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샤토니 다섯 번째 공연. 

 

이쩜오대칠쩜오 정도의 내린 앞머리. 중요한 건 머리카락 한 가닥도 이마에 닿지 않게끔 옆으로 야무지게 치워진 스타일링이라는 것. 토니도 시아준수처럼 머리카락이 이마를 스치는 걸 못 참는군요? 어쩜 잘생긴 사람들은 그런 점도 닮네요. 

 

닥 아저씨에게 선물로 드릴 간판을 걸고, 한 발짝 뒤에서 손가락으로 각도 맞춰보는 근사한 뒷모습이 오늘의 첫 잘생김이었어요. 손가락 틈으로 간판의 어울림을 가늠하는 뒤통수가 꽤 신중해 보이는 거 있죠. 

 

리프와의 꿍짝은 오늘도 댑. 다만 추임새가 리뉴얼되었네요. 

“뱃속부터! 무덤까지! 호이! (댑)”

첫 댑은 리프 혼자만의 시도로 끝났는데, 뻘쭘해하는 그 모습에 객석에서 자잘한 웃음이 터진 걸 시작으로 웃음들이 꽤 많았답니다. 그래서 재밌었어요. 오늘의 공연장 분위기. 

 

 

Something’s coming. 

“다/가/오/네/뭔지는/몰라도”

여기 이 부분이요. 오케랑 같이 박자 구르는 거, 마치 잠실실내체육관이 관객들의 발 구르는 동작에 흔들리듯 공연장이 박자 맞춰 진동하는데 와.. 토니와 오케, 극장이 혼연일체가 된 듯한 감각이 정말 황홀했어요. 박자하면 시아준수, 시아준수하면 박자. 나는 나는 박자라 노래하는 것 같았답니다. 

 

 

Maria. 제 생에 이렇게 오케스트라 연주에 집중해본 적이 있을까요. 후반부, 토니가 마리아를 연발할 때 시아준수라는 오선지 위에서 주 멜로디라인을 노래하는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정말 황홀해요. 어쩜 이런 노래가 오빠를 찾아왔을까 싶게 기쁘고, 감사한 마음도 함께요. 

 

 

Tonight

“기다려.” 

무슨 아이 어르는 듯한 마리아의 말투에 나는 웃음이 나는데, 토니는 마냥 좋은가봐요. 아랫입술 귀엽게 깨물고 손바닥은 다리에 문지르고 아주 그냥 좋아서 가만히 있지를 못하네요. 

와중의 잘생김. 기다리는 동안 걸어 나와서 난간에 상체를 기대어 서는데 허어, 감독의 치밀한 계산 끝에서 탄생한 것만 같은 그림 같은 자태가 되지 뭐예요. 투나잇 특유의 반짝반짝 동화 같은 조명 속에서 너무나 근사한 모습이었어요. 난간에 기대어 선 채로 꿈결을 거니는 듯 두 눈을 아득하게 반짝이는데… 그야말로 그림..♡

 

 

웨딩숍. 

이그젝틀리! 공중에 붕 뜬! 주먹 꼭 쥐고 검지 쫙 펴가며 우렁차게 토니를 따라 하는 아니타. 눈 동그랗게 뜬 토니가 마리아에게 속삭이길,

“내가 언제 저렇게 했어.”

자그맣게 토달대는 음성이 귀여웠어요. 

 

자기들끼리 꽁냥댈 때 하는 볼꼬집은 오늘도 무위로 돌아갔네요. 아니타가 뒤돌아보기 전에 서둘러야 성공하는데.. 요즘 성공률이 높지 않아요. 볼을 꼬집을 때 본인 콧잔등도 같이 찡긋해서 엄청 귀여운데.. 타이밍을 잘 맞춰 보아요 토니. 

 

어머니 따라잡기는 드디어 문장이 바뀌었어요. 

예쁘네~ 가 영어로. 아메리칸인 국적을 살려 발음은 특히 부드럽게, so beautiful!

너무 푸근하신 어머니에 대해 말할 때는 중간에 억양을 넣어가며 ‘너무 푸근해서 탈’이라고 강조했고요. 

아니 그런데 한재아 마리아 왜케 호탕하죠. 토니 애드립에 빵빵 터지는 음성이 낯설지가 않았어요. 

 

 

Ond Hand, One Heart, 마지막 파트. 헤어져서도 같은 가사를 합창하는 두 사람. 얼마나 좋으면 저토록 한마음 한뜻일까 싶은 와중에… 토니는 점차로 내려가고 마리아는 차차 올라가며 화음을 이루는 합창이… 마치 현존하는 모든 음계에서 사랑을 맹세하는 하모니로 들려 뭉클했어요. 

