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연 엑스칼리버에서 만날 수 있는, 극을 통틀어 1,2위를 다투게 좋아하는 표정 하나.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해 마음으로만 앓다가 오늘은 꼭 써야만 할 것 같아서.

 

〈그가 지금 여기 있다면〉의 기네비어를ㅡ정확히는 뒷모습을 뚫어지도록 보다 들킬세라 홱 몸을 튼 후에, 시치미를 떼려다가도 결국은 그녀에게로 시선이 따라붙고 마는 얼굴. 바로 여기. 1초나 될까 싶은 이 찰나. 고개 살그머니 들고, 이어 눈썹도 슬며시 들고, 눈동자도 함께 살짝 들어 다시금 기네비어의 뒷모습을 넌지시 보는 얼굴. 이 순간의 미간에 고이는 잘생김을 사랑한다. 은근한 척하면서 말도 안 되게 흘러내리는 잘생김이 좋아요. 

심지어 오늘은 시선 들기 전에 딴청 피우면서 손가락으로 입술을 짚고 미간을 모았는데, 먼 곳 보는 시늉하는 얼굴이 완전히 이 사진과 같았다. 봐요, 이 잘쌩함을. 이 얼굴로 눈썹을 들고, 눈동자 도르륵 굴려 뒷모습을 찾아가더라니까.. 시아준수..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얼굴로 사람을 죽이고 있어요. (feat. 불타는 이 세상) 오늘로 열다섯 번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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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당일의 공연. 오늘의 말들은 명절 맞이한 보름아, 달아. 달이는 짝꿍 바꾸어서 벌써 세 번째, 최다 등장. 더욱더 재미있었던 건 정말 오랜만의 홍경수 엑터가 말 이름들을 대사로 받아준 것. “보름이 달이 두 마리 다 못 찾았다~”

 

〈언제일까〉의 배경이 시간상 동틀 무렵인 건 알았지만, 그간 얼굴(망원경)을 포기 못 하여 이제야 전체적으로 본 것: 여명의 황금빛 조명이 샤아더와 이렇게나 조화롭군요. 아더의 뒤편으로 언덕 가득히 드리우는 찬란한 황금빛이 마치 아더의 후광처럼 반짝반짝. 이콘에서 머리 뒤에 후광으로 그려 넣는 빛처럼 대놓고 반짝반짝. 황금빛 여명이 제빛인 양 모조리 흡수하여 반짝이던 얼굴, 정말 눈부셨어요. 주인공의 첫 등장에 꼭 알맞은 시작이 아닐 수 없어 감탄 또 감탄. 

 

그런데 이 황금빛 여명을 의식하고 보니, 2막 기억해 이 밤 rep에서 엔딩의 하얀 빛 직전까지 바위산 위에 선 그를 물들이는 빛깔 또한 온통 노란색이지 뭐예요. 인지하고 나니 겹치는 게 많았다. 둘 다 전쟁을 겪은 후의 아더이고, 하나는 전쟁을 겪고도 희망을 노래하며, 다른 하나는 전쟁을 위시한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아더라는 것. 결국 첫 등장하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서기를 관철해내는 그가 황금빛 조명 속에서 왔다가, 그 빛 속에서 가는 것이었다. 시작과 끝이 맞물리는 느낌에는 또 울컥할 수밖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오늘의 귀여움 하나, 〈찬란한 햇살〉 도전! 각기춤! 시선 한 번으로 스윽 복사하고는 아예 케이 쪽으로 더는 시선도 두지 않고 팔 달랑달랑에 열중하던 샤아더. 순식간에 펼쳐진 퍼플라인 독무대. 귀여운데, 열정 불붙은 모습은 또 너무나 시아준수여서 그리움 한 움큼. 심지어 한눈으로 쓱 본 동작을 너무나 멋들어지게 복사해내는 것 역시도 지극히 시아준수라서 다시 그리움 이만큼. 분명 보고 있는데 치솟는 그리움에 잠시 왈칵.

