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날레가 좋았다. 피날레가 매우 좋았다. 개인적 취향을 곁들이면 그 어느 때보다도 좋았다. 취향적 최고치의 피날레를 만난 기쁨. 무엇으로 다 이를 수 있을까.

 

체념의 피아니시모로 시작하여 한 순간 울음으로 화하였다가, “나의 절망 속에! 널 가둘 수 없어. 피와 고통의 내 세계를 떠-나-줘-요”에서 아득한 절망의 정점을 찍고는 급격히 선회하여 원음의 “차가운 암흑 속에”를 타고 데크레셴도로 맺음한 오늘의 완급 조절.

 

모조리 좋았다. 절규가 되기 직전의 경계선에서 내내 외줄을 타는 그가. 연신 울음이 새는 얼굴을 하고도 오열에는 이르지 않는 그가.

“날 구원해줄 수 있는 건 오직 당신뿐이에요.” 400년간 품어온 칼을 건네며, 슬픔이 차올라 목소리가 떨리는 순간에도 ‘견뎌내고 있음’이 여실히 느껴지는 완급의 섬세함이 좋았다. 

 

그야말로 정적인 절정. 사연의 피날레에서 매번 강약의 교차로 마음을 울렸던 그가 오늘 그 꽃을 피웠다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날이었다. 

 

*

 

전반적으로 정적인 공연이었다. 음향이 다소 작아서 소리가 저 멀리에 있는 듯한 느낌도 한몫하였으려나. 정적인 고요함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윗비. “우리가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임혜영 미나를 기다리는 동안의 얼굴. 정말로 반짝반짝하다. 그녀의 말줄임표에도 재촉 없이 상냥하게 깜빡이는 눈, 그린 듯한 입꼬리, 선한 미간. 이렇게 쓰는 것으론 부족하다. 윗비의 왕자님 사진이 더 필요해요. 움직이는 영상이면 더욱 좋고요. 

 

“농담입니다”에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서둘러 취소취소 느낌으로 화들짝 놀라며 덧붙이는 톤이 참 좋다. 오늘처럼. 오늘은 심지어 살짝 더듬어 보이기도 했지요. “노,농담입니다.” 매우 인간미 넘치면서도 순한 말투, 들으면 아랫입술을 절로 깨물게 되는 사랑스러움. 

 

She. 아파하고 아파해도 ‘그녀에게’ 갈 수 없죠ㅡ에 이르러 바닥을 쾅 찧은 손바닥에 깜짝. 하필이면 쾅하는 순간의 가사가 ‘그녀에게’라서, 그의 절망이 어디에서 연유하였는지를 더욱 정확하게 전달해주는 효과까지 이루어냈다. 또 보게 될까요?

7월 10일부터 정박을 대체한 ‘..평생!’ 그녈 위해 복수하리의 밀당도 안정되어 가고 있다. 오늘은 특히나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어요. 드라큘라의 심리가 가장 불안정한 순간 중 하나인 이 대목에서의 엇박, 고조되는 효과를 주기에 안성맞춤인 것 같기도. 

 

앳 라스트. She의 막이 내림과 동시에 임혜영 미나가 소리로 울음하기 시작하자 오디오가 지나치게 겹치지 않도록 시아준수 본인의 울음은 회수하여 삼킨 것, 섬세했다. 무대 위에서 그가 배우로서 극 전체를 보고 조율해나가고 있음을 목격하게 될 때의 감격은 언제나 짜릿하다. 

 

Life After Life. “나의 첫 창조물!”은 사연 들어서 중에서 가장 세지 않았나 싶다. 이 대목에서 터트려내는 파워를 익히 알고 있는데도 놀라울 정도였으니. 

특히 좋았던 음절은 “너와 나 우리 세상이 이제 펼쳐진 ‘다-아-아’”의 마무리. 깊고도 낮게 부풀린 음성이 아득한 감각을 선사해주었다. 음절 하나로 소리의 단층 어딘가를 유영케 된 느낌이 몹시도 황홀했다. 

 

Train Sequence. 박지연 미나와 가장 강하고, 조정은 미나와는 어느 순간에 합일하여 서로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 온다면 임혜영 미나와는 역시 가장 부드럽다. 나긋나긋, 상냥해. 오늘은 마지막까지도 다사로워서, 오랜만에 꽤 부드럽게 흩어지는 ‘영원한 삶’을 들을 수 있었다. 

 

The Longer I Live. 그대 빛에 내 어둠 사라질 ‘까’에서 여느 날과는 다르게 곧게 뻗어 나가던 소리가 매우 인상적. 절망 틈에서 갈피를 찾고자 하는 드라큘라의 내적 갈등이 나무 기둥처럼 곧게 치솟는 소릿결 안에 선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의 내 ‘심장’ 멈추네. 오, 오늘의 ‘심장’을 듣는 순간 철렁. 정말로 심장이 미어지는 목소리였지 뭐예요. 먹먹하게 절절했다. 굉장히. 

 

러빙유 리프라이즈도 유난히 고왔다. 곱게, 바스러질 듯이. 울먹거림 한 번 섞지 않은 부드러운 음성이 금방에라도 연기로 부서져 내릴 것만 같았다. 끊어질 듯 말 듯 희미하게 흐르는 오늘의 음성이 좋아서 퀸시들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보았지만..

 

그리고 사연에서는 처음 듣는 “난 그녈 사랑해.” 이름 대신 삼인칭이 올 때의 은유적인 느낌, 오늘의 말투와도 잘 어울렸어요. 이름을 꺼내면 그녀의 빛에 누가 될까, ‘미나’라고 차마 부르지 못하는 듯한 그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