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샤토니 네 번째 공연

 

첫 왼블. 

“나 이제 진짜 그만하고 싶어.”

이 진중한 눈빛을 오늘에서야 정면으로 봅니다. 저렇게 선하고 진지하게 말하면.. 리프의 말문이 막힐 수밖에요. 선하고 유한 인상이라 부탁하면 다 들어줄 것만 같은데 또 단단하고 무심한 면이 있어서 아닌 건 아니다 쳐내는 저 얼굴… 

페인트통 넣어두고, 창고 앞 계단 아래 그늘에서 리프를 잠시 넌지시 볼 때 음영진 얼굴도 왼블에 와서 제대로 처음 보았는데, 그림자 덧칠하여 그윽해진 얼굴이 정말 잘생겼어요. 

 

오늘도 참 너무나 당연하게 얼굴 이야기로 시작을 하네요. 어쩔 수 없어요. 새로운 극이라 노래부터 각본, 등장인물의 면면 등 모든 것이 새롭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새롭고 시급하게 적응이 필요한 건 토니의 얼굴이에요. 극을 분석하면서 보려고 다짐을 해봐도, 얼굴을 보면 모든 게 초기화돼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 처음 보여주는 얼굴 안의 모든 표정들이 다 새롭게 있는 힘껏 잘생겨서 소화할 시간이 우선 좀 넉넉하게 필요하거든요. 저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저 얼굴의 박제가 남아야만 한다고 외치게 되고, 가능한 그린 듯이 써서라도 내 안에 오래오래 간직해야 한다는 다짐만을.. 하게 돼요. 

 

뱃속부터! 무덤까지! 구간에는 댑을 선보였어요. 

충무아트센터를 데스노트로 한 번 겪어보았다고, 웨사스에서는 ‘다 함께 쓰는 대기실’의 효과가 개막 일주일 만에 바로 나타나고 있어요. 어깨 박치기, 댑에 이어 어떤 참신한 동작들이 올지 두근두근합니다. 

 

 

댄스파티, 낭만적인 자줏빛 조명 속의 첫 만남. 자색 꿈결 같은 공간에서 우주가 피어나는 광경을 눈동자로 연기하는 토니의 얼굴도 오늘 드디어 정면에서 만났어요. 허. 너무 잘생겼음…

말을 잇지 못하게 하는, 어떤 강렬한 벅차오름이 토니의 미간에 서서히 고여요. 입꼬리는 신기하다는 듯 놀랍다는 듯 미세하게 올라가 있고, 동그란 코끝이 굉장히 선하게 오뚝 섭니다. 양 볼은 햇살에 잘 말린 솜뭉치처럼 부드러운데 그 아래로 날카롭게 깎인 턱선은 재고의 여지도 없이 단단해요. 투나잇의 오블이 정말 황홀했는데, 댄스파티의 왼블이 또 이렇게 한방을 주었어요. 

 

동생 단속하는 베르나르도에게 밀쳐진 토니. “동생..?” 내내 고왔던 눈썹이 뾰족하게 들려요. 토니의 눈썹은 병! 칼! 이나 치노를 찾을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 부드럽고 뭉근한 그림체인데, 여기에서 좀 예민하게 들썩여요. 이 드물게 보는 예민함이 심장에 파동을 일으키고요. 

그린 듯한 미간이 설핏 찡그려지고, 꼬이기 시작하는 상황을 인지하는 깊은 눈빛이 지나치게 잘생겼거든요. 왜 눈빛으로 잘생김을 말하는 걸까요. 

“넌 빠!져 치노.”

왕년에 한 주름 잡았다가 느껴지는 찰나의 강한 억양. 더 사고 치기 싫은, 제트가 그만하고 싶은 토니가 아주 가끔만 보여주는 이 강단이 좋아요. 더 보고 싶을 만큼. 

 

 

Maria.

마리아~ 오케스트라의 가창 구간에서 토니가 두 팔을 부드럽게 펼치면 배경의 별빛이 우수수 떨어지고 공간이동이 시작돼요. 이때의 무대 배경이 얼마나 환상적인지. 토니와 함께 달나라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달에 누가 사는지 알아요, 토니? 토끼가 아니라, 남자아이. 웃는 게 예쁘고 여태도 순수함을 간직한 낙천의 아이가 살고 있어요.  

 

 

웨딩숍. 조심성도 없이 앞문으로 등장했다가 딱 걸린 우리 토니. 들어가 말아 눈 굴리는 얼굴이.. 그러다 살그머니 미소 지으며 살금살금 들어오는 얼굴이 얼마나 예쁘다고요. 왼블에서는 이 얼굴이 곧잘 가려진다기에 미리 아쉬워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절반 정도는 볼 수 있었어요. 

 

오늘도 붕! 뜬 기분은 쩜프로 표현했어요. 

