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샤토니 일곱 번째 공연

 

오늘의 오프닝, Something’s coming 에서는 오케스트라와 박자를 조율하는 토니를 보았어요. 주요 지점은 주로 시아준수가 예의 박자 쪼개기를 강하게 선보일 때였는데요. 특히 ‘다가오네 뭔지는 몰라도.’ 이 대목의 첫 어절 직후에 잠시간 부음감님의 오케스트라와 엎치락뒤치락하며 박자의 타협을 이루어내는 모습을 보았답니다. 

 

토니 크로스 리프,

“뱃속부터! 무덤까지! 죽든 살든 얍!”

정택운 리프와는 특정한 동작을 맞추기보다는 우렁찬 기합을 이어 가고 있고요. 

 

그리고 전반적으로 음향에서 에코가 매우 증폭되었어요. 노래에서 사람 목소리의 울림이 몹시 강하게 전달돼요. 퀸텟과 같은 합창에서는 넘버의 웅장함이 극대화되어 좋지만 something’s coming 처럼 독창하는 넘버에서까지 에코가 이렇게 강할 필요가 있을까.. 갸웃했어요. 

 

 

댄스파티. 2일에 앙칼지고 우렁찼던 “넌 빠져 치노”는 원래의 데시벨로 복귀했어요. 딱히 드세진 않지만, 져주지는 않는 톤으로요. 

 

 

이어서 마리아와의 달밤, tonight. 

“그럼 일 분마안.“

소매에 다 먹혀서 손등의 끄트머리만 보이는 주먹이 얼마나 귀엽던지요. 시아준수는 얼굴만 귀엽던가, 목소리만 귀엽던가, 아니면 주먹만 귀엽던가.. 한 번에 하나만 하는 건 결코 못하는 스타일인 거 맞죠?

 

“나만, 보면, 돼.”

이제는 이 대목이 투나잇으로 진입하기 전, 핵심 대사임을 강조해주는 토니를 만나요. 2일에도 어절 사이에 무시할 수 없는 쉼표가 깃들어있다 느꼈는데 오늘은 정말로 완연했어요. 이렇게 온 마음을 심어 또박또박 전하는데 어떻게 다른 누구를 보겠어요. 너만, 보게, 돼. 

 

마리아를 기다리며 난간에 기댈 때는요. 별빛 담은 눈동자와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앞니, 이렇게 3개의 삼각존이 번쩍번쩍해요. 눈을 뗄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 형형하여 막 마음이 벅차올라요. 우리 토니는 완벽해요.

 

 

Cool. 토니는 등장하지 않는 넘버지만 토니를 빼놓고 감상할 수는 없는 넘버예요. 보노라면 계속 토니의 cool은 어떤 형상일지 상상하게 되거든요. 

더군다나 오늘은 제트들만의 cool을 보는 중에 억울함마저 치밀지 뭐예요. 아니, cool 정도는 토니도 같이 출 수 있는 거 아닌가요? 토니는 화가 없어서 안 되려나요? 발끈할 때 보면 영 화가 없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시아준수가 댄스 뮤지컬을 하는데 댄스파티에서의 율동이 본인 움직임의 전부라는 게 말이 되느냔 말이에요. 

 

 

닥 아저씨네 가게. 

“병! 칼! 총!”

요 며칠은 ‘병! 칼! 왜 총도 쏘지 그러냐’ 라더니 오늘은 쓰리콤보가 돌아왔습니다. 우리 토니 기개가 보이는 세 음절이요. 혼란한 아이들을 단번에 잠재우고 귀 기울이게 하는 장악력이요! 

 

 

웨딩숍. 

“그라시아스. 부에나스 타르데스.”

2일과 다르게 이번엔 오후 인사 무사히 듣고, 따라 하기까지 순서대로 성공한 토니. 볼 꼬집기도 성공했는데요, 오늘따라 여기 동작들이 좀 깨알 같았어요. 

모두 아니타의 등 뒤에서 찰나에 일어난 일이에요. 왜애~ 장난스럽게 웃으며 팔꿈치로 마리아를 슬쩍 한 번 밀고, 이어서 귀엽다는 듯 볼을 꼬집어 주었다가, 또 거기서 다 표현하지 못한 자기 마음을 마리아의 머리를 쓰다듬는 걸로 보여주는 거 있죠. 연이어진 3개의 꽁냥거림에 오늘의 웨딩숍이 얼마나 달달하던지요. 

 

“내가 가서 막아야지.” 

싸움을 막는 멋진 ‘나’를 어필하는 엄지도 좀 더 확연하게 보여주었어요. 그간에는 엄지를 쓰더라도 복부 언저리에 머무는 높이에서 그쳐서 눈에 크게 띄지는 않았는데요, 오늘은 엄지를 아주 당당하게 가슴 위까지 끌어올려 동작을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보여주었어요. 

 

너희 어머님께도 여쭤보자는 마리아 말에는 기습 공격당한 사람처럼 부지불식 간에 “엄마..?” 하고 한 번 옹알댔는데요. 멍한 듯 순한 듯 얼마나 말도 안 되게 멍순했는지.. 만약 실내체육관이었으면 적당히 발구르는 소리로는 끝나지 못했을 거예요. 

 

그리고요 토니, 오늘은 왜 본인이 그렇게 호탕하게 웃었던 거예요? “당장 데려가렴~” 해놓고는 마리아랑 나란히 하하하 웃는데 토니 웃음소리가 마리아의 웃음을 다 덮어버렸어요. 본인 재치가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영특하던가요? ㅎㅎ

 

여러 모로 오늘의 웨딩숍은 이런저런 디테일들이 깨알같이 일어나기에 여유가 충분한 느낌이었어서 보는 재미가 남달랐네요. 