 

그런데 시아준수, 분위기가 전환될 때 사르르 변하는 표정을 어쩌면 이렇게 기가 막히게 표현해낼까요? 여기에서나, 댄스파티에서 마리아를 처음 발견하고서나. 무슨 스위치가 있는 걸까. 책장을 넘겨 챕터를 바꾸는 것처럼 얼굴로 부드럽고도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요. 우리 이걸 부디 찍어서 간직하면 안 될까요.  

 

 

제트의 Cool을 보면서는요. 문득 상상하게 되었어요. 인생 더 꼬이기 싫어지기 전, 그러니까 정신 차리기 전(?)의 토니도 쿨로 스스로를 눌러 담았을까요? 리프와 함께 제트를 만들었으니 제트의 이념 같은 쿨도 같이 설립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건 리프의 방식이려나요? 

닥 아저씨네 가게에서 친구들 진정하라며 내리누르는 손등을 보고 있으면 리프의 쿨이든 토니만의 쿨이든 무언가가 있었을 것 같은데, 그게 어떤 형상이었을지 궁금해요. 

웨사스의 계절 동안 토니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좀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닥 아저씨네 가게. “난 뱃지가 있거든.” 슈랭크 경위의 말에 피식 웃던 얼굴이 날카로워 드물게 시니컬했어요. 

도통 끝나지 않는 슈랭크 경위의 깽판에 결국 진저리난다는 듯이 뒷머리를 벅벅 긁는데 아, 저런. 뒷머리가 그만 위로 몇 가닥 뻗쳐 올라가서 소닉이 되어버렸지 뭐예요. 그조차도 날렵하고 멋있었습니다. 

 

“겁이 나야 되나.”

첫공 즈음에는 분명 엄청 멋들어졌던 것 같은데. 넉살도 좀 피우고. 너스레도 좀 담고요. 그런데 오늘은 입술 비죽이 내민 삐요대장 같았어요. 닥쳐올 미래에 대한 그 어떤 심각하고 무거운 고민보다는 무작정 다 잘 될 텐데, 무엇이 걱정이겠느냐는, 낙천 그 자체의 얼굴이었어요. 어휴. 정말. 토니다워서 미소 짓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닥 아저씨의 마음의 되어 애가 조금 탔답니다. 

 

 

The Rumble

“마리아..” 토해내는 순간 이어지는 음계처럼 종이 울리는 건 왜 들을 때마다 심장을 넘어트릴까요. 

오늘도 암전 직전까지 눈동자를 마주하고, 그 맑던 눈이 새까맣게 타버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아프고도 기뻤어요. 그 눈에 담긴 건 어째서 절망이어도 아름다운지요. 

 

 

2막에서는 복지송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베이비존이 사회복지사를 하는 걸 보려고 일주일을 기다렸거든요. 그런데 딱 이 대목에서 구조물 오른쪽의 계단을 타고 오르는 토니를 목격해버렸지 뭐예요. 마리아랑 나란히 계단을 올라가는데 하얗고 날렵한 움직임에 시선을 그대로 빼앗겼어요. 허허. 복지사 베이비존.. 다음 기회에 ..

 

 

Finale

“여기서 사랑하면 안 돼. 그러면 안 된대.”

그간의 토니는 늘 통제가 되지 않는 어리고 여린 목소리로 이 문장을 마치 투정하듯이 닫아걸었는데요. 오늘 처음으로 ‘안된다’는 마지막 어미를 울음으로 흐렸어요. 이것은 변화일까요, 오늘의 즉흥일까요? 다음 공연에서 답을 찾아보겠어요. 

 

 

마지막으로 드디어 커튼콜이 바뀌지 않은 공연. Ver.4로 비로소 확정이 되었나 봐요. 안녕, 안녕. 행복의 안녕. 친구들의 따듯한 배웅 속에 웃으며 퇴장하는 토니와 마리아를 볼 수 있어 기뻐요. 

그리고.. 김소향 아니타와 배나라 리프가 이제야 사이를 터놓은 친구처럼 찰나의 포옹을 나누었을 때, 비로소 제트와 샤크가 진짜 친구가 된 것 같은 감격에 뭉클했어요. 토니와 마리아가 웃으며 마주 선 뒤로 리프와 아니타가 포옹하는 순간 마치 남과 북이 세기를 돌아 이루어낸 화합을 목도하는 것만 같은 아득함에 진실로 감격하고 말았답니다. 계속 보고 싶어요.  커튼콜에서 되찾은 우리 토니의 웃음을 굳건하게 해줄 게 틀림없는, 이 포옹을요. 

 

 

덧. 가방에 기름칠을 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