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Luxury 2021년 5월호 김준수 인터뷰 : WITHOUT HESITATION
일자 | 2021-0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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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주요 뮤지컬 무대의 주연을 맡아온 김준수. 그는 스스로 다른 이와 비교하거나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저 무대에서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뿐이다. 뮤지컬 <드라큘라> 공연을 앞둔 그가 이야기하는 뮤지컬의 면면 그리고 그를 끊임없이 무대에 서게 만든 힘에 대하여.
“틈날 때마다 머릿속으로 무대에 서는 제 모습을 시뮬레이션해요. 연습생 때부터 해온 습관이에요.”
촬영 중간중간 생각에 잠긴 듯한 순간을 보인 이유를 묻자 김준수가 말했다. 무대에 온전히 몰입하기 위해 몸에 반복적으로 감각을 되새기는 듯했다.
아이돌 출신 가수가 뮤지컬 무대에 오르는 일이 흔하지 않던 시기. 김준수는 2010년 국내 초연 뮤지컬 <모차르트>로 첫 무대에 섰다. 초연 작품에 파격적인 신인 배우 캐스팅은 보수적인 뮤지컬 마니아들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김준수는 특유의 매력적인 쇳소리가 깃든 목소리와 가창력, 10대 시절부터 춤을 춰온 유연한 몸짓, 무엇보다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곤 매년 무대에 오른 맹렬한 성실성 덕에 공연마다 객석을 매진시키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엘리자벳>, <데스노트>, <엑스칼리버> 등 라이선스 뮤지컬과 <도리안 그레이> 같은 창작극을 넘나들어왔는데, 이례적인 건 8편의 출연작 모두 국내 초연 공연을 맡았다는 점이다. 그만큼 배우로서 극의 ‘기준점’이 될 캐릭터 해석에 능하다는 의미겠지만, 반면 같은 배역을 연기하는 다른 배우와 비교되기 쉽다는 단점도 있다.
모든 논란을 잠재우듯 김준수는 자신만의 개성적인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특히 그에게 뮤지컬 <드라큘라>는 2014년부터 네 번째 시즌을 맞이한 올해 공연까지 빠짐없이 주연을 맡은 상징적인 작품이다. 아일랜드 소설가 브램 스토커Bram Stoker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불멸의 생을 사는 드라큘라가 400년 동안 사랑하는 연인을 잊지 못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표현했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와 <몬테크리스토> 등의 곡을 쓴 뮤지컬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 혼의 화려하고 애절한 선율이 배우 김준수의 보컬과 잘 어울린다는 호평을 받았다. 배우의 고유한 색이 녹아든 캐릭터 해석도 더해졌다. 브로드웨이, 유럽 공연에서는 드라큘라 역을 40~50대가 맡아왔는데, 국내 프로덕션은 배우들과의 논의 끝에 드라큘라의 회상 장면을 중년이 아닌 젊은 시절로 설정했다. 김준수는 백발의 늙은 드라큘라가 청년으로 변하는 ‘Fresh Blood’ 장면에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붉게 염색했다. 작곡가 프랭크 혼이 전 세계 배우들에게 김준수의 헤어 컬러를 극찬하기도. 지난해 약 4개월간 관객을 만나 단련한 뒤 다시 공연을 앞둔 소감과 뮤지컬 배우로 나아가게 만든 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해 뮤지컬 <모차르트> 10주년 공연을 마쳤고, <드라큘라>는 3시즌에 이어 올해 4시즌까지 맡았다. 코로나19 이후에도 꾸준히 공연을 이어가는 소감이 궁금하다.
객석을 띄어 앉은 관객들을 만나게 되어 아쉽지만 아예 중단되지 않은 점이 감사하고,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드라큘라’ 캐릭터는 초인적인 흡혈귀의 설정이지만 고독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인간적인 면모가 매력적이다. 공연을 할 때마다 ‘인간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게 되고 그 점에 매료되곤 한다.
이번 배역뿐만 아니라 <엘리자벳>의 토드, <데스노트>의 엘 등 신비로운 초인적 인물을 맡아왔는데, 캐릭터를 선택하는 기준은?
