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샤토니 여섯 번째 공연

 

“몇 시?”

“열 시!”

유난히 기다렸다는 듯한 정택운 리프의 즉답에 토니, 진짜 픽 웃은 거 같았죠? 살포시 찡긋했던 한쪽 눈이 오늘의 막을 여는 잘생김.

“뱃속부터! 무덤까지! 죽든 살든 얍!”

정택운 리프와는 동작 대신 우렁찬 구호로 합을 맞추었어요. 손카메라 만들 타이밍은 확보하지 못해서 오늘은 간판을 보기만 했고요. 대신 이제 페인트칠은 제 색에 맞게 잘 칠한답니다. 

 

 

오늘 음향.. 오.. 30일에 다소 작고 답답하다 느꼈던 부분들을 완전히 메워주는 밸런스. 좋았어요. 사람의 음성도, 오케스트라의 소리도 적절한 균형과 장중한 음량으로 귀가 행복했습니다. Something’s coming 을 듣는 순간 퀸텟의 토니가 기대되어 참을 수가 없어진 거 있죠. (그리고 상상하던 대로 되었습니다..♡)

 

Something’s coming 에서 오늘 특히 좋았던 건 토니가 아직 정체도 모르는 무언가를 찾아 계단 오를 때, 붕 떠 있던 그 발끝이에요. 토니는 천성적으로 두 발이 땅에 닿아있는 적이 잘 없는 인물이란 걸 시작부에 아주 또렷하게 보여주는 순간이었거든요. 마리아를 만나기 전부터도 이미 꿈결을 거닐고 있는 모습을 똑똑히 보여준 거죠. 달나라 청년이 곧 토니의 아이덴티티라는 것을요. 

 

 

댄스파티. “넌 빠!져 치노!” 원래도 강한 여기를 오늘 갑자기 이 악물고 강하게 해서 깜짝 놀래라. 음향 덕에 더 크게 들린 것도 같은데 올 성질머리.. 싶었어요. 

 

 

Tonight의 엔딩. 마지막 인사(떼아도로)를 나눌 때 왼블에서는 토니의 시야로 마리아를 올려다볼 수 있어요. 눈이 부시도록 하얀 조명이 마리아의 머리 위에서부터 토니를 향해 찬란하게 부서지는데.. 아, 이거 예뻐 보일 수밖에 없겠던걸요.

한편으로는 이 조명 아래의 마리아가 토니의 시선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모습처럼도 느껴졌어요. 지금 토니 눈에 마리아가 저렇게 보이는구나, 사랑의 콩깍지로 보는 마리아는 저렇구나, 음~ 예쁘네~ 하고요. 

 

“기다려.” 잠시 마리아를 기다릴 적, 오늘도 난간에 상체 기대고 꿈꾸었어요. 너무나 왕자님처럼요. 이 장면의 토니를 꼭 좀 찍어주겠나요 쇼노트? 무릎까지 담기는 앵글로, 벽면에 반사되는 우주의 빛깔까지 한 폭에 담아 부탁해요. 

 

 

닥 아저씨네 가게. 소닉이 되었던 날 머리 정돈 받으며 한 소리를 들었던 걸까요? 리프와의 첫 씬에서도 되도록 머리에 손을 안 대는 것 같더니(뒷머리 끄트머리만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는 정도였어요), 여기선 아예 머리에 일절 손을 안 대지 뭐예요. 벅벅 긁는 손동작에서 묻어나는 슈랭크 경위에 대한 언짢음, 제트들에 대한 염려가 좋아서 살짝 기다렸는데 말이에요. 

 

슈랭크 경위의 깽판이 한창일 때, 오늘은 토니의 쿨을 얼핏 본 것도 같았어요. 제트들이 손으로 심호흡을 하는 동안 토니는 계단에 걸터앉은 채로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줄만 알았는데(당연함. 여태는 얼굴만 봤으니까요) 발목을 까닥이고 있더라고요. 저 망언이 얼마나 이어지나 보자는 듯이. 발목을 타닥이는 것으로 시간을 인내하는 듯이요. 

 

깽판 소강 후에 탁자는 이제 계속 밀어서 들어가려나 봐요. 한두 번 정도는 더 여기저기 박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빈틈을 주지 않는군요. 

