 어떤 방송 등에 나간 적이 없다. 같은 작품을 해도 저를 제외한 주연 배우들만 홍보에 나서는 걸 볼 때면 마음이 안 좋기도 했다. 그런 자리에 다른 배우들과 함께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연인도 떨어져 있으면 마음이 식기 마련인데 저는 일개 연예인이다. 보통 매체를 통해 팬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오직 공연뿐이었다. 그런데 공연을 보러 오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그래도 지금까지 이렇게 이어진 과분한 사랑에 감사하고 있다. 앞으로 언젠가 지금과 비교해 예매율이 줄어들고 매진 횟수도 떨어지겠지만, 지금까지 온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적이 어디까지 갈까 생각하고 있다. 10년 전부터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다.

     

    준수 씨의 공연을 보는 동안 유난히 몸이 부수어질 듯 연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다른 배우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팬분들뿐만 아니라 함께 무대에 오른 배우들도 “너는 어떻게 그렇게 내일이 없이 하느냐?”고 묻더라. 동료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그렇게 하는 게 좀 있나?’ 싶었다. 처음엔 그냥 열심히 하라는 뜻에서 기분 좋아지라고 말씀해주시는 건 줄 알았다. 저는 스스로를 잘 모르겠다.

              

    뮤지컬 ‘모차르트!’가 음악적, 체력적으로 소화하기 힘든 작품이라고 들었다. 다시 해보니 어떤가?

    체력적인 게 정말 힘들다. 모차르트가 마지막에 “더 이상 못할 것 같아”라고 말할 때 반은 진심이다(웃음). ‘더는 못할 것 같아... 대기실 들어갈래’라는 의미가 담긴 거다(웃음). 마지막쯤엔 정말 온몸이 땀, 눈물, 콧물로 젖어있다.

    모차르트 역이 무대 위 비중이 무척 커 힘들다. 넘버도 많은데 무대에서 안 내려간다. 다른 배우가 노래할 때도 무대에서 안 내려가고 피아노를 친다거나(웃음). 무대에 오르면 공연이 끝날 때쯤 내 숨이 턱 끝까지 찰 걸 알기에 긴장감이 느껴질 정도다. 10년 전엔 내가 처음 하는 뮤지컬이라 힘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모차르트!’가 제일 힘든 작품이었다(웃음). 모차르트 역을 맡았던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들 ‘모차르트!’가 제일 힘들다고 하더라.

     

    한 작품을 맡으면 수 개월간 한 캐릭터의 삶을 반복하지 않나. 작품이 끝난 뒤에 잘 헤어나오는 편인가?

    전 온·오프(ON·OFF)가 굉장히 확실하다. 어떤 배우분들은 감정이 동화돼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던데 저는 무대에서만큼은 완전히 빠져서 하지만, 대기실로 돌아오면 바로 저로 돌아온다.

     

    오랜만에 뮤지컬 ‘모차르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이 궁금하다.

    노래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 10년 전 ‘모차르트!’ 속 넘버의 가사와 멜로디에 감명을 받았었는데 오랜만에 연기하니 새록새록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더라. 사실 아직도 ‘황금별’을 들으면 행복하고 즐거워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감정 조절이 잘 안 된다. 10년 전의 감정이 남아 있어서인지 자꾸 무대에서 눈물이 글썽거리게 된다.

    또 어떻게 보면 10년 전 제 상황이 극 중 모차르트와 흡사했기에 푹 빠져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내 속마음을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왜곡하거나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 말하는 게 답답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책임감을 느껴야 하고, 질타받는 게 당연하다지만, 그때의 저는 어리기도 했고 억울했다. 내가 뭘 잘못했지 싶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모차르트를 통해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응어리를 해소했다.

              
    뮤지컬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힘이 됐던 조언이 있나?

    제가 처음에 ‘모차르트!’에 도전했을 때만 해도 성악, 오페라 발성이 뮤지컬의 기본 틀 같은 분위기라 고민을 많이 했다. 어설프게 그런 발성을 따라 하고 흉내 냈었는데 당시 유희성 연출님이 “네가 가고 있는 길이 절대 틀리지 않을 거야”라며 “관객들은 네 연기와 노래의 개성을 살린 너의 모차르트를 보려고 티켓을 끊는 거다. 왜 같은 역할에 배우가 여러 명이겠냐. 각자 자기에게 맞는 배우를 골라보는 거다. 어떤 배우건 호불호가 있다. 네 장점과 개성을 부각해라. 단, 너무 이질감 느껴지지 않게 해라”라고 조언해주셨다. 갈피를 못 잡다가 이 말을 듣고 방향을 잡았고, 용기를 얻었다. 아직도 감사해 하고 있다.

