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을 랜슬럿과는 늘 하는 줄로만 알았던 〈찬란한 햇살〉의 점프! 하여 가슴 대 가슴 팡. 오늘의 아더는 쩜프 대신 땅에 서서 형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혼자 점프하여 가슴 맞대었던 강태을 랜슬럿이 동작을 멈추고 아더의 허리를 마주 안아주었다. 맞춰주는 형이 참 다정하고, 그런 형을 보며 맑게 웃는 동생이 무척 사랑스럽고. 샤강 형제, 오늘도 시작부터 화목하다.

 

“이름은 아더라 짓고, 엑터의 손에 맡겼어.”

드러나는 진실 앞에서 말없이 시선을 교환하는 부자. 제가 알던 세계가 뿌리부터 무너져내리고 있음을 절감하는 아들의 등 너머로, 그런 아들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는 아버지의 얼굴이 함께 보였다. 침묵 속의 시선 교환. 아들도, 아버지도 말이 없지만 두 사람 다 느끼고 있었다. 결국 시작되고만 ‘이야기’를. 이제 몰랐던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을 터였다.

 

“저기 저, 무섭게 생긴 사람이에요?”

“네?”

“저기 바위에서 엑스칼리버를 뽑은 사람이요!”

흥분 가득 품은 기네비어의 질문 공세, 지대한 관심에 아더의 어깨가 솟는다. 턱까지 괴고 짐짓 으쓱하는 중에 산통을 깨는 랜슬럿.

“별거 없었어요.”

뒤에서 동그랗게 커진 눈동자가 다 말해주었다. 아니 이 형이? 눈동자를 따라 코와 입이 차례로 다 커지는 얼굴이 못 견디게 귀엽다. 랜슬럿, 적어도 강태을 랜슬럿은 동생의 이 얼굴이 보고 싶어서 부러 놀리는 게 틀림없다.

 

몇 번을 봐도 참 기묘한 건, 이만 좀 들어가, 오만상을 하고 채근하는 아더에게 픽 웃어 보이고 계단참에 기대어 앉는 이 장면의 강태을 랜슬럿이.. 꼭 아더의 보호자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삼중창인 〈그가 지금 여기 있다면〉이 샤강 형제를 만나면 삼각관계를 위한 포석이라기보다는, 물가에 내놓은 동생과 그런 동생을 귀여워하는 형의 느낌이 물씬 난다. 참.. 보기가 좋아요.

 

그나저나 오늘 아더, 전반적으로 동작이 큼직큼직하군요. 기네비어의 손을 맞잡을 때 상체까지 다 써서 (약하게나마) 다이빙 느낌 나는 모습 오랜만에 본다. 

 

성당 공터. 오늘도 엎드린 김에 가볍게 팔굽혀펴기 2.5번. 이 타이밍에 그걸 왜 하냐는 듯한 랜슬럿의 핀잔에 으쓱하며 종알종알 바쁘던 얼굴. 도대체 어디서 이런 참새가 왔을까.  

아니 그런데, 오늘 엑스칼리버를 내려놓고 다른 검을 재빠르게 쥐어야 할 타이밍에서 손이 버벅댔다. 적이 등 뒤에서 오고 있는데! 긴박한 싸움의 한 중간에! 큰일 날 뻔했어, 아더. 위험천만했다구.

 

〈이렇게 우리 만난 건〉 두 사람의 소절이 듀엣이 되어 만날 적에, 서서히 다가오는 기네비어를 보는 눈동자에 말로는 다 못 하는 설렘이 심어져 있는 걸 정통으로 보았다. 숨겨지지 않는 벅참을 품 다 못해 당장에라도 파르르 떨릴 것 같던 눈꺼풀. 사랑을 틔운 얼굴이 이렇게 예쁘다.

 

한편 공연 회차가 이쯤 되니 기네비어 앞에서 웃는 얼굴보다도, 그녀가 돌아볼 때면 상처에서 손 놓는 팔에 자꾸 시선이 간다. 분명 멀린의 힘을 다 끌어다 쓸 정도의 심각한 부상이건만. 상대가 염려할까 상처를 손으로 짚지도 않고 버틴다. 그럴 수 있는 차원의 상처가 아닌 걸 그도 알고, 나도 아는데. 아이고 아들아..

 

〈왜 여깄어?〉 요즘 계속 멀린에게 이입된단 말이지.. 모르가나를 받아주면 안 돼, 아더. 그녀는 네가 창조하는 모든 것을 파괴할 거야. 계속 멀린의 가사를 마음이 따라가는 중에, 모르가나라는 우선순위를 세웠음이 분명한 아더의 얼굴을 보게 되면 속이 탄다. 불행을 피할 수도 있는데, 어째서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거니.. 단호하게 벽을 치며 뒷걸음질하는 미간에 심각하게 고여 든 거부의 의사에 멀린처럼 상심한다.

