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연코 Fresh Blood 이야기부터 해야 하는 날. 불타는 저‘녁’의 용솟음이 심상치 않았지. 유난히 길게 풍부한 울림을 실어 쏘아 올리더라니, 흡사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왼블을 정복하고 돌아온 그가 무대 정중앙에 곧바르게 서서는 ‘피! 신선한 피로 에 맞추어 두 손으로 긴 S자 웨이브를 그려내는 것이 아닌가. Life After Life의 ‘달빛의 축복’보다는 컬 하나가 빠진 대문자 S에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여기서 이런 안무 같은 새로운 동작이라고요? 원래대로라면 품으로 파고드는 뱀파이어 슬레이브들을 한쪽 팔로 번갈아 감싸는 동작이 왔어야 했는데, 오늘따라 뱀파이어 슬레이브 두 사람 다 그의 팔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래서 임의로 채워 넣은 동작이 웨이브가 된 건가? 그게 아니면 의도한 변화인가?

(→6월 30일의 관찰 결과, 드라큘라 4연에서는 ‘영원히’에서 오른손으로 오른편의 뱀파이어 슬레이브를 쓰담하고, ‘살’에서 왼손으로 왼편의 뱀파이어 슬레이브를 스친다. ‘피! 신선한 피로!’에서 오른손, ‘영원히’에서 왼손이었던 3연과는 달라진 부분.)

윗비베이의 왕자님이 오시기까지 물음표와 느낌표 백만 개가 머릿속에 오고 갔다. 뭐지? 이거, 계속되는 건가? 아니면 오늘의 특수인가? 한 번 더 느리게 영원처럼 보고 싶은데.. 또 볼 수 있나? 당장 6월 30일 마티네를 무리해서라도 봐야 할 이유가 또 생겼다. 할 수만 있다면 내 눈을 다시감기 할 텐데..

 

노백작님. 오늘의 새로운 덕담. ‘평범한 하룻밤 되시길.’ 생각도 못 한 문장이 되어 깜짝 놀랐는데 드라큘라에게 들으니 여느 날의 ‘편안한 밤’보다도 묘했다. 탈 없이 평범해야 할 그 밤, 백작님이 다 망쳐놓으실 거면서..

 

Lucy & Dracula 1. “당신 또한 날 잘 알죠”의 뭉쳐 있는 소리는 왜 이렇게 좋을까. 돌돌 말린 열기가 손을 동동 쥐게 한다. 좋으니까 들을 때마다 써야지. 

 

“지금, 여기서요?” 되묻는 미나에게 한 차례 고개 끄덕여주는 웃는 얼굴. 오랜만에 본다. 스윗해. 상냥해. 견딜 수 없는 사랑이 묻어나는 얼굴. 예뻐서 애틋하고, 애틋하면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이 된다.

 

가장 위대한 러브스토리, She의 마지막에 이르러 그가 고개를 탁! 젖혀 올리는 움직임을 따라 앞머리 한 가닥이 동그랗게 말린 채로 이마 위에 안착했다. 누운 초승달을 정확히 그린 머리칼이 세일러문 루나의 달 문양과 똑 닮았지 뭔가. 이게 저주받은 표식이라면 너무 어여쁜 거 아닌가요. 달 모양으로 예쁘게 말린 앞머리가 작정하고 그려 넣은 무늬라고 해도 손색이 없어 거듭 감탄했다. 러빙유 간주에 이르러 머리를 쓸어넘길 때까지 그 모습 그대로였는데, 가능하다면 영원에 두고 싶었어요. 

 

그리고 너무나 다정하고 애틋했던 At Last의 찰나. 미나의 두 뺨에 흥건한 눈물을 대신 훔쳐주는 다정한 손길. 양 볼에 차례로 닿는 오른손이 사백 년의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품고 있어 한없이 애절했다. 

 

그 감정을 따라 흐른 러빙유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루나의 초승달이 심어진 얼굴이 예뻐서였을까. 삼연곡의 끝에서 전에 없던 환호성을 들었다. 저 멀리 뒤쪽에서부터 몰려오는 환호성은 길지는 않았지만 우렁찬 본능이 스며 있어서, 과연 매글들은 참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체감했다. 

 

그림자 대화.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그런 끔찍한 존재가 어떻게 생명이에요! 거의 비명처럼 내지르는 미나를 향해 그가 서글프게도 대답했다.

“그래요.. 내가 바로 그런 존재예요..”

칼침 맞아 침몰하는 문장이 이럴까. 서러운 말줄임표가 생생했다.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뼈저리게 알고 있는 사실을 미나의 음성으로 확인사살 당한 비통함. 요즘의 그림자 대화는 계속 안쓰러운데, 유독 마음을 시리게 하는 음성이었다. 

 

Mina’s Seduction의 변주는 점점 다양해져 간다. ‘끝없이 영원한! 쾌~~락!’ 의 강세와 그댈 향한 내 맘 변하지 않으‘리’의 긁는 음성. 그리고 보통날과는 다른 동작ㅡ주로 두 팔을 벌려서 어필하던 문장 “날 원하고 있어”에서 오늘따라 오른손을 가슴에 얹어 보이기까지. 가슴 위로 살포시 손을 얹으니 더욱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어필하는 듯하여 드라큘라의 열망이 한층 진하게 느껴지기도.

전반적으로 새롭기에 흥미진진한 가운데 심지어 드라큘라와 미나 두 사람이 침대 위에 입성하는 타이밍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한마음 한뜻의 일체감을 목격할 때의 카타르시스란! 오늘 자 미나의 유혹에 박수를. 

 

It’s Over 시작부. 그녀는 이미 나의 것, 보내줄 때 ‘떠나!’의 발음이 평소보다 빠르고 억셌다. 두 번은 없으니 당장 ‘떠나’라 떠미는 기세가 아주 맹렬했다. 하지만 역시, 일단 한 번의 기회는 주는 자비로움. 역시 ‘그래도 좀 착한’ 뱀파이어 드라큘라. 

 

Julia's Death. “난 미나를 사랑해.” 그렇게 말해놓고도 제가 하는 이것을 감히 ‘사랑’이라 명명하여도 될지 확신 잃은 눈을 보았다. 이처럼 자기 확신 없이 흔들리는 문장은 또 처음이라,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눈물은 없었다. 눈물로 밀어낼 슬픔이 자리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이 커 보이는 얼굴이 오늘의 자리에 있었다. train sequence에서 인지하고, the longer i live에서 노래한 회한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진실된 러브스토리’를 끝내 전복해버린 나머지 더는 설 곳 없는 그를 보았다.

 

 

2021 뮤지컬 드라큘라 사연 김준수 회차 공연 관람 후기

일시: 2021년 6월 27일 (일) 오후 7시

키워드: 김준수, 시아준수, XIA, 샤큘, 드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