     

    10년간 뮤지컬 배우로서 활동하는 동안 전환점이 된 작품이 있다면?

    우선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을 꼽자면 ‘모차르트!’다. 이제 가수를 포기해야 하나 하는 마음일 때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엘리자벳’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더는 사랑받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엘리자벳’을 통해 제18회 한국 뮤지컬 대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작품을 통해 ‘아이돌이 뮤지컬 한다’가 아닌 뮤지컬 배우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것 같다.

    뮤지컬로 재기 아닌 재기를 하게 되면서 보답하고 싶었고, 대한민국 뮤지컬의 하나의 축이 돼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후 두렵긴 했지만, 일조하고 싶은 마음에 창작 뮤지컬에 겁 없이 뛰어들었고 적극적으로 임했다. 지금도 1년에 한 작품 정도는 창작 뮤지컬에 참여하려고 노력 중이다.

              
    지난해 10년 만에 TV조선 ‘미스터트롯’, MBC ‘공유의 집’ 등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화제가 됐다.

    군대에 있을 때 할 게 없으니 TV를 많이 봤다. 여러 프로그램을 보는데 친한 동료들부터 제 또래 동료들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물론 섭외가 오진 않았지만, 섭외가 왔더라도 ‘나갔을까?’ 싶은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나갈 수 있는데 안 나가는 것과 못 나가는 건 천지 차이더라.

    군대에 있는 동안 사람들이 날 어려워하는 걸 보고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졌다. 저는 예전보다 조금 단단해진 건 있지만, 데뷔 전이나 데뷔 초와 비교해 달라진 점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를 인간적이지 않고, 딱딱하고, 냉혈한일 것 같고, 스타라고 해서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으로 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후임 등이 ‘형이 이렇게 웃길 줄 몰랐어요’라며 놀라는 걸 보고 의아했다. 생각해 보면 재판과 관련된 기사 같은 것만 뜨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웃음). 그래서 어떤 방송이든 간에 얼굴을 비치고 대중과 소통하고 싶었다.

    덧붙이자면 ‘공유의 집’ 같은 경우는 방송될까 싶었다. 이전에도 녹화 날짜가 잡히고도 편성을 못 받은 경우가 많아서 불안했었다.

     

    예능에 대해 호의적인 느낌이다. 출연 제안이 온다면 나갈 것인가?

    바라고는 있는데 쉽지는 않다(웃음). 오랫동안 뮤지컬, 콘서트 등만 했기에 편안하게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출연하고 싶다. 제가 원해서 신비주의를 하는 게 아니라 방송에 못 나가는 것인데 저와 관련된 역사를 잘 모르거나 어린 분들은 제가 방송을 안 나가는 줄 알더라. 제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면 저에 대한 선입견도 어느 정도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게 꿈을 꾼 것 같다.

              
    하지만 방송 출연이 없는 와중에도 공연을 통해 새로운 팬이 많이 유입된 것으로 알고 있다.

    뮤지컬로 팬이 된 분 중에 제가 동방신기 혹은 가수였다는 걸 몰랐다는 분들이 많더라(웃음). 기존의 팬들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가서 뮤지컬로 시작해 제 앨범까지 좋아해 주시는 경우가 많아 뿌듯하다. 아마 제 팬 중에 동방신기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팬은 3분의 1도 안 되지 않을까.

     

    준수 씨가 그간 대중과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창구인 뮤지컬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제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제가 4집까지 앨범을 내면서 그동안 단 한 번도 방송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그런데도 공연장을 가득 채워주셨기에 매 순간 기적이라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김준수 "뮤지컬 데뷔 10주년, 기적 같은 일…뿌듯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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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지 10주년이 됐다. 돌아보면 어떤가.

