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화요일, 삼연 첫공.

 

오늘의 넘버는 죽음의 게임. 사랑은 옷을 바꿔 입어도 역시 사랑이다. 

사랑했던 주홍빛 조명 아래에서 그윽하게 음영지던 얼굴이 사라지고, 심장을 직격으로 두드려댔던 드럼의 소리도 이제는 미약하지만 그 모든 상실의 자리를 메우는 가창을 들었다.

 

“지옥의 출입구가 열-렸-어!” 

 

마치 소릿길의 봉인을 해제해낸 것처럼 과격하게 증폭되는 소리가 포문이 되었다. 거기서부터였다. 주고받는 서슬이 인정사정없었다. 이렇게나 난폭한 기세의 시아준수라니. 드럼이 심장을 두드리던 감각이 사라졌음에 아쉬워할 필요가 없었다. 드럼의 자리까지 치고 들어오는 열창에 건드려지다 못해 찔리는 것만 같았으니까. 생글생글 웃으며 내가 엘이라던 얼굴은 오간 데 없이 상대방을 잡아먹을 듯이 구는 투사만이 남았다.

 

정말이지 가창이 말도 안 됐다. 상대방을 남김없이 씹어 삼킬 것처럼 덤벼대면서도 기가 막히게 ‘호흡’을 이루어내는 듀엣이 말도 안 됐다. 그렇게 서로를 향해 파득대는 불꽃이 말도 안 됐다. 가창의 승리이고 불꽃 튀는 호흡의 승리였다.

 

그래.

오늘의 죽음의 게임은 과연,

“내가, 엘이야.”

핑그르르 고개 꺾어 라이토의 눈 안에다 정면으로 던져넣은 도발에서 시작된 듀엣이라 불릴 만 했다. 

이게 바로 엘의 싸움이고 데스노트에서 내거는 두 천재의 정면승부인 것이다.

 

*

 

퐁실퐁실하게 띄운 부스스한 뒷머리. 예뻤다. 얼굴은 더 예뻤고!

 

정의는 어디에 reprise

정신병자 싸이코패스 살인마의 리듬감과 따박따박한 박력. 군중 속에서 제 편 하나 없이 홀로 서 있어도 그 위세가 대단하다. 표정도 변하지 않고, 걸음도 거침없이 당당해…

휴.. 그리고 삼연에서 처음 다시 만난 순간부터 다시 꽂힌 음절인데요.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ㅡ여기 지와 제 사이의 중간 발음에서 폭포수가 되어 범람하는 소리가 너무 좋아요. 귀에 그냥 가져다 붙이고 싶을 정도로요.

 

키라는 당신의 아들

몸을 반 바퀴 뒤로 돌리며 의자로 점프하여 착석하는 거, 봐도 봐도 신기다. 그냥 착석도 아니고 엘의 고유 자세로 안착하는 게 가능하다니. 대체 어떤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으면 이게 가능한 걸까. 이 순간 빰! 거대하게 울리는 음향 효과와도 타이밍 딱 맞아 떨어져서 카타르시스가 굉장해.

 

드실래요? 물으니 아예 입을 가져다 대는 수사관에게 “제거예요.” 정색하던 엘의 철벽 수비는 매우 귀여웠고,

브라우니 탑은 오늘은 아예 처음부터 쌓지 않은 걸로 봤는데 맞는지(얼굴 보다가 손을 놓쳤당 → 두 번 만에 무너졌다고 ㅎㅎ). 접시 위에 그냥 쪼르르 나열해두는 모습이 어쩐지 오늘은 브라우니 탑 자체에 큰 미련이 없어 보였다.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브라우니로 탑을 쌓는 것도 매우 엘스러웠지만, 정반대로 이처럼 괘념치 않는 태도도 대단히 엘다웠는데: 정보 전달이라는 소정의 결과만 달성할 수 있다면 브라우니를 처리하는 과정이야 어떻든 가치를 두지 않는 성격이 엿보이는 느낌이라.

 

“캠퍼스에서 라이토를 감시할 거예요.” 

‘겁니다’와 혼용했고, 양자가 모두 어울렸던 초재연과 달리 삼연의 나긋한 엘에게는 ‘거예요’가 훨씬 어울린다. 부드러우나 단호한 말투. 이 선언에는 어떤 여지도 없다. 야가미 국장 등이 반대를 하든 말든.

시종일관 부드럽고 나긋하다가 그 발톱을 드러내는 건 딱 한 번: ‘야가미 국짱님’의 그르렁대는 소리 오늘 꽤나 노골적이었지요?

 

변함없는 진실

앉은 자세의 차이가 이렇게 큰 걸까. 털썩 주저앉는 대신 고유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삼연의 엘에게 혼란은 짧고 굵게 스쳐 간다. 숫자와 데이터로 이루어져왔던 자신의 세상이 산산조각 났음에도 혼돈은 금세 물리치고 결단으로 나아간다. 과감히, 숨기지 않는 분노와 함께. 

 

명예를 위해서 ~넘버가 사라지는 바람에.. 여기는 대체 뭐라고 칭해야 하는 거람.. 만약.. 있다면요? 씬...~

“국장님 아들이, (두 눈 동그랗게 뜨며 잠시 멈췄다가) 키라라는 걸 인정하는 것보다 어렵나요?”

