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생과 사의 경계를 연주하던 변함없는 진실과 ‘여러분의 나비가 되어 주고 싶었다’던 시아준수의 나비와 함께합니다. 

 

 

 

사흘 내내 같은 인사를 받았다. 진중한 눈매를 따뜻한 미소로 살며시 휘어트린 그에게서.

 

“또 하나의 꿈을 이루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은 인사였다. 동료 배우들에게 고맙고, 음악감독 및 오케스트라에 고맙고, 스태프에게 고마우며, 객석을 채워준 관객들에게 감사하다고.

세 번을 꽉 채워 전하며 웃음 머금은 얼굴로 그가 깊이 허리 숙였다. 고개 숙인 감사가 한량없이 반짝거렸다. 자연한 수순처럼 심장이 묵직해졌다. 이 장엄하리만치 아름답고 거대한 공연을 성공적으로 완수해낸 공을 모두 자기 외의 사람에게로 돌리면서, 덕분에 꿈을 이룰 수 있었다며 웃는 시아준수가 눈앞에 있었다. 절대 가볍지 않은 마음 한 아름이 뭉치째 내 품 안으로 안겨든 기분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Vol.7에서 팜트리아일랜드를 설립하게 된 배경을 소개하며 그가 말하기를, 계속해왔던 것을 ‘더 잘해보기 위해’ 나오게 되었다 했다. ‘더 잘해본다’는 의미가 원래 무엇이었나 싶게 역사를 쓰고 있는 시아준수를 올해 내내 목도했다. 이 이상의 최선이 있을까 싶으리만치 새 출발선에서 내리 질주하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한참을 앞만 보고 달리던 길 위에서 갑자기 나를 향해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고는 말을 건넨 것이다.

 

덕분에 행복하다고. 

 

자신이 쌓아 올린 섬에서 확신으로 빛나는 얼굴을 하고. 

그가,

시아준수가, 

내 행복의 토양이. 

사랑을 머금고 말갛게 씻긴 얼굴을 하고는 ‘덕분’이라는 말로 자신의 관객을 이 모든 행복의 원천으로 또 한 번 명명해주었다.

 

무엇을 더 바랄까. 내 행복의 결정체가 자기 확신을 안고 나를 향하여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까. 그 확신의 반경 안에서 행복이 사위를 향하여 피어나고 있는 광경을. 이 반짝이는 감격에 투항하지 않을 도리가 나에게는 없었다. 

 

*

 

편안하게 웃는 얼굴이 좋았다. 작은 손에 얼굴을 폭 묻어 웃을 때면 그를 바라보는 내 세상도 산란하게 따라 웃었다.

매번 온 얼굴을 한껏 끌어내려 웃고, 때로는 바닥에 주저앉아서도 웃었다. 그 모든 웃음들에는 구김이 하나 없어 천연스러웠다. 팜트리 배우들의 두서없어 귀여운 토크 틈바구니에서 박장대소하는 얼굴도, 꼭이요의 진태화 씨를 몰아가다 못 말린다는 듯 웃고 끝내는 져주며 고개젓는 얼굴과(누군가를 몰아가는 시아준수라니 이 대목에서 그들의 화기애애함이 가히 다 보이는 듯했다), 누나들의 맞장구를 응원 삼아 이리저리 통통 튀는 토크에 본인이 더 신난 얼굴도 전부 작은 티끌 하나 없이 맑았다.

무장해제된 웃음이 구름처럼 회장 안에 동동 떠다닐 정도였다. 갖가지 기쁨이 웃음 속에 자욱했다. 그게 못 견디게 좋았다. 대표이자 콘서트의 구심점으로서 무대를 이끌어가야 하는 책임감은 그대로 있을지라도, 본인이 직접 꾸린 배우들 사이에서 이토록 무장해제 되어 웃는 순간들이 시시때때로 쏟아진다는 게.

오빠가 오빠의 사람들 사이에서 편안하구나, 행복하구나… 

 

‘내 친구들도 함께 왔다’는 오빠 파트의 가사가 참으로 적절했다. 다 비키라며 찡긋 웃는 코끝에 마음이 허물어졌다. 그 말을 듣고 곁을 보니 과연 양옆으로 세 사람씩, 그와 같은 빛깔의 웃음을 나누는 사람들이 그의 둘레를 마치 날개처럼 감싸고 있는 게 아닌가. 