 

 

웨딩숍. 아니타가 오후 인사ㅡ부에나스 타르데스를 다 가르쳐 주기도 전에 그라시아스를 선공해버린 우리 토니. 네, 마음이 급한 거 잘 알겠어요. ㅎㅎ

그래도 오늘은 타이밍 맞추어 볼 꼬집기에 성공했습니다. 역시나 본인 콧잔등도 함께 찡긋해가면서요. 

그리고 귀엽고 믿음직한 “내가 가서 막아야지” 하며 ‘나’를 어필하는 엄지. 11월 30일에는 어필해주지 않아 아쉬웠는데 오늘 볼꼬집과 함께 나란히 왔습니다. 

 

 

Ond Hand, One Heart에서는 천사시아 구간을 만났어요. 마지막 파트에서였는데요. 하얗게 쏟아지는 조명이 투나잇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토니를 날개처럼 감싸고 있고, 그 하얗고 눈부신 조명의 길을 따라 토니가 무대 앞으로 천천히 걸어와요. 원핸드의 성결함을 깊이 머금은 얼굴을 하고서요. 천사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여기가 왼블 시야의 극락 지점이구나 하는 깊은 깨달음 속에서 또 간절히 바랐어요. 쇼노트, 여기는 영상으로 부탁할게요..

 

참 웨딩숍에서 나설 때 너무 귀여웠던 순간. 등으로 문 밀어 열면서 마리아를 향해 아랫입술 야무지고 귀엽게 깨물어 웃어 보이던 얼굴이요, 생김새가 어쩜 그렇게 다람쥐 같던지요!

 

 

Tonight (Quintet and Chorus)

음향팀에 고합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주세요. 풍부하게 차곡차곡 쌓아가는 선율과 합창 위에 덧대어지는 토니의 음성. 그 음성 하나만 다른 색으로 덧칠한 것처럼 선명하게 다가오는 황홀함을 만끽했어요. 

 

 

Somewhere 

악몽으로 변해버린 꿈의 끝에 선 토니와 마리아. 무대는 그들의 꿈이 악몽으로 끝났음을 이토록 명징하게 보여주는데 토니와 마리아는 전혀 모르는 걸까요? 이 아이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애틋하게 웃고 있어요. 함께라면, 그곳이 어디든 ‘somewhere’가 되리라는 믿음이 이들의 웃음을 가능하게 해주는 걸까요? 그 somewhere가 새빨간 악몽으로 끝난 건 보지 못한 채로요?… 서로만을 담고 웃는 얼굴을 지켜보는 동안 온갖 감정이 스쳐 갔어요. 

 

와중에요. 악몽에서 토니가 푹찍 시연할 때 턱 살짝 들고, 시선 내리깔고, 허리 꼿꼿하게 세운 모습이 너무 우아해요. 시연 후 군중 틈으로 다이빙하는 자세도 고와요. 슬로우 모션을 걸어놓은 것처럼 우아해서 신기할 정도예요.

 

 

Finale. 총 맞은 직후의 얼굴을 오늘에서야 제대로 보았습니다. 극적 효과를 위해 쨍한 조명을 그대로 받고 있는 터라 아주 환하게도 보았어요. 울음으로 혼비백산했던 흔적은 오간 데 없이, 해사한 웃음이 가득 고여있는 모습을요.

빛 받은 얼굴이 온통 마리아라는 기쁨으로 가득했어요. 아픈 것도 느끼지 못하나 봐요. 바라보는 저는 지금 토니가 총을 맞았고, 생과 사의 경계에 있음을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는데 정작 죽어가는 본인은 그저 웃는 거예요. 마리아를 만난 기쁨만이 보이는 맹목적인 얼굴로요! 두 사람이 사랑할 시간이 단 하룻밤이라 해도 세상 무엇보다 의미 있으리라는 말이 거짓 하나 없는 진실이었다는 걸… 너무 잘 알겠더라고요. 

 

마지막으로는 사담 같은 감탄인데요. 이지수 마리아가 토니의 얼굴을 정말 곧게 정면으로 눕혀줘서, 누워있는 이마에서부터 코끝으로 연결되는 옆선이 실로 예술이었어요. 너무 예뻐서 눈 감은 얼굴을 오래오래 보았네요. 아름다움의 다른 말로도 쓰이는 ‘고전’이라는 건, 누워있는 토니의 콧등에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