뮤지컬은 판타지 요소가 가미될 때 장점이 극대화되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적인 묘사나 일상적 이야기는 드라마와 연극이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세트와 음향, 조명 등 다양한 무대미술 장치와 배우의 퍼포먼스를 통해 비일상적 설정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장르가 뮤지컬이다. 그 점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연기를 할 때도 더 몰두할 수 있었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와 장면을 꼽는다면.
“기차는 오지않을 겁니다. 제가 이쪽으로 오는 기차를 모두 탈선시켰거든요.” 사랑하는 이(미나)와 함께하기 위해,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드라큘라가 농담을 건네는 대사다. 팽팽한 흐름이 지속되다가 유일하게 긴장이 풀어지는 장면인데, 드라큘라만이 할 수 있는 대사이자 진심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마음에 오래 남는다.
어느덧 뮤지컬 무대에 오른 지도 11년이 흘렀다. 창작극이나 국내 초연극으로만 이루어진 커리어가 눈에 띈다. 언제 기록이 깨질지도 궁금하고.(웃음)
데뷔할 때부터 ‘노래 잘하는 아이돌’ 수식이 늘 붙어서 우쭐한 자만을 가질 때쯤 놀라운 세계를 만났다.(웃음) ‘세상에 이런 곡을 이렇게 잘 표현하는 사람이 많구나.’ 싶던 놀라움이 생생하다. 프롬프터도 없고, NG도 없고, 3시간 동안 지속되는 긴 호흡을 실수 없이 끝마쳐야 한다는 게 큰 도전이었지만 강렬한 자극만큼 잘하고 싶었고, 내 몫을 다 해내고 싶었다. 그 생각에 골몰하다 보니 시간이 쌓여 있더라. 이제 내 일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창작극, 초연극을 하면 부담이 큰 만큼 큰 자유를 만끽하며 배울 수 있다. 국내 레퍼런스가 없고, 내 연기 스타일을 캐릭터에 입히며 많은 부분을 연출가나 스태프, 배우들과 상의할 수 있는 점이 정말 재미있다. 같이 만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점이 오래도록 무대에 대한 열망을 갖게 한 원동력이었다.
연기를 한 적이 없었으니 가창력은 갈고닦을 수 있어도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걸 터득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겠다.
무대에 오르면 진한 메이크업, 화려한 의상이 더 용기를 주고 조명과 소리가 더 몰입하게 해주니 괜찮다. 단 연습할 때는 캐릭터의 치명적인 모습을 날 것의 상태에서 보여주어야 하기에 아직 부끄러움이 남기도 한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늘 머릿속으로 ‘어느 정도까지 미친 사람인 척 연기할 것인지’를 그려본다. 어릴 때부터 무대에 서기 전에 내가 늘 어떻게 보일지 틈만나면 시뮬레이션해보며 상상해왔다. 장면, 순간을 세세히 쪼개어 과할 정도로 많이 생각해보는 편이다.
다양한 무대에 서온 내공이 느껴진다. 오래전 한 인터뷰에서 “비교당하는 건 상관없다. 잘하는 사람과 일하는 게 중요하다”라는 답을 했더라. 여전히 그 생각엔 변함이 없나?
내겐 자극을 주는 배우와 연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내 실력이 더 나아질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상황, 그 자체를 즐기는 편이다. 호흡을 나누고, 에너지를 주고받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비교와 성패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좋은 뮤지컬 배우에 대해, 연기에 대해 고민하는 편인가?
주연, 조연에 대한 구분 없이 나이가 듦에 따라 그에 맞는 배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다. 언젠간 내가 원하는 배역을 포기해야 할 순간도 올 테고. 계속 걸맞은 포지션을 해내는 뮤지컬 배우란 평가를 받고 싶다.
무대에 오르지 않을 때는 주로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나?
한 가지 관심사에만 몰두하는 성향이어서 예전에는 갖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열정적으로 수집하곤 했다.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졌을 때에는 전 세계 집 사진을 카메라 앨범에 수천 장 저장하기도 하고. 요즘은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대신 집에서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곤 한다.
김준수에게 ‘럭셔리’란 무엇인가?
건강한 자존감과 자신감으로 채운 삶. 가끔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을 마주할 때 무엇보다 값진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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