    10년 전만 해도 오늘의 이 자리까지 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엔 '모차르트!'를 좋은 컨디션으로 끝까지 잘하자는 게 목표였고, 긴장과 도전의 연속이라 하루하루 고비를 넘기는 느낌으로 살았다. 그땐 벅찼는데, 10년이 지난 뒤 돌아보니 힘들었지만 뿌듯한 게 더 많다. 사실 아직도 방송 매체에 나갈 기회가 적은데, 무대에 오를 수 있고, 많은 관객들이 나를 보러 와주는 게 기적 같은 일이라고 느낀다. 그렇다 보니 더 감사하게 되고, 지치지 않고 달리게 된다. 지금까지 매 순간을 잘했다고 얘기할 순 없지만,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는 말할 수 있다.

     

    '모차르트!'와 함께 10주년을 맞은 소회는.

    10년 전에 '모차르트!'를 통해 뮤지컬 배우로 데뷔했다. 올해 함께 10주년을 맞아,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공연을 하는 것 자체가 기쁘고 영광스럽다. 요즘 상황이 상황인지라 힘들지 않나. 세 시간 동안 마스크를 쓰고 공연보는 게 쉽지는 않은데, 그런 때에도 발걸음을 해주셔서 공연을 보여드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하루하루 감사할 따름이다.

     

    '모차르트!' 첫 무대에 오르던 순간을 기억하나.

    당연하다. 공연 한 시간 전부터 심장이 요동쳐서 어쩔 줄 몰랐던 기억이 난다. 가수로 데뷔했을 때와 맞먹는 떨림이었다. 당시 내가 큰 변화를 겪고 1년 만에, 그것도 가수가 아닌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오르니 만감이 교차하더라. 당시 중압감과 긴장감이 생생하다.

     

    이후 10년 만에 '모차르트!' 무대에 다시 오르게 됐다. 당시와 어떻게 차별점을 두려고 했나.

    10년 전에는 뮤지컬의 '뮤'자로 몰랐다. 처음 하는 연기였지만 상황이 맞아떨어져 내 얘기를 한다고 생각하고 임하니, 테크닉은 부족해도 날 것의 연기가 감동을 줬다는 칭찬을 받았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테크닉도 늘었지만, '모차르트!'에는 그런 것들을 버무리고 싶지 않았다. 당시 초심과 그때 느낀 감정을 최대한 살려서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다. 초연보다 무대를 비롯해 많은 것들이 업그레이드돼, 더 재밌는 작품으로 거듭나지 않았나 한다.

     

    '드라큘라'를 마치고 텀 없이 바로 '모차르트!'를 시작했다. 캐릭터 전환에 어려움을 느끼진 않았는지.

    나도 '실수를 하면 어쩌지?' 싶었는데, 다행히 캐릭터 전환 자체는 어렵거나 힘들지 않았다. 무대가 시작되고 음악이 흐르면 그 캐릭터에 녹아드니까. 다만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웃음) '드라큘라'를 하면서 '모차르트!' 연습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더라. '드라큘라' 낮 공연을 하면 '모차르트!' 밤 연습을 하고, 반대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공연을 안 하는 날이면 보통 쉬는데, 이번에는 연습실에 가고… 그게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모차르트!'가 정말 힘든 작품이라고 하던데.

    나도 타이틀롤, 주인공의 비중이 큰 작품을 많이 했는데 그중 '모차르트!'가 제일 힘들다. '드라큘라', '엑스칼리버'도 힘든데 '모차르트!'가 1등이다. 처음에는 '모차르트!'가 첫 뮤지컬이니까 내 부족함 때문에 힘들다고 느낀 거라는 생각이었는데, 다시 연습을 하다 보니 또 힘들더라.(웃음) 외울 분량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고음도 많고, 동선도 많고… '모차르트!' 타이틀롤을 연기한 남배우들은 다 이 작품을 가장 힘든 작품으로 꼽을 거다. 오히려 처음에 '모차르트!'로 뮤지컬을 시작해서 다른 작품이 덜 힘들게 느껴진 게 아닌가 한다.

     

    노력을 쏟은 만큼 관객들의 반응이 뜨겁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어려운 상황을 감내하고 와서 봐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소중하고 귀하다. 아마 모든 배우들이 그걸 느끼고 있을 거다. 그래서 공연 전에 더 각오를 되새기게 된다. 여기 와준 분들이 지불한 공연비가 아깝지 않게 있는 힘껏 에너지를 다 쓰려고 한다.

