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의 공연 동안, 처단을 위해 달려드는 비명이 점점 울음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늘 그 여정에 온점을 찍었다. 어느 때보다 명확했다. 

 

이야아- 한껏 내지른 고함이 묵음으로 흐려졌다가, 분명한 울음의 형태를 띠고 명맥을 되살려 왔다. 서슬 퍼런 분노가 통한의 눈물로 변모해가는 과정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에 전율했다. 그토록 거대했던 분노를 집어삼킨 슬픔의 크기가 만져질 정도로 선명했다.

분노를 압도하는 슬픔이란 것. 

‘무-너-지-는 꿈’의 무게가 체감되었다. 한 사람이 두 어깨로 짊어질 수 있는 부피를 상회하는 비통함을, 이렇게 표현해낸다. 

 

이게 바로 끝이 아닐 수 없었다. 

 

*

 

〈언제일까〉는 모든 순간이 샅샅이 아름답지만 가장 가슴 벅차게 하는 부분이라면 역시 엔딩. 마지막 소절과 함께 깊이 감기는 눈을 좋아한다. 세상 모든 사랑스러움이 내려앉은 차분하고 어여쁜 눈꺼풀. 홀려서 가만히 보다 보면 노래가 멎고, 천천히 반짝이며 눈 뜨는 동공과 시선이 맞는다. 천년의 사랑이 시작될 수밖에 없는 순간.

 

〈눈에는 눈〉 오늘따라 눈 휘둥그레질 정도로 근사한 얼굴에 놀라고 있는데 글쎄, ‘시간이 됐다.’ 노래의 시작에 이어 천천히 검을 가로 눕히고 검날을 쓸어올리는 동작에 기절. 비스듬히 누인 검을 내려다보는 시선에 베였다. 칼날을 쓸어올리는 손가락은 또 어떻고. 이렇게 근사하게 멋질 수 있나요. 공연 중 꼭 한 번은 잘생김이 노래를 압도하고 마는 샤아더, 오늘은 여기였다.

 

〈혼자서 가〉의 넘어지는 동작에 늘 감탄한다. 철퍼덕 고꾸라진 다음 균형을 잃고 한 번 더 앞으로 쏟아지듯 미끄러지는 동작을 어쩌면 이렇게 잘 살리지? 감탄 또 감탄. 

같은 철퍼덕도 평원과는 그 느낌이 현저하게 다르다는 점이 또 마음을 끓게 한다. 분기탱천한 혼자서 가와, 온몸으로 무너지는 평원 사이의 간극. 역경이 벌려놓은 거리가 분명하기에 두 동작이 겹쳐질 때마다 마음 아플 수밖에 없다.  

 

“결정 내렸어.” 상대의 손을 탁 쳐내는 매몰참은 강태을 랜슬럿과 따로 맞춘 걸까? 오늘은 하지 않았다. 보통날처럼 왼손 검지로 에녹 랜슬럿의 가슴을 콕콕콕 날카롭게 들쑤시기만 했다. 내일 보면 조금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

 

“감히 왕 앞에서 이야기할 땐…” 기네비어와의 짧은 대치. 퇴장하며 헛웃는 싸느란 얼굴이 장은아 모르가나의 회심의 미소와 닮았다. 과연 남매는 남매다 싶어, (안타깝지만) 좋아하는 펜드라곤 남매의 순간.

 

〈왕이 된다는 것〉의 마지막 소절 마지막 음, “운명에 맞서는 왕의 길을 난 가리-.” 

여느 날과 같이 완전하게 다듬어진 소리는 아니었으나. 서걱서걱하여 비명 같던 소리가 유난히도 청청했다. 떨리는 목소리가 흡사 내면의 투영 같았다. 날것의 마음이 이럴까.

설익은 음성이 또한 깨닫게 했다. 극 중 아더의 나이를.

 

고작해야 열여덟. 자각하고 나니 그의 몫으로 산재하는 현실이 한층 더 잔인해졌다. 아직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마음껏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랄 나이에 실패가 허락되지 않는 전쟁으로 내몰린, 다 여물지도 않아 청년이라 칭하기에는 영 마땅치 않아 보이는 소년이 눈앞에 있었다. 끝내는 승리를 거머쥘 테지만, 최종장에 이를 때까지 원 없이 부서져야만 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사지를 향하여 나가는 소년의 뒷모습이 주는 감회란 실로 어떠한가. 

두꺼운 갑옷으로 무장한 어깨가 단단해 보일수록 가여웠다. 방패를 건네받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굳은 얼굴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애틋했다. 감히 다 상상할 수는 없지만, 하릴없는 엑터의 마음으로 나아가는 등을 눈에 담게 되는 것이었다. 

 

아직 어린 소년인데, 감당해야만 하는 과업이 너무도 크다. 

이 사투 끝에 아더의 여정은 고결한 승리에 닿지만 그 과정이 참 잔인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날이었다. 

 

역시.. 시아준수의 극을 따라가다 보면 과몰입은 순리가 된다. 어쩔 수 없지. 투신하다시피 그 인물의 생을 살아내는 사람이 시아준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