발랑 누워서 수사관을 올려다보는 동그란 눈. 물음표 띄우고 진심으로 알쏭달쏭해하는 얼굴이다. 위에서 보면 동그랗게 부푸는 눈동자에 뛰어내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진심이에요.

 

추리하느라 대사가 많을 때, 삼연의 엘이 초재연과 가장 다른 건 나긋함만이 아니다. 삼연의 엘은 L의 재현이라는 틀 안에 있지 않다. 어떤 대사는 초재연에서 표방했던 엘스러움을 과감히 버리고 자연스럽게 풀어내는데, 놀라운 건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대로 연기하는 그 자체가 엘이 된다는 것이다. 엘의 옷을 입은 차원이 아니다. 그냥 그는 뮤지컬 데스노트의 엘로서 살아있다. 

...사실 이 생각을 초재연 때 똑같이 했었는데요, 드라큘라 20-21 연년생과 아더가 녹아든 시아준수의 샤엘은.. 초재연의 엘을 맛보기에 만들어버리는 엄청난 삼연을 이루어내고 있어요.

 

미사의 등장

미사를 알아차리고는 벌떡 일어서서 재게 세 걸음. 극 중 엘에게서 유일하게 ‘초조한’ 기색을 엿본다. 자연스럽게 무는 엄지. 굽은 등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며 맹렬하게 머리 굴리는 것 역시도 드물게 보는 모습. 그렇게 대략 몇십초. 

이 대목의 엘이 다 좋지만 제일 좋은 건 미사와 통성명하며 어떤 회심의 기색도 없이 무감한 얼굴. 에이틴 타령으로 미사를 쫓아내고, 라이토와 영영 격리시켜 둘 꿍꿍이지만 겉으로는 하나도 드러나지 않는 평온한 얼굴이 좋다. 우리 두뇌 천재는 놀랍게도 포커페이스 천재이기도 하단 말이지.

 

그나저나 샤엘, 비처럼 뚝뚝 쏟아지는 땀방울까지도 왜 그림인지.

 

생명의 가치

여기는 그냥 마음 내려놓고 얼굴만 보고 싶다. 자세로 추리하는 거 아니고 얼굴로 하는 거 맞죠? 오늘의 사망 지점은 한껏 사탕 음미 끝내고 나서 표정 굳히고 정면의 허공을 노려볼 때. 정말로.. 사고를 멈춰 세우는 잘생김.. 극이고 뭐고 엘의 얼굴이 그냥 드라마인 것이다.

 

변함없는 진실 reprise

기억이 떠올랐다. 이 넘버 이 대목, 초재연 때 공연 후에 늘 곱씹게 되었던 부분이다. 이 리프라이즈의 ‘의지’가 엘의 것인지, 노트의 명령인지에 대해. 어느 날에는 전자 같고 어느 날에는 후자 같았던 모습들에 생각이 많아지곤 했지. 오늘은 일견 후자 같았다. 노트의 지령을 따르고 있다는 자각조차도 없이 정해진 각본을 수행하는 엘처럼 보였다. 그런 날에는 엘의 죽음이라는 결말을 이미 아는 마음이 조금 더 쓰라리곤 했다. 오늘 그러했듯이.

 

마지막 순간

노트에 이미 다 적혀 있거든! 라이토의 깐족거림에 전말을 깨달은 시선이 서서히 오른손의 권총을 향하여 떨어졌다. 작지 않은 충격과 낭패감이 소리 없이 스쳐 간다. 엘에게서 보지 않기를 바랐던 표정들이 하나씩 나타났다 사라졌다. 희비를 크게 드러내는 법 없던 얼굴에 번진 선명한 낭패감에 또 한 차례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래, 〈마지막 순간〉은 이렇게 마음 조이게 하는 넘버였지. 엘이 쓰리고, 안타까워서 견딜 수 없는 넘버였다. 허망하고, 분하고, 동시에 나는 틀리지 않았다는 마지막 확신이 다행 같은 불행으로 남는 넘버였다. 라이토가 원수가 되고 류크는 더 못마땅하고 흩어지는 모래가 전하는 허무함이 폐를 채우는 극이었다. 무상한 분노의 정점은, 엘을 애도하는 그 누구도 이 극에는 없음을 볼 때 극에 달한다. 데스노트는 그런 극이었다.. 

 

 

마지막으로 커튼콜의 시아준수. 어째서 오늘도 그렁그렁하게 잠긴 얼굴이었는지. 가라앉은 얼굴이 연신 감정을 삼켰다. 삼키고자 하는 건 무엇 하나로 특정지을 수 없을 만큼 무량했다. 그건 열연 후에 남는 잔떨림 같기도 했고, 극이 전하는 메시지에 관통당한 여운처럼도 보였으며, 만석을 마주한 울컥함 같기도 했다.

 

벌써 네 번째 공연이건만 프리뷰 첫날보다도 깊이 휘감긴 그 얼굴이 나를 뒤흔들었다. 매 공연 첫공의 최선을 쏟아붓는 이 사람은 막이 내릴 무렵의 자기 자신의 감정 앞에서도 처음인 사람처럼 군다. 그것은 관객과 나눌 필요 없이 오롯하게 자신만의 것임에도, 내일은 없는 이처럼 투신한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무대 위의 김준수에게는 내일 대신 매 순간의 처음만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