     

    김준수에게 '모차르트!'는 어떤 작품인지.

    나는 뮤지컬 배우로 이끌어준, 발걸음을 뗄 수 있도록 용기를 갖게 해 준 작품이다. 또 당시 주인공 모차르트와 내가 상황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공연을 하면서 위안을 받고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10년을 되돌아보면 가장 감사한 작품이다.

     

    10여 년 전 홀로서기 한 상황에 대해 위안을 받은 것인가.

    당시에 1년 정도 TV만 틀면 우리 얘기가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좋은 얘기는 아니니까 마음이 힘들더라. 24살이었으니까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이기도 했고, 뉴스에 나오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그때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느껴졌다. 세상에 외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답답해하고 있던 찰나에 '모차르트!' 출연 제안이 온 거다. 처음엔 거절했다. 상황도 상황이거니와, 관객들 앞에 나서는 게 두렵고, 다른 장르를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압박감도 있었다. 그런데 대표님이 시나리오나 한 번 봐달라고 해서 보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거다. 모차르트와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이 비슷했다. 그래서 뮤지컬을 해서 잘 해내지 못해 욕을 먹더라도, 무대에서 모차르트를 빌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공연을 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고 용기가 생겼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고 했는데, 다시 태어나도 이 직업을 선택할 건가.

    연예인을 하면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후회는 안 한다. 여기까지 오면서 감사한 일도 많아서 후회는 사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연예인은 하고 싶지 않다. 어떤 일을 겪을지 몰랐으니까 여기까지 온 거다. 단 한순간도 긴장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만약 앞으로 겪을 일이 앞에 주어지면 성공이 보장돼도 못할 것 같다.

     

    김준수 하면 '아이돌 출신 뮤지컬 배우'의 대표적 인물 아닌가. 초반에는 어려움도 많이 겪었고. 대표성을 띄는 만큼 '아이돌 출신 뮤지컬 배우'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겠다.

    지금과는 달리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돌 출신 뮤지컬 배우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다. 일단 캐스팅되면 욕을 먹고 시작했다. 그래도 이해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뮤지컬 시장은 지금의 1/10 정도인데, 아이돌 스타라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에 발탁되니 곱지 않은 시선이 당연했다. 다만 뮤지컬에 빠져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린다면 평가가 달라지지 않을까 했다. 이제는 '뮤지컬돌'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고, 아이돌 친구들도 노력하고, 뮤지컬계에서도 욕먹지 않는 분위기인 듯하다. 뿌듯하고, 다들 응원한다.

     

    그동안 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초연 혹은 창작 뮤지컬이 많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감사하게도 창작이나 초연 작품 제안이 많이 왔다. 많은 것들을 고려해 작품을 선택했는데, 그게 다 초연인 뮤지컬이었다. 초연의 장점은 내 생각을 캐릭터에 어느 정도 투영할 수 있다는 건데, 여러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 많이 발전했다고 느꼈다. 그런 기회는 쉽게 생기는 게 아닌데, 주어진 것에 감사하다. 창작 뮤지컬도 많이 했다. 어떤 분들은 '잘되는 걸 하지, 왜 창작을 하냐'고 한다. 그런데 내가 10년 전에 '모차르트!'를 통해 다시 설 수 없을 것 같았던 무대에도 모르고, 상도 받고 하면서 '대한민국 뮤지컬계에 어느 정도라도 일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창작 뮤지컬은 흥행이 안 되면 너무 많은 손해가 발생하니까 제작자들이 쉽게 만들 수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이 잘 되려면 창작극이 잘 돼서 역으로 수출을 해야 파이가 커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때 나름 내가 티켓파워가 있었으니까(웃음) 그런 부분이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창작극을 하게 됐다. 그래서 1~2년에 한 번은 창작 뮤지컬을 하려고 한다. 군 시절을 제외하면 잘 지키고 있다.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다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마음이다.

     

    뮤지컬 배우를 하다 보면 제작이나 연출에 관심 갖는 사람도 더러 있지 않나. 본인은 어떤가.

