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된다는 것〉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어떻게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신묘하다. 본능이라면 무대 위에서 매번 아더의 삶을 진짜로 살아내는 그에게 경탄이 일고, 연기라면.. 그냥 천재인 것이다. 

 

짙게 마른 눈 아래 촉촉한 입술의 대비가 극명했다. 콧물 범벅 되어 흐려진 얼굴에서 오로지 두 눈만이 또렷했다. 입술은 네모꼴로 자꾸만 처지는데, 눈매는 무너지지 않았다. 

‘무너지지 않았다’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노래는 울먹임이었다가(이 세상과 맞설 위대한 왕을 다.. 기대해..) 결연했다가 비통했다가(운명에 맞서는, 그런 게 왕이 되는 길..) 높낮이를 수시로 달리하는데 눈빛은 언뜻 강고하기까지 했다. 무너지지 않는 눈동자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상실로 다져졌기에 이렇게도 깊은가. 시선을 뗄 수 없게 하는 눈빛은 노래를 따라 점차로 가사 그대로의 빛깔을 입어 갔다. 

진실 앞에 서서 물러서지 않고 운명에 맞서는 왕의 길을 직시하고 있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눈이, 되어갔다.

 

그리하여 기다란 외길을 모두 걸어 나와 최후의 음절을 올려 맺었을 때는 마른 장작처럼 홧홧하게 타오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발밑의 땅이 흔들리고 전부 갈라져도 앞으로 나아갈 이의 눈이자,

검이 한 사람을 왕으로 만들었던 족쇄를 풀어내고 자력으로 설 준비를 마친 이의 눈이었다.

 

*

 

공연 텀이 기니까 자꾸 얼굴만 본다. 심지어 오늘은 재연 첫 오블. 새로 만나는 시야가 많아 얼굴만 좇는 스스로에게 당당했다. 예쁘다, 예쁘다 하다가 진지해졌다. 왜 시아준수는 무대 위에서 어떤 표정이어도 다 예쁜 거지? 웃으면 예쁜 거야 당연하고, 울어도 예쁘고 화내도 예쁘다. 결코 질 수 없는 싸움에서 표정을 다 지우고 새파랗게 치켜뜨는 눈까지도 예쁘다. 오블 앞에서 객석을 단죄하듯 칼로 가로긋는 얼굴은 황홀하게 예뻤다. 시아준수가 자꾸 얼빠를 행복 속에 침몰시킨다. 

 

재연의 첫 오블, 그리고 깨달은 오블 곧 〈왜 여깄어?〉 존. 정말이지.. 오블은 왜 여깄어를 위한 곳이군요? 왜 여깄어의 눈동자존이에요. 

시아준수 동공 안의 동그란 빛이 어떻게 피고 지는지가 고스란히 보인다. 펜드라곤? 되물으며 모르가나에게 다가설 때의 놀란 빛이, 멀린과 모르가나의 대치에 혼란스러운 빛이, 이윽고 본인의 도입부에서 결심을 굳히고 반짝이는 빛이 시시각각 점멸하는 모양을 전부 생생하게 보았다. 그 커다란 눈동자가 굴러가는 소리까지 들려요! 여전히도 선하고, 몹시도 잘생겼으며, 참으로 올곧게 반짝이는 눈동자의 공세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곳이다. 눈동자 공격에 절로 넋을 잃다가, 오블로 돌진까지 해오는 시아준수를 보고 기절하는 경험을 위해서라면 오블을 추천합니다.

 

자매품으로 〈혼자서 가〉의 브라운 아이즈가 있다. 검 하나 덕에 왕이 됐다는 힐난 구간, 지지자들과 전략을 논의하던 아더가 고개만 바짝 들어 두 눈으로 랜슬럿을 쏘아볼 때. 푸르스름한 조명 아래 유난히 옅은 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있었다. 동그랗게 반짝이던 갈색 눈이 뾰족하게 날 세우며 검게 화할 때 심장을 치던 충격이란.. 

 

같은 눈, 다른 빛깔의 〈그가 지금 여기 있다면〉. 항상 심장 간지럽게 하는 대목이다. 기네비어가 두 사람의 어깨를 챱 칠 때의 그의 반응. 오늘은 랜슬럿만 툭 건드리니, 계속 배시시 웃던 얼굴이 퍼뜩 굳었다가 이내 풀어지며 진심으로 ‘한 대 맞은 랜슬럿을’ 부러워했다. 온순하게 풀어진 눈꼬리가 정말이지.. 두 발 구르게 하는 귀여움의 집합체였다. 

 

마지막으로 마음에 불을 지핀 장면. 〈이게 바로 끝〉의 “날 배신했고 신을 모독했어!”에서 하늘로 치켜뜨는 시선. 시선 처리가 28일보다 훨씬 여유롭고 분명해졌다. 긴박한 와중에 굳이 굳이 하늘을 짚어보는 동작의 파급력은 크다. 그만큼 아더의 분노가 저 끝까지 솟구쳐있음이 육안으로도 더욱 극명하게 다가오니까. 

여기서 아더의 분노와 함께 시아준수의 관객으로서의 짜릿함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건, 기존의 가사를 쪼개어 새 디테일을 추가해오는ㅡ이미 완성에 이른 캐릭터조차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기를 멈추지 않는 시아준수 덕분일 것이다.

 

극의 줄기가 내 안에 바로 서니, 아무런 번뇌 없이 세부적으로 사랑만 할 수 있었던 9월의 첫날. 8월 28일의 행복은 이어지는 중이다. 마음은 가볍고 기쁨은 도처에 있다. 이 역시 시아준수의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