백 마디 말보다 선연한 증빙의 향연에 눈이 시렸다. 

 

애틋했다. 여러 배우들, 여러 부류의 팬과 관객들이 총집합한 콘서트라는 점을 감안하여 줄곧 조심스럽게 중심을 잡고 있던 그가 우리 팬들이 등장하거나 물망에 오르는 순간에는 두 다리를 날개처럼 써서 날아와 주었다. 단체 갈라콘서트에서 갑자기 우리 대화의 장이 펼쳐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럴 때면 우리들만의 공간에서처럼 팬들을 어르고, 친근하게 다그치고, 스스럼없이 치대오곤 했다. 

 

우리의 티키타카가 마치 짜 맞춘 듯 맞아떨어지는 순간에는 무대에서 작은 탄성이 나왔다. 감탄하는 동료들을 향해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자못 양양해진 얼굴이 입꼬리를 씩 올려 웃었다.

“우리가 맞춰온 시간이 얼마인데.”

은근슬쩍 팬들의 자랑을 늘어놓는 천연스러움에 마음이 벅차다 못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치, 그의 말이 맞다. 내가 그를 알아 온 시간만큼 그도 우리를 안다. 우리의 시간은 시간을 넘어 함께해온 운명 같은 것.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노라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전하고 있는 그가 내 시선 속에서 반짝반짝 웃었다. 힘이 들어가 솟은 어깨와 확신으로 동글게 말린 광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게 예뻤다. 배우들 사이에서 불시에 의기양양해진 태세가 못 견디게 사랑스러웠다. 

 

문득 생각하니 그랬다. 이 콘서트는 팜트리아일랜드 7인의 배우들을 세상에 함께 소개하는 자리인 동시에 각자의 팬들을 배우들 앞에 처음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처음인 이 상견례 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척하면 척이죠.”

팬들 자랑을 늘어놓으며 본인이 더없이 뿌듯해하는 모습에 심장이 법석대며 소란을 피웠다. 우리와의 시간을 자랑하는 그가 가슴을 벅차게 했다. 그에게 그런 믿음을 줄 수 있었던 게 기쁘고, 그토록 굳건한 연대가 그에게는 ‘팬’이라는 존재인 게 애틋했다. 

 

균형을 위해 배우들 사이에 부러 나서지 않고자 내내 자제하던 사람인데, 팬들만 나오면 말투부터 달라졌다. 그럴 때면 꼭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프레리독 같았다. 그게 절대 동떨어져 보이지 않았다. 특별해 보였다. 자신의 팬들을 자기만의 보금자리로 확신해 마지않는 그 모습이 애틋하여 웃었다. 내 마음이 너무도 기쁘게 그를 향하여 웃었다. 

 

 

‘성료’라는 표현이 더할 나위 없는 공연이었다. 김준수라는 사람의 배려와 조율 사이에서 콘서트가 만개하고 있음을 시시각각으로 느꼈다. 배우이자 대표로서 이 거대한 합동콘서트를 진두지휘해가는 그를 보는 게 어떤 감동이었는지.

그가 직접 모은 소속 배우들 사이에서 만발하는 웃음들, “대효님 안 계시면 말이 잘 안 나온다”던 김소현 씨 말씀에서 느껴졌던 그를 향한 구성원 모두의 신뢰. 배우들뿐인가. 음악감독님과 오케스트라까지 한마음 한뜻 한꿈인 이 공연은 꼭 어디 외따로 떨어진 별세계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그래, 이 공연을 말할 때 7인의 배우들 간의 밸런스만을 말할 수는 없다. 배우들로만 채워지는 공연이 아니지 않았나. 음악감독님과 야자수 오케스트라 또한 이 무대의 어엿한 일원으로 함께했다. 공연에 참여한 모두의 균형 어린 행복을 위해 고심하고 또 고심한 결과물이 사흘 내내 펼쳐졌다.

 

사실 시아준수의 공연에서는 늘 그 콘서트의 인솔자인 음악감독님이 소개되고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 할애되어 왔기에 미처 인지하지 못했으나, 실은 그조차도 시아준수의 감사 어린 배려를 기반으로 한 시간이었다. 우리에게는 늘 당연했던 음악감독님 세션이 감독님을 위시한 오케스트라를 사랑하는 관객들에게는 또 하나의 별빛처럼 귀중하고 천금 같은 기억으로 영원에 오를 것이었다. ‘함께’라는 가치는 이렇게 지켜내는 것임을 천명하는 듯한 공연이었다.