 

귀여움 둘. 바위산, 갑자기 제 인생에 끼어든 불청객. 검을 향한 회심의 오른발 찌르기에 오늘의 방점을. 어쩜 그렇게 날래고, 또 균형은 또 어찌나 그렇게 잘 잡는지.

 

결국 운명을 따라 검이 제 주인의 손에 뽑히는 그 순간, 아더의 양옆으로 부채처럼 차르륵 펼쳐지는 백색 조명이.. 오늘따라 또 아더에게서 돋아난 천사의 날개 같았던 거지요. 사위로 넓게 흩뜨려지던 빛이 아더가 하늘을 향해 검을 높이 치켜 올리는 순간에는 일제히 그를 향하여 수렴하며 결집하는데, 글쎄 이 장면의 모든 하얀색이 전부 다 천상계였다. 하얀 빛을 일러 거룩하다 하는 느낌을 알겠더라고요.

 

〈왜 여깄어?〉 사생아라는 힐난을 정면으로 받고 시선 떨어뜨리는 얼굴을 벅차게 사랑한다. 보면 마음이 짠한데, 그래도 두 눈 부릅뜨고 시선 떨구는 찰나를 봐야만 해. 놀라고 상처 받았음이 분명한데도 사람이 먼저라는 우선순위를 반듯하게 세우는 샤아더가 마음을 제동도 없이 내달리게 하니까. 오늘도 역시. 

다그치는 멀린에게서 뒷걸음질하는 얼굴이 표정으로 다 말하고 있었다.

‘가까운 피붙이 하나 지켜줄 수 없다면, 왕이 되어야 하는 운명이 다 무슨 소용인가.’

이어 모르가나에게로 성큼 다가서는 결심 굳힌 얼굴의 굳건한 선량함 말로는 다 못 한다. 

 

이어 2막에서는 굉장한 롤러코스터의 오케스트라. 심장의 침묵은 늘 각오하는 바가 있는 넘버인데도 예상 범위를 웃돌아 놀라울 정도였고, 심지어는 왕이 된다는 것에서도. 이 박자 위에 노래를 쌓아 올린 시아준수에게 대단하다는 말 이상으로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멀린, 왜 나를 버려둔 거야.”

“버린 적 없습니다 아더.”

곧장 들려오는 대답, 목소리부터 나타난 멀린. 어렴풋하게나마, 아더가 먼저 찾아주기만을 기다린 멀린의 마음이 들린 것 같았다. 눈에는 눈에서 아더에게 내쳐진 이후로 쭉 그를 기다려온 것이다. 아더가 느끼기에도 그랬을까. 늦었지만, 그래도 멀린에게 다시 자신의 안곁을 내어주며 의지해보려 하는데..

 

돌아오는 것은 또 한 번의 영영 이별. 

내내 자신을 기다려준 존재와, 자신이 책임지고자 했던 피붙이의 죽음.

 

도대체 그에게 무엇이 남은 걸까 싶은 〈왕이 된다는 것〉

사랑했던 많은 것들이 가고, 의무만 두 어깨에 지고서 그가 자문한다. 다 잃어 놓고도 여전히 왕이 되는 길을 찾으려는 아더가 애틋한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독하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오늘의 오케스트라. 난파선 위에서 균형을 잡아내려 노력하는 시아준수까지 한데 보여 마음 아림이 곱절이 되었다. 오늘처럼 ‘땅이 흔들리고 전부 갈라져도’가 중의적으로 들린 날이 또 있을지. 

역시 대단한 것 이상으로 수고가 컸던, 명절 당일의 공연이었다.

 

 

덧. 도전할 사람의 사근함은 다시 돌아왔는데, 이게 바로 끝의 시선 치켜뜨기는 또 오지 않았다. 하나가 오면 하나가 오지 않는 이 둘의 상관관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