    '감히 내가 할 수 있을까' 싶긴 한데, 언젠가는 제작 혹은 연출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연습하면서도 내 생각을 투영하긴 하지만, 메인과 개인의 깊이는 다르지 않나. 나이가 먹고 경험이 쌓이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뮤지컬 배우가 아닌 가수 김준수를 기다리는 이들도 있는데, 활동 계획이 있는지.

    조심스럽긴 하지만, 올해 안에는 신곡을 내고 싶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다.

     

    김준수에게 뮤지컬이란.

    '모차르트!' 첫공 때 무대에 올랐는데, 콘서트에서 박수를 받는 것과는 또 다른 짜릿함을 느꼈다. 모든 관객들이 일어서서 박수 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만감이 교차했다. 그때 뮤지컬이라는 걸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듯하다. 진부하지만 내겐 '한 줄기 빛' 같다. 제2의 인생을 살게 해 준, 꿈을 펼치게 해 준 소중한 존재다.

     

     

    10주년 '모차르트!' 김준수, "모차르트 알면 알수록 내 상황과 동병상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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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뷔작이었던 만큼 10주년 '모차르트!'가 가지는 의미가 남다를 거 같아요.

    배우로서도 10주년이고, 이 작품을 만난 것도 10주년인데 정말 좋고 기뻐요, 데뷔했던 작품으로 똑같은 장소에서 다시 공연을 하게 된 건 배우로서 굉장히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현재 (코로나로 힘든) 이런 상황에서 무대를 올리는 게 얼마나 귀한지 몸소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감사하고 있습니다. 10년 전 함께 했던 배우분들도 다시 작업을 같이 하게 돼서 마치 1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도 나고 반갑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10주년 '모차르트!'를 다시 하게 되면서 전과 비교해 달라진 점이 있나요?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작품을 접하면 매번 긴장과 설렘을 안고 배우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시너지를 받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10년동안 작품도 많이 하면서 갈고 닦은 경험들이 있으니까 저의 생각을 나누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기회들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 10년 전에는 같이 하시는 분들이 다 형 누나들이었고 '준수야'하고 불렀지만 현재는 형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그런 점들 빼고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작품이 못 올라가면 어떡하지 걱정도 많았을 것 같아요.

    걱정이 없었다고는 못 말할 거 같아요. 다른 공연들도 상연되다가도 취소 되고 '모차르트!'도 연기가 되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 앉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커튼콜 때 보면 관객들이 다 마스크를 쓰고 있고 어려운 발걸음을 해준 것에 저 뿐만이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감사함을 더 크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일상 같았던 것들이 너무 소중하고 귀한 것들이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던 계기도 된 것 같고 지금은 내일 당장 끝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소중히 매 무대무대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아이돌을 하다가 뮤지컬 배우를 하게 된 그 과정은 어땠나요?

    처음 제안이 왔을 때는 상황상 심적으로도 위축돼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뮤지컬로 대중에게 오랜만에 나선다는 것이 제겐 두려움이고 부담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거절하기도 했는데 사실 안 하고 싶었던 것보다는 엄두가 안 났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집에서 쉬다가 문득 책상 위에 놓인 대본이 눈에 들어와 읽어 봤어요. 모차르트라는 인물이 천재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던, 가슴에 응어리가 맺혀 있었던 그런 당시의 제 상황과 대본 속 모차르트의 상황이 맞닿아 공감이 많이 되더라고요. '왜 내 모습 그대로를 인격체로 봐주지 않지'하는 그런 고민과 억울함, '내가 이러려고 연예인이 됐나'하는 회의감에서 모차르트의 상황을 알게 되며 동병상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대본을 보기 전까지는 모차르트가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았는지 몰랐습니다. 대중에게 각광받는 천재 모차르트만 알고 있었는데 당시 힘든 상황에서 내가 느끼고 있던 그런 얘기들이 대본에 써져 있었고 뮤지컬 '모차르트!'의 넘버 황금별을 듣고는 울컥했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던 상황에서 '더 큰 황금별과 너의 꿈을 찾으려면 이 성벽을 박차고 세상으로 나아가라'는 가사에서 큰 감명을 받고 용기를 얻게 됐던 것 같아요. 내가 이 무대를 잘못해 내더라도 '모차르트'라는 배역을 빌려서 무대 위에서 연기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는 마음에 결국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제가 뮤지컬배우를 지금까지 할 수 있도록 해준 작품이기도 하기에 '모차르트!'는 제게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뮤지컬 배우에 도전한 아이돌 중에서도 롱런하고 사랑 받는 이유가 있을까요?

