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가장 첫머리여야 마땅하며, 이미지적으로 가장 아름다웠던 건 역시 웨딩의 시아준수. 조금 높이, 머리 뒤편으로 휘이 비껴간 부케를 뒤돌아 캐치해낸 그가 그대로 마저 반 바퀴를 다시 돌아와 새 신부를 노려보았다. 그의 시선이 신부에게로 내리꽂힘과 함께 식에 몰린 인파가 일제히 갈라지며 길을 열었다. 대단히 아름답고 대단히 위압적이며 대단히 짜릿했다. 이보다 더 극적일 수가 있을까? 찬탄을 불러일으킨 찰나의 김턴. 만약 2021 드라큘라의 단 하루로 오늘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면 부디 복권을 사시길.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건 Lucy & Dracula 1.

“그럼 그 사람들한테나 주시죠!”

냉정하게 쳐내는 미나의 등 뒤에서 그가 웃었다. 하. 허탈하게 뱉어낸 웃음소리가 선명했다. 또렷한 소리만큼 비틀어 올라간 입매도 짙었다. 아주 분명한 헛웃음이었다. 소리 입혀 웃음을 뱉어내느라 가슴도 살짝 들썩였었지 아마. 그 웃는 얼굴에 색이 있다면 틀림없이 검붉은 빛이었으리라.  

 

셋으로는 드라큘라의 성, Jonathan’s Arrival부터. 노백작님의 톤이 또 한 번 변화했다. 주말에 새롭게 심기일전하고 오신 양, 안개가 되어 길게 흩어지는 “미스터 조나단 하커어…”를 시작으로 가장 두드러지게는 “모두 죽었죠까지 전반적으로 더욱더 느려지고 건조해졌다. Solitary Man에 이르러 역정 내실 때는 엇비슷해지셨지만(조나단이 화나게 했으니 당연하지!). 아무튼 4연에 이른 극이 이렇게 재밌을 수 있는 건 눈 뗄 수 없게 하는 노백작님의 변신 역시 크게 공헌하고 있다. 그래서 감탄해. 시아준수, 과연 현명한 사람.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새롭고, 동시에 조화로울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 사연 첫공에서 재정비한 노백작님을 첫선 보였을 때도 놀라웠지만, ‘완성형’에 이르러서도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기까지 하는 사람. 공연 곳곳에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시아준수지만 오늘의 드라큘라에서는 특히나 노백작님께서 그러한 찬탄을 주셨네요.

촛불은 보아하니 나란히 놓인 것 중 그 아이만 불빛이 꺼지지 않던데, 그래서 수거해가는 건가 싶기도. 어둠 속에서 검지로 불빛을 감싸고 나가는 모습에서 재차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요. 진실이 무척 궁금하네요.

 

공연 전반으로도 대사 톤이 미묘하게 달랐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구요”의 무해함을 어필하는 톤과 “그런 약속 못-합-니-다”에서 음절 단위로 미어지던 절절함. “이건. 내가, 원한 게, 아니야.”의 물결치는 쉼표가 대표적. 셋 중에서도 후자의 어조가 대단히 좋았다. 매번 봐도 매번 견디기 힘든 줄리아 씬에서 단비 같다 느껴질 정도였으니. 계속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한 전반적으로 숨소리가 엄청 가미되었다. Life After Life 곳곳에서 특히나 잘 들렸고, 많이 들렸다. 30일 공연에서도 숨소리가 발견되었었는데 오늘 더욱더 또렷해지고 선명해졌다는 점에서 추후로도 듣게 되지 않을까 싶다.

 

She는 오늘의 노래 중 가장 격한 축에 속했는데 음절 단위의 강세가 자잘하게 포진해 있었다. 가장 귀에 꽂힌 건 밤! 깊은 지옥 속에서. 

 

Loving You Keeps Me Alive. 5월 26일, 조정은 미나가 조나단을 향하여 그를 스쳐 갔을 때는 그녀의 매정한 옆모습을 좇았지. 오늘은 제 손안까지 거의 들어왔던 임혜영 미나의 손을, 그러나 결국 신기루처럼 환영만 남은 채로 텅 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하염없이.

 

Mina’s Seduction. 사연 첫 오블. 오블에서 보는 미나의 유혹은 이런 느낌이었구나. 입맞춤 후의 얼굴이 곧이 보이는 것이야 예상 범위였지만, 침실 문 앞에서 결심을 굳히는 미나를 내려다보는 얼굴에는 한 방 먹었다. 그녀가 손을 잡아끌자 살며시 미소짓던 얼굴. 거의 다 됐어, 얼핏 드리우는 고양된 빛. 이 세상 너머의 치명타. 

 

It’s Over. 첫 소절 ‘어리석은 놈들!’을 이렇게 느긋하게 듣는 날이 다시 올 줄이야. 

그런데 백작님. 총을 맞고 오늘은 두 팔로! 엎어졌다! 항상 한쪽 팔로 버텨냈던 공격이었는데! 드라큘라 힘을 내요. ㅠ

 

Train Sequence. 누구도 저-주 ‘못!’ 하리의 미약한 그르렁과 어미 ‘리’의 흩뜨러지는 부드러움. ‘영원한 삶’의 (준) 나긋함. 신들린 강약 조절. 홀려 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트레인 시퀀스였다. 이 넘버로 뱀파이어 길을 걷게 되는 미나가 온전하게 이해됩니다. 이해되도록, 그가 만듭니다.  

 

Finale. “말을 하지 않아도 당신의 생각이 들려.” 품 안의 미나가 속삭이는 말 사이로 그의 흐느낌을 들었다.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생경한 소리였다. 울음을 삼키거나 참는다는 느낌보다는 무심결에 소리를 톡 떨어트린 것 같았는데, 연기인지 진짜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바로 이 모호한 경계가 시아준수를 드라큘라 천재로 만드는 지점. 시아준수 안에서 매번 일어나는 드라큘라의 감성은 참 경이롭다. 매일을 살아도 타성에 젖지 않고, 매회의 최선을 어김없이 되살려내는 배우. 드라큘라의 피날레는 늘 그런 시아준수를 투영해낸다. 오늘 역시.

 

커튼콜. 두 팔 벌려 허리 숙이는 마지막 인사 후, 살짝 까딱이는 손 인사를 보았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사연 들어서는 처음인 것 같은데요.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걷어내고 방긋 웃으며 인사하는 얼굴이 참 예뻤다. 당신의 아름다움이 내 혈관의 모든 피를 멈춰 세운답니다. 

 

 

2021 뮤지컬 드라큘라 사연 김준수 회차 공연 관람 후기

일시: 2021년 6월 2일 (수) 오후 2시 30분

캐스트: 김준수(시아준수∙샤큘), 임혜영, 손준호, 이예은, 조성윤, 김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