 

 

The Rumble

베르나르도들 여기서 항상 토니에게 못되게 굴지만, 오늘은 김찬호 나르도가 맞는 말을 했어요. “이쁘장하게 생겨가지고.” (원 대사는 기집애처럼 생겨가지고)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ㅎㅎ

 

제트와 샤크의 비극으로 치닫는 아우성을 보고 있노라니 여기서는 문득, 토니가 말리러 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싶더라고요. 대표로 뽑힌 둘이 맨손으로 붙고, 별일 없이 끝나지 않았을까요? 마리아의 불안함을 잠재워주기 위해 괜히 안 가려던 자리에 나타나서 모든 불행의 증폭제가 되어버린 토니가, 그 자리에 아예 나가지 않았더라면.. 그러면 리프와 베르나르도가 죽는 일도, 토니가 죽는 비극도 없었을까요? 

아니려나? 운명은 어차피 토니가 나타나지 않았어도 또 다른 장난을 쳤을까요?

 

무수한 만약을 뒤로 하고 오늘도 칼부림 끝에 쓰러진 리프. 그런데 정택운 리프, 토니 품에 안겨서 ‘괜찮아’라고 하는 거.. 토니 안심시켜 주려고 그러는 거예요? 자기는 지금 죽어가는데…?.. 

죽어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가늘게, 괜찮다를 연발하는 친구를 품에 안고 우리 토니가 어떻게 돌지 않고 버티겠나요.. 단 하룻밤의 사랑이라 해도 무엇보다 의미 있다는 ‘마리아’마저도 그 찰나에는 까맣게 지워질 만큼 충격적일 수밖에요. 

 

 

Somewhere 는 극을 거듭하여 볼수록 마음이 텁텁한 넘버가 되어가고 있어요. 지금 이 넘버의 모든 장면이 모두 거짓, 모두 가짜라는 걸 알고 봐서일까요. 토니와 마리아가 꿈속에서라도 찰나의 위로를 얻을 수 있어 다행인가 싶다가도, 허황한 위로 속에서만 웃을 수 있는 이 아이들의 처지가 안타깝다 못해 갑갑해요. 

아무리 토니가 극 내내 발끝을 두둥실 띄운 달나라 청년의 활약을 보여줘도 결국은 정해진 비극을 위해 죽어야 하고, 마리아가 홀로 살아남아 내일을 여는 희망이 되어주지만 그 내일에 토니는 없잖아요. 토니가 없는 세상에서 somewhere에 당도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에요. 

 

 

마리아를 찾아온 슈랭크 경위. 

“어제 체육관 댄스 파티에 갔었죠.”

이 대사를 들을 때마다 늘 정신이 번쩍 들어요. 아, 이제까지의 이 모든 혼란한 아름다움과 비극이 고작 어제 시작된 하룻밤 사이의 결과물이란 걸 단번에 깨닫게 해주거든요. 조용하게 심어두었지만 너무나 강한 파급력의 문장이 아닐 수 없어요. 

 

 

Finale, 이 장면에 붙이고 싶은 오늘의 부제는.. 

웃지마 바보야.. 뭐가 좋다고 웃어..

여기선 사랑하면 안 된다면서 그 누구보다 사랑에 투신한 청춘, 토니. 눈물로도 다 지우지 못한 웃음 속에서 저무는 얼굴이 너무나 토니다워서 볼수록 마음이 아파요.

 

게다가 오늘의 한재아 마리아, 대단한 열연으로 이틀 밤의 대장정을 마무리해주었어요. 개인적으로 와 닿았던 부분은 토니의 매무새를 정돈해줄 때였어요. 셔츠부터 먼저 주섬주섬 수습해주고 나서 그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놓아주는데.. 엉망으로 헝클어진 셔츠를 곱게 펴주는 손길에 울컥했어요. 시간이 멎어버린 토니의 옷자락에 마리아의 덜덜 떨리는 손이 닿을 때마다 울컥울컥 와 닿더라고요. 생과 사로 영영 분리된 두 사람이, 지금 이 순간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음이요. 

 

 

그리고 커튼콜이요. 저는 커튼콜의 4가지 버전 중 11월 20일 버전, 그러니까 아직 커튼콜 노래가 없던 시절에 tonight이 연주로만 잔잔하게 깔렸던 날의 여운을 계속 되새기고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춤과 노래가 있게 되면 모두 함께 웃으며 행복하게 안녕할 수 있지만 여운은 조금 흩어지는 느낌이라서요.

그런데 오늘은 엔딩의 여운을 끝까지 간직할 수 있었어요. 죽는 그 순간까지 마리아를 향해 웃어주던 토니의 지극한 애틋함과 죽음 후 한재아 마리아의 열연 덕분에요. 너무나 장중하고 압도적인 비극을 목도하고 나니, 모두가 웃으며 떠들썩하게 맞이하는 커튼콜이 진정한 에필로그처럼 느껴져서 감격스럽더라고요. 

극이 아무리 빈틈없이 짜여 있다 해도 그걸 무대로 온전히 옮기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지요. 오늘 그 차원을 완결해내는 배우들을 만났어요. 

이 무대를 완성해준 토니와 마리아에게 박수를 전합니다. 덕분에 따듯하고 행복한 밤이었어요.