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시아준수 얼굴.. 어제는 마지막 차례에 적었지만 오늘은 첫머리에 써야 한다. 얼굴이.. 시아준수 얼굴이 청각을 방해해요. 그리고 가끔은 시각도 방해해요. 얼굴 이외로는 시선을 돌릴 수 없게 하거든요. 

글쎄 오늘의 반듯하고 눈 시리게 예쁜 얼굴로 초대에서 루시를 안아 들고는 입꼬리를 너무도 분명하게 올려 웃지 않았겠어요?! 침대를 향하여 몸을 틀면서, 빨갛고 새하얀 얼굴로 새파랗게 시린 비소를 그려넣는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단언합니다. 오늘 이 대목에서 기절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

 

Fresh Blood. “나의 목표는 하나!” 귀가 반짝 뜨일 정도의 의지를 들었다. 노백작님 정말 벼르고 계시군요. 조나단에게 펼쳐질 미래를 애도하게 되는 굳센 음성이었다.

 

회춘 후, “새! 운명의 길로!” 새 하늘을 움켜쥘 듯 활짝 뻗어 올렸던 왼손을 얼굴 높이로 끌어내리는 일련의 동작이 흡사 타란의 안무 같았다. 손안에 세상을 다 거머쥔 흥분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해낼 수가. 

이어서는 무대를 가로지르며 “영원히! 함! 께 해!” 평소보다 살짝 더 도약하여 공기 중에 유려하게 머무르기까지. 

 

윗비. 어김없는 불청객의 등장. 보통은 미나에게 못 박은 시선을 굳이 흐트러트리지 않는 편인데(시선 나눠주기도 아까운 사람처럼 어금니만 깨물곤 하지요), 오늘은 몸을 살짝 뒤로 빼서 불청객의 얼굴을 확인했다. 도르르 굴러서 루시를 콕 찍은 눈동자가 어찌나 날카롭던지. 

 

기차역, 미나와 유일하게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의 어미 하나가 바뀌었다. 항상 이렇지는 않았는데.. 사실 언제 웃어봤는지 기억도 ‘잘 안 나요.’ 기존의 문장보다 유해진 말투에 간지러움 폴폴.

 

She. “좋아요.” 박지연 미나의 승낙에 고개를 끄덕여 보인 건 처음. 그녀가 꽤 시간을 들여 고민하는 편이라, 시아준수가 고개를 끄덕일 여유까지는 잘 없었는데. 오늘로써 왕자님의 상냥한 고갯짓 드래곤볼을 수집하여 무척 기쁩니다. 

 

헉. 그런데 “좋아! 신 따위는 필요 없어!” 엘리자벳사를 잃고 악에 받쳐 칼로 뛰어들 때. 오늘따라 다소 멀찍이 내던져진 칼을 향하여 무릎으로 슬라이딩했다. 일전에 한 번 보여주었던 날보다 훨씬 길고도 본격적으로. 칼의 위치를 확인하고 목표 지점을 향하여 오른쪽 무릎을 타고 스르륵 미끄러지더니, 박자에 맞추어 덥석 칼을 쥐고 일어서는 동작의 긴박함이 군더더기 하나 없어 그렇게 짜인 안무처럼 아름다웠다.

 

그리고 오랜만에 제단 밖으로 통, 퉁겨 나간 촛대 하나. 슬라이딩에 이어 촛대의 장외 탈락이라니, 어쩐지 스트라이크를 이룬 듯하여 내적 짜릿함마저 느꼈다.

 

“아파하고 아파해도 ‘그녀에게’ 갈 수 없죠”에선 오늘도 오른손으로 바닥을 쿵. 절망을 박아넣었고요.

 

At Last. 당신은! 이미 나와 결혼했어! 심장 위로 챱 소리 나도록 내려앉은 손바닥. 고요한 가운데 크게도 울린 마찰음이 너무나도 그의 마음의 소리였다.

 

Loving You Keeps Me Alive. 중반부 미나의 소절. 그녀의 등 뒤에서 늘 오른손으로 부여잡곤 하던 심장을 오늘은 왼손까지 마저 포개어 틀어쥐었다. 그녀의 외면이 그렇게나 버거웠던가요.. 그렇게 여겨지게끔. 

두 손으로 부여잡고도 가눌 수 없었는지, 포개었던 두 손을 가슴 앞에서 기도하듯 모아쥘 때는 그 애처로움에 새삼 마음이 아팠다. 

 

웨딩. 여기서 깐큘을 만들지 않으면 대개 한 손으로 얼굴을 덮곤 하는데, 얼굴을 가리고 상체를 푹 꺼트릴 때의 가련함이 항상 눈에 밟힌다. 청순가련. 새빨갛게 청순가련.

 

피날레에 앞서 마지막으로 쓰고 싶은 건 줄리아의 죽음 후에 혼자 남겨진 채로 읊조린 두 번의 “아니야, 아니야..”와 마른 얼굴의 절망이 담겼던 오늘의 러빙유 리프라이즈.

 

그리고 피날레. 

“정말 나와 함께 이 길을 갈 수 있겠어요?”

대답으로 돌아온 포옹에 그가 더없이 귀하고 애틋한 손길로 그녀를 마주 안았다. 깨질세라 조심조심, 그녀의 뒤통수에 얼굴을 포옥 묻었다. 이 포옹이 자신에게 허락된 마지막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애틋함에 마음이 시려 오는데, 눈 깜빡하는 찰나에 꿈에서 깨어난 그가 참 단호하게도 그녀를 떼어내는 순간. 

스스로를 다잡는 그 모습에서 셰익스피어의 구절이 떠올랐다.

 

눈아, 마지막으로 보아라. 팔아, 마지막 포옹을 하여라. 그리고 입술아... 내 사랑을 위하여, 나는 이렇게 입맞춤으로 죽는다.

 

사람이 무대 위에서 시를 쓴다면 오늘 피날레의 시아준수와 같지 않을까. 무대 위에서 시아준수가 형상화해내는 이 모든 아름다움들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그건 오직 사랑의 시로써만 가능하리라.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