    아직도 배우는 마음으로 하고 있고, 돌아보고 나니 뿌듯함도 느껴지곤 하는데 그 당시에는 매 무대, 매 작품마다 이게 나에게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특히, 그 때는 단 한 번도 나를 알릴 기회도 뮤지컬 출연을 홍보할 기회도 없었는데 그래서 '이 기적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관객들이 나를 보러 와주고 찾아와 주는 마음이 감사해서 더 악착같이 최선을 다 했고 그런 모습을 사랑해주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에는 절박할 수 밖에 없었거든요, 매번 마지막 남은 칼 한자루를 품고 있는 것처럼 임했던 것 같습니다.


    초반에 뮤지컬을 시작할 때 다소 독특한 창법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죠.

    지금도 뮤지컬하면 성악 혹은 오페라 류의 발성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제가 뮤지컬을 시작할 때는 그 틀이 훨씬 더 심했거든요. 사실 '뮤지컬 창법이 뭐다'라고 정해진 건 없었지만 저 또한 성악, 오페라가 뮤지컬의 정석적인 발성이라고 생각하던 시기였기에 저의 창법이 조금 특이한 만큼 저도 많은 고민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많이 바꼈더라고요. 물론 저는 그 힘듦을 많이 겪기도 했고 그런 점을 깨기 위해, 중간점을 잘 찾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지만 이제 이 뮤지컬이라는 게 획일된 창법만을 고수하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힙합뮤지컬도 생겼고 알앤비 창법을 필요로 하는 뮤지컬도 있고, 마치 UFC 같은 무대에서 무에타이를 잘하는 사람, 유도를 잘하는 사람 등이 참가해 자신의 장점을 가지고 대결하는 것 같이 그렇게 변화해 온 것 같습니다. 뮤지컬을 막 시작할 때 연출님께서 고전적인 뮤지컬을 따라가려는 저에게 유희성 연출님이 "어설프게 성악을 따라하려다가는 너의 개성을 잃어버린다 성악발성의 뮤지컬을 보고 싶은 사람들은 그 무대를 찾을 것이고 너만의 뮤지컬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너의 무기로 승부해라"며 "너의 개성을 없애려 하지 말고, 특유의 창법을 살리되 뮤지컬적으로 봤을 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게 하는 지점만 잘 찾아내라"고 얘기해 줬습니다. 그리고 이는 저에게 앞으로의 뮤지컬에 있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줬던 것 같아요. 그런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현재 다양한 뮤지컬 장르가 생겨 한 데 어우러져 존중받는 분위기가 되니까 뿌듯하기도 하고 좋은 방향으로 흘러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엘리자벳의 '토드' 역할도 도전적인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엘리자벳'에서 '토드'역을 맡았을 때는 '모차르트'보다 욕을 더 많이 먹었어요. '토드' 역할이 40대에서 50대의 중장년이 주로 맡는 무거운 로우톤의 분위기를 지닌 배역이었는데 당시 저는 호리호리한 체형에 말랐었기에 조금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본래의 스타일로 소화해 낼 수 없다면 저만의 스타일로 조율하고자 했습니다. 사실 '토드'가 '엘리자벳'을 따라 다니는 죽음의 그림자를 의인화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 성이라는 개념이 모호하거든요. 그래서 제스처라든지 걸음 거리라든지 그런 연기들을 최대한 중성적으로 소화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욕을 많이 먹기도 했지만 지금와서는 분위기가 바뀌며 오히려 '토드' 역할을 젊은 배우들이 주로 하고 외국에 까지 그런 영향이 갔다는 걸 들으면 배우로서 뿌듯하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남우주연상도 받아 보고, 뮤지컬 배우로 도약하게 해준 작품이 '엘리자벳'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본인이 직접 창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나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무대를 하며 노하우들을 쌓아 직접 제작 혹은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꿈은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시나리오까지는 아니지만 군대가기 전에 써 놓은 작품도 있어요. 언젠가 가능하다면 배우가 아닌 제작자로서 또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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