 

〈기억해 이 밤〉 헉. 헉. 세상에. 드디어! 오랜만에. 검을 잡지 않은 팔이 다른 날보다는 조금 높게 올라온다 싶더라니. 역시 오늘 전반적으로 동작이 커진 건가? 싶어진 찰나에. 9월 9일 이후로 처음 보는, ‘하나가 되어 정의로운 세상 만든다고’에 맞추어 검을 들며 유려하게 손목 돌리기! 검을 곧장 들어 올리는 게 아니라 손목을 돌려 검날로 아름다운 반원을 그리는 동작.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이 기품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반가워라. 오늘 몫의 흥분을 다 여기에 둔다.

 

〈오래전 먼 곳에서〉는 계속하여 고공행진 중이다. 천상의 가성. 시아준수 목소리 사랑해. 갑분결혼식이라도 이 목소리면 모든 것에의 이유가 된다. 사랑도 영원도 다 이 안에서 찾으면 되는 것을.

 

기네비어의 관자놀이 아주 가까이에서였다.

“이 무거운 슬픔, 세상이 무너져 내려..” 

어찌할 도리를 모르며 사시나무 떨듯 파들파들하다 갈퀴 잡던 손..을 오늘따라 놀란 마음으로 보던 중, 바로 옆의 강태을 랜슬럿이 시야에 들어왔다. 참담한 형의 표정이 이것이 샤강의 〈이게 바로 끝〉임을 새삼 깨닫게 했다. 다른 날에는 아더의 분노를 따라 내 안의 불길을 일으키게 되곤 하지만, 샤강이 되면 바라보는 마음이 슬퍼진다.

분노에 앞서 오는 슬픔은 아마도, “너희 둘을 카멜롯에서 영원히 추방한다”며 무너지는 아더의 뒤편으로 무너지는 형의 얼굴이 또한 선명하기에. 추방하는 자와 추방당하는 자의 고통이 엇비슷하다는 걸 느낀다. 유일하게. 강태을 랜슬럿일 때는, 아더 혼자만의 고통이 아닌 것이다.

 

끝까지 아더를 놓지 못하는 랜슬럿의 시선은 전쟁터로의 귀환을 마땅한 순서로 만든다. 제가 쫓아 보냈던 형을 보고 반색하는 아더도, 거리낌 없이 서로의 등을 맡기는 싸움도 모두 당연하다. 한 귀퉁이가 뜯어졌을지언정, 두 사람을 결속하는 끈은 여전히 단단하기에.

 

평원의 이별에서 눈물을 흩뿌리게 되는 것 역시 불가항력이다.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아,안돼.”

연거푸 쏟아진 비명을 셀 수도 없었다. 싸느랗게 늘어진 형제를 부여잡고 외치는 한 마디 ‘혀-엉’은 평소처럼 예의 포물선을 그리지 못했다. 복받쳐 울다가 중간에 고꾸라지고 만 울음은 그 일그러진 형태 때문에 더욱 진짜처럼 들렸다.

“미안해, 형. 미안해..”

망자의 기도를 입어야 하는 형에게서 떨어지는 손이 세상 가여웠다. 오도카니 비켜선 그의 옆에서 한때 형이었던 존재가 사제의 손에 맡겨진다.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에 그는 혼자 남았다. 

 

운명이 안배한 또 다른 이별, 기네비어. 그녀 앞에 무너지듯 무릎 꿇은 그가 “난 맹세했죠...”에서 부수어지며 고개를 떨구었다. 부둥켜 잡은 서로의 손에 천근의 무게를 진 이마가 닿았다. 기약도 없이 울음 속에 깊이 묻은 얼굴. 손등에 이마를 묻은 채로 굳어버린 사람처럼 그가 노래했다.

“영원을 알 수 없던.. 오..늘..”

기네비어가 그를 찾아 내려와 어긋난 시선을 맞출 때까지. 

시선을 맞추며, 그녀는 이별 또한 그의 눈앞으로 데려왔다. 고개 묻어 회피하고자 했던 노력이 무색하게도.. 사랑은 기억만 남긴 채 캄캄한 비극이 되었다. 흐르는 눈물로도 상처를 씻어낼 순 없었다.

“안돼..”

수신처를 잃은 읊조림만이 그녀마저 떠난 그의 곁에서 흐려졌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하모니였다. 둘이 만든 평원의 이별, 또한 둘이 만든 오래전 먼 곳에서 리프라이즈. 그리고 오직 한 사람 몫의 기억해 이 밤.

오늘의 삼악장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