 

 

김준수 이름 석 자와 공연이 만났을 때의 음향 이야기도 꼭 해야만 한다. 시아준수의 청중으로서 그의 공연에서 가장 당연한 경탄이란 늘 음향이었다. 이것은 뮤지컬 공연장과는 다르다. 압도적인 사운드 속에서도 흐려지거나 뭉개지지 않는 전달력, 노래의 폭포수라는 게 무엇인지 온몸으로 깨닫게 되는 경험. 피부로 소리를 곧장 받게 되는 감각. 소리가 하늘 같은 천정을 향해 분수처럼 치달았다가 나의 전신을 향하여 흠뻑 쏟아지고, 시아준수의 울림통을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을 것 같은 공간. 시아준수가 그의 팬들을 자랑스러워하듯 나 역시 그를 자랑하고자 할 때 늘 첫 손가락에 꼽았던 것. 시아준수라는 브랜드의 음향. 

 

이 음향으로 듣는 노래들이 어떤 감격이었는지. 음향이 밑바탕이 되니 모든 노래에 새 생명이 깃든 듯한 정채가 돌았다. 모차르트에서 드라큘라로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영원을 살고 싶었다. 분장도, 무대장치도 없지만 오직 노래만으로 이야기 속으로 데려가는 사람. 나는 나는 음악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여과 없이 전달되었다. 러빙유의 400년이 어떤 굴절도 없이 눈물로 다 채운 망망대해를 향해 흘러갔다. 황홀한 시청각에 시간을 멈추어 두고만 싶었다. 

 

나비는…

티끌을 짚는 발음이 어찌나 반짝거리던지. 티끌이란 단어가 이렇게 간지러운 것이었던가? “저기요!” 씩 웃으며 손끝으로 저 어디를 가리키는 노래 중간 중간의 잔망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세상에 이 노래와 시아준수의 어울림은 대체 무슨 조화란 말인가요. 그가 적었다던 다섯 곡의 위시리스트를 물리치고 당당히 첫 번째 콘서트의 커버 무대를 독차지할 법한 아이였다. 김준수라는 사람에 대한 애정 어린 연구의 결과물이란 걸 누구라도 알 수밖에 없는 선곡이었다. 양주인 음악감독님께 감사를. 수용의 오빠에게 감사를. 

 

‘생과 사를 넘나들던’ 변함없는 진실. 음악감독님의 표현이 대단히 정확하다 생각했다. 노래하는 이도 연주하는 이도 그 전부를 목격하는 이도 노래의 순간순간에서 어느 영겁을 넘어 다른 차원으로 내던져진 것만 같은 때가 있었다. 노래를 완파한 후엔 본공연에서와는 차원이 다르도록 빠른 박자에 밭은 숨을 몰아쉬는 그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모두를 위한 행복의 엔딩. ‘마지막은 행복하게’라는 스스로의 표어를 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지켜 보였다. 모두의 행복이 무대에서 발원하고 다시금 무대를 향하여 수렴하는 장관이 지극히 아름다웠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웃고, 그 웃음의 한가운데에 나의 가장 빛나는 사람이 다른 모두를 향한 감사와 신뢰, 그리고 기쁨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대단하리만치 장중한 행복의 엔딩곡에 처음으로 다른 뮤지컬이 궁금해졌다. 시아준수 뮤지컬의 관객으로 살아온 시간이 12년이 되었으나 아직 그런 극을 모른다는 살풋한 깨달음과 함께. 저토록 행복한 곡이 담긴 극이란 어떤 걸까. 모두가 웃고 행복해하며 내일 또 봐(주인공이 죽지도 않는)를 기약하는 해피엔딩인 극이란 대체 뭘까. 

 

그런데,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빙 둘러보니 그 모든 게 이 순간 이미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여기, 팜트리아일랜드의 무대 위에. 

오직 행복만을 향하여 모두가 함께 달려가는 꽉 닫힌 해피엔딩이. 

다른 무엇을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다. 바라는 모든 기쁨이 이미 내 품 안에 있었다.

 

이런 공연이 또 하나의 꿈이라고 했죠, 오빠?

 

이 공연을 일컬어 또 하나의 ‘꿈’이라 명명한 그 마음이 너무도 이해되었다. 

이 꿈의 다른 이름은 ‘행복.’

그리고 바로 그것이 시아준수라는 사람의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