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심장의 침묵〉의 날로 말하고 싶다. 박자가 폭주하지 않는 심장의 침묵에서 오늘의 시아준수, 흡사 족쇄 풀린 새처럼 음계 위를 날아다녔다. 

빠른 박자 위에서 음표를 때려 박는 와중에 감정선을 터트려내는 그도 매번 놀랍지만, 역시 시아준수, 긴 호흡만큼이나 소리의 결도 감정도 풍부한 사람. 박자가 내달리지 않아 노래의 호흡을 길게 유지할 수 있게 되니 실로 자유로웠다. 음절 단위로 공들여 감정을 빼곡하게 채워 넣는 특유의 스킬이 남김없이 발휘되었다. 원 없이 절망하고 있는 힘껏 부서지다 다시 몸부림쳐 절규하고(내가 알던 세상! 끝났어!) 끝내 깊은 고독에 온몸이 잠겨버릴 때까지 그야말로 노니는 그를 보았다. ‘그림자도흔적도다아아사라진’이 아니라 ‘그림자도 흔적도 다아아 사라진’을 얼마 만에 듣는지! 이토록 풍부한 결, 다채로운 떨림. 시아준수가 노래하며 살려내는 섬세한 결들을 모두 만끽했다. 행복이었다.

 

*

 

〈찬란한 햇살〉 분명 동작은 깨물하트인 것 같은데, 시아준수 왜 이렇게.. 강아지가 이가 가려워 앙앙 깨물듯이 앙앙 하트 했던 거지요. 광대 아래로 장난기 범벅 해서는.. 앙앙 연발 귀여워 죽었다.

(그런데 이 장면 케이랑 주고받기가 고정인 건 아니었나 보다. 케이는 저쪽에 있고, 다른 사람과 앙앙 하기에 제법 새로웠어요.)

 

비비안이 선 마법진에 그만 호되게 당한 아더. 놀라서 주춤한 아들보다 더 유난스러운 아버지, 엑터. 이 장면에서 엑터의 호들갑을 좋아한다. 큰일 날까 얼른 자기 손으로 포개어서는 비비고 매만지고, 호 불어주고. 온갖 야단이 익숙한 듯 가만히 아버지 손 타는 아더까지 좋아하는 부자의 순간.

 

〈검이 한 사람을〉 하산 직전, 두 손으로 검자루를 굳게 쥐고 눈높이까지 직각으로 들어 올리는 동작의 장중함도 좋아한다. 산 아래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가기 전, 바위산에서 아더가 갖는 검과의 시간이다. 검을 든 채로 살짝 숙인 고개가 짐짓 엄숙했다. 엑스칼리버 앞에 전하는 무언의 결심 같은 것이 찰나의 정수리에서 스쳐 갔다.

 

마지막 소절 “우린 끝내 맞이하리 새로운 세상” 선두에 선 그가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오며 왼손으로 주먹을 굳게 쥐었다. 허리 근처에서 낮게 머무르는 주먹의 위치가 절묘하게 다가왔던 건, 조용한 파이팅에서 꼭 나직하게 결의를 다지는 아더의 마음속을 들여다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했기에.

 

참 아더-엑터 부자 외에 보기에 흐뭇한 것 또 하나. 만면에 웃음 띤 채로 노래하는 강태을 랜슬럿과 아버지-멀린과 차례로 인사를 나눈 후 두리번두리번 형부터 찾는 아더. 기웃대는 눈동자가 귀엽고, 랜슬럿이 부르면을 포착하면 금세 환해진 얼굴로 형! 외치는 카멜롯 맑음이가 예쁘다. 엑스칼리버를 주고받으며 웃음을 마주 나누는 두 사람이 참 보기 좋았다. 피를 나누지 않아도 형제 같은 사이란 이런 것이겠지.

 

“평범한 사람도.. 해낼 수 있을까요?”

이 장면에서 대답에 앞서 기네비어가 그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면, 보통날의 그는 랜슬럿에게 좀 들어가라 눈치 주기 바쁘다. 그래서 어깨 맞은 설렘에 빠질 시간이 잘 없었는데. 오늘은 잊지 않고 수줍어했다. 그래서 무려 한 넘버에서 두 번이나 어깨 툭 당하고 수줍어하는 얼굴을 보았네. 배시시 녹아내리다가 랜슬럿을 발견하고는 표정 싹 바꾸어 채근하기까지, 오늘의 아더 제법 바빴다.

 

〈왜 여깄어?〉는 왜 이렇게까지 재미있는 걸까. 이 넘버의 시아준수 표정들 삼라만상의 선함이다. 단단하게 착하고, 따뜻하게 착하다. 

