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의 개막 공연. 적막 속의 커튼콜, 1960년대의 브로드웨이와 2000년대의 한국 뮤지컬 사이에 놓인 정서적 시간적 거리감 같은 것들에 대하여 부단히 곱씹는 동안 이틀이 흐르고 다가온 두 번째 공연. 11월 20일, 일요일.
이런 것을 또 마법이라 할까요?
긴 밤을 지새운 뒤 새벽의 빛이 밝아오듯 많은 것이 뒤바뀌었어요.
그러니까, 첫 등장의 얼굴부터요. 삼대칠로 얌전하게 내려 포슬포슬 컬을 넣은 앞머리. 세상에 이 순둥이는 누구예요? 언뜻 흑토드를 연상케 했던 첫공의 스타일링에 비한다면 갓 태어난 수준으로 순둥해진 것인데...
보기에도 심장 아프게 예뻤지만 서사적으로도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골목 하나 주름 잡던 시절은 깨끗하게 청산하고 새 인생 살아보겠다는 토니의 결심이 어떤 부연 없이도 말랑하게 빚은 얼굴을 보는 순간 단박에 전달되었거든요.
저 깨끗하게 정돈된 얼굴로, 저토록 정직한 페인트칠을 하는 뒷모습이 얼마나 착하게(하지만 단호하게) ‘골목패 놀이 사절’을 선언하고 있던지. 아니 무슨 사람이 등까지 착하게 생겼담…. 뭔데 붓질은 저렇게 살랑살랑하고, 말투는 왜 저렇게 가시 하나 없이 보드라운가 싶어서 오늘의 첫 등장에 마음을 홀랑 빼앗겨 버렸어요.
그런 토니의 새 출발을 응원해주지는 못할망정 싫다 하는데도 자꾸만 바짓단을 잡아끄는 리프가 다소 못마땅해지려는 찰나.
한 번 제트는 영원히 제트라며, 아! 후회할 게 뻔한데도 눈 딱 감고 둘도 없는 친구 손을 다시 한 번 잡아주는 우리 토니의 혈기 청청한 의리에는 결국 미소 짓고 마는 저를 느끼면서 깨달았어요.
아, 오늘의 해는 동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떴구나..
이어서 노래가 시작된 거예요. 샤토니의 첫 넘버, Something’s coming.
볼프강의 돼지꼬리나 얼마나 잔인한 인생인가보다도 신들린 박자 타기의 진수. 시아준수의 박자감각이 궁금하신가요? 이 넘버에서 온몸으로 느껴보세요. 시아준수는 박자를 음으로도 쪼개지만 동작으로도 쪼갠답니다. 문을 여닫는 제스처, 강가로 흐르는 물길을 표현하는 손짓이 그대로 노래가 돼요.
일견 제멋대로처럼 느껴져서 당혹스럽기도 한 이 넘버의 음표들을 손짓 한 번에 정렬시키고, 눈썹 한 차례 찡긋하는 것으로 완성해버려요. 섬세하게 공들이는 것 같으면서도 뭐 딱히 대수로울 것은 없다는 듯이 살랑살랑 노래를 완결해내요. 시아준수의 토니가요. 뭐 저렇게 멋들어지게 뚝딱 해내지? 싶은데 다 듣고 보면 혼이 쏙 빠지게 어렵고 엄청난 노래가 매듭지어져 있어요. 이것이 마법이 아니면 뭘까요?
Something’s coming의 토니가 리듬 통제사였다면 Maria에서는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해요. 토니가 선창하면 오케스트라가 노래를 받아 완성하는 고전풍의 넘버 전개를 얼마나 아름답고 조화롭게 그려내던지.