여기서 심장으로 특히 직격해온 부분은 아버지에게 따님을 청할 때예요. 어쩜 이렇게 자세가 직각으로 곧은지. 귀티가 나니 합격! 얼마든지 데려가시게!

 

어머니 톤을 따라 하는 잔망도 계속 이어졌는데, 어미가 살짝 달라졌어요. “음~ 예쁘네” 에서 “음~ 예쁘구나”로. 

 

 

닥 아저씨네 가게. 오늘의 최고로 귀여웠던 순간. 글쎄 토니, 한 번은 뿌수고 또 한 번은 쾅 박았던 예의 그 테이블을 오늘은 트레이처럼 밀면서 창고로 들어가는 게 아니겠어요? 어디에도 박지 않고 잘 밀어서 창고 문 안까지 진입한 후에야 읏챠 살짝만 들어 마저 옮기는데, 헛웃음 나올 정도로 귀여웠습니다. 기물파손의 역사가 화려한 좌충우돌 배달부지만 나날이 자신을 개선해가는 우리 토니, 너무 대견한 건 물론이고요. 

 

 

The Rumble. 싸움을 말리려는 토니가 베르나르도에게 좀처럼 대거리를 하지 않고 당하고만 있자, 열이 잔뜩 오른 리프. 더 참지 못하고 자기가 나서는데.. 우리 제트 아이들 의리에 왈칵했어요. 제트 안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냐더니, 저도 마음으로 제트가 되었나 봐요.

그런 제트의 마음도 몰라주고 리프에게 손가락 똑바로 펴서 “하지 마!!” 일갈하는 토니. 여기 발성이 너무나 너무나인 거예요. 여태 툭 툭 맞고 밀리기만 하던 토니가 제 성질머리의 발톱을 드러내는 게 절대 샤크 쪽은 아니고, 제트라는 것도 너무나예요. 진짜 친한 친구니까, 자기의 이런 필사적인 만류를 알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가능했던 거겠지요. 

 

마리아..

쓰러진 인영, 리프 한 번, 베르나르도 한 번씩 돌아보고 털썩 주저앉으며 마리아… 읊조리는 비통함. 

오늘의 토니는 떨구었던 고개를 다시 정면을 향해 들어올린 채로 암전을 맞이했어요. 그래서 다시 조우했죠. 토니의 절망 어린 눈동자가 1막의 마지막 기억이 되는 순간과. 

20일에 보았으나 22일에는 보지 못했던, 단 한 번 만나지 못했을 뿐인데 억겁의 시간 동안 그리워했던 그 눈과 다시 만났어요. 

알 수 없는 무엇을 찾아 헤매다 달나라 여행을 하고 돌아왔던 반짝이는 눈동자는 이제 없어요. 오직 절망뿐이에요. 

 

 

Somewhere, 토니의 차츰 풀려가는 얼굴에 촉각을 세우게 되는 곳. 오늘은 애써 미소를 되찾아가는 토니 외에도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부분을 보았어요. 이 장면에서 춤으로 이야기를 대신하는 모두가 웃고 있더라고요. 마음껏 웃지 못하는 토니와 마리아를 대신하듯이요. 제트와 샤크도 생각나면서, 저 아이들 모두 저렇게 걱정 없이 웃을 수 있기를 바랐을 뿐이었는데..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어요. 

 

 

다시 닥 아저씨네 가게. 서둘러 짐 챙기는 토니. 지퍼가 뚝 뚝 투두둑 하는 소리가 들린 거 같다면 환청일까요? 기름칠을 해주든지, 토니가 지퍼를 두 동강 내든지. 둘 중 하나는 조만간 꼭 일어날 것 같습니다. 

 

 

Finale. 치노를 찾는 절규. 오늘 유독 목소리에 색이 없었어요. 죽여달라 애원하는 음성이 이미 까무룩 죽어버린 잿빛이었어요.

보면서 찾아온 경탄은 배경음도 호흡 맞출 상대편도 전무하건만 흐느끼는 절규만으로 장면을, 이야기를 조여가는 숨 막히는 연기력 덕이었어요. 문득 평원에서 홀로 객석 앞을 가로지르던 아더 생각도 나더라고요. 아더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왔더라면, 그건 또 어떤 비통함이었을까.. 싶었어요. 

 

 

커튼콜. 샤토니 4공 기준 4번째로 커튼콜이 바뀌었어요. 22일에는 모든 노래를 마치고 친구들을 먼저 배웅한 다음, (베르나르도와 아니타는 남아있었고요) 토니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퇴장을 했지요. 오늘은 첫공 버전으로 돌아왔어요. 친구들이 모두 자리한 상태에서 토니 마리아가 먼저 천상계의 런웨이를 걸어 올라가더라고요. 토니 마리아가 먼저 떠나는 여운을 좋아했기에 반가운 복귀였어요. 

 

그리고 커튼콜에서 막간 댑 앵콜이 있었네요. 

죽음 후, 모두가 웃고 안녕하는 행복의 엔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