멀린의 어깨를 짚으며 천천히 고개 저어 보이는 얼굴이 오늘의 치명타였다. 온 얼굴 가득 진중하게 빛을 내던 선한 성품. 평화적인 해결을 위하여 먼저 멀린을 설득해보고자 하는 얼굴은 선함의 정도를 걷고 있었다. 자신의 만류에도 멀린이 아랑곳하지 않자, 안타깝게 미어지던 미간까지 모조리 다 차캐차캐 빛으로 만발. 대체 어디에서 이런 품격이 왔을까요.

 

〈기억해 이 밤〉 헉. 지난주에 주 첫공인 9월 9일에만 볼 수 있었던 근사 x 기품 x 위엄의 동작이 오늘 다시 왔다. 10일에는 아예 생략되었고, 12일에는 노래가 앞서갔는데. 오늘 다시 노래를 시작하며, 가사에 맞추어:

평등한 원탁 앞에 모여 함께 맹세하리 / 검 잡지 않은 팔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우아하게 시선을 모았다가, 눈앞의 카멜롯을 매만지듯 옆으로 미끄러트리던 기품.  

하나가 되어 정의로운 세상 만든다고 / 엑스칼리버를 눈높이까지 세워 모든 결의와 경의를 결집시키던 통솔력과 인망.

이 동작들이 노래의 시작과 함께 펼쳐질 때의 벅참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비로소다. 비로소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여정이 눈앞에서 장대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대관식이 약소한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샤아더가 직접 새 시대를 열어 보이고 있으니까.

 

〈결코 질 수 없는 싸움〉은 멋진 노래지만 아차, 그만 귀여웠던 순간. 글쎄 오른손으론 옷을, 왼손으로는 왕관을 동시에 잡고 한 번에 벗으려 시동하다 멈칫. 아차차 옷이 먼저였지. 스르륵 힘 풀리며 차례를 기다리는 왼손이 정말 귀여웠어요.

 

〈혼자서 가〉 “도전할 사람?” 의 나긋함은 이어지는 중이다. 오늘로 벌써 세 번째. 한국인은 삼세번이니까 이제 이렇게 고정되어가는 듯하다 말해도 좋겠지요. 고집스럽게 아름답던 문장을 사근사근하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탈바꿈 시켜 놓다니, 시아준수의 연구는 멈추지를 않네요.

 

한편 눈 반짝하게 한 대목. “우린 지금 당장 평야로 나가 그들을 습격할 겁니다.” 오른손으로 지도를 콕콕 찍으며 그가 단언하자 랜슬럿, 동생을 진정시킬 겸 조금 더 차분한 대화를 시도해보고자 아더의 어깨로 손을 뻗어보는데.. 아더.. 대번에 탁, 제 손등으로 쳐내는 동작이 어찌나 매몰차던지. “결정 내렸어.” 차갑고도 단호한 거부는 반박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노래로도, 동작으로도.

매몰찬 철벽과 더불어 아예 넘버 초반에 기세를 등등하게 하고자 했음이 분명하다. 12일에는 ‘명백한’ 반역죄에서 벼락 치던 강세가 오늘은 “네가 할 일은 내 옆에서 ‘검을! 함께!’ 드는 것”으로 당겨왔으니.

 

마지막으로 적고 싶은 건 어쩐지 자꾸만 샤차르트를 불러왔던 오늘의 〈내 앞에 펼쳐진 이 길〉. 엊그제 네이버나우에서 또 한 번 10주년 소감을 들었기 때문일까. 가사가 모두 샤차르트에서부터 시작된 뮤지컬 배우 김준수의 여정을 말하는 것만 같았다. 잘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떨쳐 낼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눈앞의 최선에 투신하기로 굳게 마음먹고 나아가는 아더 곧 시아준수. 

아더이자 시아준수인 그가 결심을 완전히 굳히는 순간인 “길은 하나, 나의 운-명.” 운명의 드넓은 울림에 맞추어 두 팔을 머리 위로 둥글게 펼치자, 그의 품 안으로 광대하게 들여다보이는 것 같던 포부까지. 

너무나도 아더인 동시에 김준수의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노래의 끝에서 그가 바위산의 검을 단번에 뽑아냈을 때는 미약한 소름이 돋았다. 딱 여기까지. 더도 덜도 말고 운명의 총아로서 만개하는 딱 여기까지가 시아준수로서의 여정의 종착지이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진짜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심장의 침묵, 아버지가 끝끝내 빛 사이로 흐려지며 그의 손을 놓아가던 때를 계속 떠올린다. 결국 텅 빈 손. 손가락이 온기를 잃고 파르르 떨리는 모습이 아주 느리게 눈에 박혔다. 아름답게 고독하고 가여워 애틋하던, 눈에 넣고 싶었던 그 손가락은 오래전 먼 곳에서 rep에서 다시감기 되었다. 그때와 똑같이 손 틈에서 빠져나가는 온기. 사라진 사람, 혼자 남은 그.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빠져나가기만 한 손이었다. 공허한 손에는 오직 상실의 굳은살만이 남았다. 그 손이 가득 차도록 그가 다시 검을 쥐었다. 굳은살 박인 손이 더는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