절정부에서 토니가 마리아를 거듭 부르는 동안 오케스트라가 주된 멜로디라인을 그릴 때는요. 사람과 악기의 합창이 이런 거구나 했어요. 오케스트라가 노래를 하는 것처럼도 들렸고, 토니의 목소리가 악기가 된 것처럼도 들렸거든요. 악기로 분하여, 오케스트라의 일원이 되어, 가장 풍부한 영혼의 울림이 실린 소리를 내더라고요 토니가. 이렇게 사람과 악기의 경계가 흐릿해지던 절정부는 캠벨의 서문을 직접 목도하는 감격을 주었어요.
‘모든 악기들이 함께 소리를 내며 거역할 수 없는 물결의 포르티시모로 나아가는’ 순간의 목격자가 된 거죠.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
함께 치달았다가 끝내는 속삭임의 기도가 되어 고요에 가깝도록 수렴할 때는 이 노래의 가삿말을 토니를 포함한 연주자 전원에게 돌려드리고 싶었어요.
어쩜 이토록 아름다울까.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거죠?
이어서는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Tonight인 걸요. 첫공에서 이미 저의 삶의 기쁨, 애틋하도록 아름다운, 황홀의 고전. 사노라니 끝끝내 시아준수가 로미오로 강림하는 감격의 목격자가 됩니다.
마리아의 창을 두드리는 들뜬 목소리부터 계단 타고 오르는 동작 하나하나에 마음이 행복에 겨워 웃어요.
계단 타고 벽을 오른다니까요, 샤토니가. 시샘하는 달빛도 없는 뉴욕의 밤에서, 줄리엣의 로미오가 되어. 아니 무슨 계단도 싱그럽게 타.
심장이 헛웃을 만큼 싱그러워요. 계단 오르며 달떠서 뱉는 마리아 연발에 죽었어요. 마냥 좋아 발끝부터 동동 떠 있는 사랑이에요. 하늘로 나풀나풀 날갯짓하는 것 같던 버드키스는 여름 새싹처럼 풋풋하고, 갈게? 잘자? 끝음절을 사뿐하게 올린 말투는 너무나도 소년의 것이에요. 이토록 천진한 사랑스러움 앞에서 행복해지지 않을 도리 같은 건 없어요.
도대체, 사랑이란 현상 자체를 얼굴에 그대로 심어 넣은 듯한 토니를 보고 제가 어떻게 살아있는지 모르겠어요. 시아준수는 원래도 ‘선하고’ ‘사랑 가득한’ 얼굴을 정말 아름답게 그려내는 사람이지만, 특히 여기 사랑의 포문을 열면서는… 사랑의 황홀함이 피어나는 얼굴을 수면에 이는 물결처럼 분명하고도 아름답게 빚어내는 사람이 있다?
네 시아준수예요...
이토록 아름다운 ‘시아준수의 사랑을 표현하는 얼굴’이 한가득인 극이 있다?
네 웨사스예요...
피어나는 사랑의 봄바람 같은 풋풋한 일면을 투나잇 원곡이 들려준다면, Quintet and Chorus 버전에서는 깨지지 않을 단단함을 보여줘요. 혼돈 속을 박차고 나오는 소릿길의 감격은 극 안에서 이 넘버를 만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리란 걸 알아요.
그리고 11월 20일의 개인적 정점 중 하나.
1막의 엔딩.
베르나르도의 시신 앞에서 ‘마리아’를 부르며 무너졌던 첫공과는 다르게 오늘의 토니는 뒷걸음질을 쳤어요. 아주 살짝만. 차마 다가서지도, 그렇다고 제대로 외면하지도 못하고 어중간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떨더라고요. 아니야, 아니야.. 눈앞의 참극을 부정하는 음성이 여태 보아왔던 토니답지 않게 가늘었어요. 진정하라는 음성도 통하지 않고 염려도 닿지 않는 정신적 공황 속에서 희미한 울음소리만 가쁘게 터져 나왔죠.
그러다 끝내 절망을 다 가누지 못한 육신이 무대 중앙으로 무너졌고..
털썩, 무릎이 바닥을 아프게 박았을 때에서야 힘겹게 내뱉었어요.
제 고통의 원천이자,
삶의 이유를.
“마리아..”
희망의 임종을 전하는 듯한 암울한 종소리가 토니의 머리 위로 떨어진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에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댕, 댕, 댕.. 스산한 종성이 절망한 울음과 화음을 이뤄요. 사위가 천천히 어두워지고, 거의 모든 것의 색이 탁하게 가라앉았을 때 토니가 젖은 눈을 들어요. 어둠에 잠겨가는 그 눈동자가 1막의 마지막 빛이었어요.
모두가 일제히 숨을 참았던 것 같은 마지막 순간이 지나고 회장 안에 불이 밝아왔을 때, 객석이 소리 없이 탄식하는 것을 들었어요. 무언의 울림이 공기 중에 파도처럼 퍼지는 모습을 보며 알 수 있었죠. 이 마법은 나만 관통한 게 아니라는 것을.
첫공과 비교한다면 토니의 퇴장과 마리아를 절망하여 부르는 지점만이 달라졌을 뿐인데, 모든 것이 뒤바뀌었어요. 천둥 같은 굉음 없이도 관객은 지금 이 순간이 막에 방점을 찍는 전환점이란 걸 알 수 있었고, 토니의 절망을 더욱 선명하게 간직한 채로 2막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러니까, 극이 관객을 향하여 한 걸음 다가오고 토니는 그런 극의 걸음을 인도했죠.
이어지는 2막에서 웨스트사이드스토리의 비탈진 사연을 따라가는 건 조금도 어렵지 않았어요. 토니와 마리아가 새하얗게 지워진 에덴에서 국민체조에 동참하며 찰나의 위안을 찾는 순간도, ‘사회복지사’로 각인된 제트파 아이들의 서글프게 굴곡진 환경도, 아니타가 모든 것을 망쳐버릴 수밖에 없었던 사정까지 모두 저마다의 이유와 함께 저에게로 스며들었어요.
그래서 토니가.. 마리아의 눈앞에서 총을 맞고 스러질 때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었어요. 그저 사랑하는 이의 눈앞에서 허물어져야 하는 토니의 심정만이 어느 참담한 우주의 기운을 타고 제 안으로 물밀듯이 흘러들어오기만 했죠.
누구도 탓할 수 없어서 모두가 애틋하고, 모두가 죄지은 자이자 모두가 용서받을 대상인 제트와 샤크에게, 그리고 그런 그들을 끝까지 지켜보는 관객인 저에게 커튼콜에서 잔잔하게 깔리는 Tonight은 말로는 다 못 할 위로가 되었어요.
다시 만난 토니와 마리아가 손을 꼭 잡고, 이제는 친구가 된 제트와 샤크를 나란히 뒤돌아 바라볼 때 울컥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객석의 일렁임이 무대를 향하여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광경을 그 자리의 모두가 보았는걸요. 토니에게, 마리아에게, 제트와 샤크를 향해 객석으로부터 발하여지는 공감과 포용의 갈채는 구시대가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을 이 시대가 진한 위로로 끌어안아 주는 것만 같아서 제 마음을 또 한 바탕 뒤흔들어 놓았어요.
눈물과 갈채로 다 채워진 이 밤, 심장이 저를 다짐케 했어요. 오직 사랑 하나였던 한 청년과 또 그저 살고자 했을 뿐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따라, 이 뜨겁고도 찬란한 뉴욕의 계절에 투신해볼까 해요. 만날 적마다 잊지 않고 빌어주려고요. 꿈속에서나마 바라던 바를 되찾은 그들에게 무한의 평화와 사랑을 기원해줄 거예요. 오늘 제가 전해받은 이 모든 희로애락과 위로가 또한 그들의 것이 되기를 바라게 되었으니까요.
위로에 위로를 덧댄, 이 밤의 기적이라 해도 좋을 11월 20일의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